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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도신문
북유럽의 긴 겨울밤, 사람들은 칠흑 같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오묘한 빛을 바라보며 신화를 만들었다. 북유럽 사람들은 하늘을 물들이는 빛을 경외했고, 로마인들은 짙은 어둠을 깨고 새로운 빛을 내보내는 새벽의 여신 '아우로라(Aurora)'의 이름으로 그 빛을 불렀다.
라틴어로 '새벽'을 뜻하는 오로라가 가장 깊은 어둠 끝에 찾아오듯, 세상보다 먼저 깨어나 차가운 새벽 바다를 가르는 어민들의 삶 역시 어둠을 건너 희망을 일구는 숭고한 새벽을 닮아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오로라 앞에 선 인간의 마음은 오래전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설명할 수 있으면서도 경외하고, 이해하면서도 두려워한다. 어쩌면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경외감은 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인간 깊은 곳에 남아 있는 본능인지도 모른다.
그 오로라를 향해 하늘을 올려다보는 대신 바다 아래로 시선을 낮추면, 전복의 패각 안쪽에서 연두와 분홍, 은빛이 겹쳐지는 오로라를 담은 오묘한 자개빛을 만날 수 있다. 전복의 패각은 생명이 자라며 한 겹 한 겹 쌓이는 단단한 껍데기이자 안쪽 진주층에 긴 시간을 켜켜이 축적해 온, 살아남은 생의 기록이다. 그래서 전복의 자개빛은 단순한 화려함으로만 바라보기 어렵다. 거친 물살을 견디고 계절의 변화를 지나 바닷속에서 자신의 몸을 지켜 온 작은 생명의 시간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하늘의 오로라가 태양풍과 대기가 만나는 순간 만들어지는 빛이라면, 전복의 자개빛은 바다와 생명이 오랜 시간 서로를 품으며 빚어낸 지상의 오로라다.
이 영롱한 빛이 가장 풍성하게 피어나는 곳이 바로 완도다. 완도군은 우리나라 전복 생산량의 70~80%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전복 주산지로, 전복은 군민들에게 단순한 수산물을 넘어 바다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오랜 세월 구축해 온 삶의 기반 자체다. 그러나 풍요로웠던 바다에도 이제 이전과는 다른 서늘한 두려움이 찾아오고 있다. 태풍처럼 하늘이 검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가뭄처럼 저수지가 바짝 갈라지는 것도 아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바람도 거세지 않지만, 바닷물의 온도가 조금씩 오르는 그 변화가 바닷속 생명에게는 결코 작지 않다. 이제 우리가 마주해야 할 자연의 또 다른 엄혹한 얼굴은 바로 뜨거워지는 바다, '고수온'이다.
해역의 수온이 28℃에 도달하거나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면 고수온 주의보가 내려지고, 28℃ 이상의 수온이 3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 경보가 발령된다. 하지만 이 숫자를 단순한 폐사의 절대적 기준선으로만 볼 수는 없다. 양식생물의 피해는 수온의 높이뿐 아니라 고온이 지속되는 기간, 사육 밀도, 먹이 상태, 해수의 흐름과 용존산소 등 여러 환경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외적으로 찾아오던 고수온이 이제 해마다 여름철이면 반복해서 경계해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는 데 있다. 바다에 삶을 의탁한 어민들에게 수온은 단순한 지표가 아니다. 화면 속 숫자 하나에 하루의 마음이 휘청이고, 수온이 오르면 가두리를 살피고 먹이를 조절하며 이상 징후가 없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다를 바라보게 된다.
태풍은 하늘을 보고 대비하고 가뭄은 저수지를 보며 가늠하지만, 고수온은 바다가 겉으로 평온하다는 데 더 큰 두려움이 있다. 수면은 여전히 푸르고 파도는 잔잔하지만, 그 아래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열이 생명의 숨통을 조여 온다. 수온 상승이 장기화되어 폐사가 시작되면 어민들은 숫자로 다 헤아릴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한다. 과거 국립수산과학원의 조사에서는 완도 일부 해역의 전복 양식장에서 폐사율이 40~50%에 이른 사례도 확인됐다. 전복 한 마리의 폐사는 단순히 생명 하나가 사라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종자값과 사료비, 시설 관리비, 그리고 수년 동안 들인 어민의 노동과 시간이 한순간에 수중으로 사라짐을 의미한다. 건져 올리는 폐사체에는 한 해의 소득뿐 아니라 가족의 생계, 그리고 다음 계절을 기약하던 희망까지 함께 실려 있다.
바다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안전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기후가 달라지고 해양 환경이 변하면서 푸른 바다 속에 새로운 위험이 스며들고 있다. 바다는 이제 우리에게 묻는다. "내가 변하고 있는데, 너희는 얼마나 달라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2012년 태풍 볼라벤으로 자연의 파괴력을 실감했고, 2022~2023년 대가뭄을 통해 섬과 바다의 땅에서도 마실 물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역설을 경험했다면, 고수온은 거대한 파도나 폭풍 없이도 생명의 터전이 서서히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더 두려운 것은 변화가 너무 느려서 우리가 그것을 재난으로 인식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어제보다 오늘의 바다가 조금 더 따뜻하고, 오늘보다 내일의 바다가 조금 더 달라지는 동안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그물을 손질하고 가두리를 살핀다. 그러나 작은 차이가 계절마다 쌓이면 그것은 어느 순간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기후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손님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와 조용히 자리를 잡은 변화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자연을 정복하는 기술이 아니라, 변화를 먼저 알아차리고 우리의 방식을 바꾸는 겸허함이다. 고수온이 예상되면 사육 밀도를 조절하고 먹이 공급을 줄이거나 일시적으로 중단하며, 가두리의 해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필요에 따라 조기 출하나 산소 공급 등 상황에 맞는 대응을 해야 한다. 이는 자연을 이기려는 시도가 아니라 변해가는 자연 앞에서 인간의 삶의 방식을 조정하는 과정이다. 나아가 이러한 대응은 어민들만의 외로운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완도의 전복 산업은 생산자와 유통자, 가공업자와 소비자까지 하나의 바다로 연결되어 있기에, 바다의 온도 변화는 결국 우리 식탁과 지역경제,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의 미래와 연결된 문제다.
이제 자연재해를 견디어 내는 책임을 현장의 어민들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된다. 고수온에 강한 품종과 양식 기술을 개발하고, 실시간 수온 관측과 예측 시스템을 더욱 정밀하게 구축하며,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실질적으로 반영되도록 사회적 약속을 넓혀가야 한다. 실제로 완도군과 국립수산과학원은 고수온 대응을 위해 수온·용존산소 등을 관측하고, 고수온 내성 품종과 양식 기술을 개발하는 등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연구와 현장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어민이 바다를 지키는 동안 사회가 어민의 삶을 지켜 주는 것, 그것이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새롭게 세워야 할 상생의 의무다.
전복 패각 안쪽에 번지는 자개빛은 화려하지만, 그 빛을 이루기까지의 시간은 한 겹, 또 한 겹 말없이 견뎌 낸 어둠의 연속이었다. 완도의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왔다. 태풍이 지나가면 그물을 다시 일으키고, 가뭄이 오면 물을 나누었으며, 바다가 뜨거워지면 가두리를 살피며 서늘한 물길을 기다렸다. 자연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작음을 인정하며 끝내 다시 살아갈 길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인간이 대자연 앞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숭고한 회복탄력성이다. 그것은 같은 자리에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달라진 바다를 읽고 삶의 본질을 잃지 않은 채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힘이며, 바다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자연으로부터 배운 가장 깊은 지혜다.
완도 바다의 흔들리는 가두리 속에서 전복들은 묵묵히 패각 안쪽에 한 줄의 자개빛을 더해가고 있다. 그 영롱함은 대자연의 시련을 견뎌낸 생명과 사람이 바다 깊은 곳에 새겨놓은 가장 단단하고 숭고한 삶의 오로라다.
우리가 그 빛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까닭은 아름다움 너머, 어둠 속에서도 매일 가장 먼저 새벽을 열며 삶을 지켜낸 바다 사람들의 묵묵한 희망이 함께 빛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