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엄천강(임천) 일대의 '함양 한남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 정비사업'이 최근 공사 입찰 절차를 마치고, 오는 9월 16일 현장 감정평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순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300억 원의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어 재해를 예방하겠다는 공사가, 정작 현장 주민들에게는 또 다른 재해 위험과 생활상의 고통을 안기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한남재해위험지구 엄천강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동강리 구간 ⓒ 최상두
사업자 선정을 마친 함양군은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오는 9월 16일 오전 10시부터 휴천면 동강리와 남호리 일원에서 토지 및 물건에 대한 감정평가를 실시한다고 밝혔습니다.

▲한남재해지구 공사 지점 주택 건물 앞까지 수용 여부 의견 청취 ⓒ 최상두
그러나 현장 주민들의 마음은 참담하기만 합니다. 도로가 확장되고 편입되는 과정에서 집 마당이 좁아지거나 진입로가 도로로 편입될 처지에 놓였을 뿐만 아니라, 기존 도로가 1~2m가량 높게 성토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도로가 높이 솟아 오르면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아진 주변 주택들은 큰비가 내릴 때마다 빗물이 집 쪽으로 쏠려 침수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집 바로 옆으로 차도가 높게 들어서면서 통행 안전은 위협 받고, 침수 우려까지 겹치면서 실질적인 삶의 공간을 잃어버린 주민들은 당장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실정입니다. 주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재해 예방 공사가 오히려 주민을 침수와 사고 위험에 노출하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지만 행정적 대안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일부 주민이 "300억 원이라는 거액의 예산을 들여 삶의 터전을 위태롭게 만들 바에야, 차라리 마을 전체 이주 대책을 세워주는 것이 맞지 않느냐"며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입니다.
행정 절차에 막힌 수중 장애물 철거
이번 공사는 도로를 높이고 한남교 인상, 엄천교 재가설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작 엄천강(임천) 속에서 물길을 가로막으며 직접적인 재해 위험을 키우는 대형 구조물들은 이번 공사 계획에 빠져 있습니다.
지난 2002년과 2003년 태풍 당시 유실되어 강바닥에 방치된 구 한남교 잔해들은 물의 흐름을 가로막는 위험 요소입니다. 2015년 가동되어 2025년 폐쇄된 '운서소수력발전소'의 콘크리트 구조물 역시 하천 바닥의 자연스러운 물흐름을 막고 있습니다.

▲함양군 남호리 운서소수력발전소 주변 재해 위험 요소를 철거해야 한다 ⓒ 최상두
이에 대해 군청 일자리경제과 측은 "폐쇄된 운서소수력발전소를 이번 기회에 함께 철거하면 좋겠지만, 사업 목적이 다르고 예산이 별개라 이번 재해지구 공사와 병행하기는 어렵다"며 "향후 별도 예산을 확보해 철거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재해 담당 부서 역시 공사 목적이 달라 일괄 추진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재해 위험을 근본적으로 줄여야 할 공사에서, 강 속의 진짜 위험 요인은 행정 절차와 예산 구조의 벽에 막혀 또다시 방치된 셈입니다.
멸종위기종의 보고 엄천강(임천), 지혜로운 보존 대책 필요
공사 구간인 한남교와 엄천교 일대의 엄천강(임천)은 수많은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살아가는 소중한 터전이기도 합니다.
포유류: 수달,담비, 삵
파충류 : 남생이
조류: 수리부엉이, 흰목물떼새, 귀제비 (특히 한남교 일대는 귀제비의 주요 서식지)
어류: 꼬치동자개, 얼룩새꼬미꾸리, 모래주사, 큰줄납자루 등

▲한남재해위험구역은 수달 및 멸종위기종의 서식지 ⓒ 최상두
이처럼 소중한 법정보호종이 대거 서식하는 지역인 만큼, 공사 진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생태계 영향을 최소화하고 서식지를 보호할 수 있는 세심한 저감 방안과 대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연재해로부터 지역과 주민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추진되는 300억 원 규모의 사업입니다. 입찰 절차를 마치고 본격적인 시공을 앞둔 이 사업이 참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토목 공사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엄천강(임천) 속에 남은 위험 요인을 치워 물길을 트고 1~2m 높이는 도로 때문에 침수 위험에 직면한 주민들의 정주 대책을 최우선으로 살필 수 있는 깊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는 16일 시작되는 감정평가를 기점으로, 함양군 행정과 주민, 지역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주민의 안전과 생태를 함께 지켜낼 진정성 있는 소통을 이어나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수달아빠’로 불리며 지리산 엄천강 일대에서 야생동물과 하천 생태를 기록하고 있다. 수달과 철새의 삶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고민하며, 현장에서 보고 느낀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