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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정인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9차 회의(임시회)를 주재하고 있다.
▲차정인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9차 회의(임시회)를 주재하고 있다. ⓒ 유성호

최근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고등학교 내신의 절대평가 체제의 전면 도입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한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이튿날 국교위는 초안일 뿐이라며, 원점 재검토 방침을 밝혔다. 이어 교육 현장과 국민 의견을 수렴한 후 내년 3월 확정안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으론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2030년부터 등급을 매기는 상대평가를 폐지하고, 성취 기준에 도달했는지를 확인하는 절대평가 체제를 전면 도입한다는 내용이다. 대입 개편을 위해 절대평가 체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학교를 '전쟁터'에 비유하는 아이들... 상대평가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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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2022 개정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절대평가의 도입은 시간문제였다.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완화되기는 했으나, 애초 상대평가와 고교학점제는 공존할 수 없는 제도였다. 학교 현장에서도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식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상대평가의 존치는 각자의 흥미와 적성을 고려하여 수강 과목을 선택하게 한다는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무력화했다. 상위 등급을 얻기 위해서는 해당 과목을 선택한 학생 수가 많을수록 유리하다. 등급이 대입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수험생이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고려하기란 쉽지 않다.

5등급제의 시행으로 성적 경쟁이 완화될 거라는 기대도 애초 무망했다. 마치 시험 응시 과목 수를 줄이면 학업 부담이 줄어들 거라는 발상과 흡사하다. 학업 부담의 가중은 과목의 수에 달린 게 아니라 점수와 등급을 기준으로 한 줄로 세우려는 상대평가의 근본적인 한계다.

온존한 학벌 구조 속에서 대입 선발 과정에서의 '효율성'만 제외하면, 상대평가의 장점은 사실상 없다.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고, 협동학습을 불가능하게 만들며, 교과별 성취 기준조차 형식적 절차로 전락시킨다. 서열이 매겨지면 성취 기준을 달성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고작 한 문제 차이로 등급이 내려갔다며 울먹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교육은커녕 '야만'이라는 단어부터 떠올리게 된다. 학교를 '전쟁터'로 비유하는 그들의 살벌한 답변이 더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렇듯 성취 기준을 무력화하는 상대평가는 교육의 본령마저 훼손한다.

절대평가 체제로의 전환은 상대방과의 우열 비교가 일상화한 우리 사회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100점보다 1등이 중요한 상대평가의 철칙은 비단 아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심지어 그들에게 협력의 가치를 가르쳐야 할 교사들에게조차 개인별 근무 실적을 계량화하여 한 줄 세운 뒤 성과급 차등 지급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성과급을 볼모로 동료 교사와 끊임없이 비교당하는 교사가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친구들과 비교하지 말라고 가르칠 순 없는 노릇이다. 학창 시절 상대평가의 치열한 내신 경쟁을 이겨냈고, 졸업 후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일로 비유되는 임용시험에 합격한 교사들 자신에게도 절대평가는 여전히 낯설다. 상대평가의 폐지가 쉽지 않은 또 다른 이유다.

가장 큰 걸림돌부터 치워야

무엇보다 절대평가 체제로의 전환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부터 치워야 한다. 상대평가를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여기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인식이 그것이다. 수능이 교실 수업에 미친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불공정의 전형으로 낙인찍힌 것도, 계량화한 수치를 기준으로 한 줄로 세우지 않는 학종의 평가 방식에 기인한다.

학종이 불공정하다는 인식은 느닷없이 대학 내에서 차별과 혐오를 양산하는 부작용까지 낳았다. 같은 학과의 동급생 안에서도 어떤 전형을 통해 합격했는지에 따라 서열화하고 있다. 수능 위주의 정시 출신이 수시 전형을 통해 합격한 이들을 낮잡아 보는 일이 공공연하다. 학벌 구조 속에 또 다른 학벌 구조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지성의 요람이라는 대학에서 '수시충', '기균충(기회 균등 선발)', '지균충(지역 균형 선발)' 등의 혐오 표현이 버젓하다. 지역별로 '인 서울'과 지방으로 가르고, 지방은 다시 '지거국(지방 거점 국립대)'과 '지잡대'로 나눈다. 학창 시절의 상대평가로 인한 그늘이 이토록 깊다.

그들의 강퍅한 정서만 탓할 건 아니다. 이는 1~2점 차이로 등급이 갈리는 상대평가에 오랫동안 길들어진 우리 사회 기성세대의 거울상이어서다. 학종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우선 상대평가로 서열화한 결과만 맹신하는 아이들의 공정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부터 바루어야 한다.

다양한 개인의 능력을 계량화된 지표로 정확히 평가할 수 없을뿐더러 시험을 통해 한 줄 세우려는 건 교육을 빙자한 폭력이다. 시험 성적만이 공정하다는 주장도 어불성설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도덕 시험 성적이 우수할수록 도덕적인 학생이고 역사 시험 성적이 우수할수록 역사의식이 투철한 학생이라는 명제가 참이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이 목울대를 세우는 공정이란 철저히 개인의 이해관계에 매몰된 개념이다. 그들은 각자의 출발선이 다르다는 걸 도외시한 채, 경쟁 과정에서의 공정만을 부르댄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거나 지방 소멸의 위기 속에 지역 인재를 우대하는 건 '사회적 공정'에 해당한다. 곧, '기균'과 '지균' 등의 대입 전형을 불공정하다고 폄훼할 수 없다.

절대평가 체제에서의 성적은 '합불(Pass or Fail)' 방식으로 기록된다. 교과별 성취 기준에 도달했는지에 따라 합격 여부가 결정되고, 계량화된 지표 대신 평가자인 교사가 서논술형으로 기재하게 되는 것이다. 점수와 등급 산출에 매몰된 고정관념을 버리면, 지극히 당연하고 교육적인 평가 방식이다.

초안이 공개되자 전가의 보도처럼 '대입 변별력'을 잃게 되어 대학별로 수능과 논술, 면접 등 다른 선발 기준을 강화하게 될 거라는 우려를 쏟아냈다. 지역과 학교별 학업 수준을 반영하는 고교 등급제까지 부활할 수 있다는 주장이 이어진다. 상대평가를 포기하면 더 큰 혼란이 발생할 거라는 이야기다.

대체 언제까지 '대입 변별력' 타령을 들어야 하나. 단언컨대, 대한민국 교육의 적폐와 모순은 초중고 교육이 대입에 철저히 종속된 탓이다. 우리 교육이 대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절대평가 체제가 안착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이다. 또다시 '대입 변별력'에 휘둘린다면, 절대평가가 도입된다 해도 '좌회전 깜빡이 넣고 우회전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절대평가#대입변별력#학벌구조#고교학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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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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