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부터 31일까지 튀르키예를 여행했다. 목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답사다. 이번 여행기를 통해 튀르키예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살펴보려고 한다.
고대도시 에페수스의 역사 살펴보기

▲고대도시 에페수스 ⓒ 이상기
에페수스는 기원 전 8세기 그리스 시대 처음 만들어진 고대 도시다. 12개 이오니아 동맹 국가 중 하나로, 리디아(Lydia) 지역을 대표하는 항구도시였다. 에페수스는 기원전 550년경 완공된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유명하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기원전 489년에는 그리스 연합군이 에페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을 물리쳤다. 기원전 334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이 지역을 점령했고, 그가 죽은 후 290년부터 리시마쿠스(Lysimachus)의 지배를 받았다.
리시마쿠스는 바다로 들어가는 강 하구에 토사가 쌓여 습지가 형성되자 에페수스와 아르테미스 신전 사이에 살던 주민을 2㎞ 동쪽으로 이주시켰다. 그것이 현재 도심인 셀주크(Selçuk)의 시작이다. 그 후 에페수스는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의 지배를 받았고, 세력을 키우는 로마와 자주 충돌하게 되었다. 기원전 129년 에페수스가 로마공화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이때부터 로마의 도시로 번성했다.

▲셀수스 도서관 ⓒ 이상기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황제가 되었고, 에페수스를 소아시아 서부 지역의 수도로 삼았다. 이때부터 에페수스는 제2 전성기를 맞이한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인 기원후 120년대 셀수스(Celsus) 도서관이 만들어졌다. 셀수스 도서관은 그리스·로마시대 알렉산드리아, 페르가몬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서관이었다. 한때 12,000권의 두루마리 책자를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263년 고트족의 침략으로 신전과 도서관 등 중요 건물이 파괴되고 소장 자료가 약탈되었다. 그 후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공중 목욕탕을 건설하는 등 도시 재건이 이루어졌다. 그리스에서 로마시대에 이르기까지 에페수스의 인구는 5만에서 15만 사이를 왔다 갔다 한 것으로 보인다. 4세기 후반 비잔틴시대가 열렸고, 콘스탄티노플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에페수스 유적의 하이라이트는 셀수스 도서관

▲에페수스 로마시대 극장 ⓒ 이상기
고대 유적지 에페수스 출입문은 북쪽(아래쪽 문)과 동남쪽(윗쪽 마그네스 문)에 있다. 18년 전에는 마그네스 문으로 들어가 로마시대 공중목욕탕, 작은 규모의 극장 오데온, 상부 아고라, 도미티아누스 신전을 보고 헤라클레스 문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쿠레테스 거리를 따라 내려가면서 트라야누스 샘, 하드리아누스 신전, 셀수스 도서관을 보았다. 셀수스 도서관을 지나면 대리석 거리가 이어지고, 오른쪽 끝에 있는 로마시대 극장을 살펴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번에는 북쪽 문으로 들어가 소나무 가로수길을 지나 아르카디엔 거리까지 갔다. 그리고 좌회전해 앞쪽의 로마시대 극장을 살펴보았다.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극장으로 연극 공연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로마 후기 검투사들의 격투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현재는 극장이 낡고 훼손이 심해 이를 복원하기 위해 출입을 금하고 있다. 그 때문에 들어가 살펴볼 수 없었다.

▲셀수스 도서관 ⓒ 이상기
극장을 지나 대리석 거리를 따라가면, 오른쪽으로 시장 겸 비즈니스 공간인 아고라가 나온다. 그리고 대리석 거리와 쿠레테스 거리가 만나는 지점에 셀수스 도서관이 있다. 셀수스 도서관은 군인이자 정치가로 소아시아 총독을 지낸 셀수스(Tiberius Julius Celsus Polemaeanus)의 영묘로 만들어졌다. 그 후 건물 내부에 고대의 책들이 수집되어 진열되면서 도서관으로 사용되었다.
도서관 건물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4개의 벽면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벽면 사이에 3개의 출입문이 있다. 각각의 벽 가운데에는 4개의 대리석 부조가 세워져 있고, 그 바깥으로는 두 개의 코린트식 석주가 받치고 있다. 벽에는 1970년부터 1978년까지 오스트리아 고고학연구팀이 건축회사와 공동 작업으로 복구했다는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셀수스 도서관 벽의 부조: 지혜, 인격, 판단력, 경험(왼쪽부터) ⓒ 이상기
벽 사이 네 개의 부조는 셀수스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지혜(Sofia), 인격(Areti), 판단력(Ennoia), 경험(Epistimi)을 상징하고 있다. 이들 중 지혜와 인격은 부조의 모습이 제대로 남아 있으나, 판단력과 경험은 얼굴과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간 상태다. 그러나 이들 부조는 복제품이다. 원래의 부조는 1905/06년 오스트리아 발굴단에 의해 빈에 있는 에페소스 박물관으로 반출되었다.
현재 도서관 건물은 동쪽 전면의 문과 벽 그리고 지붕 일부만 남아 있다. 2층의 벽에도 도서관의 주인공인 셀수스와 도서관을 지은 그의 아들 아퀼라(Aquila)의 부조상이 있었다고 한다. 이중 셀수스 조각상이 현재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에 옮겨 전시되고 있다. 도서관 내부는 가로 17m, 세로 11m 크기의 직사각형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훼손되고 없는 도서관 뒷면 벽 아래 계단을 통해 셀수스 영묘로 내려갈 수 있었다고 한다.

▲출입제한 발 표시와 공중화장실 ⓒ 이상기
셀수스 도서관 앞의 광장에서 북쪽으로 서면 개선문 같은 형태의 문이 보인다. 이 문이 바로 아고라 남쪽의 출입문이다. 이 문의 상단에는 명문이 있는데 이것을 통해 이곳이 테트라고노스(Tetragonos) 아고라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아고라는 한 변의 길이가 120m쯤 되는 정사각형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항구를 통해 들어온 상인들이 이곳에서 물건을 거래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리석 거리를 사이에 두고 길 건너편에는 돈 많은 장사꾼들을 유혹하는 유흥가가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리석 거리에 홍등가 출입을 제한하는 발 모양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미성년자 출입금지 표시다. 유흥가 뒤에는 공중 화장실이 있다. 경사면을 따라 내려온 수돗물을 이곳 화장실로 흐르게 하고, 그 위에 앉아서 대소변을 볼 수 있게 했다. 대리석 좌변기를 통해 떨어진 대소변이 물에 씻겨 내려가도록 한 구조다.
하드리아누스 신전과 테라스 하우스

▲하드리아누스 신전 ⓒ 이상기
이제 길은 쿠레테스 거리를 따라 헤라클레스 문쪽으로 올라간다. 길 양쪽으로 하드리아누스 신전과 테라스 하우스가 있다. 신전은 입구 현관과 정문 그리고 그 안의 성소 공간이 잘 남아 있다. 정문 코린트 양식 주두 위에 만들어진 아치 중앙에는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 흉상 부조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안쪽 둥근 형태 박공에는 넝쿨무늬로 장식된 여인상 부조가 있다.
그 옆 벽에 새겨진 4개의 부조 역시 정교하고 섬세하다. 에페수스를 건설한 왕 안드로클로스(Androklos)가 멧돼지를 사냥하는 장면이 보인다. 그 외에 신과 여전사 아마조네스의 모습도 보인다. 하드리아누스 신전 주랑에는 제1차 사두정치 황제들인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티누스 클로루스,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이 신전은 기원후 178년 퀸틸리우스(Publius Quintilius)에 의해 만들어져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쳐졌다.

▲테라스 하우스의 모자이크화 ⓒ 이상기
테라스 하우스는 6개의 호화로운 주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때문에 벽은 프레스코화로, 바닥은 모자이크화로 장식되었다. 이 주택은 기원전 1세기에 처음 지어지기 시작해 기원후 7세기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폭 3m, 길이 80m 정도 공간에 만들어진 모자이크화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모자이크화가 마치 양탄자처럼 느껴진다. 이곳은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사교 공간이었을 것이다. 테라스 하우스는 현재 보호 지붕으로 덮여 있다.
하드리아누스 신전 위로는 학자들을 위한 공중목욕탕과 그곳에 물을 공급하는 님페움이 있었다. 님페움에는 분수와 목욕탕을 이용하는 학자와 귀족 그리고 상인 이용할 수 있는 휴식공간이 있었다. 이 건물은 아르테미스 여신과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봉헌되었다. 그 때문에 건물 중앙 벽감에 트라야누스 황제 조각상이 서 있었다고 한다. 이곳 상인방에 새겨진 비문을 통해 분수와 건물이 기원후 110년경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