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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미술관 전경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생전 작업실 옆에 3년 만에 완공된 박서보미술관
▲박서보미술관 전경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생전 작업실 옆에 3년 만에 완공된 박서보미술관 ⓒ 문현호

연희동 안쪽, 나지막한 주택가로 접어들면 거리의 소음이 한 겹씩 걷혀나갑니다.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골이 깊게 파인 외벽의 건물 하나가 불쑥 나타납니다.

박서보(1931~2023) 화백이 마지막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연희동 작업실 바로 옆, 이 미술관은 원래 작은 기념관 정도로 계획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2023년 초 화백이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고향인 경북 예천에 추진하던 공립미술관 건립마저 중단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아들인 박승호 박서보재단 이사장이 부지를 더 확보해 규모를 키웠고, 최문규 건축가와 3년을 들여 지난 8월 21일 마침내 문을 열었습니다.

화백은 끝내 이 공간의 완공을 보지 못했습니다. 임종 무렵 며느리에게 남겼다는 마지막 말은 "배접해라, 나가면 작업할 게 너무 많다"였다고 합니다. 그 말을 알고 나서 미술관 마당에 서니, 어쩐지 마음이 한 번 더 가라앉았습니다.

이 골목을 다시 찾은 데는 사사로운 이유도 하나 있습니다. 2019년 봄, 저희 부부는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렸던 회고전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를 함께 보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아내에게 가장 좋아하는 한국 현대미술 작가를 물으면 대답은 늘 하나였습니다. "박서보." 그 기억을 품고 다시 그의 이름 앞에 서니, 반가움과 함께 어딘가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골목에 스며든 밭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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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지하 2층부터 지상 3층까지, 전시실 세 곳(SPACE Ø, SPACE 2, SPACE 3)과 커뮤니티 공간 한 곳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층마다 작은 야외 정원을 두었다는 점이 다른 미술관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외벽을 감싼 골진 세로 줄무늬였습니다. 박서보가 수십 년간 젖은 한지를 밀어 올리며 남긴 묘법의 골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결. 건축 자체가 거장의 손끝에서 나온 부조 작품처럼 골목에 스며들어 있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입장료는 5천 원. 요즘 웬만한 전시 티켓 값을 떠올리면, 이 정도 규모의 공간을 이렇게 낮은 문턱으로 열어두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환대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하,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자리

관람은 지하 2층 SPACE Ø에서 시작됩니다. 지상에서 지하까지 수직으로 뚫린 선큰 정원 덕분에, 지하인데도 빛이 가득했습니다. 유리창 너머 작은 정원은 사각의 캔버스처럼 놓여 있고, 그 정원을 둘러싼 콘크리트 벽에는 나뭇결 무늬가 은은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지하 2층 선큰(Sunken) 정원 지하 깊은 곳까지 자연 채광을 끌어들여 자연과 건축, 회화가 호흡하도록 설계된 중정
▲지하 2층 선큰(Sunken) 정원지하 깊은 곳까지 자연 채광을 끌어들여 자연과 건축, 회화가 호흡하도록 설계된 중정 ⓒ 문현호

이곳에서 박서보와 흐엉 도딘(Huong Dodinh, 1945~ )의 1990년대 작품들이 처음 마주합니다. 베트남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해 온 흐엉 도딘은 재료도 방식도 전혀 다르지만, 반복과 절제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낸다는 점에서 박서보와 은근히 닮은 화가입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박서보가 세상을 떠나기 석 달 전인 2023년 7월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개인전을 마치고 떠나기 전, 흐엉 도딘이 연희동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서로의 작업을 모르던 두 사람은 세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한국어를 영어로, 다시 프랑스어로 옮기는 통역을 몇 번이나 거쳐야 했다는데, 박서보가 자연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자 흐엉 도딘은 통역하려는 아들을 손짓으로 막으며 "다 알아들었다"고 했답니다. 언어를 넘어, 자연이라는 같은 결을 먼저 알아본 순간이었을 겁니다.

어머니의 아궁이에서 후쿠시마의 단풍까지

지상 2층 SPACE 2로 올라가면 화면의 색이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1990년대의 짙은 흑색 묘법에서 시작해, 점차 밝고 강렬한 색채로 옮겨가는 구간입니다.

흑색 묘법 앞에 오래 서 있었습니다. 화백은 생전 이 색을 두고, 기억 속 아궁이 주변에 앉은 그을음 같은 색이라 말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 겹의 짙고 옅은 층위 속에 심연 같은 깊이가 담겨 있어, 살아 있을 때 가장 아꼈던 색이라고도 했습니다. 부뚜막 앞에서 자식들을 위해 불을 지피던 손, 그 손끝의 검은 재. 차갑기만 할 것 같던 검정 안에 그런 온기가 배어 있다는 걸 알고 나니, 그림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박서보 <묘법>(흑색 연작) 유년 시절 어머니의 아궁이 재와 그을음의 기억을 투영해 완성한 깊은 먹빛의 한지 묘법
▲박서보 <묘법>(흑색 연작)유년 시절 어머니의 아궁이 재와 그을음의 기억을 투영해 완성한 깊은 먹빛의 한지 묘법 ⓒ 문현호

그 흑색을 지나면 이번엔 붉은빛으로 가득 찬 <묘법 No.100915>(2010) 앞에 시선이 머뭅니다. 이 붉은색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2000년, 화백은 자신의 칠순에 맞춰 도쿄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게 되었는데, 다른 건 다 괜찮으니 단풍이 절정일 때 열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전시를 앞두고 찾은 후쿠시마 반다이산에서, 골짜기를 가득 채운 새빨간 단풍을 본 순간 "나를 다 태워버릴 것 같았다"고 훗날 회상했습니다. 그날 이후 그의 색에는 단풍색, 유채꽃색, 홍시색, 벚꽃색, 황금올리브색 같은 이름이 붙었습니다. 물감통에서 나온 색이 아니라, 자연에서 걸어 나온 색이라는 뜻이었을 겁니다.

박서보 <묘법 No.100915> 가을 단풍의 강렬한 생명력을 화폭에 담아낸 2000년대 이후의 대표적인 색채 묘법
▲박서보 <묘법 No.100915>가을 단풍의 강렬한 생명력을 화폭에 담아낸 2000년대 이후의 대표적인 색채 묘법 ⓒ 문현호

이 방을 채운 색들의 뿌리를 알고 나니, 묘법이 처음 태어난 순간의 일화도 다시 눈에 밟혔습니다. 1967년, 방안지에 글씨 연습을 하던 어린 아들(훗날 박서보재단 이사장이 된 박승호)이 글씨가 자꾸 칸을 벗어나자 그 위에 빗금을 마구 긋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던 화백은 거기서 자신이 오래 찾던 것, '체념'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목적을 내려놓고 반복되는 행위로 스스로를 비워내는 그리기. 묘법은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3층 큐브, 그리고 남겨진 인사

전시의 정점은 지상 3층 SPACE 3, 가로·세로·높이 각 8미터의 정육면체 공간입니다. 인공조명 없이 천장과 벽을 통해 은은한 자연광만 들어오는 이곳에, 화백이 자신의 미술관이 생기면 걸기 위해 아껴두었던 말년의 백색 대작 세 점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붙들었기에 화면 귀퉁이에 미처 서명조차 남기지 못한, '미완의 완성작'들입니다.

3층 큐브 전시장과 백색 대작 3점 자연광만으로 비추는 8m 높이의 큐브 공간에 나란히 놓인 박 화백의 마지막 유작들
▲3층 큐브 전시장과 백색 대작 3점자연광만으로 비추는 8m 높이의 큐브 공간에 나란히 놓인 박 화백의 마지막 유작들 ⓒ 문현호

물에 적신 한지를 몇 겹씩 올리고, 마르기 전에 굵은 선을 반복해서 그어 밀어낸 자국들. 종이의 살결이 밭고랑처럼 솟아 있었습니다. 문득 어릴 적 시골에서 보았던, 다듬잇돌 위에서 천을 두드리던 손길이 떠올랐습니다. 같은 자리를 몇 번이고 두드려 결을 만들어내던 그 리듬과, 눈앞의 화면이 겹쳐 보였습니다.

몇 걸음 물러서 보았습니다. 그러자 울퉁불퉁한 자국들 위로 빛과 그림자가 얇게 드리우며, 화면 전체가 아주 느리게 숨을 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박서보에게 흰색은 그냥 색이 아니었습니다. 1975년 도쿄화랑에서 열린 <백색>전을 계기로 한국의 단색화가 세계에 처음 이름을 알렸을 때, 그 맨 앞에 그의 흰 그림이 있었습니다. 서구 미니멀리즘의 매끈하고 차가운 화이트와는 결이 다른, 달항아리 굽에서 배어 나오는 은은한 흰빛에 가까운 색이었습니다. 바닥에 먼저 짙은 회색을 깔고 그 위에 흰 물감을 겹겹이 얹었기에, 그의 백색 아래에는 어둠이 있고 그 어둠 위로 맑은 빛이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같은 층 벽면에는 흐엉 도딘이 그를 기려 그린 작품 < X.K.N31 >(2025~2026)이 조용히 걸려 있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지 석 달 만에 화백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92세였습니다. 비보를 접한 후 화백과의 침묵의 교감을 떠올리며 완성했다는 그 흰 화면 앞에서, 저도 모르게 걸음이 느려졌습니다.

정원을 지나 골목으로

전시실을 나오면 층마다 작은 정원이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을 잠시 보다가, 다시 큐브 공간으로 돌아와 벽에 드리운 빛을 한참 바라봤습니다. 오늘 본 빛은 늦여름의 것이었습니다. 눈이 내려앉는 겨울에 다시 온다면, 이 벽은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미술관 야외 정원 전시장 곳곳에 창을 내어 사계절의 자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조성된 정원
▲미술관 야외 정원전시장 곳곳에 창을 내어 사계절의 자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조성된 정원 ⓒ 문현호

미술관을 나서며 백색 대작들과 흑색 묘법, 그리고 어린 아들의 낙서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가 평생 쌓아 올린 것은 결국 무언가를 덜어내기 위한 두께였던 셈입니다. 그 두께 앞에 한참 서 있다 나오니, 마음속에 괜히 얹혀 있던 말들이 조금 가벼워진 기분이었습니다.

연희동 골목을 다시 걸어 나오는 길, 낮은 담장 위로 저녁 볕이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아내와 다시 미술관을 찾아야겠습니다.

#박서보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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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는 여전하고, 마음 한켠엔 늘 바다가 있습니다. 서울 하늘 아래 걷고 있지만, 그리움은 늘 남쪽을 향합니다. 조용한 산책길과 사소한 감탄 속에서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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