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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디세이>(감독 크리스토퍼 놀란)로 '썰'을 풀기 위해 제작진은 '교수와 덕후'를 떠올렸습니다. <오디세이> 직전 이야기가 담긴 <일리아스>의 문구를 깃발에 새기고 2024년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 당시 광장에 출동(?)했던 '덕후' 석민주('X' 계정 활동명 '하길'). 그리고 덕후가 뭔지도 모른 채 세이렌의 유혹마냥 그 깃발에 끌려 희랍(그리스)어로 원전을 읊은 아저씨, 아니 '교수' 안재원. (관련 기사 : '덕후'의 탄핵 깃발에 홀려버린 서울대 교수 https://omn.kr/2fr1k)

두 사람을 만나기로 한 날 아침, 안 교수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설마 취소는 아니겠지... 다행히 아니었습니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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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수 교수님이 <오디세이>를 설명한다는 건 오뒷세우스가 직접 설명하는 것과 같아요." -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서양고전문헌학)

안 교수는 자신의 스승이자 '서양고전학계 웬만한 분들'의 스승이기도 한 이태수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도 "직접 모셨다"며 웃었습니다. 잠시만요, '교수와 덕후'도 실은 부담인데 오뒷세우스 그 자체가 오신다고요? 1973년부터 호메로스 원전 <오뒷세이아>를 읽으셨다고요? 요즘 제일 바쁜 김헌 교수도 이분 제자라고요?

 오른쪽부터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이태수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석민주('X' 계정 활동명 '하길)씨, 소중한 <오마이뉴스> 기자.
▲오른쪽부터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이태수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석민주('X' 계정 활동명 '하길)씨, 소중한 <오마이뉴스> 기자. ⓒ 오마이뉴스

엄청난 내공의 세 사람 덕분에 사회를 볼 기자는 부담감 증폭... 그래도 출발은 해야죠. 비빌 언덕이라곤 지난 4월에 신혼여행으로 그리스를 다녀온 것뿐인 기자는 그렇게 '끝판왕' 이태수 교수와 제자 안재원 교수, 덕후 석민주(반전 직업 : 한의사)씨와 '<오디세이> 심화반 썰'을 풀기 위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사회자 "저희가 시간이 많이 흘렀거든요. 좀 더 속도를 내야 할 것 같아요."

이태수 "이거 상당히 중요한 대목이야."
안재원 "나는 그 대목을 굉장히 중요하게 보는데..."
석민주 "재밌는 포인트가 뭐냐면..."

이태수 "중요한 대목은 이거예요."
안재원 "선생님도 중요한 대목이라고 하셨지만..."
석민주 "중요하게 본인이 인식하는데요..."

'중요' 릴레이 속에 그렇게 우리는... 오뒷세우스처럼 집에 가지 못했습니다만, 영화만큼 재밌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지난 8월 21일 오후 3시, 안 교수의 연구실 구석에서 풀기 시작한 이야기는 오후 8시가 돼서야 끝났습니다.

방대한 내용으로 기사를 쓰고 영상을 편집하는 사이 영화 <오디세이> 관람객은 1000만 명을 넘어섰고 어쩌다 보니 이 기사도 '1000만 특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기사와 영상에는 왜 오'디'세우스가 아닌 오'뒷'세우스인지, 그의 운명이 깃든 이름은 누가 지어줬는지, 원전에 없는 시논은 왜 영화에 등장했는지 담겨 있습니다.

이후 기사도 계속 이어질 거예요. 영화 <오디세이>의 알파(Α)부터 오메가(Ω)까지를 모두 채워 넣어 볼 겁니다.

 영화 <오디세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석민주씨, 이태수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서양고전문헌학 교수(카메라 모니터 내 왼쪽부터). 카메라 모니터 밖은 사회를 맡은 소중한 <오마이뉴스> 기자.
▲영화 <오디세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석민주씨, 이태수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서양고전문헌학 교수(카메라 모니터 내 왼쪽부터). 카메라 모니터 밖은 사회를 맡은 소중한 <오마이뉴스> 기자. ⓒ 정교진

[시작] 교수와 덕후는 어떻게 만났나

소중한(기자) : 안녕하세요. 이곳은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소속 교수님의 연구실입니다. 이 방의 주인분과 함께 요새 정말 뜨거운 영화 <오디세이> 이야기를 풀어보기 위해 왔습니다. 이 방의 주인분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안재원(교수) : (서울대) 서양고전학연구소장 안재원입니다. 서울대에서 주로 고전문헌학개론을 가르칩니다. 또 라틴어, 레토릭, 문학 등 되는대로 펑크난 데 있으면 가서 때워주는 불펜맨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웃음).

석민주(덕후) : 안녕하세요. 지난 윤석열 탄핵 광장에 "분노를 노래하소서, 민중이여!" 깃발을 들고 나간 하길('X' 계정 활동명)이라고 합니다(해당 문구는 <일리아스>의 첫 구절 변용 - 기자 주).

기자 : 마지막입니다. 이 분을 두고 안 교수님은 "오뒷세우스가 직접 영화 <오디세이>를 설명하는 것과 같다"고 소개를 해주셨는데요(전원 웃음).

이태수(끝판왕) : 서울대 명예교수인 이태수입니다. 18년 전에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은퇴를 해서 시골에 살고 있어요. 호메로스 원전을 읽기 시작한 건 제가 서른 살이었던 1973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일리아스>, <오뒷세이아>를 비롯해 호메로스 작품은) 놓을 수 없는 책이 됐습니다.

한국에서 <오뒷세이아> 원전을 다섯 명 정도가 번역했는데, 그중 세 명은 저한테 강의, 강독을 들었던 사람입니다. 서양고전을 연구하고, 조금이라도 이름을 내놓은 사람들 중 반수는 저한테 공부한 사람입니다. 제 자신의 업적은 없어요. 고전학 연구가 제도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출발점 정도는 마련했는데 이제껏 제자들이 상당히 활동해서 아직 세계적 수준은 아니지만 뻗어나갈 수 있는 발판은 마련된 것 같아요.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와 석민주('X' 계정 활동명 '하길'). 2025. 10. 18.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와 석민주('X' 계정 활동명 '하길'). 2025. 10. 18. ⓒ 유성호

기자 : 모시게 돼 영광입니다. 안재원 교수님과 석민주씨는 영화 <오디세이> 못지않은 만남 스토리를 갖고 계시잖아요.

덕후 : (2024년) 12월 28일에 광화문에서 비상행동 집회(12.3 내란 이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파면 및 탄핵 촉구 집회)가 있었고, 저도 광화문 바로 앞 월대에서 깃발을 펴고 있었거든요. '분노를 노래하소서, 민중이여!' 깃발을 펴고 있었는데 안 교수님이 그걸 알아보셨어요. 저는 처음에 어떤 아저씨가 몰라서 그냥 물어본다고 생각하고...

교수 : 아유 고맙습니다. 할아버지라고 안 해줘서(전원 웃음).

덕후 : 교수님이 그때 희랍어로 <일리아스> 첫 구절부터 (뒤에) 몇 행까지 읊어주셨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저한테 명함을 주셨어요. 근데 명함을 받고 보니까 '서울대 서양고전문헌학 교수 안재원'이라고 딱 써 있는 거예요.

교수 : 그날 사실은 사람 구경도 하고, 원래 약속이 잡혀 있어서 광화문에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지인에게 '이곳 깃발 아래에서 보자'고 하려고 사진을 찍었는데, 그런데 하필 '분노를 노래하소서, 민중이여!' 깃발이 있었죠. '별 희한한 깃발이 다 모였네'라고 생각했습니다. 덕후(웃음). 민주씨를 만나 처음으로 배운 단어가 이 '덕후'였어요(일본어 '오타쿠'에서 유래한 말로 어떤 분야에 깊이 빠진 것을 넘어 전문가에 준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 기자 주). 덕후와 만나서 한 이야기가 너무 즐거웠어요. 많이 배우기도 했고요.

기자 : 이렇게 오늘의 콘셉트는 '교수와 덕후'가 푸는 <오디세이> '썰'입니다. 제가 이분들과 대화를 할 수 있을지 사실 너무 부담입니다. 다만 제가 4개월 전에 신혼여행으로 그리스를 다녀왔기 때문에 몸에 그리스 정신과 '제우스의 법(영화 <오디세이>의 핵심 개념)'이 아직 코팅이 돼 있어요(웃음). 그걸 믿고 이 세 분 사이에서 오늘 고군분투해 보려고 합니다.

 신혼여행 중 촬영한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앞 고양이.
▲신혼여행 중 촬영한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앞 고양이. ⓒ 소중한

[오뒷세우스] #1 운명 담은 이름

기자 : 영화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파트를 나눠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저희가 오뒷세우스와 시논을 묶었습니다. 우선 원전 제목인 '오뒷세이아'는 무슨 뜻인가요?

교수 : 오뒷세우스의 이야기란 뜻이죠.

기자 : 그런데 원전을 한글로 쓰면 '오뒷세이아(Ὀδυσσεύς)'잖아요? 이 '뒷'이라는 글자가 한국인 입장에서는 좀 어색하게 보이거든요. 그런데 '뒷' 발음을 내는 희랍어 알파벳이 이 글자인 것 같아요. '입실론(Υ, υ)'이라고 돼 있는 이 글자.

교수 : 입실론 발음을 '이'로 다 통일해 버렸어요. 국립국어원의 정책 결정에 따라 '오디세이아'라고 하는데, 원래는 '오뒷세이아'로 (발음해서) 입실론 소리를 살려야죠.

끝판왕 : 우리 한글의 특징은 정말 여러 발음을 다 표기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학자들의 연구 결과 (당시 실제 발음이) '오디세이아'가 아니라 '오뒷세이아'라는 건데요. 그러니까 실은 (발음대로 표기한다는) 국립국어원의 지침에 충실하게 표기한 것이 (국립국어원이 정한 '오디세이아'가 아닌) '오뒷세이아'라는 것이죠.

기자 : 그러면 오뒷세우스의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교수 : 그 단어가 '미워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에서 왔어요. '오뒷소마이(ὀδύσσομαι)'의 어근이 (이름에) 그대로 남아 있죠. 그래서 '미움받는 자'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에요. 사랑 받지 않는 사람, 대접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죠.

기자 : 20년 동안 떠돌 운명의 이름이었네요.

끝판왕 : '오뒷소마이'는 증오에 화까지 포함하고 있어요. '가만 내버려두지 않겠어'라는 화까지 포함한 거죠. 근데 참 독특한 게 이 이름을 오뒷세우스의 외할아버지, 아우토리코스가 지어줬어요. 아우토리코스는 '늑대'라는 어원을 갖고 있습니다. 이름치고는 참 신통치 않은 이름이죠. 그리고 무엇을 자랑하냐면 속임수, 거짓 맹세, 사기, 절도 이런 거에 주특기가 있는...

교수 : 양을 약탈하는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죠.

끝판왕 : 그런 외할아버지가 오뒷세우스한테 친히 이름을 지어줬어요.

 영화 <오디세이> 중 오뒷세우스가 저승에서 뛰쳐나오는 장면.
▲영화 <오디세이> 중 오뒷세우스가 저승에서 뛰쳐나오는 장면. ⓒ 유니버설 픽쳐스

#2 남편 잃은 아내처럼 울다

기자 : 원작의 오뒷세우스를 보면 트로이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략가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영화의 오뒷세우스는 어떻게 보셨나요?

덕후 : 영화에서는 오뒷세우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죄책감, 후회 등을 굉장히 많이 보여주고 있잖아요. 오뒷세우스가 트로이아 성벽이 무너지고 불탈 때 계단참에 쓰러져 허망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회상으로 나오기도 하고요. 그때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눈빛이 나옵니다. 사실 그건 고대 희랍의 전통적인 영웅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원작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와요. 오뒷세우스가 파이아케스인들이 사는 스케리아 섬(칼륍소의 섬을 떠나 바다에서 난파 후 도착한 곳이자 고향 이타케에 도달하기 전 마지막으로 방문한 장소 - 기자 주)에서 잔치를 대접 받을 때 음유시인 데모도코스가 트로이아 전쟁에 대한 노래를 불러주거든요. 정말 근사한 노래를 부르는데 오뒷세우스는 그걸 들으면서 막 울어요. 그때 적군의 칼에 쓰러진 남편을 애도하는 아내와 같이 울었다고 나오거든요. 그 장면에서 저는 오뒷세우스가 승자지만 패자 측과 동일시된다고 읽었고, 승자임에도 마냥 기뻐하지 않은 모습이 영화에도 반영이 됐구나 생각했습니다.

교수 : 에밀리 윌슨(여성 최초로 <오뒷세이아> 번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같은 사람은 (원작의 그 모습이) 인간성(humanity)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영화에 그 대목을 살렸어야 한다고 (비판적으로) 평론하기도 했는데요. (덕후가 말한) 원작의 그 대목을 두고 후회와 반성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저는 전쟁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준비하는 태세 정도로 봐요.

<일리아스>가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이야기라고 하면, <오뒷세이아>는 정말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저는 전쟁이라는 광기와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칼을 들었던 군인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을 영화에 담았다고 생각했어요. 칼 휘두르는 마음가짐 그대로 집에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노스토스(νόστος, 귀향)의 모티브(원전 <오뒷세이아>의 핵심 목표가 고향 이타케로의 귀향 - 기자 주)도 그 과정에 있다고 보고요.

끝판왕 : 이 단어가 적합한 단어인지 모르겠는데 덕후를 칭찬해 주고 싶어요. 원작의 그 대목은 핵심 대목입니다. 그 대목에 대한 해석을 놓고 의견이 갈릴 수도 있어요. 교수가 더 나을 것도, 덕후가 더 나을 것도 없어요. 해석에 있어서는 모두 동등하다고 봐요. 저는 우리 안 교수보다는 덕후 쪽에 좀 더 기울어 있어요(웃음). 물론 정답이 있는 건 아닙니다.

오뒷세우스를 단순한 전사가 아닌 '목숨을 뺏으려는 상대방 입장에 설 수 있다'라고 표현한 중요한 서시의 첫 구절이 '도시 파괴자'예요. '도시를 파괴하는 자로 명성을 얻은 뒤에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사나이' 이렇게 얘기가 나와요. ("여신이여, 내게 말해주소서, 그 많은 꾀를 지닌 사나이를, 트로이아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아주 많이 떠돌았던 그 사나이를" - <오뒷세이아>)

(오뒷세우스를 비롯한 그리스군은) 도시를 파괴하며 트로이아 남자들은 다 죽이고, 여자들은 노예로 잡아갔어요. 그런데 (그리스군의 수장 중 하나인) 오뒷세우스가 노예로 끌려가는 여자와 눈물을 쏟았다고 묘사된 건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쓰러져 죽은 남편 위에서 남편을 부둥켜안은 아내를 창끝으로, 요샛말로 개머리판으로 막 치며 일어나라고 하는데, 그런 여자의 눈물을 오뒷세우스가 쏟았다고 나오니 지나칠 수 없는 엄청난 변화죠.

 영화 <오디세이>에서 불타는 트로이를 바라보는 오뒷세우스.
▲영화 <오디세이>에서 불타는 트로이를 바라보는 오뒷세우스. ⓒ 유니버설 픽쳐스

#3 포세이돈과의 화해

교수 : 말씀하신 부분은 <일리아스> 23권 중 헤카베(아킬레우스에 의해 아들 헥토르를 잃은 어머니)가 우는 대목이 떠오르게 하죠.

끝판왕 : 더해 <일리아스>에서 대단원으로 꼽는 장면 중의 하나가 프리아모스(트로이아의 마지막 왕이자 헥토르의 아버지)가 아킬레우스를 찾아와 헥토르 시체를 찾아갈 때예요. 이때 (간청하는 프리아모스를 보며) 아킬레우스가 늙으신 (자기) 아버지 생각을 한다고. 그 입장에 한 번 서보는 거죠. (목숨을 뺏으려는 상대방 입장에 선다는) 공식이 여기에도 있는 거예요.

교수 : 소위 적과의 화해 가능성. 이 주제는 (호메로스 작품의) 핵심 주제죠. 환대의 핵심이에요. 적대가 환대로 통할 수 있는 적과의 관계. 나와 전혀 다른 사람과의 관계. (환대는 희랍어로 크세니아[ξενία]이며 영화의 '제우스의 법'이 이를 의미 - 기자 주)

끝판왕 : <오뒷세이아>의 핵심이지만 영화에 안 나온 장면이 있어요. 오뒷세우스가 10년을 거쳐 고향에 갈 수밖에 없었던 건 포세이돈이 미워해서잖아요? 포세이돈과 오뒷세우스는 척을 진 사이예요. 그런데<오뒷세이아> 원문에 예언 중 하나로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오뒷세우스가 노를 짊어지고 노와 소금을 모르는, 즉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존재도 모르는 동네에 가서 노를 꽂아놓고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요.

교수 : 그러니까 (오뒷세우스는) 포세이돈과의 화해도 이뤄낸 것이죠. 그런 깊은 메시지가 있는 대목이에요.

끝판왕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마지막에 (오뒷세우스가) 서쪽으로 간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서쪽은 죽음의 땅이거든요. 두 번째 항해가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닌 그것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교수 : 제가 놀란 감독의 인터뷰를 봤어요. 왜 (오뒷세우스가) 서쪽으로 가나 했더니, 놀란 감독의 동생이 '형,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테니슨은 시 <율리시스(Ulysses, 1842)>를 통해 서쪽 바다로 항해하는 오뒷세우스를 묘사 - 기자 주)를 읽어야 돼'라고 했다더라고요.

끝판왕 : 테니슨이나 단테 같은 사람은 오뒷세우스를 귀향하는 인물이 아니라 떠나는 인물로 더 강조했어요. 단테의 경우 (<신곡> 지옥편에서) 오뒷세우스를 아예 지구 끝까지, 서쪽 끝까지 가도록 해 지옥으로 떨어뜨리거든요. 그런 계보가 또 있어요. 괴테의 <파우스트>도 마찬가지죠. 새로운 걸 알기 위해 영혼을 파는, 지옥도 마다하지 않을 존재들의 원형으로 오뒷세우스를 삼고 있는 거예요.

 영화 <트로이>(2004)의 헥토르(왼쪽)와 아킬레우스.
▲영화 <트로이>(2004)의 헥토르(왼쪽)와 아킬레우스. ⓒ 워너 브라더스

[시논] #1 원작에선 스파이(a.k.a 또 다른 오뒷세우스)

기자 : <오디세이>가 처음 나온다고 했을 때, 시논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고 해서 '이거 좀 제대로 만들어 보려고 하는 건가'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논이 원작 <오뒷세이아>에는 없는 인물이잖아요.

덕후 :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활동하던 베르길리우스(단테의 <신곡>에도 안내자로 등장 - 기자 주)라는 시인이 <아이네이스>를 썼어요. 트로이아 측 전사였던 아이네이아스가 불타는 트로이아를 탈출해서 자신의 도시를 세우기 위해 여행하는 내용을 쓴 서사시예요. 이때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아를 빠져나와서 처음 도착한 곳이 지금의 북아프리카 지역의 카르타고예요. 거기서 여왕 디도를 만나서 그동안 겪은 이야기를 패배자 측 시선에서 회상하듯이 해주는데, 거기서 시논이라는 인물이 나와요. 영화에서 시논은 오뒷세우스와 같은 마을 출신인 부하라고 나오는데, <아이네이스>의 시논은 그런 이야기는 없고요. 희랍군 중 한 명이자 공모자로 나옵니다.

교수 : 그리스어로 (시논이) '해코지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덕후 : 맞아요. 아예 대놓고 스파이로 나오거든요. 트로이아 사람들이 '너 뭐냐'고 했을 때 자기가 불쌍한 사람이라고 엄청 강조해요. '내가 사실은 오뒷세우스와 척을 졌다. 전쟁을 마치며 희랍군 한 명의 피를 바쳐야 한다는 예언이 나왔는데 내가 뽑혔다. 근데 나는 죽기 싫어서 탈출했다. 그래서 이렇게 혼자 남았다. 이 말(목마)은 재물이다. 아테나를 위한 재물이기 때문에 너희가 안으로 들고 가야 된다. 성벽 안으로. 절대 해치지 말고.' 시논이 굉장히 거짓말을 잘해요. '저를 제발 불쌍히 여겨달라. 나는 지금 희랍군에게도 버림받았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거면 나를 죽여도 좋다.' 이런 이야기도 하고요.

교수 : 오뒷세우스의 또 다른 모델이죠. 그런데 영화에서는시논을 아주 그냥 멀쩡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은 미군으로 만들어놨더라고요.

 영화 <오디세이> 중 시논이 트로이 목마 앞에서 등장하는 모습.
▲영화 <오디세이> 중 시논이 트로이 목마 앞에서 등장하는 모습. ⓒ 유니버설 픽쳐스

기자 : 이렇게 <아이네이스>에 나오는 시논과 놀란 감독의 시논은 완전히 다른데, 변용한 시논은 어떻게 보셨나요?

덕후 : 저는 이 영화의 수혜자로 넘버원 아가멤논, 넘버투 시논이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영화 속 시논은 완전 순진한 병사처럼 묘사됐잖아요. 교활함 등이 싹 빠지고 전쟁에 막 참여한 풋내기 병사처럼요.

끝판왕 : 애당초 시논이 참전하게 된 것도 병역 비리잖아요. 월남전에 끌려간 몬태나주의 어떤 '빽' 없는 시골 마을 출신 농군 아들처럼. (신화와 고전은) 얼마든지 창작, 재창작 권한이 있어요. 그리고 그걸 놀란 감독이 잘 사용했다고 봐요. 시논을 자기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주 적합한 인물로 만들어놨죠. 원작을 꼭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라고 봐야 될 이유는 없어요. 왜냐면 트로이 전쟁 후 오뒷세우스의 귀환 얘기는 호메로스가 창작한 것이 아니라 전승이 쭉 있었던 신화들이거든요. 신화를 두고 저작권 따질 것 없어요. 다 가져다 써야 하고 그대로 쓸 수도 없어요. 살을 붙이고 변형을 해야죠. 놀란은 놀란대로, 호메로스는 호메로스대로 권한이 있는 거예요.

원작에서 트로이 목마 이야기는 기억처럼 언급만 되지 사건 자체는 다뤄지지 않아요. 그런데 할리우드 영화에서 어떻게 그걸 포기해요? 원작을 읽은 사람이든 소문으로 아는 사람이든 머릿속에 오뒷세우스 하면 트로이 목마거든요. 그게 상표거든요. 그렇다면 (관객은) 의문이 들죠. '트로이 목마를 대체 왜 성안에 집어넣었어? 무슨 이유로?'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러면 별도리 없이 시논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죠.

기자 : 군대에 다녀온 입장에서 원작 <오뒷세이아>만 보면 전쟁 중에 목마를 갖고 들어가는 모습은 사실 개연성이 너무 떨어지거든요.

끝판왕 : 누가 봐도 그건 개연성이 없는 얘기예요.

교수 : 영화에서는 시논이 다리 역할을 해요. 얘기를 풀어가는 개연성이 있어야 입장권이 생기죠.

 페데리코 바로치 작 <불타는 트로이를 탈출하는 아이네이아스>. 가운데 투구를 쓴 인물이 아이네이아스.
▲페데리코 바로치 작 <불타는 트로이를 탈출하는 아이네이아스>. 가운데 투구를 쓴 인물이 아이네이아스. ⓒ 퍼블릭 도메인

#2 이름 없는 군인의 상징

기자 : 저승에서 시논이 등장한 장면도 감명 깊게 봤습니다.

덕후 : 사실 원작에서 저승 장면은 나름 훈훈한 분위기예요. 오뒷세우스가 아킬레우스·아가멤논·자신의 어머니도 만나요. '어머니, 왜 돌아가셨어요?' 하면서 둘이 정말 애틋해하고, 아킬레우스는 '죽은 자를 미워하지 말라'고 하고, 무서운 분위기가 아니거든요. 근데 영화에서는 정말 무섭게 나왔잖아요. 시논의 첫 마디도 '당신은 끝까지 나를 기만했어' 이런 대사였고, 또 오뒷세우스가 미처 장사를 못 지내준 부하들이 진짜 벌떼같이 일어나잖아요.

이름 없는 전사들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들 한 명, 한 명에 대사를 줄 수 없으니까 집단적으로 모습을 드러나게 해서 오뒷세우스의 죄책감을 자극하고, (오뒷세우스와 다른 부하들에게도) '너도 곧 이렇게 죽을 것이다'라고 암시한 것 같기도 하고요. (저승에서) 탈출하면서 오뒷세우스의 부하 중 한 명도 '저게 우리의 미래입니까'라고 하잖아요. 전쟁이 가져다주는 죽음의 무게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교수 : 이름 없는 군인들을 보여주려는 점도 시논을 등장시킨 이유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특히 원전에는 엘페노르(키르케의 섬에서 술에 취해 지붕에서 떨어져 죽은 오뒷세우스의 부하.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저승에서 오뒷세우스를 다시 만남 - 기자 주)라고 술 먹다가 죽은 놈이 있어요. 이 엘페노르 대신 시논이 이름 없는 군인으로서 등장한 것이죠.

끝판왕 : <일리아스>와 달리 <오뒷세이아>는 여러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틀을 짜줬어요. 영웅들과 전사들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여성들이 우선 목소리를 내고, 하인이 목소리를 내고, 거렁뱅이가 목소리를 내고, 심지어 개도 목소리를 내요. 그중에 목소리를 낼 자격이 가장 없는 존재를 일부러 등장시킵니다. 그 인물이 영화에는 안 나오는 엘페노르예요.

이름 없는 존재를 등장시키는 건 영화에서는 참 어려워요. 카메라에는 항상 초점이 있어야 하는데, 이름 없는 존재는 초점을 흐려지게 하니까요. 그래서 엘페노르 같은 인물은 담기 어렵죠. 그런데 영화와 달리 산문은 소위 이탈과 여담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판소리를 들어보면, 이야기가 급박하게 진행될 것 같은데 쓸데없는 말들도 중간에 많이 있죠.

 테오도르 판 튀르덴 작 <엘페노르의 시신을 화장하는 오뒷세우스>. 가운데 죽은 채 나체로 누워 있는 인물이 엘페노르, 우측 귓속말로 대화를 나누는 인물이 오뒷세우스와 키르케.
▲테오도르 판 튀르덴 작 <엘페노르의 시신을 화장하는 오뒷세우스>. 가운데 죽은 채 나체로 누워 있는 인물이 엘페노르, 우측 귓속말로 대화를 나누는 인물이 오뒷세우스와 키르케. ⓒ 퍼블릭 도메인

교수 : 흥부전에 나오는 화초장 대목 중 제일 재밌는 얘기가 제비가 날아오는 부분이에요. 갑자기 제비가 날아오는 코스가 이어지는 지리학서와 다름없거든요. 춘향전에도 빨리 와야 할 군인 놈이 무주에서 놀고 있어요. 그럼 (화자가) 무주 이야기를 막 해요.

끝판왕 : 그렇지. 무주 이야기할 찬스지. 가령 영화 <오디세이>에서 페넬로페(오뒷세우스 아내)가 활을 들고 구혼자들 앞에서 '활쏘기 시합을 하겠다'고 하면 지금부터는 정말 숨 가쁜 스토리가 전개돼야 해요. 그런데 원작에서 그 장면을 보면 '그 활이 어떤 활이냐 하면' 이러면서 오뒷세우스에게 오기까지의 활의 이력이 잔뜩 이어져요.

교수 : 아, 족보 있는 활이라고 설명을 해줘야죠. 명품 증명을 해줘야죠.

끝판왕 : 그렇지. '그게 사연이 있는 활이야'라고. 그러니까 (산문에선) 이야기가 늘어져요. 아르고스(오뒷세우스의 개)도 영화에선 한두 장면이잖아요. 원전의 아르고스 얘기를 영화의 아르고스 장면에 다 담을 수가 없어요.

교수 : 아르고스는 놀란 감독 입장에선 뺄 수 없는 대목인 것 같아요.

*[오디세이 심화반 ②] 에우마이오스X안티노오스X아르고스 편으로 이어집니다.

 영화 <오디세이>에서 트로이 목마가 나오는 장면.
▲영화 <오디세이>에서 트로이 목마가 나오는 장면. ⓒ 유니버설 픽쳐스

#오디세이#천만영화#오뒷세우스#시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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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민 (real2) 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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