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6.09.08 09:57ㅣ최종 업데이트 26.09.08 09:57

우리는 '잘 죽는 법'을 잊었다

[리뷰] 김진국의 <임종>을 읽고

  • 본문듣기
상당히 이색적인 책 <임종>이 세상에 나왔다. <임종>을 지은 김진국의 이력이 특이한 데다가, 내용을 끌고 가는 형식도 익숙하지 않다. 신경과 전문의 김진국은 <한겨레>와 <영남일보>를 비롯한 언론 매체에 장기간 칼럼을 연재한 바 있다. 아울러 <기억과 상식>, <나이듦의 길>, <인공지능 시대와 인문 치유> 같은 다채로운 서책을 펴내기도 했다.

<임종>에는 '소설로 읽는 삶의 마지막 풍경'이란 부제(副題)가 딸려 있다. 지은이는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와 가족뿐만 아니라 간호사와 간병사(看病師)들의 애환도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본다. 조금 의아한 것은 '소설'이란 표현이다. 소설은 허구의 갈등과 사건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여 독자의 감동과 인식을 높이는 문학 양식이다. 그러면 <임종>은 소설인가?!

신경과 의사가 소설가를 겸하지 말란 법은 세상에 없다. 그래도 적이 낯선 까닭에 '여는 글'을 살펴보니 답이 나온다. 소설 형식으로 시작했지만, 등단한 적이 없어서 소설이라 우길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김진국은 <임종>에서 다루는 주제가 무겁고, 분량도 많아서 수필이라 하기도 언짢아서 '이야기'라고 규정한다. 누구나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게 이야기니까!

 김진국의 <임종 - 소설로 읽는 삶의 마지막 풍경 검색> 표지
▲김진국의 <임종 - 소설로 읽는 삶의 마지막 풍경 검색> 표지 ⓒ 학이사(이상사)

소설처럼 진행되는 임종

AD
<임종>의 화자는 베이비붐 세대 출신의 60대 의사 길상연이다.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그는 얼마 전에 기이한 경험을 한다. 80살 먹은 명주 할매가 헛소리를 하면서 퇴원을 요구한다. 그녀의 남편 송 영감은 83세로 꼿꼿하고 건강하며 사리 분별이 명확하다. 할매가 퇴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멀쩡하던 송 영감이 '방분(放糞)'한 뒤끝에 요양병원에 실려 온다.

서울 사는 두 아들이 급히 내려와 사태를 수습하려 애쓴다. 송 영감의 느닷없는 방분 사유를 길상연은 화장실 낙상(落傷)에서 찾는다. 한밤중에 척추 골절상을 입는 바람에 영감이 대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한 것이다. 그 사정을 알지 못한 명주 할매는 남편이 '치매' 아닌가 생각하고 아들에게 급히 연락한다. 집에 혼자 남은 할매도 머리를 다쳐 다시 입원한다.

부모가 같은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예후도 좋지 않아 자식들의 근심이 커진다. 직장생활과 자식 양육에 여념이 없는 그들은 부모 곁을 상시(常時) 지킬 방도가 없다. 그들의 최대 궁금증은 언제 두 분이 세상을 버리는가 하는 것이다. 마침내 두 분은 한날한시에 이승과 작별하고 불귀의 객이 된다. 이런 임종을 지켜보면서 길상연의 내면은 복잡하게 요동한다.

요양병원을 아십니까

"2024년 말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25년 3월에는 85세 이상 노인이 100만을 돌파한다. 2005년에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됐지만,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경제협력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노후(老後)에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격리된 채 생을 마감하는 풍조가 고착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임종> 4~5 페이지

요양병원 홍보 문구는 살갑기 그지없다. '온 가족이 머물고 싶은 병원', '가족의 마음으로 노인들을 보살핀다', '내 집 같은 병원' 등등. 그런데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노인들의 가장 큰 소망은 전혀 다른 상황을 말한다. "살던 집에서 죽고 싶다!" 요양병원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좌절과 절망에 지쳐버린 노인들의 방화와 폭력 행사가 주원인이라 한다.

요양병원에 수용된 노인은 가족 도움 없이는 한 발짝도 밖에 나갈 수 없다. 모든 문이 비밀번호로 잠겨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요양보호가 아니라, 현대판 위리안치(圍籬安置)'라고 주장한다. 요양병원은 치료보다 보호 목적이 강하기에 최소한의 의료 서비스만 제공한다. 전문 의료는 외진을 가야 하는데, 틀니 분실에 따른 치과 진료가 가장 잦다고 한다.

지은이는 노부모를 모시기보다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을 당연시하는 문화가 고착돼 있다고 진단한다. 요양병원 입원 환자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수치가 단순 거주를 위한 사회적 입원이라고 한다. 800만을 넘어선 1인 가구, 지역 소멸, 마을 공동체 해체에 따른 불가피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으며, 그에 따른 고독사와 무연고사(無緣故死)가 늘어나는 추세다.

요양병원 간호사와 간병사들의 실태는 매우 안타깝다. 열악한 노동조건, 가혹한 노동 강도, 부실한 처우로 이직률이 높아 의료 현장에서 간호사는 크게 부족하다. 의사의 갑질, 선임 간호사의 태움, 환자와 보호자들의 폭언과 폭행이 그치지 않는다. 간호사가 이럴진대 간병사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병원에서 간호 인력을 위한 법과 원칙은 유명무실한 지 오래다.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죽는 방식을 법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는 점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죽는 방식을 법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는 점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 AI 생성 이미지

요양병원 입원환자

노인들이 요양병원을 찾게 되는 세 가지는 낙상, 치매, 뇌졸중이다. <임종>에서 지은이는 낙상과 치매에 집중한다. 송 영감이 집에서 낙상하여 벽에 똥칠한 까닭은 낙상에 따른 척추 골절상이다. 2017년에 출간된 하버드 의대 교수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도 제힘으로 화장실 한 번 가는 것이 소원인 할머니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혼자 사는 사람이 집에서 낙상으로 척추나 대퇴골, 고관절 혹은 골반 골절상을 입어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으면 어떻게 될까? 골절상보다 더 심각한 중풍이나 협심증 같은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 <임종> 95 페이지

사회적·경제적으로 고립된 노인들이 이런 지경에 이르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만 해도 아득해진다.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돌보다 낙상한 끝에 방분하여 치매 의심을 산 송 영감은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과 마주한다. 그런데 치매 환자의 뇌와 자연사한 사람의 뇌 조직 소견에 큰 차이가 없다면서 지은이는 치매가 뇌의 문제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치매는 복잡한 세상이 쏟아내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수용하지 못하고, 세상과 불화를 겪는 사람들, 세상에 정면 대응할 힘을 잃은 사람들, 세상의 지배 질서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앓는 병이다. 요즘 일어나는 변화의 폭과 속도, 정보량은 수용 불가능하고, 세상의 가치와 질서는 전복되었는데, 시대 조류에 속수무책인 노인들이 앓는 질병이 치매다." - <임종> 122 페이지


이런 치매를 유발하는 대표 집단을 지은이는 작가와 기자 같은 먹물이라 규정한다. 다른 세대와 최소한의 의사소통까지 단절시키는 디지털 시대의 신조어가 노인들을 현대판 문맹과 치매로 인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몇 가지 예를 보자.

"알빠노, 스드메, 초품아, 여미새, 런친자, 누칼협, 여적여, 올다무, 만반잘부, 행집욕부, 어할즐할, 하해안어." - <임종> 124~126 페이지

날마다 새롭게 쏟아지는 이런 기상천외하고 흉측한 국적 불명의 신조어를 만들고 보급하는 주요 집단이 기자와 작가들 아닌가?! 더욱이 노인들을 포함한 기성세대는 그런 말 같지 않은 말을 아는 게 무슨 자랑이나 되는 것처럼 앞다투어 배우고 익혀서 떠들고 다니는 세태 아닌가. 지은이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풍토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곳곳에서 폭발한다.

판검사가 만든 장례 풍속도

요즘 장례업이 예전만 같지 못하다는 보도가 더러 나온다. 그런데 언제부터 한국인들이 장례식장을 빌려서 부모나 친지를 배웅했을까?! 1997년 12월에 발생한 이른바 '보라매병원 사건'이 출발점이라 한다. 60대 가장이 만취 상태로 계단에서 넘어져 응급실에 이송되어 뇌수술을 받는다. 불확실한 회복 가능성과 치료비 부담에 아내는 남편을 퇴원시킨다.

집으로 이송된 후 환자는 사망하고, 가족은 장례를 치른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검찰이 사건에 개입하여 아내와 의료진을 재판에 넘긴다. 대법원은 배우자에게 살인죄를, 의료진에게는 살인 방조죄를 확정판결한다. 이 판결의 의미는 명쾌하다. 집에서 죽지 말고 반드시 병원에서 죽어라. 어떤 경우라도 연명치료를 거부하지 말라. 황당하지 않은가?

"결국 법이 일으킨 문제를 법으로 해결한다며 2018년에 제정된 법이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다. 삶의 막바지에 이른 사람에게 의료 개입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가 마련되어 환자나 가족의 동의를 받아 연명치료를 중단하면 의사는 살인 방조나 살인 혐의에 더는 시달리지 않게 된 것이다." - <임종> 269 페이지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죽는 방식을 법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는 점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열렬하게 살아온 인생을 개인의 의지와 바람대로 마감할 수 없는 사회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죽기 전에 가족들과 생전 장례식을 거행하고, '단식 존엄사'로 생을 마감한 대만 여성 의사 비류잉의 어머니 사례는 크게 참고할 만하다.



덧붙이는 글 | <임종>, 김진국 지음, 학이사, 2026.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두 권.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2017.
<단식 존엄사>, 비류잉 지음, 채안나 옮김, 글항아리, 2025.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은이), 김희정 (옮긴이), 부키(2022)


단식 존엄사 - 의사 딸이 동행한 엄마의 죽음

비류잉 (지은이), 채안나 (옮긴이), 글항아리(2024)


임종 - 소설로 읽는 삶의 마지막 풍경

김진국 (지은이), 학이사(이상사)(2026)


#임종#요양병원#무연고사#치매#낙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
김규종 (satira) 내방

인터넷 상에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아름답고 새로운 세상 만들기에 참여하고 싶어서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개인 블로그에 영화와 세상, 책과 문학, 일상과 관련한 글을 대략 3,000편 넘게 올려놓고 있으며, 앞으로도 글쓰기를 계속해 보려고 합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