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남계서원과 연계한 ‘선비문화유산 풍류관광벨트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남계서원 인근 수동면 원평리 일원에 숙박과 체험, 식사 기능을 갖춘 관광시설을 조성해 남계서원을 중심으로 체류형 관광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관광시설을 짓는 것과 그곳에 사람이 찾아오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함양에는 이미 대봉산과 상림, 남계서원 등 적지 않은 관광자원이 있지만 방문객이 지역에서 오래 머물고 다시 찾게 만드는 콘텐츠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 기획은 무엇을 더 지을 것인지보다 이미 있는 지역을 사람들이 어떻게 새롭게 경험하도록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청년과 중장년을 지역으로 불러들이는 여행부터 지역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드는 사람들, 청년의 자기탐색을 지역 체류로 이어가는 사례를 살펴본다. 관광투자가 실패한 일본 유바리시와 사람을 먼저 모은 뒤 공간을 만든 홋카이도 히가시카와의 사례도 함께 취재한다. 그 과정에서 성공사례를 그대로 함양에 옮기기보다 그 지역에서는 누가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주민은 어떻게 참여했으며 사람들이 왜 찾아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과연 함양군은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찾을 수 있을까?

▲과감한인생 이원빈 대표 ⓒ 주간함양
여행을 떠나는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목적지를 검색할 수도 없다면? 프로그램에 따라서는 출발과 함께 휴대전화까지 맡기는 여행. 청년들은 그제야 처음 만난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팀 '과감한인생'이 청년 대상 여행 프로그램을 짜는 방식이다.
이런 여행은 요즘 여행의 순서와는 반대다. 여행지를 정하면 SNS와 블로그를 뒤져 유명한 카페와 식당을 고르고 갈 곳을 지도에 저장한다. 도착한 뒤에도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다음 장소를 검색한다.
팀 '과감한인생'은 이런 정보를 일부러 덜어낸다. 이원빈 과감한인생 대표는 휴대전화가 없을 때 오히려 여행에서 사람을 만날 시간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핸드폰이 없고 이름, 직업이 없으니까 둘이서 할 수 있는 대화는 여행에 대한 대화 혹은 이 사람에 대한 대화밖에 할 수 없어요. 그걸로 가득 찬 1박2일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여행 때 만났던 애들이 친구가 돼요. 어떻게 보면 평생 함께할 친구를 여행에서 만나는 거죠. 핸드폰이 있었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낯선 여행을 만드는 과감한인생은 여행사보다는 브랜딩팀에 가깝다. 2017년 활동을 시작한 팀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던 관성으로 그들의 활동무대는 자연스럽게 지역으로 옮겨갔다. 지역이 소멸된다니 그럼 알려진 관광지를 잘 소개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지역에서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이 대표는 여행을 거듭하면서 장소를 많이 보는 것보다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고 느꼈다.
"제가 생각한 여행의 본질은 사실 '유명하지 않아도 괜찮아'였어요. 그러면 소멸되고 있는 완전 비인기 지역들을 해볼까 이렇게 된 거예요."
유명한 관광지가 없어도 여행이 가능하다면 오히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지역이 과감한인생의 무대가 될 수 있었다.
'최악의 여행'인데 다시 영양을 찾았다

▲과감한인생이 2022년 경북 영양에서 진행한 ‘최악의 여행’. 유명 관광지가 부족하고 이동시간이 긴 지역의 조건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여행의 소재로 활용했다. ⓒ 주간함양
과감한인생이 이런 생각을 실제 지역에서 시험한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그 이름부터가 '최악의 여행'이다. 2022년 관광두레와 영양군의 지원을 받아 2030세대 32명과 스태프 10명 등 42명이 1박2일 동안 경북 영양을 여행했다.
과감한인생이 앞세운 영양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서울에서는 왕복 이동시간이 약 10시간이고 인구밀도가 낮으며 흔히 말하는 '핫플레이스'도 없다는 점 등. 약점을 부각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여행하기 불편한 조건을 감추지 않고 '여행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여행지인가 사람인가'를 확인해보자는 프로그램으로 바꿨다.
과감한인생이 프로그램 이후 참가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자체 설문에서 다시 방문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92.3%이며 응답자의 65.4%는 여행 이후 실제 해당 지역을 다시 방문했다고 답했다.
과감한인생이 말한 '유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실제 지역에서 시험한 셈이다. 영양의 약점으로 보였던 낮은 인지도와 긴 이동시간은 오히려 아무도 모르는 곳을 찾아간다는 여행의 이유가 됐다.
지역 행정이 관광을 고민할 때는 인지도가 낮다는 것을 곧 약점으로 받아들인다. 이름난 관광지가 부족하면 전망대를 만들거나 새로운 포토존을 만들고 출렁다리, 모노레일, 케이블카 등 대형 시설을 만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과감한인생은 반대로 이미 가진 조건을 어떻게 여행의 이유로 바꿀지를 먼저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돈이 드는 방식이 절대 아니다.
지역에 갈 이유는 어떻게 만들까

▲완주에서 진행한 ‘미(Me)완성 여행’. 곶감과 막걸리처럼 지역에 이미 있던 자원에 ‘미완성인 나를 돌아보는 여행’이라는 이야기를 붙였다. ⓒ 주간함양
유명하지 않은 지역으로 사람을 데려왔다면 다음 문제는 그곳에서 무엇을 하게 할 것인가다. 과감한인생은 새로운 시설보다 지역에 이미 있는 자원에 다른 이야기를 붙였다.
완주에서 진행한 '미(Me)완성 여행'이 대표적이다. 과감한인생은 35명의 참가자를 완주로 데려가 1박2일 동안 여행을 진행했다. 제목은 '미완성인 우리들이 나(Me)를 완성하는 여행'이었다.
완주의 곶감과 막걸리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곶감은 표면에 검은 반점이 생기며 당도가 올라가고 막걸리는 발효되는 시간을 거쳐 완성된다. 과감한인생은 이 특징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청년의 이야기와 붙였다. 곶감 만들기와 이화주 만들기 같은 기존 체험도 프로그램 안에 넣었다.
지역 청년도 만났다. 완주에서 활동하는 막순막동협동조합과 술렁술렁브루어리 등 지역 청년 사업자와 연결하면서 체험만 하고 떠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과 이야기할 시간을 만들었다.

▲진안 ‘마이 맘의 봄날’에 참가한 엄마와 딸. 마이산과 홍삼스파 등 기존 관광지는 모녀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는 새로운 공간이 됐다. ⓒ 주간함양
진안에서는 장소보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먼저 정했다. '마이 맘의 봄날'은 엄마와 딸이 둘이서 떠나는 여행이다. 첫 프로그램에는 12팀 24명이 참가했다. 평소 '엄마'와 '딸'이라고 부르던 두 사람이 여행 중에는 서로 이름을 부르게 하고 평소 나누지 않았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마이산과 진안홍삼스파처럼 이미 있던 관광자원은 엄마와 딸이 새로운 시간을 보내는 배경이 됐다.
과감한인생이 첫 여행 참가자를 대상으로 자체 조사한 결과 참가자 전원이 진안을 다시 방문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첫해 반응을 바탕으로 다음 해에는 모녀여행을 24팀 48명으로 늘렸고 아빠와 딸이 여행하는 '마이 Re:히어로'도 14팀 28명 규모로 추가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새로운 관광시설이 생긴 것이 아닌데도 진안을 찾는 이유를 새롭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마이산을 보러 간다'는 장소 중심의 여행에서 '엄마와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는 경험 중심의 여행으로 이유를 바꿨다.
지역에 갈 이유는 꼭 새로운 장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이 대표가 말하는 소프트웨어 관광도 거창한 행사가 아니라 "기존 장소에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지역을 기억하게 만드는 건 결국 사람
과감한인생이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결국 중요하게 본 것은 사람이다. 새로운 경험이 여행객을 지역으로 불러왔다면 그곳에서 만난 사람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지역과 관계를 이어주는 이유가 됐다.
"장소가 좋고 안 좋고의 문제만은 아니에요. 거기 사람들이 좋으면 살고 싶어요."
과감한인생이 산청에서 진행했던 여행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나왔다. 서울에서 온 참가자들은 산청의 마을 주민과 공연을 보고 저녁을 함께 먹었다. 서로 나이를 따지며 거리를 두지 않도록 반말로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졌다.
여행이 끝난 뒤 산청에서 만난 공연팀이 서울에서 공연하자 참가자들이 공연장을 찾아가 공연을 봤다.
"친구들이 공연을 한다는데 왜 안 가겠어요. 관객이나 손님과 주인의 개념이 아니라 친구의 개념이 돼야 되는 거예요."
관광지를 떠올릴 때 우리는 풍경만 기억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도 같이 기억한다. 산청에서 친구가 생겼다면 다시 산청을 찾을 이유도 하나 생긴다. 행정에서 말하는 '관계인구'도 어쩌면 이런 장면에서 만들어진다.
과감한인생이 여행에서 사람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도 여기 있다. 지역 사람은 관광객에게 장소를 소개하는 안내자이자 동시에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 지역을 기억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좋은 프로그램을 가져온다고 그대로 성공하지 않는다

▲산청 ‘언노운트래블’ 여행에서 참가자와 지역 주민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 과감한인생은 관광객과 주민을 손님과 주인으로 나누기보다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 주간함양
과감한인생의 여행을 그대로 다른 지역에서 진행한다고 같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프로그램 아이디어 자체는 얼마든지 따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는 다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소프트웨어를 묶고 있는 지역의 힘은 못 가져간다고 생각해요."
휴대전화 없는 여행도 따라 할 수 있고 시장에서 보물찾기를 하는 프로그램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관광객과 주민에게 반말로 이야기하게 하는 것도 프로그램표에 적어놓을 수 있다.
하지만 서로 친구가 될 만큼 시간을 보내는 일은 프로그램 하나만 가져온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여행객을 받아줄 지역 사람이 있어야 하고 지역의 상점과 주민, 행정도 그 프로그램을 함께 움직여야 한다.
"좋은 소프트웨어 하나, 하드웨어 하나가 관광업을 바꾼다? 말도 안 돼요.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어요. 정말 중요한 건 프로그램에 관계되어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을 갖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함양 (최학수PD)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