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부터 20일까지 중국 대표 자연 여행지인 구이저우를 다녀왔습니다.
"我们的飞机已经抵达贵阳。(우리는 이제 구이양에 다다랐습니다.)"
어둑한 밤 12시, 비행기가 막 공항에 들어서고 있었다. 비행기 안내음에 눈을 비비며 캐리어를 챙겼다. 동승객들은 모두 중국인, 한국인은 오직 나 하나다. 공항 근처 허름한 호텔에서 하룻밤 꼬박 새운 뒤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재개발 한복판에 들어선 듯 허름한 건물들, 연륜이 느껴지는 노인들, 황량하나 어딘가 친숙한 거리들. 여긴, 한국인들은 거의 찾지 않는 비인기 지역 중국 구이저우성이다.
이튿날 아침 고속열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리보(荔波). 중국 구이저우 남부 첸난부이족먀오족자치구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허름한 식당에서 요우티아오(油条)와 도우쟝(豆浆)을 입에 욱여넣고 마을버스에 몸을 실었다. 터덩터덩,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모두 푸르다. 새벽빛을 받으며 살랑살랑 흔들리는 논밭, 색색 보따리를 양손에 짊어진 채 버스를 오르는 노인들, 전광판이 없어 목소리로 정류장을 알리는 버스 기사. 잔비가 내리는 듯 창가엔 토톡톡 물그림자가 생겼다.
"韩国小姐姐,去小七孔的话,就在这儿下车。祝你玩得开心!"
(한국인 아가씨, 샤오치콩에 가려면 여기서 내리면 돼요. 좋은 여행 되세요!)
한 시간 정도 갔을까, 기사님이 고개를 돌려 내게 소리쳤다. 그의 친절에 살짝 고개를 숙이고 버스를 나섰다.
여인의 머리결 같은 물폭포, 샤오치콩
여름을 맞아 더욱 풍성해진 숲과 에메랄드빛의 호수. 비를 머금어 더욱 진해진 녹음의 향을 맡으며 비로소 자연의 한가운데에 왔음을 실감한다.

▲리보 샤오치콩리보 샤오치콩 소칠공고교 ⓒ 송혜림
처음 도착한 곳은 소칠공고교(小七孔古桥). 일곱 개의 아치가 있는 돌다리로 청나라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긴 세월을 오롯이 버텨온 다리 곳곳에는 넝쿨이 가득 앉아 있다.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다리 위를 사뿐사뿐 걸어본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유구한 중국의 역사가 발끝에 어린다. 사람 손이 닿지 않은 듯 무수히 꺾이고 어긋난 고목의 가지엔 수백 년의 시간이 걸려 있다.

▲리보 샤오치콩리보 샤오치콩 와룡담 ⓒ 송혜림
다리를 지나 다시 버스를 타고 삼십여 분 이동하면 샤오치콩의 또 다른 대표 명소 와룡담(卧龙潭)을 만날 수 있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둑을 따라 잔잔한 수면 아래로 물이 커튼처럼 떨어진다. 사진 속에서 봤던 여인의 잘 빗어진 머리카락처럼 수려하고 아름답다. 폭포가 만들어낸 하얀 물보라로부터 시원한 바람이 한가득 불어왔다.
물가에선 기다란 나무배를 탄 묘족 청년이 노를 머리 위로 빙글빙글 돌리며 묘기를 부린다. 그가 두 다리를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물 위로 둥그런 파장이 메아리처럼 퍼져나갔다. 그 모습이 말문이 막힐 정도로 신비로워서 멍하니 응시했다.
샤오치콩에서는 미니 보트를 타고 강가를 지나갈 수 있는 간이 체험이 마련돼 있다. 중학교 선생님인 링링과 보트를 합승한 뒤 나무 노를 저으며 샤오치콩의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둥글게 허리가 휜 고목들과 거뭇하게 말라 비틀어진 잎들이 강이 지나온 세월을 짐작게 했다. 한여름을 잊게 하는 서늘한 바람이 양 볼을 스쳤다.
나는 링링과 한 시간 남짓의 체험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의 사춘기 대학생 딸에 대하여, 자신이 다녀온 수많은 여행지에 대하여. 문득 사람 사는 삶은 이 나라나 저 나라나 다를 게 없다는, 당연한 생각을 낯설게 떠올렸다.
우린 배에서 내린 뒤 각자의 여행길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곧 또 다른 도시로 떠나는 링링과 가벼운 포옹을 나누었다. 언젠가 서울에 놀러 오면 가이드를 해달라는 그녀의 장난스러운 부탁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뱃삯을 대신 내어주고 가방 속 간식마저 나의 손에 가득 들려 보내는 그 낯선 얼굴을 두 눈에 담았다. 우리가 만난 시간은 짧았고, 함께한 추억은 길었다.
세계 최대 묘족마을, 서강천호묘채

▲카이리 서강천호묘채카이리 서강천호묘채 ⓒ 송혜림
고속열차를 타고 긴 시간을 달려 밤이 어둑해질 때쯤에야 카이리(凯里)역에 닿았다. 카이리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 달리면 최대 규모의 묘족들이 모여 사는 서강천호묘채(西江千户苗寨)에 도착한다. 폭우가 시작되어 번개를 동반한 무거운 비가 거리를 흥건하게 적셨지만 여행 성수기를 맞이한 마을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는 거대한 소뿔이 걱정 말라는 듯 든든한 자태로 날 맞이한다.

▲카이리 서강천호묘채카이리 서강천호묘채 ⓒ 송혜림
어렵사리 잡은 숙소가 마을 꼭대기인 전망대에 위치한 탓에 비를 쫄딱 맞았다. 캐리어를 들어준 숙소 주인을 따라 빗속을 도망치듯 오르던 중, 문득 고개를 들어 마을을 내려다봤다. 순간 숨이 멎을 만큼 황홀한 야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산비탈을 따라 켜진 수많은 불빛은 시골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허름한 가옥들이 만들어낸 지상의 은하수를 한동안 아이처럼 바라봤다.
서강천호묘채의 야경이 잘 보이는 한 식당에 들어섰다. 밤 10시가 넘어가는 시간임에도 술에 취해 코주부가 된 관광객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묘족 옷차림을 한 종업원의 도움을 받아 마을 대표 음식이라는 흑돼지(黑毛猪) 볶음을 주문했다. 굴소스 베이스의 고기 간이 슴슴했다.

▲카이리 서강천호묘채카이리 서강천호묘채 ⓒ 송혜림
你喜欢,来一杯;
不喜欢,喝两杯。
管你喜欢不喜欢,也要喝!
(술이 좋으면 한 잔,
좋아하지 않으면 두 잔.
좋든 싫든 한잔하셔야 합니다!)
바로 앞 단체 테이블에서는 여러 개의 술잔을 층층이 연결해 높은 곳에서 술을 흘려 마시게 하는 묘족식 건배 의식 가오산류수이(高山流水)가 한창이었다. 머리를 높게 땋아 올린 여종업원들은 짖궃은 노래를 부르자 모두 웃음을 빵 터트렸다. 남종업원은 루셩(芦笙)을 연주하며 흥을 올렸다. 이 낯선 중국 소도시 끝에서 만난 유구한 전통이란! 그 테이블에서 내 자리로 미주(米酒) 한 잔을 선물했다. 맑은 복분자 맛에 옅은 취기가 올렸다.
중국 소도시를 찾는 이유
아침에도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해가 뜨기도 전에 짐을 챙겨 방문을 나섰다. 오랜 세월이 깃든 가옥들이 골목마다 레고처럼 층계를 이루고 있었고, 비를 머금은 원목 기둥들은 은은한 향을 풍겼다. 이따금 열린 문틈으로 희미한 불빛과 아침밥을 짓는 연기가 새어 나왔다.
개미굴처럼 좁고 여러 갈래로 난 길에 지도 앱도 어지러운 듯 계속 방향을 틀렸다. 어느 길로 접어들어도 비슷한 목조 가옥과 가파른 돌계단이 나타났다. 빗물에 반들반들해진 계단에서는 샌들이 몇 번이고 미끄러졌다. 결국 신발을 벗고 맨발로 계단을 올랐다. 이른 아침을 시작한 묘족 주민들이 그 애처로운 모습에 응원의 인사를 건넸다.

▲카이리 서강천호묘채카이리 서강천호묘채 ⓒ 송혜림
마침내 골목 끝에 다다르자 빽빽한 가옥 사이로 시야가 탁 트였다. 이 풍경을 보려고 그 먼 길을 떠나오지 않았나.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층층이 이어진 연두빛 계단식 논에 청량한 여름이 가득 담겨 있었다. 논이 비안개 속에서 연신 숨바꼭질을 했지만 신비로운 분위기 만큼은 가리지 못했다. 비가 그치자 논 아래 풍경이 시나브로 드러났다. 농사일을 하는 중년 남자, 아이를 업고 가는 여인, 처마 밑에서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는 가족. 이 먼 타지, 산과 안개에 가려진 작은 마을에서도 삶은 그렇게 묵묵히 이어진다.
여행이 끝나간다. 드넓은 전원(田园)을 헤엄치듯 거닐어도 보고, 사진 속 여인처럼 은빛 장식구를 머리에 가득 달고 묘족 원피스를 입어보기도 했다. 오후 해가 뜨거워질 무렵엔 마을 중심 광장에 거대한 풀장이 마련됐다. 사회자의 '땅!' 소리에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풀장에 뛰어들어 물고기를 잡았다. 구경하는 사람과 보여주는 사람의 경계가 사라진 채, 마을 전체가 하나의 축제 속으로 뛰어든 듯했다.

▲카이리 서강천호묘채카이리 서강천호묘채 ⓒ 송혜림
마을 입구에선 전통 옷을 입은 묘족 주민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며 새로 마을에 입성한 관광객들을 맞이했다. 환영주를 건네받은 관광객들은 행복한 미소를 한껏 떠올린다. 매일 축제처럼 즐거운 나날들, 아름답고 풍요로운 풍경들, 그리고 먼 길을 떠나와 그들의 전통문화를 함께 향유하고 이어가는 시민들. 대도시를 떠나 깊은 숲속 작은 마을에서 만난 동화 같은 이야기들.
서로에게 점점 차가워지고 무뎌지는 사회가 되더라도, 세상엔 아직 사람의 온기와 자연의 푸르름을 고스란히 간직한 소도시들이 있다. 숨가쁜 서울을 떠나 번거롭게 몇 번이고 비행기와 열차를 갈아타면서도 이 먼 땅을 찾아오는 이유는, 내가 영원히 잃기 싫은 무언가가 그곳에 있기 때문 아닐는지.
덧붙이는 글 | 중국에서도 가볼 만한 도시들이 많습니다. 최근 중국 여행 인기로 여러 대도시들이 바이럴되고 있는데, 이런 소도시들도 충분히 가볼만한 매력이 있습니다. 자유여행이 두렵다면 패키지 여행도 많으니 자연 관광지를 좋아하는 5060대 중년 분들께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