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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안에서 밥 짓고 밭 가는 사람의 기록이다. 영국에서 10년을 살며 스톤헨지와 솔즈베리의 유적을 순례하던 눈으로, 강화도를 바라본다. 위대한 유산이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쓰려 한다.
강화풍물시장에서 열리는 오일장은 매달 끝자리가 2와 7인 날에 열린다. 강화풍물시장의 본래 이름은 강화읍장이다. 임진왜란 이후부터 이어진 장터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가 강화로 도읍을 옮겼던 시절, 개성에서 건너온 사람들과 섬사람들이 물건을 교환하던 자리이기도 하다.

지금 건물은 2007년 민속장 명소화 사업으로 새로 지어졌는데 장날이면 공터와 도로변에 200개가 넘는 좌판이 들어선다. 강화 오일장은 군에서 인정한 농민들이 자기가 기른 것을 직접 들고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평일에는 가보기가 어렵지만, 주말에 장이 열리면 빼놓지 않고 꼭 나가본다. 꼭 사야 할 것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마트에서 볼 수 없는 것들, 다양한 텃밭들에서 나온 제철 채소들이 장에 늘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나 농부들에게 가혹했던 올여름의 끝에 다른 농부님들은 어떤 걸 키워서 나오실까 하는 궁금증도 컸다. 우리 텃밭은 수확이 처참했기 때문이다. 더 솔직히 고백하면 '요즘 찾기 힘든 강화 캠벨포도가 있을까?', '올여름 생각났던 사과 참외도 볼 수 있을까?' 싶어 지난 2일 서둘러 장으로 향했다.

걸음을 자꾸 멈추게 하는 것들

비가 약간 온 후라 시장은 맑은 날과는 달랐다. 비닐 천막 위로 빗물이 떨어지고 좁은 시장 길을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마늘과 고추는 비닐로 꽁꽁 싸매져 있다. 나는 포도가 있는지 먼저 살펴봤다. 캠벨포도 특유의 짙은 보랏빛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사과참외처럼 요즘에는 쉽게 볼 수 없는 과일이 혹시 한쪽에 있지 않을까 빠른 걸음으로 장을 걸어 다닌다.

강화오일장 텃밭에서 막 따온 것처럼 보이는 포도들
▲강화오일장텃밭에서 막 따온 것처럼 보이는 포도들 ⓒ 최수안

물론 항상 그렇듯이 원래 찾던 것과는 상관없는 것들 앞에서 자꾸 걸음을 멈춘다. 시장이 재미있는 것은 어쩌면 우연히 마주치는 것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막 따온 채소, 모양이 제각각인 참외와 가지, 내 텃밭에도 잘 자라고 있는 깻잎과 상추, 산초와 으름까지 계절이 이어져 있는 모습들은 언제나 새롭다.

고구마순 폭염에 가장 잘 자랐던 작물 중 하나가 고구마이다
▲고구마순폭염에 가장 잘 자랐던 작물 중 하나가 고구마이다 ⓒ 최수안

배추와 무 모종 매대에 사람들이 많았다. 올여름 폭염속에 극한의 농사를 끝내고 이제 가을 농사를 준비할 때가 온 것이다. 장터 좌판에는 이미 수확한 순무도 보이고, 김장 준비 물건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장에 배추와 순무 모종이 나오면 강화의 가을이 시작된다. 나도 배추와 무 모종을 사고 가을 농사를 준비한다.

강화순무모종 강화순무 모종이 보인다
▲강화순무모종강화순무 모종이 보인다 ⓒ 최수안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나오는 에우페미아가 생각난다. 하지와 동지, 춘분과 추분마다 일곱 나라의 상인이 모여드는 가상의 도시이다.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이 생강과 면화 그리고 피스타치오 같은 물건을 가져와 사고 파는 곳이다. 사람들이 사막을 건너 여기까지 오는 이유는 단순히 물건 때문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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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은 밤이 되면 모닥불 둘레에 모인다. 누군가가 '늑대'라는 말을 하면 각자가 자신이 아는 늑대 이야기를 꺼낸다. 사랑, 누이, 보물 같은 단어 하나에도 모인 사람들의 수만큼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렇게 에우페미아에서는 물건과 함께 기억도 교환된다.

에우페미아를 떠나 먼 길을 다시 나서는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억 속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이전에는 자신의 것이었던 기억이 타인의 기억과 뒤섞인다. 칼비노가 그린 시장은 물건이 오가는 장소를 넘어, 한 사람의 기억이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는 장소이다.

기억들도 함께 움직인다

오일장을 걷다가 그 도시가 생각난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장터에 놓여 있는 것들은 단순한 물건들일까? 포도를 보는 사람 가운데 누군가는 어린 시절 마당 포도넝쿨을 떠올릴 것이고, 사과참외를 먹어 본 사람이라면 지금은 보기 어려워진 그 과일을 먹었던 오래전 어느 여름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같은 과일 앞에 서 있어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시간이 펼쳐진다. 장에서는 그런 기억들이 잠시 한자리에 모인다.

어쩌면 시장이라는 곳은 늘 그런 장소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기 밭에서 아침부터 수확해 온 채소를 가져오고, 누군가는 그걸 사서 자신의 식탁으로 데려간다. 과일 하나, 채소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가는 동안 그것을 키운 시간과 먹었던 기억도 함께 움직인다.

순무와 감자 순무 모종을 이제 심을 때지만, 일찍 심어 수확을 한 농부들도 있다
▲순무와 감자순무 모종을 이제 심을 때지만, 일찍 심어 수확을 한 농부들도 있다 ⓒ 최수안

내가 장에서 산 것. 작은 알감자 한 바구니 3천 원. 강화 포도 다섯 송이 만 원, 옥수수 10개 만 원. 그리고 사과참외 8개 만 원. 내가 오늘 산 것은 어쩌면 채소와 과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기억일지도 모른다는 조금은 엉뚱한 상상을 해 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사과참외 녹색의 사과참외는 당도가 높고 멜론의 맛을 지녔다
▲사과참외녹색의 사과참외는 당도가 높고 멜론의 맛을 지녔다 ⓒ 최수안

강화장의 손질한 수확물들 아침부터 깨끗하게 손질해서 바구니에 담아 놓는 상인들
▲강화장의 손질한 수확물들아침부터 깨끗하게 손질해서 바구니에 담아 놓는 상인들 ⓒ 최수안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강화오일장#강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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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의 강화도살이

글
최수안 (freorga) 내방

영국에서 세계의 도시들과 도시문화를 전공했다. 유럽의 문학과 예술, 여행을 따라 도시를 걸었다. 여전히 골목과 도시의 평범한 일상을 관찰한다. 지금은 강화도에서 유럽 채소와 나무를 기른다. 틈틈이 글을 쓰고 문학을 번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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