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민의 신뢰 제고를 위한 경찰 수사 개혁위원회' 김남준 위원장이 3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범죄 피해자 보호 관련 1차 권고안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6.8.31
▲'국민의 신뢰 제고를 위한 경찰 수사 개혁위원회' 김남준 위원장이 3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범죄 피해자 보호 관련 1차 권고안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6.8.31 ⓒ 연합뉴스

경찰 수사개혁위원회가 지난 8월 31일 범죄 피해자의 형사 사법 절차상 지위와 보호·지원 체계를 전면적으로 강화하는 첫 권고안을 발표했다. 범죄 피해자를 단순한 보호·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형사 사법 절차의 주체로 보고, 사건 진행 상황과 주요 처분에 대한 정보 제공부터 의견·증거 제출, 기록 접근, 불송치·불기소 처분에 대한 이의 제기까지 권리를 보장하자는 취지다. 경찰의 수사·대응 역량 강화와 피해자 보호 전담 조직 구축, 기관 간 통합 지원 체계 마련,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 확대 등도 권고안에 담겼다.

이날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한 경찰 수사개혁위원회'는 제1차 권고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범죄피해자의 지위·보호·지원 강화를 위한 경찰 수사체계 개편'을 심의·의결하고 ▲범죄 피해자의 형사사법절차상 실질적 참여 지위 확립 ▲경찰 수사·대응 역량 강화 ▲범죄 피해자 보호·지원 전담조직체계 구축 ▲범죄 피해자 통합 지원 연계 체계 구축 ▲국선변호사 제도 발전 등 5가지의 권고 사항을 발표했다.

피해자는 자기 사건에서 어디까지 참여할 수 있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강간 등 살인'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장윤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강간 등 살인'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장윤기 ⓒ 연합뉴스

살인 미수 피해 사건을 대리한 적이 있다. 지인에 의한 범행이었다. 피해자는 흉기에 두 차례 찔려 중상을 입었고 하반신 마비까지 왔다. 수술과 장기간의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가해자는 체포·구속됐고, 피해자는 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가족의 의뢰로 피해자와 연락해 병실로 찾아가 면담했다.

AD
범죄 피해자 구조금 신청을 안내해 구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가해자 재산에 대한 가압류와 배상 명령 신청 등 민·형사상 조치도 취했다. 이 사건에서는 여러 제도가 각각 작동했다. 가해자에 대한 신속한 체포와 구속, 피해자에 대한 신변 안전 조치, 범죄 피해자 구조금, 가압류와 배상 명령, 변호사의 법률 조력이 있었다. 가족이 변호사를 선임했기 때문에 필요한 조치를 상당 부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피해자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가 범죄 직후 맞닥뜨리는 문제들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안전, 수사, 치료, 생계, 손해배상과 법률 조력이 동시에 필요할 수 있다. 피해자 보호 역시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체계처럼 움직여야 한다. 이 모든 조치를 피해자 중심으로 한꺼번에 안내하고 연결해 주는 체계가 필요해 보였다.

우리나라의 범죄 피해자 보호 제도는 지난 20여 년 동안 크게 발전했다. 법무부의 2004년 범죄 피해자 보호·지원 종합 대책과 2005년 '범죄 피해자 보호법' 제정 이후 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범죄 피해 구조금, 신변 안전 조치, 심리·의료·경제 지원, 피해자 국선변호사 등 여러 제도가 만들어졌다. 피해자를 더 이상 형사 절차의 주변에 방치하지 않고 국가가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사람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변화였다.

그러나 피해자의 수사·재판절차상 지위는 여전히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피해자는 자신의 사건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결정이 내려졌고 그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도 스스로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재판에 가면 그 절차적 지위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 피해자나 피해자 대리인을 위한 지정 좌석도 없다. 방청석 앞자리에 앉거나 증인석 뒤 대기석에서 재판을 지켜 보다가 재판장의 질문에 답하거나, 허락을 얻어 진술하고 의견서를 제출하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수사·재판 기록 접근도 제한적이고 재판 절차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범위 역시 좁다. 법률에 절차적 권리가 존재해도 변호사의 도움 없이 피해자가 혼자 이를 제대로 행사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경찰 수사개혁위원회의 첫 권고는 범죄 피해자의 '형사 사법 절차상 실질적 참여 지위'를 가장 앞에 놓았다. 절차적 권리의 확대는 수사의 필요성과 수사 기밀, 피의자의 방어권과 신속한 형사 절차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피해자에게 다시 사적인 형벌권을 돌려주자는 의미는 아니다. 근대 형사 사법은 사적 보복을 배제하고 국가가 범죄를 소추하는 국가소추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공소 제기와 공소 유지의 권한 역시 여전히 검사에게 있다. 그러나 국가가 소추권을 행사한다고 해서 범죄로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자신의 사건에서 절차적으로 주변적 존재에 머물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피해자를 소추의 주체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국가소추주의 아래에서 피해자의 독자적인 절차적 이익과 참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자는 것이다.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가 이미 도입되고 확대돼 온 것도 국가소추주의와 피해자의 절차적 권리보장이 서로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 피해자가 자기 돈으로 변호사를 사야 하나"

 지난 8월 2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모습.
▲지난 8월 2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모습. ⓒ 연합뉴스

피해자의 절차적 권리를 확대하면 결국 그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피해자가 자기 돈으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 것 아니냐, 오히려 피해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이번 권고의 취지는 그 반대다. 현재 일부 범죄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피해자 국선변호사 지원을 범죄와 피해의 중대성, 보복·재피해 위험, 피해자의 취약성, 경제적 상황과 법률 조력의 필요성 등을 종합해 단계적으로 넓히자는 것이다. 신속한 조력이 필요한 사건에서는 최초 피해자 조사 전부터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할 필요도 있다.

국선변호사의 지원 대상이 아닌 피해자에게 모든 권리를 혼자 찾아 행사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사건 접수와 진행 상황, 처리 결과, 주요 처분의 이유, 의견·증거 제출 방법, 이의 신청과 불복 절차 등을 경찰이 사건 단계별로 안내하고, 피해자가 쉽고 간편하게 절차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피해자에게 새로운 부담을 지우자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법률 조력은 넓히고, 변호사가 없어도 행사할 수 있는 절차적 권리는 지금보다 쉽게 만들자는 것이다.

권리가 있어도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소용없다

그러나 피해자의 절차적 지위와 권리만 강화한다고 충분한 것도 아니다. 경찰 수사개혁위원회 출범의 계기가 된 장윤기 사건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사건 초기의 판단은 적절했는가. 필요한 증거는 제대로 확보됐는가. 수사 방향을 결정하거나 변경할 때 충분한 검토가 있었는가. 중요한 사건을 책임 있는 지휘 라인이 제대로 점검하고 관리했는가.

피해자에게 아무리 많은 절차적 권리를 부여해도 사건 초기 수사가 잘못되거나 필요한 증거를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그 권리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사후에 상담이나 경제적 지원을 제공한다고 해서 처음 놓친 증거나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

그래서 이번 권고는 신속하고 정확한 수사 및 대응 자체가 중요한 피해자 보호라는 원칙을 또 하나의 축으로 세웠다. 초기 위험 판단과 증거 확보, 전문적인 수사, 중요·장기·고난도 사건의 사건 관리, 중요한 수사 지휘의 기록과 사후 검증이 필요한 이유다.

결국 피해자는 자신의 사건에서 절차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국가는 그 권리가 의미를 갖도록 사건을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

피해자 보호 전담 조직도 필요

권리를 법률에 적어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군가는 현장에서 피해자의 절차적 권리를 안내하고, 안전을 확인하고, 사건 진행 상황을 살피며 필요한 지원기관으로 연결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일선 경찰서의 피해자 보호 전담 인력은 매우 부족하다. 피해자 전담 경찰관 정원은 전국을 합해 259명이다. 1·2급지 경찰서에는 기본적으로 1명씩 배치되고, 신변 보호 등 안전 조치 업무가 많은 일부 경찰서에 1명이 추가돼 2명이 근무하는 정도다. 반면 3급지 경찰서 70곳에는 피해자 전담 경찰관이 아예 배치돼 있지 않다. 2025년 한 해 피해자 지원·연계 건수는 약 2만 9천 건으로 전담 경찰관 1인당 평균 112건이었다. 그런데 정원은 최근 3년간 늘지 않았다.

외국의 제도도 참고할 만하다. 일본은 경찰청에서 도도부현 경찰과 일선의 지정 피해자 지원 요원으로 이어지는 체계를 두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전국적으로 약 3만 9천 명이 지정돼 있다. 우리나라의 피해자 전담 경찰관과 제도적 성격이 달라 숫자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피해자 지원 인력을 경찰 조직 전반에 폭넓게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는 점은 참고할 만하다.

이번 권고가 경찰청에서 시·도경찰청, 전국 경찰서까지 이어지는 범죄 피해자 보호·지원 전담 조직체계를 만들자고 한 이유다. 피해자 보호를 몇몇 전담 경찰관의 경험과 헌신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경찰의 전문적인 조직 기능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물론 이러한 조직 개편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그에 맞는 인력과 예산의 뒷받침이 뒤따라야 한다.

피해자가 지원 기관을 찾아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1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1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 남소연

위원회가 피해 지원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확인한 문제도 있었다. 전세 사기, 보이스피싱, 불법 사금융 같은 민생 범죄의 피해는 돈을 잃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주거와 생계가 흔들리고 채무와 신용 문제가 발생한다. 심각한 불안과 우울 등 심리적 위기가 뒤따르기도 한다.

피해 지원 단체들은 초기 지원이 늦어지면 피해자의 절망과 고립이 심해지고 실제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며 신속한 지원의 필요성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그런 피해자에게 심리 상담은 이곳으로, 주거 지원은 저곳으로, 법률 지원은 또 다른 기관으로 각각 찾아가라고 해서는 안 된다.

피해 초기부터 심리·의료·법률·주거·생계 등 필요한 지원을 확인해 신속하게 연결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권고에서는 경찰이 모든 지원을 직접 제공하자는 것이 아니라 경찰서를 수사 단계의 기본 접점으로 삼아 필요한 전문기관으로 연결하는 통합지원체계를 제안했다. 피해자가 기관을 찾아다니는 체계에서 기관들이 피해자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체계로 바꾸자는 것이다.

법무부도 하고 있는데 경찰도 해야 하나

법무부가 이미 범죄 피해자 정책을 총괄하고 원스톱 지원 체계를 운영하는데 경찰까지 별도의 전담 조직을 만들면 업무가 중복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리가 있다. 2004년 이후 법무부를 중심으로 발전한 피해자 보호·지원 정책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피해자가 범죄 직후 가장 먼저 만나는 국가기관은 대부분 경찰이다. 경찰 역시 현재 피해자의 안전 조치와 위기 상담, 심리·경제적 지원 기관 연계 등의 업무를 상당 부분 수행하고 있다.

이번 권고는 경찰이 법무부의 기능을 가져오거나 새로운 지원 기관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수사단계의 초기 접점인 경찰의 인력과 조직을 보강하고, 기존 법무부·검찰·지자체·공공·민간 지원기관과 제대로 연결하자는 것이다.

다만 법무부와 경찰이 따로 체계를 확대한다면 중복과 혼선은 생길 수 있다. 필요한 것은 '법무부냐 경찰이냐'의 선택이 아니라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경찰을 포함한 정부 차원의 명확한 역할 조정과 협업이다.

높은 치안 수준에 걸맞게 피해자의 절차적 권리도 높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치안 수준 자체가 낮은 것은 아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살인율은 1996년 이후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해 왔고, 2021년에는 인구 10만 명당 1명 미만이었다. 2022~2023년 야간에 혼자 걸을 때 안전하다고 느낀 비율도 약 80%로 OECD 평균보다 약 5%포인트 높았다.

다만 이를 한국 경찰의 개별 사건 초동수사 정확성이나 수사 전문성이 외국보다 우수하다는 근거로 확대해서 해석할 수는 없다. 범죄율과 체감 안전도는 사회 전체의 치안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이지 개별 사건의 수사 역량을 국제적으로 비교하는 지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질문은 가능하다. 우리 사회의 높은 치안 수준에 비해 범죄가 발생한 뒤 피해자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가지는 절차적 지위와 권리는 충분한가.

외국에서도 피해자에게 사건 정보를 제공하고 의견 진술과 절차 참여, 법률 조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발전해 왔다. 각국의 형사 사법 제도가 달라 제도를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지만, 우리도 이제 범죄 피해자의 수사·재판절차상 지위와 절차적 권리를 한 단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또 한 번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의 범죄 피해자 정책은 크게 발전했다. 그동안의 변화가 범죄 피해자를 국가가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사람으로 인정한 첫 번째 전환이었다면 이제 또 한 번의 전환이 필요하다.

피해자가 자신의 사건에서 실질적인 절차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할 전담조직과 법률 조력, 신속하고 정확한 수사, 심리·의료·주거·생계 지원의 연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그리고 경찰과 법무부를 비롯한 관계 기관이 피해자를 중심으로 하나의 체계처럼 움직여야 한다.

살인 미수 피해자를 변호하면서 든 생각도 결국 여기에 닿는다. 범죄로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이 왜 자신의 사건에서는 '주변인'이어야 하는가.

이제 범죄 피해자 보호의 수준은 지원 제도가 몇 개 있는가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범죄가 발생한 순간부터 수사와 재판, 피해회복에 이르기까지 피해자의 안전과 절차적 권리가 실제로 작동하는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치안 수준이 높아진 만큼 범죄 피해자의 절차적 지위와 권리, 보호와 지원의 수준도 한 단계 더 높아져야 한다.

'보호 받는 피해자'에서 '권리를 행사하는 피해자'로. 이번 경찰 수사개혁위원회의 첫 권고가 그 두 번째 전환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정영훈 변호사는 헌법학 박사로,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2국장을 지냈다. 현재 법무법인 정세에서 형사·국가폭력·과거사 사건을 맡고 있으며, 경찰 수사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범죄피해자경찰수사개혁위원회피해자전담경찰관피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영훈 변호사는 형사사건, 영장실질심사, 형사재심, 국가폭력·과거사 사건, 국가배상 사건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대변인으로 검찰개혁 관련 활동도 해왔습니다. 헌법학 박사이며 전 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전담변호사, 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2국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독자의견4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