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까지 강동중앙도서관 메인 전시관에서 '김효찬 개인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8월 25일 그를 만나 파킨슨병 진단으로 바뀐 삶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김효찬 작가의 그림은 요즘 우연에서 시작된다. 종이 위에 먹이나 잉크를 흘리고 때로는 거칠게 흩뿌린 뒤 완전히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 얼룩 속에서 사람이나 새, 꽃과 같은 형상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제야 망가진 붓을 들고 몇 번의 선을 보탠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의지로 통제하는 그림이 아니라 우연이 시작하고 자신이 마지막을 수습하는 그림이다. 지금 김효찬이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다.

▲김효찬 작가가 작업하고 있다. 그는 몸이 더 불편해지는 때에도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작업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 ⓒ 김효찬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그림을 그렸던 것은 아니다. 눈앞에 펼쳐진 대상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동시에 형태를 극단적으로 왜곡하는 것이 그의 작업이었다. 자신만의 화법을 만들었고 회화와 드로잉뿐 아니라 드로잉 실용서, 그림책, 소설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그러던 2018년 4월 30일, 그림을 그리던 그의 손끝에서 아주 미세한 떨림이 시작됐다. 이전까지와는 다른 감각이었다.
병원을 찾았지만 정확한 원인을 알아내기까지 2년이 넘게 걸렸다. 여러 차례 다른 진단을 거친 끝에 2020년 6월 2일 세브란스병원에서 파킨슨병 확진을 받았다. 자신의 그림 세계를 한창 만들어가던 작가에게 갑자기 날아든 소식이었다. 병원에는 아내가 함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오랜 시간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고 했다.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그를 가장 두렵게 한 것은 자신의 몸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지켜줘야 할 가족에게 언젠가 오히려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딸과 어머니에게는 지금까지도 자신의 병을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오히려 가장 무거운 두려움이 됐다.

▲작업실에 앉아 있는 김효찬 작가. 파킨슨병 확진 이후에도 그는 병 때문에 그림을 중단하거나 작품을 포기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 김효찬
그날 밤을 지나면서 그는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 사람들은 노력하면 좋은 미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삶의 큰 방향을 바꾸는 것은 계획하지 않았던 사건들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미술학원조차 제대로 다녀보지 못한 자신이 혼자 그림을 익혀 작가가 된 것 역시 계획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림을 그릴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듯 파킨슨병이 찾아온 것 또한 자신이 선택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병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이 불운은 그냥 나에게 찾아온 우연한 사건이고, 나는 삶의 또 다른 갈림길에 서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파킨슨병이 바꾼 화법
그 깨달음은 결국 그림까지 바꾸었다. 파킨슨병은 그의 손을 느리게 했고 떨림을 만들었으며 힘의 강약을 빠르게 전환하는 것을 어렵게 했다. 아직 약을 복용하면 비교적 몸이 잘 움직이지만 그는 앞으로 몸이 더 불편해진 뒤에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방법을 미리 고민하기 시작했다. 몸을 가장 적게 사용하면서도 계속 그림을 그릴 방법을 찾은 것이다. 먹과 잉크를 먼저 흘리고 우연한 얼룩에서 형상을 찾아내는 지금의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망가진 붓을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현재 정상적인 붓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언젠가 자신의 몸이 지금보다 훨씬 불편해졌을 때를 대비한 일종의 훈련이라고 했다. 지금 그리는 한 점 한 점은 현재의 작품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자신이 계속 화가로 살아가기 위한 연습인 셈이다. 신체의 변화가 오히려 새로운 화법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변화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2022년작 〈나의 처지도 당신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다. 화면에는 길고 가느다란 한 인간이 서 있지만 놀랍게도 김효찬이 직접 그린 부분은 인물의 손가락 세 개뿐이라고 한다. 나머지 몸의 대부분은 종이에 번진 먹과 잉크가 우연히 만들어낸 형상이다. 작가는 그 얼룩을 발견하고 최소한으로 개입해 하나의 인간을 완성했다. 그는 이 그림을 완성했던 순간 "많이 기뻤다"고 했다.

▲김효찬, 〈나의 처지도 당신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2022, 종이에 먹·잉크, 950×1290㎜. 작품 속 인물 가운데 작가가 직접 그린 것은 손가락 세 개뿐이며 나머지 대부분은 먹과 잉크의 우연한 얼룩에서 형상을 찾아냈다. ⓒ 이규승
그림을 완벽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과거와는 정반대의 방식이다. 이제 그는 먼저 우연에게 화면을 내어주고 자신은 마지막에 최소한으로 개입한다. 그에게 종이 위를 번지는 먹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아무런 예고 없이 삶에 찾아오는 사건과 닮아 있다. 이미 일어난 일을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없다면 그 뒤에 무엇을 할 것인가는 인간에게 남겨진 몫이다. 김효찬에게 몇 번의 작은 붓질은 삶에 벌어진 우연을 수습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미력한 노력'인 셈이다.
그의 작품 〈삶을 살아 내는 것〉에도 같은 생각이 담겨 있다. 화면 속 인물은 편안하거나 아름답다기보다 웅크린 몸으로 어떻게든 자신을 지탱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김효찬은 사람들이 흔히 예쁜 언어로 삶을 칭송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삶은 때로 '살아 내야 한다'고 표현할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살아가는 일이다. 그는 그것 자체를 하나의 '수행'이라고 말했다.

▲김효찬, 〈삶을 살아 내는 것〉, 2025, 종이에 먹, 970×1300㎜. 김효찬 작가는 고통스러워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수행이라고 말한다. ⓒ 이규승
그에게 '살아 낸다'는 것은 그림 속의 관념만은 아니다. 파킨슨병 확진을 받은 날 그는 자신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하겠다는 것이었다. 학창 시절 유도를 했던 그는 지금도 자전거와 러닝머신으로 유산소 운동을 하고 하체와 상체를 6대 4 정도 비율로 나눠 근력운동을 한다. 요가로 유연성을 기르고 균형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스케이트보드도 탄다.
운동을 하기 싫은 날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도, 장례를 치르는 기간에도 운동을 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그날 운동하러 간 자신을 두고 "그런 날도 운동하는 나쁜 놈이 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그런 날에도 했는데 사소한 일 때문에 운동을 빠질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웃으며 한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절박함이 있었다. 운동은 이제 건강을 위해 시간이 날 때 하는 생활습관이 아니다.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사람이 하루하루 자신에게 지키는 약속에 가깝다. 파킨슨병 진단 이후 지금까지 그는 병 때문에 그림을 중단하거나 포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손은 전보다 느려졌지만 그림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역설적인 변화가 생겼다. 몸의 움직임은 예전보다 조금씩 제한되고 있지만 그림에서는 자신이 통제해야 할 영역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들어내려 했던 화가는 이제 자신이 만들지 않은 얼룩에서도 그림을 발견한다. 몸의 자유가 조금씩 줄어드는 동안 그의 그림에는 우연이 들어올 자리가 커졌다. 몸이 굳어갈수록 그림은 오히려 자유로워진 셈이다.
우리는 각자의 우주에 살고 있다
김효찬의 작업에는 '우주'라는 말도 자주 등장한다. 종교가 없는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새벽이면 그 기도가 어디로 향할지 생각했다고 한다. 갈 곳 없는 기도가 25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 어딘가에서 흩어지거나, 수취인 불명의 우편물처럼 우주 한쪽에 쌓여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이 찾고 있던 안드로메다가 실제 우주가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는 "우리는 각자의 우주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앞으로 몸이 더 굳어 붓을 제대로 잡기 어려운 날이 오더라도 계속 그림을 그릴 것이냐고 물었다.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물론이죠." 지금 시도하는 작업들이 그때가 오면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아직 그리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금 가장 간절하게 비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병이 낫게 해달라는 말도, 오래 살게 해달라는 말도 아니었다. 삶과 가족, 우주 이야기를 한참 나누던 그의 대답은 결국 그림으로 돌아왔다.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죽는 순간까지 화가로 남고 싶다는 것이었다. 김효찬은 특유의 농담을 섞어 자신의 기도를 들려줬다.
"죽는 그날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 채로 아쉬움 속에 눈을 감게 해주세요. 내가 정말 천재였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세요."
마지막 문장에는 웃음이 묻어 있었지만 '그리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말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일을 만난다. 어떤 일은 지나가지만 어떤 일은 이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만든다. 김효찬은 자신에게 떨어진 검은 얼룩을 지우려고 하기보다 그 안에서 새로운 형상을 찾아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서 '살아낸다'는 말은 고통을 극복했다는 선언보다 오늘도 다시 붓을 드는 행위에 가깝다.
김효찬은 자신의 삶도 이제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가을에는 끝보다 아직 그리지 못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남아 있다. 서로 다른 우주를 살아온 사람이 같은 계절에 만나 그림 한 점 앞에 서는 것도 그에게는 어쩌면 오래전 보낸 기도에 대한 작은 응답인지 모른다. 그래서 이번 전시를 이야기하며 그는 절망이나 투병보다 '안녕'이라는 말을 선택했다.
"이 계절 당신을 만나 더 많은 별이 빛나는 우리의 우주는 안녕합니다."
김효찬 개인전은 오는 9월 30일까지 강동중앙도서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나의 처지도 당신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삶을 살아 내는 것〉 등 먹과 잉크가 만들어낸 우연의 흔적에 최소한의 붓질을 더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김효찬 개인전 공식 배너 ⓒ 강동중앙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