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반달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책방에서 만난 사람과 책, 그리고 소소한 책방의 이야기를 ‘눈록’이라는 가상의 인물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하지만 이 편지의 진짜 수신인은 눈록님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일지도 모릅니다.
눈록님 안녕하세요.
편지를 쓸 때 습관처럼 '안녕하세요'라는 말부터 건네게 되는데요, 상대에게 별 탈이 없을 때 건넬 수 있는 보통의 안부 인사로 편지를 쓸 수 있어 다행이고, 저 또한 안녕하니 다행으로 여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벌써 9월입니다. "이렇게 또 한 해가 가는 건가!" 싶은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어이쿠야, 정신 좀 차리고 올해 계획했던 일을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이 드는 달이기도 해요. 그래서 9월은 하루 중 오후 3시를 닮았습니다. 무엇을 하기에 조금 늦은 것도 같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한 시간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모쪼록 올해 계획하신 일 중 아직 펼치지 못한 일이 있으시면 9월부터 차분하게 실행해 보시는 건 어떨까 합니다.
길에 놓은 어린이용 테이블
눈록님, 저에게는 어린이용 테이블 세트가 있어요. 테이블 높이가 성인 무릎 아래까지 오고요, 의자는 높이 30cm도 채 안 되는 아주 앙증맞은 사이즈랍니다. 그런데 귀여운 생김새와는 다르게 아주 튼튼합니다. 성인이 앉아도 까딱없다 그런 말이지요.
올 2월에 사무실을 월평동으로 옮기면서 이참에 정리를 할까 싶었지만 꾸역꾸역 이삿짐에 넣어 왔답니다. 왜냐하면 그 테이블은 저에게 심신안정제 같기 때문이에요. 마음이 심란하거나 약간 화가 나 있을 때 작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무릎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으면 파도가 일렁이던 마음이 호수처럼 잔잔해집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보통의 높이보다 낮은 위치로 나를 이동시키면 마음도 자연스레 하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뭐든 대상이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나'가 문제이니까요.
그런데 이삿짐을 정리하다보니 이 테이블 놓을 데가 없어서 며칠 고민을 하다가 제가 아주 기발한 생각을 했지 뭡니까. 테이블을 황톳길 둔덕 위에 놓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잠시 앉아 쉴 수 있도록 했습니다. 플라스틱 소재라 눈과 비에도 끄떡없으니까요. 저는 무엇이든 덜렁 하나만 있는 것을 못 견디는 성미라서 테이블 위에 꽃병을 놓아두었지요.

▲월평동 황톳길_ 모두의 자리 ⓒ 이지영
그러다 어느 날 무슨 일이 생긴 줄 아세요? 테이블 위에 아주 작은 드링크제 병에 식물 두 줄기가 꽂혀 있었어요. 그리고 '나, 박하야'라는 팻말이 함께 꽂혀 있더군요. 그 작은 이파리를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렸다가 코끝에 갖다 댔더니 화~한 박하향이 물씬 나더라고요. 세상에 그 작은 잎에서 그렇게 강한 향기가 날 수 있는 게 신기했어요.
그날 저는 하루 종일 생각도 박하향, 웃음도 박하향. 그렇게 '박하박하한' 하루를 보냈답니다. 그러다가 꽃병이 너무 작아서 누가 테이블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툭 하고 넘어질 것 같아 생각 끝에 테이블 옆 벚꽃나무 아래 박하 줄기를 심었습니다.
재크의 콩나무처럼 쑥쑥 자라는 상상도 해보고, 토토로에 나오는 도토리나무처럼 커지는 상상도 해보면서 박하 두 줄기를 가져다 놓으신 분이 와 주시기를 기다렸어요. '어머, 제가 이걸 갖다 놓았을 때는 새끼손가락만 했는데 이렇게 컸네요' 하시길 기다렸지만 아직입니다. 지금까지도 안 나타나신 걸 보면 저처럼 부끄럼이 많은 분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한 번 나타나 주시길요~
뭔가를 붙잡고 씨름하는 기쁨

▲말도 안 되게 어렵지만 그럼에도 뭔가를 붙잡고 씨름할 수 있는 기쁨. ⓒ christinhumephoto on Unsplash
눈록님은 지금 어떤 책을 읽고 계신가요? 저는 요즘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를 붙잡고 있어요. 글자는 읽히지만 무슨 말인지 몰라 아주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사르트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사상은 비교적 잘 드러나 있는 반면, 중심 인물이 사르트르의 철학을 경험하는 과정에서의 사유가 매우 난해합니다. 그럼에도 이걸 붙잡고 씨름하고 있는 이유는요, 독후감을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존재'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카뮈와 사르트르를 엮어 '같은 질문 다른 대답'이라는 독후감 모임을 기획했거든요. 말도 안 되게 어렵지만 그럼에도 뭔가를 붙잡고 씨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어려운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악기를 하나 배우는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네요. 악기를 처음 배울 때는 귀에게 미안할 정도로 음과 리듬이 엉망이지요. 손가락은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도 않고요. 그래도 꾸준히 연습하다 보면 원곡에 조금씩 가까워집니다.
난해한 고전 읽기도 처음에는 여기저기 부딪히고 길이 안 보여 갈팡질팡하다가도 어느 순간 내 앞으로 뻗어 있는 좁은 길이 보이고, 그 길로 계속 걸어가다 보면 적당한 자리에서 생각의 건물을 세울 수 있기도 합니다.
이번 독후감 모임을 함께하시는 다섯 분도 <구토> 때문에 구토가 나올 지경이라고 하시면서도 즐거움이 묻어 있는 걸 보면 마음에 멋진 건물을 세우고 계신 것 같아요.

▲구토, 장 폴 사르트르 ⓒ 문예출판사
눈록님도 올 가을에는 어려운 고전 한 권 붙잡아 보시는 건 어떨까요? 읽다 보면 '내가 왜 이걸 시작했을까?' 하는 후회도 있겠지만 그런 시간들도 독서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다 읽어도 좋고, 다 읽지 못해도 좋아요. 누가 압니까. 지금은 읽다가 그냥 덮어두었던 책이 어느 날 다시 펼쳤을 때 정수리를 가르고 또렷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해 줄지도 모르잖아요.
어제는 젊은 여성분이 오셔서 한참을 머무시다가 책을 한 권 사 가셨어요. 남겨주신 방명록을 보니 이렇게 써 있네요.
"마음이 잘 잡히지 않아 힘들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책방을 지키다 보면 책을 사러 오시는 분보다 마음에 반창고가 필요하신 분들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책을 사시는 분이나 그냥 둘러보고 가시는 분이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책방 문을 엽니다.
다음 안부 드릴 때까지 안녕하시기를 빌며 이만 줄입니다.
반달책방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