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구 손기정체육공원, 음수대 뒤로 생수냉장고가 보인다. ⓒ 여성환경연대
여성환경연대가 무더위가 이어지던 8월 셋째 주, 서울시 용산구 새나라어린이공원과 중구 손기정체육공원을 찾았다. 음수대와 생수냉장고 데이터 분석 결과 공공 음수대 반경 30m 내에서 생수냉장고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서다. 사실이었다. 각각 음수대로부터 13m, 15m 거리에 생수냉장고가 설치되어 있었다. 걸어서 10초 거리였다.
위치 데이터 비교를 통해 서울시내 11개 자치구가 운영하는 생수냉장고 94곳 중 1/3이 공공음수대로부터 100m 이내에서 운영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자체간 경쟁적 생수냉장고 설치, 음수대 옆 생수 배포로 이어져
2020년 노원구는 '힐링냉장고'라는 이름으로 폭염기 야외 활동을 하는 주민들에게 생수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노원구에서만 2025년까지 누적 1000만 병의 생수가 무료로 배포되었으며, 지난해는 약 40일간 4억 원의 세금이 지출됐다. 생수냉장고 사업은 전국 각 지자체로 확산되었고, 올해는 서울 내 11개 자치구(강북구, 관악구, 광진구, 노원구, 도봉구, 서초구, 성동구, 성북구, 용산구, 중구, 중랑구)가 총 94곳에서 운영 중이다.
여성환경연대의 데이터 분석 결과, 이 중 절반 이상인 52곳이 음수대 반경 200m 이내, 특히 30곳은 도보 1~2분 정도 거리인 반경 100m 이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이천 인근 재간정, 우이교, 번창교는 서로 다른 자치구가 생수냉장고 3대를 거의 나란히 설치해 운영하고 있었다.
음수대 위치 데이터는 서울시 공공데이터를 통해 확보하였으며, 생수냉장고 위치는 각 자치구의 공식 홈페이지와 블로그, SNS를 통해 수집하고 지도 상에 표시해 위도와 경도를 얻었다. 이렇게 얻어진 음수대와 생수냉장고의 좌표를 분석하여 각 지점간의 거리를 구했다. 자치구마다 생수냉장고 위치 정보 공개 수준이 달라 데이터 분석 상의 오차가 있을 수 있으나, 생수냉장고와 음수대가 밀집되어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이천 산책로에 설치된 생수냉장고, 약 100m를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 여성환경연대
탄소중립도, 탈플라스틱도 고려 않는 지자체
공공 음수대와 주거지역 인근에서 매년 수백만병의 페트병 폐기물을 양산하고 있지만, 일부 자치구는 '무라벨 생수'와 '생수병 회수'를 앞세워 '친환경'으로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폐기물 감축에 있어 재활용은 보완책일 뿐 근본 대책이 아니다. 더구나 생수냉장고를 운영 중인 자치구 다수는 지난 2025년 제1차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40% 감축을 목표로 '폐기물 원천 감량'을 주요 과제로 포함했는데, 이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지자체의 과도한 일회용 플라스틱 의존을 제대로 규제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할 정부 역시 스스로 불충분한 탈플라스틱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탈플라스틱 종합대책안과 올해 4월 국무회의에 보고된 '탈플라스틱 순환경제 전환 추진계획'은 특정 시점이 아닌 발생량 전망치를 기준으로 한 감축 목표를 내세워, 실질적인 감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정부의 허술한 목표 속에 지자체나 기업 등 책임을 가져야 할 이해관계자의 무책임이 용인된다.

▲용산구 새나라어린이공원 생수냉장고 옆에 쓰레기가 쌓여있다. ⓒ 여성환경연대
지역·세대간 불평등 강화하는 생수냉장고, 지속가능하지 않아
생수 생산은 지하수를 과도하게 취수함으로써 수자원 고갈을 야기하고 있다. 이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여성환경연대도 지난해 충북 제천, 경남 산청 등 취수원 지역을 방문하여 주민들이 경험하는 지하수 고갈 실태를 생생한 목소리로 전해들었다.
포스텍 연구팀이 2024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지하수 수위 하강 추세가 이어질 경우 국내에서도 2080년까지 최소 300만 명이 지하수 고갈을 겪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일회용 플라스틱의 무분별한 생산과 소비로 야기되는 환경오염과 기후재난 역시 더 이상 미래세대만의 일이 아니다. 생수에 의존할수록 지역과 다음 세대, 그리고 사회 전반에 부담을 떠넘기는 불평등이 강화된다.

▲충북 제천시 송한2리에 생수공장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 여성환경연대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한 모금의 물을 나누는 것은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연대다. 이는 플라스틱 의존 없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서울시에는 이미 생수냉장고보다 더 많은 음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음수대의 위치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철저한 관리를 통해 시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 우선이다. 다중이용시설과 공공시설 등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중심으로 공공 음수대를 확대하여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런던과 베를린, 밴쿠버와 파리 등 해외 도시들은 플라스틱 없이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있는 방법으로 음수대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시민뿐 아니라 관광객에게까지 이용을 독려하고 있다.
도보 1분 거리의 음수대를 외면한 채, 일회용 페트병을 양산하며 해마다 되풀이되는 생수냉장고 사업은 과연 '폭염 대책'이라고 불려도 되는 것일까? 눈 앞의 인기에 영합하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불평등과 기후위기를 강화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폭염 대책이 논의되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