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점 한국에서 손꼽히는 작가 가운데 하나가 김애란이다. 내놓는 족족 베스트셀러 목록에 자리하는 작품들과, 나서는 행사마다 매진 행렬을 이루는 광경이 근래 한국 문학에서 보기 드문 인기를 증명한다. 지난 20여 년 간 김애란이 발표한 소설들은 그대로 21세기 한국 문학의 주된 경향을 가로지른다. 말 그대로 중추, 한국 문학의 가운데 자리를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이가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김애란의 작품을 두고서 자본주의, 또 신자유주의에 억눌리는 시대와 세대의 초상이라 말하고, 다른 누구는 비주류적 삶에 대한 애정 깃든 들여다봄이라고 이야기한다. 작고 사소한 존재를 향한 섬세하고 사려 깊은 시선은 김애란 문학의 주요한 특징이다. 이 시대 독자가 그로부터 위안과 공감을 얻는단 건 오랜 시간 문학이 감당해 온 역할과 얼마 다르지 않다.
지난해 발표한 소설 <안녕이라 그랬어>가 널리 읽히는 가운데, 신작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는 벌써부터 여러 서점에 예약판매 주문이 빗발쳤다. 1년에 책 한 권 구입하는 이가 40%도 되지 않는다는 이 나라에서 김애란은 관심과 애정, 그리고 신뢰를 받는 보기 드문 작가다. 이는 김애란의 글이 가진 정서와 메시지가 여전히 한국 문학, 나아가 한국사회에 어떤 유효함을 전하고 있다는 증거일 테다.
김애란 문학을 특징 짓는 매력을 만나다

▲침이 고인다책 표지 ⓒ 문학과지성사
<침이 고인다>는 20년 전 나온 김애란의 두 번째 작품집이다. 2007년 출간된 이 책엔 소설가로 막 활동을 시작한 2005년부터 약 2년 간, 각 문예지 지면에 발표한 단편소설 여덟 편이 실렸다. 표제작 '침이 고인다'를 비롯해, '도도한 생활', '성탄특선', '자오선을 지나갈 때', '칼자국', '기도', '네모난 자리들', '플라이데이터리코더' 등이 발표순서와 관계없이 들어찼다.
이중 '칼자국'과 '침이 고인다', '성탄특선'은 지금도 한국문학 애호가들 사이에서 이따금 언급되는 작품이다. 대중적 유명세와 별개로 시간이 소실케 하는 감각 너머 살아남는 소수의 작품이 고전의 지위를 획득한다면, 어쩌면 이들 작품 중에서 훗날 고전으로 자리할 작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표제작 '침이 고인다'는 두 여성이 세 달 가량 동거를 하며 빚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집주인은 서울 양천구 목동 입시학원에서 중등부 국어강사로 일하는 여성이다. 한 학년 수강생만 천 명이 넘는 기업형 학원의 강사인 그녀는 소위 잘 나가는 일타강사와는 거리감이 있는, 수많은 수강생들만큼이나 이렇다 할 존재감 없는 강사다. 그러나 제 업에 나름대로 만족하는 건 일이 '매달 13평형 원룸의 월세와 의료보험, 적립식 펀드 한 개와 적금을 부어갈 만한 생활력'을 가져다주는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인 것도, 저를 대단한 무엇으로 만들어줄 만큼 비전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세상 모두가 그렇고 그렇게 살아가지 않나 하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그러니까 '엄살떨지 말자'라고 출근길 위에서 그녀는 다짐한다.
이렇다 할 특별한 인연도 없던 후배를 제 집에 들인 건 무엇 때문인가. 그녀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던 후배의 눈빛, 목소리의 질감 같은 것이 마음에 든 건지도' 모르겠다고 회상할 만큼 이들의 동거는 좋게 말해 자연스럽고 나쁘게 표현하자면 우발적으로 이뤄졌다. 기억에도 남지 않은 옛 인연을 핑계로 '하룻밤만 묵고 갈 수 있'느냐 묻던 후배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석 달이 지난 뒤 그녀의 감정이 그리는 미묘한 파동이 이 소설의 주요한 관심이 된다. 어느 순간부터 의식적인지 아닌지 저를 닮아지려 하는 후배의 모습이 불편하고, 그래서인지 흠이 될 만한 것들을 찾고 있는 자신의 태도를 선배는 깨닫는다. 표면적으로는 별다를 게 없는 일상 가운데서 어쩌면 후배로부터 기인한 게 아닐 묘한 불편이 싹트는 지점을 포착하고 묘사하는 섬세함이 돋보인다.
'침이 고인다'는 어리숙할 만큼 순수하게 다가서는 후배와 그녀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 선배의 모습을 통해 그 관계의 비틀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응시하도록 한다. 소설은 두 사람의 관계만큼이나 선배가 일하는 사교육 현장의 환경을 주의 깊게 담아낸다. 수월성 교육이란 미명 아래 경쟁을 위한 경쟁, 솎아내고 떨구어내며 교육의 본질을 전혀 돌아보지 않는 입시학원의 현실을 의식적으로 공들여 그려내는 것이다. 저자는 과목별 팀으로 나뉜 강사들이 체육대회 현장에서 필요 이상으로 경쟁하고 아부하는 모습으로써 이를 표현해낸다. 직업적 가치를 좇는 것보다도 남보다 반 보라도 앞서고 윗사람에게 알랑방귀 뀌는 게 훨씬 더 중요한 사회인의 비루함이 자기보다 못한 환경에 놓인 후배를 못나게 바라보도록 이끄는 게 아닐까 돌아보게 한다.
한국 문학의 주된 경향 가운데서
'성탄특선'은 과거 극심한 주거난을 풍자하던 소련 문학을 연상케 한다. 연인들의 날처럼 변모한 크리스마스이브를 배경으로 주머니 사정 열악한 젊은이가 애인과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공실 있는 싼 모텔을 찾아 서울을 거의 반쯤 가로지르는 게 이야기의 골자다. 언젠가 저들의 은밀한 사랑행위를 가려줄 벽 있는 공간을 찾아 소련의 어느 도시를 헤매던 젊은 남녀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21세기 초 서울 버전이랄까. 주머니 사정 열악할 밖에 없는, 그래서 더욱 저의 없음과 다른 누구의 있음에 민감한 청춘의 사정은 국경과 시간을 건너 통하는 것이기에 이 소설의 공감대가 더욱 널리 미칠 수 있을 듯하다.
'칼자국'은 이 소설집 가운데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작품이다. 그저 내게만은 아닌 것이, 함께 읽은 모임원 과반 이상이 이 작품을 제일로 꼽기도 하였다. 그건 아마도 개중 문학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란 사실에 더하여, 적당히 전형적이고 대중적이면서도 특히 이 시대 문학의 주요 독자층인 20대부터 40대까지의 젊은 여성들에게 공감의 지점이 많은 설정 때문이리라 여긴다. 작품은 평생 국수집을 운영해온 어머니를 바라보는 딸의 시점에서 다뤄지는데, 25년 넘게 써서 이제는 종잇장처럼 얇아진 칼을 매개로써 그 삶과 그 안에 자리한 시간, 감정들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한다.
김애란의 작품들은 2000년대 중반을 지나고 있던 한국의 사회상, 그중에서도 주요 매체에선 뭉뚱그려지고 뭉쳐져 익명화되기 십상이던 이들의 현주소를 가까이서 응시한다. 20년 넘게 국수집을 운영해온 어머니는 평생 열심히 일했으면서도 번듯한 가게 하나 갖지 못하고 마침내는 지역의 쇠락과 함께 스러져간다. 자식을 피아노 학원에 보내는 걸 중산층 진입의 징표처럼 여겼으나 정작 그 피아노가 놓일 훤한 거실하나 갖지 못했던 어머니는 상경해 반지하 단칸방으로 들어가는 딸에게 버릴 수 없는 그 피아노를 가져가라고 강요한다('도도한 생활').
고작 몇 만 원을 아끼기 위해 수험생활의 시작점에서 중고서점을 전전하며 그마저도 구하기를 실패하는 언니를 지켜보는 동생의 시선이 비치기도 한다('기도'). 절벽 끝으로 밀려나 떨어지기 일쑤인, 혹은 겨우 버티고 섰으나 마침내는 같은 운명을 마주하게 될 사람들을 향한 김애란의 시선이 당대로부터 오늘까지 그와 닮은 독자를 위무해왔음을 기억한다.
다음 시대 한국 문학이 개척할 영토를 그리며
다만 이 시대 한국문학의 섬세한 결, 또 공감이며 연대에 머무르지 않고서 시대를 헤쳐가고 너머를 상상하게 하며, 웅지를 품도록 하는 위대한 문학의 자리가 거의 도모되지 않았음을 떠올리게 된다. 김애란의 섬세한 세계 가운데 납작하게 그려지는 세상 또한 없지 않으니, 계단 뜀뛰기를 하며 저를 단련하는 고시원 맞은편 건물 사내의 아주 짧은 등장('기도')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소설은 그리고 있지 않으나 당시 사회 가운데서도 충만한 가능성과 희망이 흩뿌려져 있고, 또한 그를 도모하거나 체제에 저항하며, 스스로를 단련하고 변화를 획책하는 흐름 또한 자리했음을 기억한다.
따져보면 <모비딕>의 주인공 이슈메일보다 가난한 이가 없고 <노인과 바다> 속 노인보다 미래 없는 이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이 작은 소설집 안에 오로지 자욱하게 깔려 있는 패배감이며 희망 없음만을 거듭 발견하게 되는 건 결코 마땅한 일은 아니다. 세대와 성별, 취향에 따라 한국문학의 독자층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편중되고 좁아들었단 비판이 이와 분명한 관련이 있다고 여긴다.
지난시대 작은 개인의 고충을 돌보지 않던 문학의 실패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한국 문학이 충실히 돌아보지 않고 있는 대지가 또한 드넓다는 사실을 더는 무시해선 안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것이 그대로 다음 시대 문학가가 개척할 지점이 된다는 건 역설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