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5일 경기도청에서 기자회견 열고 경기도 재정상태에 대해 ‘비상 상황’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 경기도
경기도가 내년도 예산을 원점에서 다시 짠다. 3년 이상 계속된 사업과 부서·시군 간 중복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성과가 낮은 사업은 삭감하거나 일몰한다. 대규모 사업 역시 추진 방식부터 다시 따져 재정 여건에 맞게 재구조화한다.
동시에 체납 징수와 신규 세원 발굴, 공기업 배당 등을 통해 민선 9기 동안 1조 6,000억 원 규모의 추가 세입을 확보하고, 지방소비세율 인상과 법인세 일부의 광역재원화 등 지방재정 구조 자체를 바꾸는 세제개편에도 나선다.
지난 8월 5일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경기도 재정 비상 상황'을 공식 선언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구체적인 재정위기 대응 전략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주형철 경기도 경제부지사 겸 '재정위기 극복 전략 TF' 단장은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TF 활동 결과를 발표했다. TF는 추미애 지사의 재정 비상상황 선언 이후 구성돼 지난 10일부터 3주 동안 모두 7차례 회의를 열고 2027년도 예산편성 방향과 추가 세입 확보, 구조적인 세제개편 방안을 논의했다.
2027년 3년 이상 사업·중복사업 전면 재검토…평가 낮은 사업은 삭감·일몰
경기도는 우선 2027년도 본예산을 편성하면서 재정사업 전반을 원점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했다.

▲주형쳘 경제부지사가 31일 오후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재정위기 극복 전략 TF' 활동 보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경기도
주형철 경제부지사는 "파격적인 지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지만, 도민의 안전과 기본적인 복지는 더욱 두텁게 챙기고, 경기도의 미래를 놓치지 않는 재정을 구현하는 것"을 원칙으로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3년 이상 계속된 사업 원점 재검토 ▲부서 간 또는 시군 사업과 중복되는 사업 원칙적 일몰 ▲대규모 사업 추진 방식 전면 재검토 ▲경기도가 수행해야 할 '광역' 고유 사무 집중 ▲재정·보조·투자사업 평가 결과의 예산 반영 강화 ▲신규 사업의 재원조달계획 제출 의무화 등 6가지 기준을 적용한다.
단순히 모든 사업의 예산을 일정 비율씩 삭감하는 방식은 택하지 않겠다는 게 경기도의 설명이다. 도민이 실제로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지, 사업이 지속 가능한지를 기준으로 사업의 필요성을 다시 판단한다.
특히 대규모 사업은 우선적인 검토 대상이다. 주형철 부지사는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통상 100억 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 40여 개라며 이들 사업을 우선하여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다만 전체적으로 약 400개의 재정사업을 금액과 관계없이 모두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광역자치단체의 역할에 맞게 재정을 집중하는 것도 중요한 기준이다. 주 부지사는 전통시장 활성화처럼 현장에 밀착된 사업은 기초지자체가 수행할 수 있지만, 여러 시군에 걸친 광역 교통사업 등은 경기도가 맡아야 할 광역 사무의 사례로 설명했다.
재정사업 평가와 보조사업 평가, 투자사업 검토에서 낮은 평가를 받은 사업은 삭감이나 일몰을 추진한다. 신규 사업에는 재원조달계획 제출을 의무화하는 '페이고(Pay-Go)' 원칙도 적용한다.
또한 직접 재정을 투입하는 사업 가운데 행정·네트워크 역량을 활용한 비예산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사업도 발굴한다. 기관·기업·단체 간 네트워킹과 정보 공유, 인증 등을 활용해 재정 투입을 줄이면서 정책 효과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추미애 경기도지사 당선인의 인수기구인 '공정·혁신·포용 경기준비위원회'의 김영진 부위원장이 22일 정책브리핑을 열고, 경기도의 심각한 재정 상황을 공개하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제도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 경기준비위원회
체납징수·세원 발굴·공기업 배당…민선9기 1조 6,000억 확보
세출을 줄이는 동시에 세입을 늘리는 작업도 병행한다.
경기도는 민선 9기 동안 지방세와 세외수입을 추가로 확보해 약 1조 6,000억 원의 세입을 마련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구체적으로 체납 관리 강화와 새로운 세원 발굴, 공기업 배당을 추진한다.
체납징수를 통해서는 4년간 약 3,357억 원을 확보한다는 목표다. 지방세 체납은 도가 직접 징수에 나서고 체납관리단의 현장 실태조사를 강화한다. 과징금·과태료 등 세외수입 체납에도 책임징수제를 도입한다.
새로운 세원 발굴 목표는 5,519억 원이다. 대표적인 방안은 임대용 자동차 등록 유치다. 주요 렌터카·리스 사업자를 유치하고 도·시·군 협력체계를 구축해 차량 등록에 따른 세원을 확보한다. 탈세나 부적정한 감면 사례에 대한 조사·추징도 병행한다.
경기주택도시공사(GH)와 킨텍스 등 공기업의 운영 이익에 대해서는 안정적인 배당을 추진한다. 주 부지사는 현금 배당을 추진하면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앞선 세 가지 목표를 합치면 체납징수 3,357억 원, 신규 세원 5,519억 원, 공공기관 배당 약 7,500억 원으로 약 1조 6,376억 원이다. 경기도가 제시한 전체 목표 1조 6,000억 원을 웃도는 규모다.
경기도는 이 세 가지 방안은 별도의 법 개정 없이 행정력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자산 매각 등 추가적인 세입 확보 방안도 계속 검토한다.
근본 해법은 '낡은 지방재정 구조' 개혁
경기도가 재정위기의 근본적인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세제개편이다.
주형철 부지사는 경기도 재정위기의 근본 원인을 "개발 시대에 머물러 있는 낡은 재정구조"라고 진단했다. 중앙정부가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현재 7.5 대 2.5 수준에서 7 대 3으로 높이는 국정과제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에 맞춰 지방재정 구조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주 부지사는 4가지 세제개편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는 지방소비세율 인상이다. 부동산 경기 영향을 크게 받는 취득세 의존도를 낮추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소비 기반 세원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 지방소비세율을 현행 25.3%에서 임기 내 40%까지 인상한다는 계획이다. 경기도는 이를 통해 연간 약 1조 4,000억 원의 추가 재원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둘째는 담배소비세 중 일몰 예정인 지방교육세 부분을 지역자원시설세로 전환해 소방·안전 분야 재원으로 사용하는 방안이다.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이후에도 광역지자체가 소방 업무와 상당한 재정을 부담하고 있는 만큼 이에 걸맞은 재원 확보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셋째는 법인세의 5%를 광역지방정부 재원으로 조정하는 방안이다. 경기도가 산업단지와 광역 인프라 구축 등에 재정을 투입하고 있는 만큼 지역 산업 성장에 따른 재원이 광역정부에도 돌아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넷째는 기준재정수요액과 기준재정수입액 산정 방식을 현실에 맞게 조정해 경기도가 보통교부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경기도는 현재 기준재정수입액은 과다하게, 기준재정수요액은 실제보다 적게 산정돼 보통교부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5일 경기도청에서 기자회견 열고 경기도 재정상태에 대해 ‘비상 상황’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 경기도
'재정 비상' 선언한 추미애, 실행체계 본격 가동
이번 대책은 추미애 지사가 지난 8월 5일 '경기도 재정 비상상황'을 선언한 이후 마련된 첫 번째 종합 실행계획이다.
경기도는 앞으로 세입 확보 추진단과 지출 구조조정 추진단을 두 축으로 실행체계를 구성하고, TF에서 마련한 전략을 실제 정책과 예산에 반영할 계획이다. 도의회와는 '지방재정 상생 협의체'를 구성해 재정 정상화 방안을 협의한다.
지방소비세율 인상 등 법률 개정이 필요한 과제는 도의회뿐 아니라 도내 31개 시군, 전국 시·도지사협의회 등과 연대해 정부와 국회에 건의하기로 했다.
결국 경기도의 재정위기 대응은 당장의 세출 구조조정과 추가 세입 확보, 지방재정 구조 자체를 바꾸는 제도개선을 동시에 추진하는 방식으로 구체화했다.
추미애 지사가 지난 5일 재정 비상상황을 선언했다면, 이날 주형철 부지사의 발표는 그 선언을 구체적인 예산편성 기준과 세입 확보 방안, 세제개편 과제로 옮겨놓은 것이다.
경기도가 강조한 원칙은 분명하다.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도민 안전과 민생 예산을 일률적으로 줄이는 대신 불요불급하거나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사업, 투입 재원에 비해 성과가 낮은 사업을 정리하고 필요한 분야에 재정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실행이다. 2027년도 예산편성 과정에서 실제로 어떤 사업이 재검토되고 어떤 사업이 정리될지, 또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한 지방소비세율 인상 등 세제개편 요구가 얼마나 구체적인 제도 변화로 이어질지가 추미애 도정의 재정 정상화 과정에서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