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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물자연휴양림에서 만난 아기 노루 ⓒ 박순우
제주에도 사람이 산다. 캄캄한 새벽을 달리는 배달노동자들이 있고, 한평생 나고 자란 고즈넉한 마을을 오가는 할망, 하르방이 있다. 이른 아침부터 밭이나 바다로 나가 손을 놀리는 어멍, 아방이 있고, 손님이 오든 오지 않든 매일 같은 자리를 지키며 관광객만 바라보는 자영업자들도 있다. 누군가에게 제주는 어쩌다 한 번 방문하는 관광지이지만, 누군가에게 제주는 삶의 터전이다.
제주에 온 지 만 13년이 되었다. 십 년 넘게 살며 이런저런 일을 겪고 나니 제주가 때론 밉고, 때론 안쓰럽다. 그럼에도 제주는 여전히 아름다운 섬이다. 아이들과 숲을 걷다 보면 가끔 운 좋게 노루를 만난다. 사람이 있는 걸 개의치 않고 풀을 뜯는 걸 보고 있으면 동물과 사람이 한 공간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시간이 마법처럼 느껴진다. 높은 빌딩이 없어 어딜 가도 광활하게 펼쳐진 하늘을 마주할 수 있는 것도 제주에 사는 큰 기쁨 중 하나다.
실종자가 제주에만 있는 것처럼 보도
그런 길이, 그런 하늘이 요즘 자꾸 어두워진다. 지인들에게서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뉴스가 너무 시끄러운데 괜찮냐는 안부다. 개학을 한 아이들은 학교에 잘 다니고 있고, 나도 내 일을 별 무리 없이 지속하고 있다. 지인들도 여전히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꾸려간다. 그럼에도 안부 전화는 계속 걸려오고 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제주 뉴스에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몇 년 전 악몽이 떠오른다.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제주 뉴스로 인터넷은 도배가 됐다. 오가는 손님은 죄다 끊겨 가게들은 파리만 날렸다. 몇 달간 제주는 그야말로 휑한 황무지 같았다. 관광산업으로 먹고사는 곳에서 관광객이 끊겼으니 당연했다. 언론들은 제주도 전체가 범죄 소굴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 댔고, 그 결과 한동안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 신세가 된 제주도민이 많았다. 그럼에도 귀중한 목숨이 희생 당했으니 어디 가서 속시원히 한탄도 하지 못했다.
비슷한 일이 또 벌어졌다. 얼마 전 장모씨 실종 사건을 계기로 온 언론에서는 제주 뉴스를 쏟아낸다. 문제 해결을 위해 각종 보도를 이어가는 건 당연하다. 특히 이 사건의 경우 담당 경찰관의 수상한 업무 처리 방식, 시신 발견 장소의 의문점 등 해결해야 할 게 많으니 후속 보도를 마땅히 이어가야 한다. 성인 실종 사건을 안이하게 처리해왔던 것도 반성과 더불어 향후 더 촘촘한 후속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제주도 자체를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너무나 부당하다. 실종자가 제주에만 있는 것처럼, 제주도만 밤길 걷는 게 위험한 것처럼, 제주도만 강력 범죄가 많은 것처럼 보도하는 게 과연 객관적인 타당성을 지닌 기사일까. 바다로 둘러싸인 섬의 특성상 제주에서 벌어지는 인명 사고는 실족이나 자살인 경우도 있다. 최근 언론들은 이런 경우까지 마치 전부 강력 사건인 것처럼 몰고 간다.
게다가 이런 기사의 타이틀에는 꼭 '제주' 두 글자가 박힌다. 다른 지역에서는 사건이 벌어져도 뉴스 제목에 지역 이름을 적는 경우가 드물지만, 제주도는 다르다. 언론들은 제주에서 나쁜 일이 터지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제주를 펜으로 난도질한다. 마치 여성 운전자나 고령 운전자가 사고를 내면 타이틀에 꼭 '여성' 혹은 '70대' 등의 수식어를 붙여 약자 혐오를 조장하는 것처럼, 제주에서도 어떤 사건만 벌어지면 '제주' 두 글자를 붙여 지역 혐오를 부추긴다.
그런 언론 환경 속에서 제주도는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마치 제주 전체가 우범 지역인 것처럼, 섬 자체가 문제인 것처럼, 절대 가면 안 되는 곳인 것처럼 호도된다.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사건이니 제주 사람들은 이전 사건과 마찬가지로 볼멘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한다. 그저 입을 다물고, 이번 사태는 언제쯤 가라앉을까 한숨만 내쉴 뿐이다. 그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관광객은 급감한다. 한 번 타격을 입은 지역 경제는 다시 살아나기까지 긴 시일이 걸린다. 앞서 살인사건 때가 그랬고,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 관광객이 끊겼을 때도 그랬다.
제주는 여전히 아름다운 섬, 잘못은 사람이 저지른다
언론에 묻고 싶다. 왜 제주도에서 일어난 사건은 뉴스 타이틀에 지역 이름이 꼭 박혀야 하는 걸까. 다른 지역에도 실종자가 있다. 다른 지역에도 사건이 벌어진다. 그렇다고 관련 기사의 제목에 지역 이름을 매번 적지는 않는다. 왜 제주도만 유독 그런 홀대를 받아야 하는 걸까.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혐오 지역으로 낙인 찍히고, 사람들에게서 외면 받길 간절히 바라기라도 하는 건가.
사람들이 자꾸 떠난다고, 사건이 벌어졌다고, 물가가 너무 비싸다고 기사가 난다. 이런 일들이 단지 제주에서만 벌어지는 일일까. 지방에서 사람이 떠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건은 전국에서 매일 벌어지며, 물가는 관광지나 땅값이 비싼 동네에서는 원래 높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광지로서 여론의 관심을 받는 건 당연하지만, 문제가 터질 때마다 제주도만 마치 그런 것처럼 확대 왜곡 보도하는 건 옳지 않다. 또 모든 기사에 '제주'라는 단어를 못박는 것도 명백한 지역 혐오 조장이다. 신중하지 못한 펜놀림으로 최고의 관광지가 최악의 섬으로 몰락하는 건 순식간이다.
코로나19는 초창기 우한 폐렴이라 불렸다. 하지만 특정 지역이나 사람, 동물 이름을 병명에 사용하지 말라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는 해당 지역과 민족·종교 등에 미칠 부정적 영향, 즉 낙인 효과를 막기 위함이다. 제주도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해서 모든 기사 제목에 제주를 넣는 건 명백한 낙인 효과를 불러온다. 그런 보도가 나올 때마다 제주도는 매번 외면 당하고 상처 받는다.
제주에 몇 년 살았다는 유명인들이 나서서 제주의 치안을 도마 위에 올리는 것 또한 부적절하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밤길이 전혀 위험하지 않았던 도시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산과 바다, 논밭이 많은 지역에 길마다 CCTV와 가로등을 설치한 곳이 전 세계에서 얼마나 될까. 인공 시설은 당연히 인구가 많은 곳에 집중된다. 숲속에 CCTV가 없고 농장 주변에 가로등이 없는 게 단지 제주도만의 일일까.
수도권에 비해 비수도권이, 도시에 비해 농촌이 이런 상황인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수도권에 비해 지방이 인프라가 부족하다면 필요에 따라 보완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자연 경관에 인공물을 설치하는 게 무조건 바람직한 건 아니다. 이러한 보편적인 상황까지 죄다 제주도만의 문제인 것처럼 주장하는 건 부당하다. 적어도 다른 지역의 상황도 검토한 뒤 문제를 지적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이곳에도 사람이 산다. 어떻게든 삶을 영위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산다. 이곳에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부모들이 있고, 성적과 입시에 스트레스 받으며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으며,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새벽부터 일터로 나가는 노동자들이 있다. 나처럼 외부에서 들어와 터 잡고 사는 이들도 있지만, 한평생 이곳만을 제 땅으로 알고 뿌리내린 선주민들도 있다.
그들 모두의 삶을 볼모로 잡고 제주도 전체가 문제 있는 섬인 것처럼 보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인 실종 사건은 우리 사회가 재고하고 관련 시스템을 정비해야 할 중대한 문제가 맞지만, 제주도이기 때문에 더 문제인 것처럼 바라보기엔 아직 객관적인 증거가 불충분하다. 제주도는 여전히 걷기 좋은 섬이고, 아름다운 환경을 갖춘 관광지다. 제주도는 잘못이 없다. 잘못은 사람이 저지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