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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까지 9년 동안 일구다 그만둔 주말 텃밭을 지난 8월 27일 또 찾아갔다. 보살피는 사람의 손길이 끊긴 밭은 예상대로 풀에 점령당해 있었다. 장마와 폭염을 지난 사이 바랭이를 비롯한 온갖 풀이 빈틈없이 들어차서 어디가 이랑이고 어디가 고랑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려웠다.

처서가 지나면 텃밭은 분주해지기 마련이다. 여름을 거치며 우거진 풀을 뽑고 여름 작물을 걷어 낸 뒤 밭을 갈아엎는다. 새로 만든 이랑에는 배추 모종을 옮겨 심고 무 씨앗을 뿌린다. 이웃 밭에는 어린 배추가 자리 잡아가고 싹을 틔운 무가 떡잎 두 장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가꾸던 밭만은 농사의 흐름에서 비켜난 듯했다. 내 땅도 아니고 더 이상 내가 가꾸지 않는데도 풀밭이 되어 버린 밭을 가지런히 정리된 이웃 밭과 견주니 괜스레 민망했다.

8월의 텃밭 사람의 손길이 끊긴 텃밭에 바랭이가 허벅지 높이까지 자랐다. 장마와 폭염을 지나 온갖 풀이 빽빽이 들어찼다. 낡은 울타리가 아니었다면 밭이었는지조차 알아보기 어렵다.
8월의 텃밭사람의 손길이 끊긴 텃밭에 바랭이가 허벅지 높이까지 자랐다. 장마와 폭염을 지나 온갖 풀이 빽빽이 들어찼다. 낡은 울타리가 아니었다면 밭이었는지조차 알아보기 어렵다. ⓒ 신극채

몸이 밭을 떠나라고 했지만 마음은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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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다섯 평 남짓한 땅을 빌려 오랜 기간 농사를 지어왔다. 해마다 봄이면 씨앗과 모종을 심고, 여름이면 물을 주고 풀을 뽑았다. 처서 무렵에는 배추와 무를 심고 가을에는 벌레도 잡았다. 신선한 채소를 거두어 먹는 즐거움도 컸다. 보살핀 만큼 식물이 자라고 열매가 영그는 과정을 지켜보는 보람은 그보다 더했다.

먹거리뿐 아니라 꽃을 보는 기쁨도 얻었다. 어느 날 빗방울을 매단 고추꽃을 본 뒤부터 감자와 가지 같은 익숙한 작물의 꽃도 새롭게 보였다. 땅 위에서 꽃을 피운 뒤 땅속에서 열매를 맺는 땅콩의 비밀도 알게 되었다. 열대지방이 고향인 토란이 좀처럼 보기 어려운 꽃을 피우는 모습을 마주하는 행운도 얻었다. 그런 이야기를 글로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밭일은 해가 거듭될수록 몸에 부담을 주었다. 부실했던 허리에 무리가 되었으며 어깨와 무릎에도 통증을 남겼다. 대수롭지 않던 삽질과 풀 뽑기, 물통 나르기도 힘에 부쳤다. 야생 동물의 피해도 잦아졌다. 멧돼지는 고구마를 캐 먹고 밭을 헤집어 놓았다. 고라니가 배추와 무를 모조리 뜯어먹어 가을 농사를 허탕 친 적도 있었다.

결국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텃밭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몸이 밭을 떠나라고 한 셈이었다. 그렇다고 마음마저 단번에 떠나지 못했다. 지난 4월 봄에 찾아가 보니 새로 계약한 사람이 없는지 밭은 손길이 닿은 흔적이 없었다. 야생동물을 막기 위해 둘러친 울타리도 지난해 뚫린 그대로였다. 그래도 부추와 쪽파가 겨울을 견디고 새잎을 올렸고, 지난해 떨어진 들깨 씨앗도 여기저기서 싹을 틔웠다. 한동안 밭에 주저앉아 그동안 일구고 가꾼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6월에도 다시 찾아갔다. 밭은 여전히 방치된 채였다. 가꾸는 사람은 없었지만 풀 사이에서 부추와 들깨가 제법 자라 있었다. 들깻잎 몇 장을 따고 부추 한 줌을 잘라 집으로 가져왔다. 부침개를 부치려고 씻는데 진한 향이 올라왔다.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서 익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이 밭에서 얻는 마지막 수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4월의 텃밭 봄이 되자 추위를 이겨 낸 부추가 싱그러운 잎을 올리고, 지난해 떨어진 들깨 씨앗도 새싹을 틔웠다.
4월의 텃밭봄이 되자 추위를 이겨 낸 부추가 싱그러운 잎을 올리고, 지난해 떨어진 들깨 씨앗도 새싹을 틔웠다. ⓒ 신극채
6월의 텃밭 봄이 깊어지면, 부추는 맛이 오르고 들깨는 가지를 뻗고 잎을 넓힌다. 그사이 풀도 텃밭 곳곳에서 세를 확장하기 시작한다.
6월의 텃밭봄이 깊어지면, 부추는 맛이 오르고 들깨는 가지를 뻗고 잎을 넓힌다. 그사이 풀도 텃밭 곳곳에서 세를 확장하기 시작한다. ⓒ 신극채

'마지막'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8월에 다시 왔을 때, 부추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을까 싶어 허벅지까지 자란 바랭이를 헤치며 밭 안쪽으로 들어갔다. 뱀이라도 기어 나올까 무서웠고 풀 사이에서 자랄지 모를 부추를 밟을까 염려돼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풀을 헤쳐보았다. 낯익은 잎 몇 줄기가 보였다. 부추였다.

다시 만난 부추는 마지막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했다. 6월 초여름에 베인 자리에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새잎을 밀어 올렸다. 봄보다 잎은 가늘었고 포기도 듬성했다. 사방으로 둘러싼 풀에 햇빛과 양분을 빼앗긴 탓인지 기세가 약했다. 그래도 풀숲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으로 풀들과 경쟁하며 살아남았다. 4월과 6월보다 초라해진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했다.

그동안 농사를 지을 때 풀은 작물에게 가야할 물과 양분을 빼앗는 존재였다. 한 주만 밭에 가지 않아도 작물보다 먼저 자라 있었다. 밭은 내가 심은 작물의 공간이어야 했고, 그곳에 돋은 풀은 뽑아야 했다.

하지만 내가 떠난 밭에서는 작물과 풀의 구분은 희미해졌다. 바람은 들깨 씨앗과 풀씨를 함께 데려왔고, 들깨 씨앗을 깨운 비와 햇빛은 풀씨도 틔웠다. 부추를 키운 흙은 이름 모를 풀의 뿌리도 받아들였다. 풀 사이로 벌레가 수시로 드나들고 고라니도 먹이를 찾아 울타리를 넘었을 것이다. 사람을 위한 먹거리는 더 이상 생산하지 않았지만 땅은 여전히 생명을 키우고 있었다. 농사를 그만둔 뒤에도 밭은 쉬지 않았다.

지금껏 9년 동안 내가 밭을 가꾸었다고 생각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풀을 뽑았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땅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한 일은 그곳에서 자랄 식물을 고르고 잘 자라도록 거드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8월의 텃밭 돌보는 이 없는 텃밭, 우거진 풀에 기세가 눌린 부추가 꽃봉오리 하나를 올렸다. 부추는 그렇게 제 나름대로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8월의 텃밭돌보는 이 없는 텃밭, 우거진 풀에 기세가 눌린 부추가 꽃봉오리 하나를 올렸다. 부추는 그렇게 제 나름대로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 신극채

풀숲 속 부추를 다시 보았다. 풀을 걷어 내고 자세히 살폈다. 가느다란 잎 사이로 올라온 꽃대 끝에 꽃봉오리 하나가 맺혀 있었다. 부추는 여름을 견디는 데 그치지 않고 제 방식대로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부추를 보니 내가 없어도 밭은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곳은 밭이 아닌 누구를 가리지 않는 땅으로 돌아갔다. 더 이상 찾아와 살피지 않아도 부추는 자신의 계절을 살아가고 땅은 바랭이와 또 다른 씨앗을 키울 것이다. 풀밭을 빠져나오며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이랑과 고랑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수많은 풀이 비를 품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홉 해 동안 내 밭이었던 그곳과 이제야 작별할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텃밭#텃밭가꾸기#텃밭작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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