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누워서 숏츠를 보다가 인공지능 로봇이 자신과 닮은 로봇들과 100미터 경주하는 것을 보았다. 안전하게 인간보다 빨리 달리는 로봇을 보면서 가까운 미래에는 정말로 인간과 로봇이 함께 경주하는 스포츠가 생길 것 같다는 몽상을 하게 된다.
일본 만화가 키시로 유키토의 <총몽>에서 인간도 기계도 아닌 존재들이 군중에 둘러싸여 모터볼 경주를 했던 것처럼 미래에는 특정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롭게 발명된 기계 스포츠에 열광할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상상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곧 펼쳐질 것 같다.

▲〈책이라면 팔 만큼〉 표지 ⓒ 대원씨아이(주)
누워서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 빠른 시대 변화와는 무관한 코지마 아오의 낡은(?) 텍스트 <책이라면 팔 만큼>(2026년 4월 출간)을 읽게 되었다.
교보문고 검색란에 일본어 제목(〈本なら賣るほど〉)을 검색해보니 일본에서는 이미 2025년 1월에 1권이, 2025년 4월에 2권이, 2026년 4월에 3권이 출간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뒤늦게 국내에 번역되어 한국 독자에게 소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헌책방 시월당
이 책은 헌책방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공간 리모델링 업자였던 한 청년이 회사를 그만두고 오랜 시간 마음에 두었던 헌책방을 인수해 사장이 된 이후, 이웃 사람들과 '책'으로 엮이게 되는 사소하고 특별한 사정에 대해서 다룬다. 그가 돈도 안 될 뿐만 아니라 성가신 손님으로 곤혹스러운 헌책방을 인수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웹진이나 전자책이 흥행하는 시대에 "종이책을 좋아하고 먼지 냄새 나는 헌책방이 아니면 만족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가는 장소를"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다. 시대에 아부하지 않는 "안 팔리게 생긴 책들"로 헌책방을 가득 채워서 운명의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서다.
그에게 독서는 "기분 좋고 유익"한 것이자 "기분 더럽고 화나고 상처받는" 것이며 "다양한 모험도 해보고 멋지게 실패"하도록 이끄는 것이기도 해서 자신의 가게인 '시월당'에 찾아온 손님에게 적극적으로 책을 소개한다.
그 역시도 그렇게 헌책방에서 책을 구매한 사람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 그는 헌책방에서 어떤 책을 사야 할지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책이 바로 레이몬드 먼고의 <취직하지 않고 살기>(원제 Cosmic Profit)였다. 그가 이 책을 선택했다는 것은 직장생활에서의 탈출을 예견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낭만적인 취지와 바람은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실제로 이뤄지기도 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탐탁지 않았다.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그가 느끼고 경험한 것은 낭만적인 바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헌책방을 6년이나 운영하다 보면 손님이 들어선 순간 살지 말지" 알게 된다는 속물적인 마음을 품게 될 뿐만아니라, "회사를 때려치우고 궁핍해지긴 했지만, 몸을 버리면서까지 돈을 버는 것보다는 사실 마음이 편하다"는 장점을 이야기하면서도 헌책방은 "책에 관심 없는 사람이 책을 버리러 오는 곳"이라는 실체를 밝히기도 한다.

▲〈책이라면 팔 만큼〉 121쪽, 168쪽. ⓒ 대원씨아이(주)
텍스트에서는 이런 고충을 단순히 고충으로만 표현하지 않는다. 유머와 재치로 잘 담아낸다. 단편 <안녕, 아오키 마리코>에서 등장하는 손님 '미나로 타로'가 그렇고, <201호 입주자 있음>에서 책장 만드는 인물로 등장하는 '조지'가 그렇다.
이들은 시월당 사장의 바람과는 역행하는 인물이다. 미대 졸업작품을 위해,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책으로 둘러싸인 분위기가 좋아서 종이책을 탐닉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러한 연출은 책이라는 물질로 얽혀진 다양한 사연을 통해 책이 만들어내는 신비한 경험을 도드라지게 한다.
책과 얽힌 애틋한 사연
하지만 이 텍스트의 묘미는 책과 엮인 애틋한 사연을 만 날 때이다. 이 책의 첫 단편 <책을 떠나 보내다>에서는 직업이 우체부였던 책 애호가가 죽기 전 남기고 간 책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해 다룬다. 이야기는 그의 가족으로부터 책 수거 의뢰를 받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헌책방 사장은 홀로 우체부 아저씨의 서재를 둘러보는 과정에서 장서의 내용과 책 보관법, 이미 절판된 양질의 책이 서재에 가득 채워진 것을 보고 그가 얼마나 책을 아끼며 독서했는지 어렵지 않게 파악하게 된다. 우체부 일을 마치고 이곳에 와 독서 했던 시간은 고스란히 책 애호가의 체중을 견뎌낸 닳아버린 의자 밑 다다미(畳)가 증명해준다. 그는 헤진 다다미를 보고 그의 삶을 반추하게 된다.
더욱이 가족 중 한 명이 젊은 헌책방 사장에게만 헌책 수거 의뢰를 부탁했다는 말에, 고마움을 감추지 못한다.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팔릴 바에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 처분" 당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책 애호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종이책에 각별한 애정이 있는 적임자를 찾았던 것이다.
그가 바로 시월당의 청년 사장이었다. 독자들은 이 단편을 읽으면서 언젠가는 처분해야 할 자신의 방에 쌓여 있는 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죽음'에 대한 질문이기도 해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코지마 아오는 책의 소재로 이런 질문을 성공적으로 이끈다.

▲〈책이라면 팔 만큼〉 24쪽, 51쪽. ⓒ 대원씨아이(주)
단편 <커피에 별사탕>에서도 책과 엮인 사연을 잘 담아냈다. 시월당 사장은 종종 헌책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듯한 일이 벌어진다고 말한다. 그 일이 데라다 도라히코의 전집을 헌책방에 팔았던 할머니에게서 일어난다.
남편과 사별한 후, 홀로 살아가는 할머니는 나이가 점차 들어감에 따라 더는 책을 보관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헌책방에 수거 의뢰를 부탁한다. 이 과정에서 뭐든지 책 속에 끼워 넣는 남편의 책 읽는 습관을 예상하지 못한다. 그래서 시월당 사장으로부터 큰돈을 돌려받는다. 할아버지가 책에 돈을 넣어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데라다 도라히코(寺田寅彦)의 시를 좋아했던 할아버지의 아내를 향한 마음을 청년 사장의 독서력으로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데라다 도라히코처럼 오랜 시간 "딸기, 커피, 꽃, 미인"을 참 좋아했는데, 여기서 미인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을 청년 사장의 복기로 알게된 것이다.
데라다 도라히코의 시와 자신의 삶이 나란히 놓여 있었음에도 데라다 도라히코의 전집을 처분하고자 했던 할머니는 뒤늦게 남편의 고마움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판도라의 상자'이다.

▲<책이라면 팔 만큼>에서 소개된 일본어판 서적 표지이다. 모리 마리의 <연인들의 숲>,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도>, 레이몬드 먼고의 <취직하지 않고 살기> 등의 일본어 서적이 소개된다. ⓒ 대원씨아이(주)
이처럼 코지마 아오의 신작 <책이라면 팔 만큼>은 이런 값진 순간을 잘 담아낸다. 앞으로 2권과 3권이 더 번역되어 어떤 내용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다가올지는 원서로 읽기 전에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사연 하나 가슴에 품었으면 좋겠다.
이 텍스트에는 데라다 도라히코 이외에도, BL의 선구자인 모리 마리(森茉莉)의 <연인들의 숲>, 탐정 이야기를 쓴 오카모토 기도(岡本綺堂)의 <한시치 체포록> 등의 책들이 이야기와 함께 연결된다. 함께 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덧붙이는 글 | 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를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