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전봉준 장군은 신문과 기록(전봉준 공초)이 마무리되자, 권설재판소에서 을미년(1895년) 3월 29일에 사형선고를 받고, 다음 날인 3월 30일(양4.24) 좌감옥에서 새벽 2시에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전봉준과 손화중·김덕명·최경선·성두한은 판결이 나오자마자 곧바로 처형되었다. 이들이 최후의 순간을 맞은 법무아문 감옥서(옛 의금부 전옥서) 터인 서울 종로구 영풍문고 앞엔 2018년 4월 24일 전봉준의 마지막 사진에 담긴 모습의 동상이 들어섰다. ⓒ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
최근 전북특별자치도가 전국 광역자치단체 최초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에게 수당(월 1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혁명의 발상지로서 참여자의 명예를 기리고 유족의 긍지를 높이겠다는 지극히 합당한 조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현금성 포퓰리즘'이라 깎아내리고, 심지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유족에게도 수당을 주란 말이냐'는 억지스러운 궤변까지 동원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고 있다. 국회에서 추진되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 입법을 가로막는 세력들의 논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참으로 참담하고, 역사의식의 빈곤을 여실히 드러내는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와 번영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면 감히 입에 올릴 수 없는 모욕이다.
민주주의와 항일 투쟁의 거대한 뿌리, 동학
1894년 갑오년의 조선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였다. 탐관오리의 가혹한 수탈은 극에 달했고, 밀려드는 외세의 야욕은 조선의 뿌리를 흔들고 있었다. 백성들이 유리걸식하며 죽어갈 때,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라는 숭고한 기치 아래 일어선 이들이 바로 동학혁명군이었다. 이들은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져 보국안민(輔國安民)의 제단에 피를 뿌렸다.
동학의 정신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의병 투쟁과 기미년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이어졌고, 해방 후에는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 항쟁과 촛불혁명으로 승화되었다. 대한민국 헌정사에 면면히 흐르는 '자유와 평등, 자주독립'의 핏줄이 바로 동학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국회는 서훈 입법을 미루고만 있고, 보훈부는 마치 동학군을 불온세력 대하듯 역사에 반기를 들고 있다.
반대론자들의 억지 논리와 역사적 무지
동학 유족 예우와 서훈을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첫째, 임진왜란 참전 후손과의 형평성 운운은 무지의 소산이다. 조선 정부는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한 의병과 백성들에게 이미 그에 합당한 예우를 다했다. 거제현민들의 의병 활동을 인정해 임진왜란 1년 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475명을 뽑아 혜택을 내린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명백히 남아있다. 300년 전 왕조 시대의 전쟁과 근대 항일운동의 도화선이 된 동학을 동일선상에 놓고 시비 거리로 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둘째, 동학을 인정하면 안중근 의사가 역적이 된다는 해괴한 주장이다. 안중근 의사의 부친 안태훈 옹이 초기 동학군 진압에 나섰던 것은 사실이나, 훗날 쫓기는 신세가 된 황해도 동학 접주 김구(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를 보호해 준 이가 바로 안태훈이었다. 그리고 안중근은 김구와 함께 항일 독립투쟁의 거대한 상징이 되었다. 전봉준 장군의 구국 정신과 안중근 의사의 항일 정신은 결코 대립하지 않으며, 거대한 역사의 물결 속에서 하나로 만난다.
셋째, 1895년 을미의병은 되면서 1894년 동학의병은 안 된다는 자기모순이다. 현재 국가보훈부는 1895년에 일어난 을미의병 참여자들에게는 독립유공자 서훈을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불과 1년 전인 1894년,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서 무기를 들었던 2차 동학농민군은 왜 안 된단 말인가? 똑같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피를 흘렸음에도, 1년의 차이를 두고 예우를 달리하는 것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처사다.
명백한 항일 의병, 기록이 증명한다.
2차 동학농민혁명이 단순한 농민 봉기가 아닌 '항일 독립운동'이라는 사실은 전봉준 장군의 심문 기록(공초록)과 판결문에 너무도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귀국(일본)의 군사들이 왕궁을 침범하여 주상을 겁박하는 등 그에 대한 분개를 이기지 못하여, 충군애국의 마음으로 의병을 규합, 일본군을 치기 위해 거병하였다." (전봉준 공초록 중)
"일본군대가 대궐로 난입하였다는 말을 듣고... 일본병을 물리치고 국외로 몰아내려는 마음을 품고 다시 군사를 일으켜 의병운동을 도모하였다." (전봉준 판결선언서 중)
일본군이 경복궁을 무력으로 점령한 갑오왜란에 분개하여 외세를 몰아내고자 목숨을 건 전쟁. 이것이 항일 투쟁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항일 독립운동이란 말인가.
이제는 국가가 답해야 할 때이다.
동학농민혁명 유족에게 지급되는 최소한의 수당을 두고 '표퓰리즘'이라 비아냥대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현재 참전용사들에게 국가가 지급하는 수당과 예우도 포퓰리즘인가? 나라가 백성을 버렸을 때, 백성이 스스로 나라를 구하고자 목숨을 바친 헌신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이유다.
이제 국회와 보훈부는 색안경을 낀 소모적인 차별 논쟁을 당장 멈춰야 한다. 국회는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신속히 통과시키고, 정부는 동학 독립유공자 서훈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것이 하늘같은 생명을 조국의 제단에 바친 수십만 동학 영령들에 대한, 후손 된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은 2차 동학농민혁명참여자 서훈국민연대 공동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