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요즘 청년들 ⓒ 챗GPT
노동부가 지난 4일 하반기 업무보고에서 35세 미만 청년이 일정 기간 이상 일한 뒤 스스로 그만두더라도 생애 한 차례는 실업급여(구직급여)를 주겠다고 밝혔다. 이직 전 임금의 60퍼센트, 월 최대 100만 원가량이 검토되고 있다.
곧바로 반발이 나왔다. 지급 요건이 느슨하면 실업급여를 퇴사 후 당연히 받는 수당처럼 여기게 된다거나, 스스로 나간 것을 해고나 폐업과 같은 실업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청년이 더 쉽게 그만두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그 밑에 깔려 있다.
한국고용정보원 고용행정통계에서 올해 6월 기준 35세 미만 자진퇴사자 14만 5333명 가운데 66.5퍼센트가 근속 1년을 채우지 못했다. 20대 초반은 80.1퍼센트다. 다섯 중 넷이 1년을 버티지 못한다.
청년들에게 왜 그만두었는지 물어본 조사가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6년 5월 청년층 부가조사에서 첫 일자리를 그만둔 이유 1위는 보수와 근로 시간 같은 근로 여건 불만족으로 44.4퍼센트였다. 반면 전공이나 적성이 맞지 않아서라는 응답은 7.2퍼센트에 그쳤다.
청년이 떠나는 것은 그 일이 자기와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일자리의 조건이 견딜 만한 것이 아니어서다. 다섯 중 넷이 1년을 못 버틴다면 그것은 인내심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들어간 자리의 문제다.
왜 청년들은 "뭘 해도 부족한 것 같다"고 자조할까
지금 제도에서는 스스로 그만두면 한 푼도 나오지 않는다. 견딜 수 없는 자리라도 다음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는 버텨야 하고, 버티지 못하고 나오면 소득이 그날로 끊긴다. 생계가 인질로 잡혀 있으니 나쁜 조건을 거절할 힘도 생기지 않는다. 그 결과 사람을 붙잡아 두는 것은 일자리의 매력이 아니라 나가면 아무것도 없다는 공포가 된다. 자발적 이직에도 안전망을 대는 일은 나태를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일자리에 사람을 묶어 두던 그 공포를 걷어내는 것이다.
첫 직장 평균 근속이 1년 6.8개월인 사회에서 평생 한 번의 이동을 보장하는 것을 방종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아직 취업하지 못한 청년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타당한 문제 제기이지만, 그것은 실업급여를 좁혀야 할 이유가 아니라 안전망을 더 넓혀야 할 이유다.
정부의 구직급여안 개선안은 정당하다. 다만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생애 한 번, 35세 미만이라는 조건은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 제도가 손을 대는 것은 결국 회사를 나온 뒤의 100만 원이고, 1년을 못 버티고 나오게 만든 회사의 그 자리는 그대로 남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조건에 놓인 청년들이 모이면 "뭘 해도 부족한 것 같다"는 말이 되풀이된다. 그럴 만도 하다. 평생직장은 없다고 배웠고, 결혼과 출산은 선택의 영역으로 옮겨갔으며, 힘들게 취업해도 인공지능 때문에 몇 년 뒤 그 직업이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장담해 주지 않는다.
들어갈 문 자체도 좁아지고 있다. 2026년 7월 고용동향에서 15세에서 29세 취업자는 344만 1000명으로 1년 전보다 19만 1000명 줄어 45개월 연속 감소했다. 청년 실업률은 6.8퍼센트, 확장(체감)실업률은 17퍼센트다. 대기업 정규직 신입 공고는 지난해 43퍼센트 급감했고, 신입만 뽑는 공고는 2.6퍼센트에 그쳤다. '신입'이라는 문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집도 마찬가지다. KB부동산 통계에서 2026년 3월 기준 서울 소득 3분위 가구가 같은 3분위 주택을 사려면 10.49년치 소득이 필요하다.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 6개월을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저축을 게을리해서 집이 멀어진 것이 아니라, 모으는 속도가 따라잡을 수 없게 값이 올라간 것이다.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는 조건에 놓인 청년에게 주변은 계속 확실한 계획을 요구한다. 돈은 미리 모아야 하고, 커리어도 빨리 잡아야 하고, 운동 등의 취미와 자기만의 경쟁력도 갖춰야 한다고 한다. 떼어놓고 보면 틀린 말이 없다. 그런데 이 목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안전망의 목록이다. 저축은 일이 끊길 때를 대비하는 것이고, 경쟁력은 밀려날 때를 대비하는 것이며, 운동은 아파도 소득이 끊기지 않도록 몸을 관리해 두는 일이다. 사회가 제공해 주지 않는 것을 각자 제 몸으로 마련하라는 주문인 셈이다. 나가면 아무것도 없는 사회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안전망'으로 만드는 공사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공사가 한 사람이 감당할 총량을 훌쩍 넘어선다는 데 있다.
휴대전화를 열면 압박은 더 커진다. 타임라인에 흐르는 또래들의 여행과 연애와 투자 성과가 가장 잘 나온 장면만 편집한 결과인 줄 알면서도, 매일 그 편집본과 자신의 하루를 비교하게 된다. KB금융의 2024년 한국 웰니스 보고서에서 20대의 71.6퍼센트가 지난 1년 사이 정신건강 문제를 겪었다고 답했다. 전 연령대 최고치다.
'청년정책'이라는 이름의 별도 창구, 본질적 해결책 아냐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정책 전문가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827/IE003664355_STD.jpg)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정책 전문가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요즘 청년들은 하고 싶은 것이 많아 좋겠다'는 말을 기성세대는 어렵지 않게 건넨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결이 전혀 다르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게 아니라, 안 하면 뒤처질 것 같은 것이 많은 것이라고 한다. 청년에게 요구되는 '안전망 공사'의 목록이 너무 많은 것이다.
이 대답은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가리킨다. 요즘 20대가 유난히 불안이 많은 세대인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가장 불확실한 미래를 받아 든 세대에게 가장 확실한 인생 계획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조건에 놓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비슷하게 불안하다면, 그것은 개인의 '성격'이 아닌 '구조'의 문제다.
그 와중에도 청년들은 각자의 자리를 찾아간다. 아침에 일어나 일터로 나가고, 시험을 준비하고, 사람을 만나고, 다시 잠든다. 확실한 것이 하나도 주어지지 않은 조건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은 그 자체로 만만치 않은 성취다. 뒤처지고 있다고 느끼는 청년들에게 먼저 건네야 할 말은 따로 있다. "당신은 생각보다 꽤 잘하고 있다." 부족한 것은 청년의 계획이 아니라, 계획을 세울 만큼 확실한 것을 하나도 건네주지 못한 사회 쪽이다.
원인이 구조에 있다면 해답도 구조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청년을 힘들게 하는 구조는 청년만 힘들게 하지 않는다. 근로장려금 명단에 청년과 노년이 나란히 올라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사람을 쉽게 내보낼 수 있게 된 노동시장은 오십대 가장을 먼저 밀어내고, 오르기만 하는 집값은 신혼부부와 노년을 함께 짓누른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청년정책'이라는 이름의 별도 창구가 아니다. 청년에게만 따로 지급하는 지원금과 청년만 신청할 수 있는 대출 상품은 불안을 잠시 늦출 뿐, 불안을 만들어내는 원인은 그대로 남겨 둔다. 청년은 안전망 바깥으로 가장 먼저 밀려나는 자리에 서 있을 뿐이고, 그 자리를 만든 것은 안전망을 하나씩 거두어들이고 그 빈자리를 각자도생과 적자생존으로 메워 온 지난 수십 년의 선택이다. 청년 문제는 따로 떨어진 영역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앓고 있는 병이 가장 먼저 겉으로 드러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질문은 결국 분배로 향한다. 오늘의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효율로 부를 뽑아내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몫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국내외 금융자본의 폭리로 쌓여 가는 동안, 아무리 성실하게 일해도 집과 노후를 감당할 수 없는 사회가 만들어졌다. 그 몫을 민중의 것으로 되돌리고, 걷어내 버린 안전망을 다시 세우는 일이, 청년 앞에 놓인 불안의 진짜 해법이다.
정치가 청년을 대하는 자세도 여기에서 갈린다. 정치가 할 일은 더 잘 버티는 방법을 가르치거나 지원 사업 몇 가지를 늘려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세대가 딛고 서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바닥을 다시 까는 일이어야 한다. 그 바닥이 놓이는 날에야 청년들은 근로장려금 신청 자격을 계산하는 대신, 안 하면 뒤처질 것 같은 일이 아니라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