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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이미지 너머, 지금의 자원봉사를 들여다보는 시리즈. 변화하는 사회 속 현장의 이야기와 기록을 통해 자원봉사의 새로운 모습과 이어지는 가치를 살펴본다.
사단법인 온기의 '온기우편함'은 쉽게 말하지 못한 고민을 익명의 편지로 받고, 자원봉사자 '온기우체부'가 손편지로 답하는 활동이다. 누군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고민을 적어 우편함에 넣으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온기우체부에게 편지가 전해지고 얼마 뒤 손으로 쓴 답장이 돌아온다.

익명의 누군가가 손글씨로 쓴 편지

 손편지를 쓰는 온기우체부 모습
손편지를 쓰는 온기우체부 모습 ⓒ 사단법인온기

2017년 작은 우편함 하나에서 시작한 온기우편함은 점점 늘어 현재 기업·기관·지자체 등 여러 공간에 설치되어 있다. 또 20대부터 70대까지 약 1000명의 온기우체부가 답장을 쓰고 있다. 빠르게 답을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이들은 손으로 편지를 쓴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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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식 대표는 "결국 마음의 영역에서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글씨체도 다르고, 고쳐 쓴 흔적도 남는 손편지에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직접 시간을 들였다는 감각이 남는다. 작성된 편지는 발송 전 다시 사람의 손으로 확인한 뒤 고민을 보낸 사람에게 전달된다.

도움을 받는 사람과 도움을 주는 사람이 고정되어 있지도 한다. 온기우체부 중에는 과거 자신이 고민을 보내고 답장을 받아본 사람들도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읽고 답해준 경험이 이번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응답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진 것.

온기우편함에 도착하는 편지 가운데 약 70%는 20~30대의 고민이다. 온기 측은 10년 전에는 '노력해도 현실의 벽이 높아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 '실패 자체가 두렵다'와 같은 무기력에 대한 고민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삼청동에 설치된 온기우편함
삼청동에 설치된 온기우편함 ⓒ 사단법인온기

한 통의 편지는 개인의 이야기지만, 수많은 편지가 쌓이면 지금 사람들이 무엇을 힘들어하는지도 기록으로 남는다. 온기는 축적된 고민을 연구하고 필요한 경우 외부 복지 인프라와 연결하며 활동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낯선 사람의 어려움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시간을 내어 응답했던 시민들의 모습은 오래전 자료에서도 발견된다. 1976년에는 전화기 곁을 지킨 시민들이 있었다. 자원봉사 아카이브에 남아 있는 그들의 이야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

1976년, 국내 최초 전화상담기관으로 알려진 생명의전화가 문을 열었다. 수화기 건너편 고민에 귀 기울인 이들은 '자원상담원'이었다. 가정주부와 회사원, 공무원, 간호사, 의사 등 서로 다른 일상을 살던 시민들이 상담 봉사에 참여했다. 두 달간 상담 교육을 받은 이들은 한 달에 두 차례, 한 번에 다섯 시간씩 전화기 곁을 지켰다.

자원봉사 아카이브가 소장한 '97-제1차 전문교육교재 상담과 자원봉사활동(1997)에는 당시 생명의전화 상담부장 하상훈이 쓴 '전화상담의 실제'가 수록되어 있다. 전화상담의 특징과 한계, 상담원의 자질, 역할과 목적, 상담 과정과 기법을 다룬 자료다. 요즘과 달리 핸드폰이나 인터넷이 없던 시절, 생명의전화가 24시간 운영된 이유도 이 글에 담겨 있다.

"사람들은 고통받는 시간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으므로 언제나 이용이 가능한 전화상담이 필요하다."

어려움은 언제든 닥칠 수 있으니, 도움을 청하는 통로도 늘 열려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개통 후 한 달간 걸려 온 전화만 4천 통 이상. 전화를 건 사람은 20대가 가장 많았고, 10대와 30대가 뒤를 이었다. 상담 주제는 '남녀관계'가 주를 이뤘으며, 삶의 방향과 의미를 묻는 '인생문제'도 적지 않았다.

낯선 사람의 고통에 응답하려는 실천은 일상의 고민을 넘어 재난 현장으로 이어졌다. 2003년 발생한 대구지하철화재참사는 343명의 사상자를 낳은 사회적 재난이었다. 유가족들은 열악한 사고 현장에서 갑작스러운 상실과 불확실성을 견뎌야 했다.

대구 지역의 전문 상담단체인 카운피아닷컴, 대구가족치료센터 등은 분향소가 설치된 대구시민회관(현 대구콘서트하우스)에 상담 부스를 마련했다. 현장에서 상담 봉사는 고민을 들은 뒤 적합한 전문기관을 안내하거나, 상담원들이 유가족 대기실을 직접 찾아가 상담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현장의 심리상담 자원봉사단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현장의 심리상담 자원봉사단 ⓒ 자원봉사 아카이브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화재사고 백서(2005)에 따르면, 당시 심리상담을 받은 사람은 1만 3천여 명에 이르렀다. 이 수치는 재난 현장에서 심리적인 고통을 살피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지 보여준다. 피해자와 유가족의 곁을 지키는 상담 봉사는 차츰 재난 대응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아 갔다.

1976년 전화기 곁을 지킨 자원상담원, 2003년 재난 현장을 찾은 심리상담 자원봉사단, 그리고 오늘날 익명의 편지에 답하는 온기우체부. 방식은 달라졌지만, 시민들이 이어 온 행동은 다르지 않다. 바로 '당신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이다.
요즘 자원봉사, 더 알고 싶다면?
'요즘 자원봉사'에서 소개한 이야기는 'THE POSSIBLE WORLD : 행동하는 사람들의 작전 기록' 전시로 이어진다. 현장 기록과 체험형 콘텐츠를 통해 지금 자원봉사가 어디에서,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있는지 직접 만나볼 수 있다.

THE POSSIBLE WORLD : 행동하는 사람들의 작전 기록
일시 : 2026. 9. 21.(월) 12:00–18:00 / 9. 22.(화) 9:00–18:00
장소 : 코엑스 Hall A, 제3회 대한민국 사회적가치 페스타 내 사회 ZONE
관람료 : 무료
관람 신청 : '제3회 대한민국 사회적가치 페스타' 사전등록
주최 : (재)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덧붙이는 글 | - 글 박서정(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최원정('THE POSSIBLE WORLD : 행동하는 사람들의 작전 기록' 전시 기획자)
- 이 기사는 자원봉사 아카이브에도 실립니다.

<참고자료>
대구광역시,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화재사고백서』, 2005.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동행, 기억과 나눔의 길: 4·16 세월호 참사 자원봉사활동 기록』, 2015.
「당신의 고민은?… 내 1일 개통 앞둔 ‘생명의전화’」, 『동아일보』, 1976. 8. 17.
「‘생명의전화’ 개통 한 달… 남녀문제 호소 가장 많아」, 『동아일보』, 1976. 10. 4.
하상훈, 「전화상담의 실제」, 『’97-제1차 전문교육교재 상담과 자원봉사활동』, 1997.
온기우편함, 「온기우편함 공식 웹사이트」, 2026. 7. 28. 접속.
생명의전화, 「생명의전화 공식 웹사이트」, 2026. 7. 28. 접속.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문화연구소, 「재난의 기억, 2003년 지하철참사와 태풍매미 연구」, 2026. 7. 28. 접속.


#자원봉사#자원봉사자#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자원봉사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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