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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도를 넘기며 무더위가 이어지던 지난 10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 신성아파트 노인정. 텅 빈 경로당 테이블에서 신설자(82)씨가 홀로 영어책을 펼쳐놓고 연필로 꾹꾹 눌러 쓰고 있었다.

 문해교육기관에서 배우고 있는 신설자 씨가 공부하고 있는 영어책 교재를 들고 보이고 있다.
▲문해교육기관에서 배우고 있는 신설자 씨가 공부하고 있는 영어책 교재를 들고 보이고 있다. ⓒ 용인시민신문

지난해 3월 성인문해교육 기관 중 하나인 용인시민학교 중학교 과정에 입학한 이후 올해로 2년째. 여든이 넘은 나이에 다시 배움을 시작한 것이다.

용인시민학교는 경제적·사회적 여건 등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성인들을 위해 운영하는 성인문해교육(학력인정) 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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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길에서 마주친 영어 간판 때문이었다. "예전엔 간판에 영어가 없었는데 요즘은 한글 밑에 영어가 붙어 있어 저게 뭐 하는 곳인지 몰라 답답했다"는 게 신씨의 말이다.

노인복지관 생활지원사의 권유로 용인경전철 명지대역 옆 용인시민학교를 찾아가 공부를 시작했다. 영어·국어·수학·사회·과학·한문에 창의적 체험활동까지 여섯 과목을 가르친다는 말에 3년을 다녀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입학이 쉽지만은 않았다. 중학과정을 배우려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증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니던 학교는 폐교돼 행정복지센터를 찾아가 겨우 인근 학교에 남은 졸업 기록을 겨우 찾아냈다.

그렇게 받아 든 졸업장으로 중학교 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학생은 단 10명, 신씨는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야간반에서 공부한다. 낮에는 병원 진료와 볼일을 봐야 하기 때문에 저녁에만 학교로 향한다.

신씨의 고향은 경기도 가평의 한 산골 마을이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에 보내달라고 어머니를 졸랐지만 "학교 보낼 돈이 어디에 있느먀, 딸은 시집가면 남의 사람이니 그만"이라는 말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도 고달프긴 마찬가지였단다.

"오빠의 자녀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며 자랐어요. 결혼해서 간 직은 우리 집보다 더 가난한 형편이었지요. 그래서 남의 집 품을 팔며 쌀을 사 먹었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신설자 씨는 야간반이어서 낮에는 노인정에 나와 배운 걸 복습하거나 과제를 한다.
▲신설자 씨는 야간반이어서 낮에는 노인정에 나와 배운 걸 복습하거나 과제를 한다. ⓒ 용인시민신문

자녀들을 키워 대학까지 보냈지만, 자녀와 함께 살지 못하게 되면서 지금은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신 씨에게 배움은 커다란 도전이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보청기를 껴봤지만 염증이 생겨 보청기를 빼고 지내고 있다. 인터뷰 과정에서도 목소리를 높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신설자 씨는 "귀도 좋지 않고, 눈도 침침하지요. 다리가 불편해 보행 보조기를 밀고 다니는데, 혼자 앉아 있으면 처량해 보일까 창피하다"고도 했다.

그래도 공부는 놓지 않는다. 연필도 손수 깎아 쓰고, 배운 단어를 빼곡히 눌러 쓴 공책은 새까맣다. 60~70대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소위 '왕언니' 대접을 받는다. 2년째 접어들어 영어 문장이 나오고 더 쓰고 말해야 할 게 늘면서 부쩍 힘에 부친다고 했다.

"작년엔 알파벳 익히는 재미가 컸는데, 올해는 문장이 나오면서 외워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문장도 잘 들어오지 않아요."

그러면서도 쓰고 또 쓴다. 신 씨는 내년까지 마치면 중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중학교 과정이 끝나면 더 공부를 하고 싶은지 물었다.

"글쎄요, 용인엔 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곳도 없고 그 어려운 걸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노인대학을 다니면 어떻겠느냐는 생활지원사 권유도 있지만 아직 정하지 못했다. "알아야 재미가 있지, 몰라서 답답해서 배우는 것"이라는 신설자는 혼자 있다고 노인정 냉방기도 틀지 않은 채 영어 단어를 우리말로 써내려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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