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안해양경찰서가 낚시어선 출항 전 승객들에게 구명조끼 착용 등 안전 수칙을 당부하고 있다. 태안해경은 낚시어선 야간 영업 허용과 관련해 국가안보와 국민 안전을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 태안해양경찰서 제공
전국적인 해상 낚시 명소로 꼽히는 태안 앞바다를 둘러싸고 '낚시어선 야간 영업 허용' 논쟁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낚시어선업계는 최근 낚시어선업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오징어·고등어·삼치·갈치 등 회유성 어종을 대상으로 한 야간 낚시를 허용해야 한다며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일부 어업인들은 기후변화와 수온 상승, 수산자원 감소 등으로 조업 여건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낚시객을 태운 선박까지 야간에 조업 해역으로 나갈 경우 기존 어업인의 조업권과 어장 이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태안해양경찰서는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을 이유로 충분한 안전장치 없는 야간 영업 확대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태도다.
결국 태안의 야간 낚시 논쟁은 단순히 '낚시어선업계의 영업규제 완화' 문제가 아니라 어민의 생존권과 낚시어선업의 생존권, 지역경제, 해양 안전과 국가 안보가 충돌하는 복합적인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낚시어선업계 "다른 지역은 하는데 왜 충남만 안 되나"
낚시어선업계가 가장 강하게 제기하는 문제는 '지역 간 규제 형평성'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전북·전남·경남·경북 등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야간 낚시를 하는데 충남만 수년째 규제에 막혀 낚시어선업계가 경쟁력을 잃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야간 낚시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영업 형태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과거 낚시어선들이 해오던 영업을 규제로 제한해 놓은 만큼 이를 다시 허용해 달라는 것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낚시어선업계 관계자는 "바다낚시는 포인트를 찾아 하는 낚시와 오징어·고등어·삼치·갈치처럼 이동하는 회유성 어종을 대상으로 하는 낚시로 나뉜다"라며 "충남은 야간 낚시가 제한되다 보니 주간 포인트 낚시 위주로 영업할 수밖에 없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 오징어를 잡기 위해 전국에서 어선들이 태안 앞바다로 몰려와 조업하고 있는데 정작 태안의 낚시어선은 오징어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상황이 과연 정상적인지 되묻고 싶다"라며 "다른 지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규제를 풀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야간낚시가 허용되면 직장인과 숙박 관광객 등 새로운 낚시 수요를 태안으로 유입할 수 있고, 낚시어선뿐 아니라 음식점·숙박업소·수산물 판매점 등 지역 경제 전반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어민들 "바다는 낚시어선만의 공간이 아니다"
반대 또는 신중론을 제기하는 쪽에서는 '바다의 공동 이용'이라는 원칙을 강조한다.
최근 기후변화로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고 수산자원 감소가 현실화하면서 어민들의 조업환경도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어법과 어로장비가 첨단화하면서 수산자원에 대한 어획 압력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관광 목적의 낚시객을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 조업시간과 활동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과연 수산자원 보호와 어민들의 생존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어업인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알고 살아가는 어민들에게 어장은 생존 그 자체"라며 "낚시어선업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어업인들의 조업권과 수산자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어민과 낚시어선업계가 서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바다를 함께 사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태안해경 "야간 낚시, 단순한 영업시간 연장 아니다"
태안해양경찰서는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태안은 서해안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밀입국 차단 등 해상 경계가 중요한 지역이다. 야간에 운항하는 선박이 크게 늘어날 경우 해상 감시 체계와 대응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 해경의 판단이다.
또 야간에는 시야가 제한되기 때문에 충돌이나 좌초 등 사고 위험도 높아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 6월 태안 앞바다에서는 승객 18명이 탑승한 7.93t급 낚시어선이 모래톱에 좌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경은 경비함정과 구조정 등을 투입해 승선원 전원을 구조했다. 같은 날 새벽에는 태안 연안에서 낚시객이 물때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고립되는 사고도 발생했다.
태안 해역에는 섬과 암초, 간출암뿐 아니라 양식장과 각종 어구가 분포해 있어 야간 항해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대형 선박이 통항하는 해역과 낚시어선의 활동 구역이 겹칠 경우 충돌사고 위험도 있다.
해경으로선 '야간 낚시를 할 수 있느냐'보다 야간 낚시를 허용했을 때 사고와 범죄를 어떻게 예방하고 대응할 것인가를 우선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용 또는 금지보다 '공존의 기준' 만들어야"
이번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야간 낚시를 무조건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이분법적 접근을 넘어서는 것이다.
낚시어선업계가 주장하는 것처럼 다른 지역과의 규제 형평성과 지역경제 활성화도 중요한 문제다. 특히 수산자원 변화와 관광 소비 형태가 달라지는 상황에서 낚시어선업이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반면 어민들이 우려하는 조업권 침해와 수산자원 고갈 문제, 해경이 지적하는 안전과 국가안보 문제 역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따라서 전문가와 업계에서는 전면 허용에 앞서 특정 어종, 특정 해역, 특정 계절과 시간대에 한정한 시범운영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또 야간 출항 선박에 대한 사전 안전 점검과 위치 발신 장치 관리, 승선원 관리, 구명조끼 착용, 음주 운항과 과승 단속 등을 강화하고 어민들의 조업 구역과 낚시어선의 영업 구역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의 목소리를 제도 설계 과정에 직접 반영하는 일이다.

▲태안해경에 의해 나포되어 충남 태안군 근흥면 태안해경 전용부두로 압송되고 있는 중국 밀입국 어선. ⓒ 태안해영경찰서 제공
어민과 낚시어선업계, 해경과 군, 지자체, 수산 관련 기관 등이 함께 협의체를 구성해 실제 조업환경과 사고 위험지역, 주요 어종의 이동 경로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뒤 서로의 활동을 침해하지 않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태안의 바다는 특정 업종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어민에게는 삶의 터전이고, 낚시어선업자에게는 생업의 현장이며, 관광객에게는 휴식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관광자원이다.
따라서 야간 낚시를 둘러싼 논쟁 역시 '누가 더 많이 가져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사용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낚시어선업계도 안전과 안보에 대한 우려를 외면해서는 안 되며, 어민들 역시 낚시어선업계의 어려움을 단순히 영업 확대 요구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결국 해법은 서로의 권리를 인정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을 만드는 데 있다.
태안의 밤바다를 열 것인지, 닫아둘 것인지를 결정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민과 낚시어선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존의 바다'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태안신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