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동료 의원들과 인사하던 중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고 있다.
ⓒ 남소연
2019년 2월,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지만원씨를 국회로 불러들여 '북한군 개입설'을 펼칠 판을 깔아준 소속 국회의원들을 윤리위원회 심판대에 올렸다. 문제의 공청회에 아예 참석하지 않았던 공동주최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징계 수위가 형편없이 낮아 '솜방망이'라는 비판을 받았을지언정, 적어도 징계 사유가 아니라며 외면하지는 않았다.
2026년 8월, 이진숙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당 원내지도부의 만류에도 5·18 관련 포럼을 강행했다. 그 자리에서는 5·18 민주화운동을 '소요 사태'로 부르고 호남을 고립·분열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나왔다. 이 의원 본인도 '5·18 성역화'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학술행사"라며 징계를 검토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국민의힘은 자유한국당보다도 못한 정당이 됐다. '극우화'된 아스팔트 장외투쟁에 집착하다가 주요 선거에서 연전연패했던 그 시절보다도 퇴행했다.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을 거쳐 국민의힘이 됐다. 그동안 당 지도부는 여러 차례 광주를 찾아 고개를 숙였고, 5·18 정신 계승을 공언했다. 그런데 2026년 국민의힘은 다시 2019년보다 뒤로 물러서는 모양새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준석 대표 시절 정리했던 '최소한'의 선마저 무너진 셈이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만큼은 인정하고 존중하고 가겠다던 다짐을 진흙탕에 처박았다.
징계를 요구하는 책임당원들의 제소장까지 윤리위에 접수됐지만 달라진 건 없다. 중앙윤리위원회가 20일에도 회의를 열어 '비당권파' 국회의원의 징계 문제를 논의하는 동안 이진숙 의원 문제는 여전히 안 보이는 척, 안 들리는 척 애써 외면하고 있다. 장동혁 대표 체제 강화를 위한 정치적 발악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학술행사'라서 괜찮다"는 눈 가리고 아웅

▲긴급 기자회견 연 이진숙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5·18 민주화운동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논란은 시발점은 지난 13일이었다. 이진숙 의원은 국회도서관에서 새역사국민운동과 공동으로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국회 공개포럼'을 열었다(관련 기사 :
국민의힘도 말렸는데... 주먹싸움 낳은 이진숙 '5·18 포럼' https://omn.kr/2jemj). 정점식 원내대표가 사전에 취소를 요청했다. 최은석 원내수석대변인은 다음 날(14일) 이를 확인하며 정 원내대표가 "상당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원내지도부의 만류에도 이 의원은 행사를 강행했다.
함께 행사를 주최한 새역사국민운동은 강령에서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을 '기획된 학살'로 규정하는 데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전두환씨의 '공적'을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단체이다. 이날 대표적인 '뉴라이트' 계열 인사인 이영훈 공동대표는 5·18 민주화운동을 "광주에서 있었던 소요 사태"라고 표현했다.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의장은 호남 문제를 해결하려면 호남을 "대외적으로 고립시키고 내부적으로는 분열시켜야 된다"라는 취지의 발언까지 했다.
이진숙 의원 역시 논란과 거리를 두지 않았다. 행사에서 5·18이 어느 정도 '성역화'돼 있었다는 취지로 말했고, 이튿날 기자회견에서도 "토론 없는 5·18 성역 강요는 반민주"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기자들의 연이은 지적에 도리어 성을 낼 뿐이었다.
그런데 원내지도부가 '부적절하다'고 평가했던 행사가 며칠 뒤 갑자기 당 지도부에 의해 '학술행사'로 인정받았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지난 17일 "학술행사"였던 점을 강조하며 "현재로선 징계를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라고 선을 그었다. 같은 날 책임당원 3731명이 이 의원에 대한 징계를 촉구하는 제소장을 중앙윤리위에 제출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국민의힘 중앙윤리위는 18일 조경태·권영진·서범수·진종오 의원을 차례로 불러 소명을 들었다. 그러나 이진숙 의원의 행위는 심의 대상조차 되지 않고 있다.
자유한국당 수준도 안 되는 국민의힘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법정가는 지만원'5.18 북한군 개입'을 주장하는 극우논객 지만원씨가 지난 2019년 5월 16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명예훼손 사건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권우성
7년 전 일을 복기해보자. 2019년 2월 8일 국회에서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가 열렸다.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 의원이 공동주최했고 지만원씨가 연단에 섰다(관련 기사 :
지만원 "전두환은 영웅, 5.18은 북한군 주도 게릴라전" https://omn.kr/1h906). 이종명 의원은 5·18이 '폭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는 취지로 주장했고, 김순례 의원은 5·18 유공자를 "괴물 집단"이라고 지칭했다.
파문이 커지자 당시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사건 발생 나흘 뒤 세 의원에 대한 징계를 논의하도록 중앙윤리위원회를 소집했다. 자신의 관리·감독 책임까지 윤리위에서 판단해달라고 요청했다. '비대위' 체제이기는 했지만, 당 지도부가 직접 이 문제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나선 것이다.
윤리위는 13일과 14일 연이어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이종명 의원에게 최고 수위인 '제명'을 의결했다. 김진태·김순례 의원은 당시 전당대회 출마자에 대한 징계를 유예하도록 한 당규 때문에 처분을 전당대회 이후로 미뤘다. 윤리위는 이들의 행위가 "5·18 정신과 한국당이 추구하는 보수 가치에 반한다"라고 판단했다.
특히나 김진태 의원은 공청회 공동주최자였지만 영상으로 축전을 보냈을 뿐 직접 참석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직접 발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 대상에서 빼지 않았다. 윤리위 심판대에는 올렸다. 전당대회가 끝난 뒤인 4월 19일 자유한국당 중앙윤리위는 김순례 의원에게 당원권 정지 3개월, 김진태 의원에게 경고 처분을 내렸다.
김진태 의원의 '경고'와 김순례 의원의 '당원권 정지 3개월'은 다른 정당들로부터 곧바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김순례 의원은 징계 기간이 끝난 뒤 최고위원직에도 복귀했다. 이종명 의원 역시 윤리위와 비대위의 제명 의결에도 의원총회 의결이 미뤄져 상당 기간 당적을 유지했다. 당시 자유한국당의 대처를 높게 평가할 이유는 없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의 국민의힘이 그때의 자유한국당 수준조차 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2023년 김재원 당시 최고위원이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공약을 폄하한 발언 등을 이유로 당원권 정지 1년의 중징계를 받은 것과 비교해도 지금의 국민의힘이 어떤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고 있는지 잘 보인다. 당시 국민의힘 윤리위는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이어가는 것은 국민의힘 당의 정당 정책"이라고 징계 이유까지 설명했다.
"김순례와 다르다"는 김민수… 그럼 김진태는?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광주 간담회장 떠나는 김진태 의원극우논객 지만원씨를 국회에 초청해 ‘5.18 북한군 개입설’ 등 5.18민주화운동을 왜곡, 폄훼, 모욕하는 강연을 하게 한 김진태 의원이 전당대회를 앞둔 지난 2019년 2월 12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자유한국당 전남도당, 광주시당을 방문해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장 밖에서 5.18 관련단체 회원들의 항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발언을 마친 김진태 의원이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행사장을 떠나고 있다. ⓒ 권우성
당내 여론 지형의 수준도 심각하다. 2019년에도 '다양한 역사 해석' 취지로 옹호하는 나경원 당시 원내대표 같은 사람이 있었지만, 비판 여론도 줄을 이었다. 장제원 의원은 "이미 역사적 단죄가 내려진 5·18을 소환해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당내 비판 여론이 지도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그런데 지금의 국민의힘에서 명시적으로 이진숙 의원 징계를 요구하고 있는 건 조경태 의원뿐이다. 범위를 조금 넓히면, 언론 인터뷰에서 이 의원 징계 필요성을 언급한 최형두 의원 정도이다. 보수의 쇄신과 개혁을 부르짖던 친한동훈계는 물론이고, 소장파로 불리는 '대안과 미래'에서도 가시적인 목소리가 보이지 않는다. 조직강화특별위원회와 윤리위원회를 필두로 장동혁 체제가 '징계 정치'를 이어가자, 일종의 '침묵'하는 분위기가 조장된 셈이다.
오히려 국민의힘 지도부 일각에서는 이진숙 의원을 적극적으로 엄호하고 있다. 김민수 최고위원은 19일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에서 2019년 김순례 의원과 이진숙 의원을 비교하는 질문을 받자 "김순례 의원 같은 경우는 본인이 연설에서 마이크를 잡고 '괴물 같은'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이진숙 위원장은 토론회를 개최했다"라고 강변했다.
본인에게 유리한 사례만 취사 선택한 셈이다. 상기했듯, 2019년 김진태 의원은 문제의 공청회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윤리위 심사를 받았고 결국 경고 처분을 받았다. 반면 이진숙 의원은 당 원내대표가 사전에 행사를 취소하라고 요청했는데도 포럼을 강행했다. 직접 현장에 참석했고, 이후에도 5·18 '성역화'를 문제 삼으며 행사의 취지를 옹호했다.
김 최고위원은 같은 인터뷰에서 "역사에 대한 질문 자체를 막는 것"은 잘못이라며 "토론회를 개최하고 이것에 대해서 질문하고 논의하는 것조차 막는다면 이것은 또 다른 성벽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행사를 열고, 거기에서 당이 그동안 공식적으로 계승하겠다고 밝혀온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폄훼하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그 정치적 책임을 당이 어떻게 물을 것인지가 진짜 쟁점이어야 한다.
김 최고위원은 한발 더 나아가 이진숙 의원을 징계하지 않는다는 당의 입장 자체를 자신은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징계를 검토한다, 검토하지 않겠다는 건 사실은 어디서 나온 말인지 모르겠다"라며 윤리위가 "정말로 독립기구"라고 강조했다. 정말로 독립기구인 윤리위가 판단해야 할 문제라면, 당 수석대변인은 무슨 근거로 징계를 검토하지 않는다고 미리 선을 그었을까?
당원들의 요구를 무시하는 당원 중심 정당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국민의힘에서 제명된 한동훈 무소속 후보의 부산 북갑 보궐선거를 도왔다는 이유로 제소된 진종오 국민의힘 의원이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윤리위원회에 소명하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최준영 국민의힘 책임당원은 20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정확히 이 지점을 문제 삼았다. 박 수석대변인이 "마치 중앙윤리위원회 대변인인 것처럼" 징계를 검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며 윤리위 독립성 논리와 모순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학술토론'이라는 지도부의 규정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망언들이 오가는 망언올림픽 수준이었다"라는 게 그의 평가였다. 이진숙 의원이 반복하는 '5·18 성역화' 주장에 대해서도 "본질을 흐린다"라고 지적했다.
그가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온라인에서 모은 이진숙 의원 징계 요구 서명에는 3731명이 참여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가운데 약 83%가 국민의힘 당원이다. '당원 중심 정당'을 강조해온 국민의힘이, 정작 그 당원들의 요구에 눈과 귀를 닫고 있다.
중앙윤리위는 20일에도 바빴다. 진종오 의원이 윤리위원 기피신청 문제를 제기하며 충분한 소명을 하지 않자, 윤리위는 불과 이틀 뒤인 20일 제19차 회의를 다시 열어, 기피를 기각하고 진 의원에게 추가 소명을 요구했다. '사람이 아니라 행위와 사건을 봐야 한다'는 김민수 최고위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 의원의 행위는 두 번의 소명을 받을 만큼 꼼꼼하게 들여다봤다. 그리고 결론은 역시나 무더기 중징계였다(관련 기사:
국힘 윤리위 '무더기 중징계'... 한동훈 "징계정치" 직격 https://omn.kr/2jhsr).
김민수 최고위원의 말대로 2019년과 2026년은 분명 다르다. 대한민국 제1야당이라는 집단은 7년 전보다 못한 수준으로 후져졌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퇴행을 목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