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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혁명당 사건 무기수 출신 오병철 전 제심관 관장. 오 전 관장은 57년 만에 자신의 누명을 벗었다. 그는 존경 받는 검도인이기도 하다.
▲통일혁명당 사건 무기수 출신 오병철 전 제심관 관장. 오 전 관장은 57년 만에 자신의 누명을 벗었다. 그는 존경 받는 검도인이기도 하다. ⓒ 지유석

군부독재 시절 시국사건에 연루돼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무기수가 구순을 맞는 해 누명을 벗었다. 판결문을 읽어내려가던 주심 재판관은 그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올해 구순인 오병철씨는 1968년 통일혁명당(아래 통혁당) 사건으로 중앙정보부에 체포됐다. 그리고 사법부는 1969년 오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러다 57년이 지나서야 이 같은 혐의가 터무니없음을 인정했다.

지난 9일 만난 오씨는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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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젊은 시절 20년을 감옥에 묻었다. 감옥에서 나와 급변하는 세월을 따라잡느라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덧 구순을 맞았다. 이제 와서 진실이 밝혀지고 무죄 선고를 받고 보니 만감이 교차해 말문마저 막힌다."

통혁당 사건은 1960년대 대표적인 시국사건이다.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주범 김종태가 전후 4차례에 걸쳐 김일성과 면담하고 '통일혁명당'을 결성해 반정부·반미데모를 전개하는 등 대정부공격과 반정부적 소요를 유발시키려는 데 주력했다"고 발표했다.

사건이 불거지던 당시 오씨는 경기도 수원 비봉중학교에서 강사로 재직 중이었다. 하지만 공안정국의 찬바람은 그에게까지 미쳤다.

당국은 김종태·이문규·김질락 등을 주범으로 지목했다. 이 가운데 이문규는 오씨와 고교 동창이었고, 사건이 불거지기 전 그를 찾아왔다.

공안 당국은 이를 근거로 오씨에게 통일혁명당의 하부조직이며 이문규 쪽 '조국해방전선'의 교양책이란 혐의를 씌워 재판에 넘겼다.

수사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도 자행됐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중앙정보부는 오씨의 아내와 당시 돌이 갓 지난 딸을 영장 없이 연행해 바로 옆방에 뒀다. 그리고 심문 당하고 협박 받는 목소리를 듣게 해 부부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가했다.

그런데도 사법부는 수사 과정에서 자행된 불법엔 눈을 감았다. 1심 재판부는 1969년 1월 혐의를 모두 인정해 오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그해 9월 형을 최종 확정했다.

57년 만의 진실규명, 국가폭력 인정한 사법부

 지난 1969년 1월 22일 열렸던 통일혁명당 사건 1차 공판.
▲지난 1969년 1월 22일 열렸던 통일혁명당 사건 1차 공판. ⓒ 경향신문


그로부터 57년이 지난 2026년 7월 사법부는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제25형사부(허정룡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1968년 7월 26일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에 의해 검거된 후 구속영장이 발부·집행된 1968년 7월 28일까지 불법 구금됐다"고 적시했다.

이어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 수사관들에 의해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하고 진술강요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피고인은 조사 과정에서 수사관들의 불법구금 또는 가혹행위 등에 의해 심리적 정신적 강압상태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불법체포 구금상태에서 가혹행위, 심리적 강압 상태에서 이뤄진 진술들은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도 못 박았다.

재판부는 무죄선고 이후 "중앙정보부 수사관에 의해 피고인과 배우자, (당시) 돌 지난 딸이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1심이었지만, 검찰은 항소하지 않았고 이에 오씨는 무죄를 확정지었다. 자신의 무죄에 대해 오씨는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힘 입은 결과라고 했다. 오씨의 말이다.

"늦었지만 이만큼이라도 우리나라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민주화의 길을 다잡아오고 있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인권의식이 선진화된 데 힘 입은 결과일 것이다.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던 부장판사가 목 메어하며 공감하는 모습을 보고 뜻밖이라 생각했다. 이 모습에서 우리 사법부의 현주소를 읽은 것 같아 한편으로 뿌듯했다. 부디 다시는 저와 같은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씨는 처음엔 재심재판을 주저했다. 하지만 후배와 제자들이 적극 권유하고 나서면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화위)는 지난 2024년 4월 오 씨의 체포과정이 불법이었다고 결론지었다. 결국 오 는 재심을 결심했다.

"적극적이라기 보다 수동적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50년대와 60년대, 그리고 70년대를 살아오면서 독재·야만의 시대에 발생한 국가폭력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사법 정의에도 불신이 깊었다.

재심을 하자니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았고,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까 봐 관청 근처에 가는 것조차 피했다. 다만 우리 사회에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진화위가 꾸려졌고 1·2기를 거치며 많은 성과를 낸 데 대해 고무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시절 미수(88세)에 접어든 터여서 남은 생 송사나 시비에 되도록 말려들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던 차 주위 분들의 적극적으로 조언과 격려를 보내왔다. 여기에 이 일이 다른 분들에게 영향을 미치리라 여겨서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특히 변론을 맡아준 이명춘 변호사의 격려가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재심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60년 전 사건이라 당시 증인들이 숨졌거나 연락이 두절된 경우가 많았다. 구속 당시 수사기록도 확보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국가기록보관소에 재판기록과 교도소 수형 기록 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진화위에 의뢰해 몇 개월 동안 조사 받았고, 결과도 좋았다. 이에 대해 오 씨는 "이명춘 변호사의 수고가 남달랐을 것"이라고 공을 돌렸다.

72년 검도인생, 후진양성 꿈은 후배에게 맡기다

 통일혁명당 사건 무기수 출신 오병철 전 제심관 관장. 오 전 관장은 57년 만에 자신의 누명을 벗었다. 그는 존경 받는 검도인이기도 하다.
▲통일혁명당 사건 무기수 출신 오병철 전 제심관 관장. 오 전 관장은 57년 만에 자신의 누명을 벗었다. 그는 존경 받는 검도인이기도 하다. ⓒ 지유석

오씨는 존경받는 검도인이기도 하다.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기 전에도 검도 수련을 해왔다. 교도소 복역 중엔 교도관을 지도하기도 했다.

오씨는 1988년 6월 6.29선언 1주년 기념 양심수 대사면으로 가출옥했다. 가출옥 3년 뒤인 1991년 마포에 제심관을 열고 제자들을 가르쳐왔다.

오씨는 자신의 검도 인생을 이렇게 요약했다.

"고교 3학년 때인 1954년에 검도를 시작했으니 입문한 지도 72년이 됐다. 검도에 입문하던 시절엔 각 지역에 공립 도장 하나 정도만 있었고 일반 수련인은 거의 없었다. 특히 학생이 검도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서울대 검도부와 경기고 검도부를 차례로 창설했다.

70여 년의 검도 수련을 통해 심신의 건강은 물론, 정신수양으로 마음을 다잡으며 그간의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그나마 이 정도로 나를 지켜왔다고 본다. 그리고 그간 많은 후배들과 과정을 나누고, 일본을 비롯한 많은 검도인들과 사귀며 외롭지 않고 복되게 살아왔다고 여긴다.

확실히 검도는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아주고 분노를 삭여주며, 마음을 정화시켜 평화와 안정을 안겨준다."

 통일혁명당 사건 무기수 출신 오병철 전 제심관 관장. 오 전 관장은 57년 만에 자신의 누명을 벗었다. 그는 존경 받는 검도인이기도 하다.올해 구순을 맞았지만 손수 호구를 착용하고 제자들을 지도한다.
▲통일혁명당 사건 무기수 출신 오병철 전 제심관 관장. 오 전 관장은 57년 만에 자신의 누명을 벗었다. 그는 존경 받는 검도인이기도 하다.올해 구순을 맞았지만 손수 호구를 착용하고 제자들을 지도한다. ⓒ 지유석

현재 그가 운영하던 제심관은 지난 2021년 재개발로 철거됐다. 하지만 오씨와 제자들은 매주 주말에 모여 검도수련을 하며 명맥을 이어오는 중이다.

공교롭게도 오씨의 생일(1937년 8월 15일)은 광복절과 겹친다. 더구나 올해 생일은 구순인데다 재심 무죄여서 더욱 뜻깊었다. 이에 뿔뿔이 흩어진 제자들이 지난 9일 한데 모여 스승의 구순을 축하했다. 변론을 맡았던 이명춘 변호사도 함께 했다.

오씨는 제자들 앞에 한껏 자신을 낮췄다. 그러면서 자신은 죽도를 놓지 않겠지만, 후진양성에 대한 꿈은 후배들에게 맡기겠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품위 있는 검도도장 하나 만들어 두고두고 훌륭한 후진들을 길러냈으면 하는 마음은 간절하다. 하지만 너무 늦은 것 같다. 이젠 그 꿈을 후진들에게 맡기고 한다.

아직도 우리 세대까지 이루지 못한 남북 화해와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면서, 건강이 다하는 순간까지 감사의 마음으로 죽도와 붓을 놓지 않을 것이다."

#통일혁명당#오병철#재심#무죄#제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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