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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치원 교사인 며느리와 아이들의 문해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 로리는 책 읽는 습관이 잘 들어 있어서 다행이에요. 요즘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문해력인데, 가정에서는 아직 그 중요성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학부모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라 자주 당부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은 모양이다. 맞벌이로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고, 책보다 아이의 관심을 끄는 것이 넘쳐 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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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교육 현장에서 체감하는 바는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쓰는 능력의 차이가 아니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그 뜻을 이해하는 힘이었다. 말을 이해해야 활동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고, 이야기를 알아들어야 거기에 자기 생각을 보탤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모든 배움이 그렇다. 수학도 문제가 무엇을 묻는지 이해해야 답을 찾아갈 수 있고, 과학도 개념을 설명하는 문장을 이해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배움의 바탕에는 결국 말과 글의 의미를 헤아리는 힘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유아에게 문해력은 '책 놀이'에서 시작될까

 AI시대 왜 다시 독서와 문해력인가
▲AI시대 왜 다시 독서와 문해력인가 ⓒ 교육부

며느리와 대화를 나눈 뒤 유아기 독서교육 자료를 찾아보다 눈에 띄는 교육부 발표를 보았다. 지난 6월 25일 교육부는 전국 유치원과 어린이집 551곳을 '책 놀이' 독서교육 시범기관으로 선정했다. 유아기부터 책을 가까이하는 환경을 만들고 독서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올해 처음 추진하는 사업이다.

'책 놀이'. 그 말이 반가웠다. 내가 손자 로리에게 책을 만나게 해온 방식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독서가 사람의 언어와 생각을 키우는 힘이라고 믿어왔다. 손자가 태어나면 책을 가까이하는 아이로 자라길 바랐다.

뱃속에 있을 때는 엄마 아빠가 함께 태교했다. 주로 아빠가 동시를 읽어주었고, 태어난 뒤에는 책을 손이 닿는 곳에 두었다. 기어 다니던 아이가 책을 잡고, 넘기고, 그림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조금 자란 뒤에는 함께 도서관에 다니며 관심 보이는 책을 직접 골라보게 했다. 책은 처음부터 놀이에 가까웠다.

'AI 시대, 왜 다시 독서와 문해력인가?'라는 제목의 교육데이터 심층분석 자료를 읽어본 적이 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내놓은 <데이터로 읽는 우리 교육>제 3호에 있는 내용이다. AI가 필요한 정보를 순식간에 찾아주는 시대지만 주어진 정보를 이해하고 맥락을 짚어내며,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의심할지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깊이 읽는 힘이 필요하다.

문해력이 글자를 읽는 능력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글의 흐름을 따라 의미를 이해하고, 낯선 말을 맥락 속에서 짐작하며, 질문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다시 구성하는 힘까지 문해력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AI가 질문에 답하고 필요한 정보를 순식간에 찾아주는 시대에 오히려 읽고 이해하고 생각하는 힘을 강조한다는 사실이 흥미롭고 다행으로 여겨졌다. 그렇다면 어린아이에게 그 힘은 어떻게 자라나기 시작할까. 책과 이야기로 놀이를 해 온 로리의 경우는 이러했다.

책 한 권에서 이야기는 자꾸 옆길로 샜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책에 집중하는 로리
▲어린이 도서관에서 책에 집중하는 로리 ⓒ 신헤솔

로리와 책을 읽을 때 특별한 방법을 사용한 적은 없다. 아이가 같은 책을 또 가져오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주었다. 이미 여러 번 읽은 책인데도 아이는 전날 지나쳤던 그림을 새로 발견하곤 한다.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할머니! 이 친구는 왜 그랬을까요?"
"글쎄...로리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물음을 건네면 아이는 제 나름의 이유를 만들어냈다. 그러다 이야기는 어느새 책 밖으로 빠져나간다. 등장인물에게 책에 없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로리가 이야기 속으로 들어 가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이야기가 노래로 바뀌었다.

그럴 때 굳이 책 속으로 다시 끌어오지는 않았다. 중요하게 여긴 것은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어내는 것'보다 아이가 그 이야기 안에서 오래 머무는 일이었다. 이야기를 이해하고 확장시키는 게 재미있었다. 요즘은 책을 끝까지 이해 한 뒤에 혼자서 즉흥적으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곤 한다.

올해 유치원에서 가정 독서를 권하면서 읽은 책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3월부터 읽은 책이 1,500권을 넘었다. 숫자만 보면 많지만 중요한 것은 권수가 아니다. 그 숫자 뒤에는 1,500번의 읽기가 아니라 수없이 오고 간 질문과 대화가 쌓여 있다. 그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문해력도 '빨리'가 답일까

문해력의 중요성이 주목받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좋은 책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생겨나는 것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유아기의 문해력까지 '얼마나 빨리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면 한다.

글자를 일찍 익히고 많은 낱말을 아는 것도 배움의 한 과정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문해력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문해력은 글자 너머에 있는 뜻을 이해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한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고, 낯선 말을 만나면 앞뒤 맥락에서 뜻을 짐작해 본다. 등장인물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생각하고,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본다. 때로는 "왜?"라고 묻고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고 자기 생각을 말한다. 아이는 그런 경험을 거듭하면서 이야기를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과 연결하는 법을 배워간다.

그래서 교육부가 유아 독서교육에 '책 놀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반갑다. 문해력을 위한 별도의 공부를 하나 더 시작하기보다, 어린아이에게는 먼저 책을 즐겁게 만나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앞으로 로리는 영어도 배우고 수학도 배우고 과학도 배울 것이다. 지금까지 함께 읽은 수많은 그림책의 제목은 대부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책의 제목은 잊어도 이야기를 따라가며 궁금해하고, 묻고, 생각하고, 자기 말로 표현했던 경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

나는 로리가 남보다 먼저 읽고 쓰는 아이가 되기보다 모르는 것을 오래 궁금해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 그 뜻을 헤아리고, 자신의 생각을 자기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좋겠다.

유아기 독서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읽게 하느냐 보다, 얼마나 오래 이야기를 좋아하게 하느냐 인지도 모른다.

#문해력#독서#책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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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육아와 놀이,그리고 삶

사람과 풍경 사이에서 이야기를 찾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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