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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이주노동자는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일반 병원에 가면 건강보험 수가의 몇 배가 되는 국제수가나 일반수가를 적용받아 진료비 폭탄을 맞게 된다(관련기사: 자연분만이 1500만 원? 국제수가가 뭐길래).

내가 일하는 (사)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의원(이하 공감의원)은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미등록 이주 노동자가 진료받을 때도 건강보험 수가로 적용하여 그중 30%만 본인부담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병원에서 부담한다. 그러다 보니 몇 년째 우리 병원에서 진료받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많다.

A씨도 그런 환자 중 하나다. 올 때마다 조금씩 다른 다양한 증상을 호소하는데 근본 원인은 술이었다. 진료할 때마다 금주를 권했고, A씨도 매번 그렇게 하겠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환자가 그렇듯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사달이 났다. 얼마 전 술을 정말 많이 마신 다음 날 병원에 왔는데 손을 심하게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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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해 보니, 50미만이어야 할 간 수치가 몇백까지 올라가 있어서 당장 상급 병원으로 입원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미등록 이주 노동자이니 일반 병원으로 가면 진료비 부담이 엄청날 게 뻔했다. 그래서 공감의원에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 후원을 받아 수행하는 미등록 이주민 의료비 지원사업의 협약 의료기관 중 입원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인근에 있는 병원을 섭외할 수 있었고 환자는 그곳에서 치료받고 상태가 호전되어 퇴원했다. 진료비는 건강보험 100%를 적용받았고 '사랑의열매' 사업을 통해 전액 지원 받았다. 급성 치료를 마친 A씨는 만성적인 알코올 중독을 치료할 수 있는 기관을 연계하기 위해서 알아보는 중이다.

매년 조기 소진되는 이주민 의료비 지원사업

공감의원은 2022년 말부터 작년까지 '사랑의열매' 후원으로 경기 남부 지역에서 거주하는 미등록 이주민 대상 의료비 지원사업을 수행하였다. 이 사업을 하면서 대구, 울산, 부산, 경남, 전남 등 비슷한 사업과 활동을 하는 이주민 지원단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작년에는 각 지역을 다니면서 이들 단체와 간담회를 진행하였다.

간담회를 통해 미등록 이주민들이 국제 수가나 일반 수가를 적용받아 진료비 폭탄을 맞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산에 있는 이주와 인권연구소의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으로 "이주민 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 연구1)"를 하여 이미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하고 해결 방안까지 제시하였지만, 아무런 반향이 없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이주민에게 차별적인 국제수가 폐지를 위한 국회 토론회
이주민에게 차별적인 국제수가 폐지를 위한 국회 토론회 ⓒ 백승호

공감의원은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하기로 하였고, 간담회를 통해서 만났던 여러 이주민지원단체와 함께 2025년 11월 25일 국회에서 "의료보장에서 배제된 이주민 건강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비록 토론회에 공동주최한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고 주요 언론사도 참석하지 않았지만, 이주민 건강권 문제를 고민하고 활동하는 단체들이 모여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는 자리였다.

공감의원이 2022년 말부터 3년 동안 수행한 미등록 이주민 의료비 지원사업은 1년 예산이 총 2억이었다. 적지 않은 금액인데도 매년 조기 소진되었다. 미등록 이주민 의료비 지원이 긴요하다는 증거라고 보고, 지원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 공모를 알아보았다.

다행히 2025년 말부터 3년 동안 매년 총 6억의 예산을 지원하는 '하모니 치유 열매' 사업에 선정되어, 증액된 예산으로 사업을 수행 중이다. 예산이 증액되어 대상자를 경기 남부에서 경기도 전역으로 확대했다. 미등록 이주민뿐만 아니라 입국 후 건강보험 공백기에 있거나, 기타(G-1) 체류자격 소지자 등 건강보험 가입이 배제된 이주민도 지원 대상으로 포함했다. 입원비나 수술비뿐만 아니라 고위험 임신, 암 등의 중증질환의 경우 항암치료와 같은 외래진료비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예산이 대폭 증가하였지만, 지원 요청이 많아 이 역시 조기 소진이 예상된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서 의료비 폭탄을 맞는 이주민들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이주민에게 차별적인 국제수가 폐지해야

작년 국회 토론회를 준비했던 이주민 지원단체들은 올해 초 "차별없는 이주민 건강권 연대"를 결성하고, 지난 4월 23일 국회에서 "이주민에게 차별적인 국제수가 폐지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서는 국내 장기 거주 미등록 이주민에게 국제수가가 적용되는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이번에는 주요 언론사도 취재와 보도를 하는 등 관심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토론회 이후, 확실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국회의원과 대통령 비서실, 보건복지부 면담도 진행해 진료 과정에서 이주민이 받아야 하는 차별에 대해서 전달하였다.

당장의 대책 마련이나 법안 개정이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정치인들은 근거 없는 이주민 혐오 정서나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면담에 함께한 국회의원들은 법안 개정 검토와 발의에 대해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해 주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은 '의료 해외진출 및 외국인환자 유치 지원에 관한 법률(의료해외진출법)'이 이주민 건강권 문제와 관련이 있음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수년간 제기했던 문제들을 정부 부처에서 최근에서야 인지했다는 것이 어이없기는 했으나 "차별없는 이주민 건강권 연대"에서 제기한 여러 문제점에 대해서 이제라도 내부 검토하겠다고 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공감의원이 미등록 이주민 의료비 지원 사업을 시작하면서 미등록 이주민들이 국제수가 적용으로 의료비 폭탄을 맞아 사지로 내몰리고, 건강보험에 가입한 이주민도 정주민과의 차별로 큰 피해를 당하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불합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하여 여러 활동을 모색해 왔는데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다행이다. 이주민도 차별 없이 의료보장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진정 모든 구성원이 함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사회임을 유념해야 한다.

1) 2020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 보고서 '이주민 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 연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8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김정수 님은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이사장입니다.


#국제수가#미등록이주노동자#차별#건강권#건강보험
댓글1
김정수 (kilsh) 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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