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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을 맞은 고등학생 딸이 생뚱맞게 참치회가 먹고 싶단다. 평소같으면 비싸서 안된다고 바로 무시했겠지만 생일이기도 했고, 딸의 생일을 핑계로 참치회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이고 싶은 마음에 못 이기는 척 수락했다.

참치회를 주문하고, 아무래도 양이 부족할 게 뻔해서 다른 음식들 몇 가지를 준비했다. 이제 참치회만 오면 되는데 배달 도착 예상 시간에 초인종 대신 핸드폰이 울린다.

"세대 호출이 안돼서 그러는데 어떡해야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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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들어도 젊은 여성 배달기사님의 목소리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우선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끊었다. 그런데 또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이번에는 비밀번호가 틀리단다.

"0000#이요"

혹시나 해서 정확한 발음으로 비밀번호를 몇 번 불러줬지만 계속 틀리다며 '비밀번호가 틀립니다'하는 소리를 들려주기까지 한다. 이쯤되면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

"909동으로 오신 거 맞으시죠?"

나의 질문에도 '그럼요!'라고 몇 번이고 호언장담하는 기사님. 결국 현관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급하게 슬리퍼를 꿰차고 뛰어내려갔는데 공동 현관 앞에는 아무도 없다. 이리저리 둘러보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저 지금 집 앞으로 나왔는데 아무도 안 계신데요? 다른 데 계신 거 아니세요?"

그때 들려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

"아! OO마을 9단지 아니에요?"

OO마을은 자동차를 타고도 10분 이상 가야 하는 아예 다른 동네다. 도대체 어쩌다 그렇게 착각을 했는지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못 할 일이다.

초보 배달 기사님 배달 일을 막 시작한 여성 배달기사님
▲초보 배달 기사님배달 일을 막 시작한 여성 배달기사님 ⓒ Chat GPT 생성

아예 엉뚱한 동네로 배달 가고 있던 참치회

빈손으로 터덜터덜 올라오는 나를 보고 남편은 '그럴 줄 알았어'라며 기막혀 했다. 이미 다른 음식을 차려놓은 터라 그냥 먼저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계속 '참치회는 녹으면 비린데......'라며 투덜거렸다.

15분 후 쯤 드디어 참치회가 도착했다. 노크 소리에 바로 문을 열었더니 음식은 문 앞에 놓여있고 후다닥 계단을 내려가며 '죄송해요'라는 목소리만 날라왔다. 그래도 사과는 얼굴 보면서 해야 하지 않나...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역시나 참치회는 다 녹아 있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시원한 참치회 맛을 기대한 남편의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시 냉동실에 얼렸다가 먹으면 되지 않냐며 남편을 살살 달랬다. 물론 평소라면 나 역시 얼마든지 짜증이 났을 일이다. 옆 동도 아니고 아예 다른 아파트 단지라니!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역대급 실수라고 봐도 된다. 그런데 분명히 나보다 어릴, 여자 기사님의 당황하고 난처한 목소리가 잊히질 않았다.

최근 나 역시 알바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어떤 일이든 상관없으니 돈만 벌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중에서 아예 제쳐 놓은 일이 있으니 배달 알바다. 지독한 몸치인지라 오토바이는커녕 자전거도 못타고, 타고난 길치라 10년 넘게 살고 있는 이 도시에서도 꼭 네비를 켜고 운전해야만 한다. 이런 나에게 배달은 감히 넘볼 수도 없는 어려운 일이다.

어디 그것 뿐일까. 한 가지 일만 하다가 나이 50이 되어서 경력단절이 된 터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알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것도 무섭고,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불길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보면 한 발짝도 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세상에 나가야만 하기에 나와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이 일에 뛰어든 여자 기사님의 용기가 기특하고 부럽기만 했다.

물론 배달 실수를 한 것은 맞다. 얼굴을 보고 사과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응원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그런 시행착오를 견뎌나가면서 다들 프로가 되는 거니까. 그러기 위해선 어쨌든 일을 계속 해봐야만 한다. 차차 실수도 줄어들고, 혹시 또 실수를 하더라도 얼굴보고 사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길 때까지 부디 세상이 그 기사님에게 조금만 관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라. 누구나 자신만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으니까'라는 말이 있다지. 누군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누군가 큰 실수를 했을 때 그들도 자신만의 사연을 간직하고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상상해보길 바란다.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더 친절해질 필요가 있다.

#주부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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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아 (jiasoo) 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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