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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8.18 17:13최종 업데이트 26.08.18 17:13

뜨거운 여름의 길목에서 읽은 시원한 복수극

KBS PD 최윤석 장편소설 <파우사>를 읽고

* 주의 : 이 글에는 소설 <파우사>의 줄거리와 결말 부분이 노출돼 있습니다.

이 책은 KBS 드라마 작가인 최윤석 PD(브런치 필명 : 초이스)의 장편소설이다. 벌써 장편소설 <달의 아이>와 단편소설 <셜록의 아류>, 에세이 <당신이 있어 참 좋다>를 출간한 작가다. 그동안 최윤석 작가가 출간한 책 세 권을 모두 읽었고, 특히 장편소설 <달의 아이>는 재난 판타지 소설로 감명 깊게 읽었기에 이번 책도 재미있을 거로 생각했다.

책을 읽기 전에 늘 책 표지와 차례를 먼저 확인하는데 차례를 보며 축구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차례는 '전반전, 선제골, 후반전, 동점골, 역전골, 로스타임, 작가 후기'로 간단하게 쓰여 있었다. 그런데 책 표지에는 축구 관련 그림이 아닌 발레리나 인형이 정중앙에서 춤추는 스노볼이 그려져 있어서 내용을 짐작할 수 없었다. 표지 바탕도 검은색이고 제목이 빨간색이라 뭔가 으스스한 기운이 느껴지고 내용이 궁금해서 빨리 읽어보고 싶어졌다.

책 표지 발레리나 인형이 정중앙에서 춤추는 스노볼이 그려져 있고, 아래에 핏자국이 선명하며 검정 바탕에 빨간 글씨 제목이 으스스하게 만든다.
책 표지발레리나 인형이 정중앙에서 춤추는 스노볼이 그려져 있고, 아래에 핏자국이 선명하며 검정 바탕에 빨간 글씨 제목이 으스스하게 만든다. ⓒ 팩토리나인

이번 책 <파우사>를 받고 책 제목이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책의 앞부분에 주인공인 명관과 아들 준우가 찐 팬인 강민의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언급되어 알게 되었다. 명관도 지금은 보험조사관이지만, 고교 시절에 강민과 같은 그라운드에서 뛴 축구 선수였다.

"아빠,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저건 '파우사(PAUSA)라는 거야."
"파우사?"
"응, 파우사. 스페인어로 멈춘다는 뜻인데, 바로 패스하지 않고 기다리면서 상대가 더 끌려오게 만드는 전술이야. 그럼 수비라인이 조금씩 벌어지거든. 그 틈으로 훨씬 위험한 패스를 넣는 거지. (13쪽)

작은 사건이 큰 인연으로 이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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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든 소설이든 늘 작은 일이 인연으로 이어진다. 소설에서도 그렇다. 강민의 찐 팬이었던 명관이 아들과 축구 경기를 관람하던 중 강민이 화풀이로 찬 축구공이 아들 준우 얼굴에 맞아 코를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인기 스포츠 스타였던 강민은 여론을 의식해 사과의 의미로 집으로 명관과 아들에게 식사 초대를 하게 되고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강민은 소소한 일이 생길 때마다 명관에게 연락하게 되었고 명관은 깨끗하게 처리해 준다. 명관은 그동안 먹고살기 위해 수십 개의 일을 하였다. 카센터, 공장, 편의점, 카페, 새벽 택배, 악기 수리점, 메밀묵 장수 등 다양한 일을 한 경험으로 강민이 부탁한 일을 깔끔하게 처리해 준다.

중요한 것은 강민은 축구 경기에 명관이 관람석에서 응원해 주면 꼭 골을 넣게 된다는 점이다. 즉 명관이 강민에게는 승리의 요정처럼 느껴졌다. 강민은 점점 명관에게 의지하게 되고 결국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다. 명관도 기꺼이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강민 곁으로 간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들의 수술비와 지금보다 세 배의 급여를 약속받았기에 고생 끝 행복 시작일 줄 알았다. 소설은 1장 전반전에서 이렇게 평화롭게 흘러간다. 아픈 아들을 돌보며 이혼까지 하고 어렵게 살던 명관이기에 잘 되길 응원했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런가. 더군다나 소설이기에 반전이 찾아올 거라고 짐작하며 읽는다. 드라마 PD가 쓴 책이라서 책을 읽을수록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전, 실시간 축구 경기를 보는 듯한 쫄깃한 전개 덕분에 몰입도가 높아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 책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사람 일은 누구도 모른다

2장에 들어가며 이야기는 속도를 낸다. 영원히 좋은 관계가 이어질 것 같았던 강민과 명관은 우연한 사건으로 서로 등을 돌리게 되고 원수가 된다. FC 서울과 수원 삼성의 경기 중에 돌발 사건이 일어난다. 강민이 속한 FC 서울의 우승을 막으려던 괴한이 운동장에 들어와 강민을 찌르려는 순간 명관이 막아서며 강민을 구하고 대신 다치면서 명관은 영웅이 된다. 요즘 유튜브 등 미디어를 통해 흥밋거리가 되는 사건은 빠르게 퍼져나간다.

방송 출연이 쇄도하고 책 출판 요청에 광고 촬영까지 명관이 잘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신은 명관 편이 아니었다. 모두가 출연하고 싶었던 유퀴즈 녹화에 함께 출연하기로 했던 강민이 배신하고 나오지 않았다. 결국 명관 혼자의 촬영이 잘되지 않아서 녹화 취소라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고, 이 소식이 언론에 전해지며 명관이 다시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강민이 돌아선 것이다. 사람의 관계도 한순간에 달라짐을 느낀다.

이게 다 최강민 때문이다!
명관은 복수를 결심했다. (152쪽)

이 말이 가슴을 후벼 팠다. '약자인 명관이 강자인 강민을 상대로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어떻게 복수할 것인가?'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책은 후반전으로 넘어간다. 아들 준우가 받기로 했던 수술 예약이 취소되고 1년 징역이라는 형이 확정되며 명관은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명관과 강민의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돈 앞에서는 장사 없다'란 말처럼 믿었던 친구마저 돈 때문에 강민 편에 서게 되고, 배신하는 이야기에서는 소설이지만 마음이 아팠다.

다시 시작된 복수,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부모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아들 준우가 심장 수술 후에 하늘나라로 떠나고, 명관도 교도소에서 출소하며 후반전 복수가 시작된다. 민사소송으로 전 재산을 잃었고, 아들마저 떠났기에 명관은 무서운 것이 없었다. 이번 싸움은 누가 보아도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었다.

누군가 그랬다. 마음이라는 곳에 '의심'이라는 씨앗을 한 번 심어놓으면, 그것은 뿌리를 내리고 끝내 마음 전체를 휘감아버린다고. 강민의 아내 소미에게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의심이 생기게 되고, 별거하는 상황에서 돈마저 끊기며 마음이 명관 쪽으로 기울어진다. 어떤 복수가 그려질까. 명관이 수미에게 한 말이 마음에 남았다.

"우리 복수라는 거창한 말, 하지 말아요. 그냥 받은 만큼 돌려주자고요. 누군가를 끌어올리는 건 어려워도, 끌어내리기는 쉬우니까요. (206쪽)

이렇게 강민의 아내 소미와 명관은 복수의 칼을 갈게 되어 앞으로 펼쳐질 복수가 궁금해졌다.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약자가 강자를 향해 복수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명관과 수미는 유튜버 이삭이 도와주지만, 강민은 돈으로 누구든지 자기편으로 부릴 수 있다. 강민에게 복수하는 것은 강민을 축구 황제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일 거다.

"파우사!"
거미는 움직이지 않는다. 거미줄만 조용히 팽팽해질 뿐이다. 강민은 그 가운데까지 스스로 기어들어왔다. 실 한 올 흔들리지 않는 정교하게 설계된 함정으로. (312~313쪽)

제목 '파우사'처럼 복수는 아주 천천히, 독자조차도 눈치채지 못하게 진행되었다. 성경 속 다윗과 골리앗 싸움처럼 명관은 마침내 짜릿한 역전골을 달성했다. 법정을 나서며 최강민은 추락한 황제가 되었고, NPC(Non Player Character, 게임 속 배경 캐릭터로 주인공 없이는 어떤 목적도 가치도 찾을 수 없는 존재)처럼 살지 않겠다던 승리자 최명관은 '천다윗'이 되어 스스로를 위한 삶을 살게 되었다.

이 소설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다. 미디어가 만든 화려한 우상과 그 그늘에 가려진 평범한 소시민의 욕망, 그리고 치밀한 심리 스릴러의 요소를 결합한 작품이다. 빠른 전개와 탄탄한 심리묘사가 독자들이 지루할 틈을 안 준다. 저자는 이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일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캐릭터 하나하나에 마음을 주며 그들의 숨소리까지 읽으며 애썼다고 작가 후기에 남겼다.

저자는 명관을 통해 미디어가 만들어낸 허상과 그 속에서 흔들리는 군중 심리를 날카롭게 해부하며 누구나 품어본 적 있는 열등감과 욕망의 실체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현대는 유튜브 라이브, 실시간 댓글, SNS 여론 등이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미디어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다. 미디어로 일상이 무너지기도 하고 영웅이 되기도 한다. 미디어, SNS 세대를 다룬 소설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무더운 여름 시원한 복수극을 읽으며 잠시 짜릿한 긴장과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350여 페이지로 꽤 두꺼운 책인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들게 만드는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파우사 - 거미는 움직이지 않는다

최윤석 (지은이), 팩토리나인(2026)


#파우사#최윤석#초이스#팩토리나인#명관과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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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출신 할머니로 8년 째 쌍둥이 손자 주말 육아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기사를 씁니다. 2025년 6월에 <주말마다 손주 육아하는 할머니>를 출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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