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꽃다발 같은 거 제발 하지 마라."
"케이크 필요 없다. 사지 마."
"번잡스럽게 호텔은 무슨 호텔이니? 집 앞에서 간단하게 밥이나 한 끼 먹자."
팔순 생신을 앞두고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시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하면 다들 좋겠다 하겠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어머님의 세 아들들은 다 효자다. 다들 어머님께 뭘 해드리지 못해서 안달이다. 해외여행은 당연하고 번듯한 식사에 선물로 뭘 할까를 가지고 고민이다. 옆에서 보기에는 하늘의 별을 따다 드린다 해도 부족하다 할 것 같다. 반면, 어머님은 자식들 돈 쓰는 걸 보는 게 세상에서 제일 괴로운 분이다. 뭘 해드리겠다는 건 무조건 '됐다, 필요 없다'로 일관하신다. 여행도 싫다, 선물 같은 건 하지 마라, 식사도 간단히 하자, 심지어 꽃이나 케이크조차도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시다.
이러니 일이 진척이 없다. 주는 쪽도, 받는 쪽도 의견이 팽팽하니 좁혀지지 않는다. 괜히 나만 중간에서 고역이다. 이렇게 된 거 아들들이 하게 두자고 가만둬야지 하고 봤더니 몇 달이 흘러도 감감무소식이다. 이러다가는 서울 시내 좋은 식당은 아무 데도 못 잡을 판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어쩔 수 없다. 내 마음대로 호텔 뷔페 한 군데를 정해 밀어붙였다. 그 호텔은 어머님, 아버님이 신혼여행 가셨던 곳이라 어머님도, 아들들도 수긍했다. 이렇게 해서 겨우 장소 문제는 해결되었다.
어머님의 진짜 마음

▲시어머니 팔순 기념으로 뷔페에서 제공한 레터링 서비스시어머니의 팔순을 위해 갔던 호텔 뷔페에서 제공한 레터링 서비스입니다. ⓒ 우현주
이렇게 어머님은 선물이라면 질색하는 분이시다. 그래서 원하시는 게 있다고 하셨을 때 깜짝 놀랐다. 며칠 전 아침이었다. 갑자기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인가 해서 받았더니 팔순 때 제발 꽃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기 위해 전화를 하신 거였다. 그 전날 가족 단체대화방에 팔순 꽃다발을 예약했단 내용을 지금에야 확인하신 모양이었다. '그래도 꽃이 있어야 하지 않냐', '그런 쓸데없는 데에 돈 쓰지 말아라' 이렇게 서로 실랑이하다가 어머님은 결국 속내를 털어놓으셨다.
"나는 꽃 같은 거보다는 사진관에 가서 다 함께 가족사진이나 찍었으면 좋겠다."
처음 들어보는 어머님의 '하고 싶다'였다. 시댁에 가면 벽에 큰 가족사진이 하나 걸려 있다. 남편이 군대에 다녀온 직후 찍었다고 하니 오래되어도 한참 오래된 거다. 사진 속 가족들은 모두 젊다. 아버님은 머리숱이 풍성하고, 아직 학생인 시동생들은 앳되어 보인다. 술살이 붙기 전 남편은 날씬하고 어머님은 피부가 팽팽하다. 처음 그 사진을 봤을 때는 작은 집에 어울리지 않게 크고 고급스럽게 치장된 그 사진이 눈에 확 들어왔다. 하지만 곧 벽의 일부인 양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머님께는 그렇지 않았다.
어머님께 가족사진은 한 시절의 상징, 당신이 아버님과 고생해서 일군 삶을 증명하는 증명서와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가족들이 모두 젊고 빛나던 시절은 사진 속에 변치 않고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어느덧 사진을 찍은 지 몇십 년이 지났다. 그 사이 아버님은 돌아가시고 당신도, 아들들도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어머님은 낙담하지 않는다. 손자가 있기 때문이다. 저 사진을 찍을 때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던 손자는 어느새 쑥쑥 자라 어른이 되었다.
어머님께 그 손자는 희망이다. 손자를 넣어 새로이 가족사진을 찍고 싶으시다는 것은 앞으로도 가족이 계속 이어질 거라는 걸 눈으로 보고 싶으신 거다. 가족사진은 어머님께 추억이자, 변화된 가족의 모습을 인정하는 수단이며 미래를 그릴 수 있는 희망이었다. 그래서 어머님이 "손자를 넣어 가족사진을 찍고 싶어"라고 조심조심 말씀하셨을 때, 나는 왠지 가슴이 뭉클했다.
최고의 팔순 선물
가족들을 설득했다.
"가족사진을 찍읍시다!"
남편은 당장 "무슨 사진을 사진관까지 가서 찍어?" 했다. 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때에 누가 사진관까지 가서 가족사진을 찍느냐는 거였다. 하지만 내가 차분히 설명하자 남편도 이해했다. 모두 어머님이 원하시면 하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이 술술 풀리지는 않았다. 알고 보니 사진관에서 사진 찍는 건 생각보다 훨씬 비쌌다. 몇십 년 전 가격만 생각하던 어머님은 입을 딱 벌리셨다. 그러더니 사진관 가자는 이야기가 쑥 들어갔다. 그냥 팔순 당일 핸드폰으로 가족사진을 찍어 확대해서 뽑자고 갑자기 말을 바꾸셨다.
가족사진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간단하게 핸드폰 가족사진을 확대할지, 정말 사진관에 갈지 알 수 없다. 어느 쪽이든 새 가족사진은 생길 거다. 옛 가족사진 옆에 걸려 달라진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을 거다. 그 사진을 보며 어머님은 가족이 이렇게 변하고 이어진다는 데 안심하실 거다. 그것이 어머님께는 최고의 팔순 선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