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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이맘때가 되면 전국 산야에서 예초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벌초다. 조상의 봉분을 덮은 잔디와 잡초를 깎아내는 이 노동은 추석을 앞둔 한국 사회의 오래된 풍경이지만, 해마다 그 무게는 조금씩 더 버거워지고 있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로 벌초할 사람 자체가 줄고 있다. 벌초 대행업체를 찾는 발길이 늘고, 형제자매끼리 날짜를 맞추기 어려워 벌초를 미루다 추석 직전에야 부랴부랴 다녀오는 집도 흔하다. 여기에 매년 기록을 갱신하는 폭염은 잔디마저 버티기 힘들게 만든다. 여름 땡볕에 누렇게 타들어간 봉분, 장마 뒤 폭우에 쓸려나간 흙더미를 마주하는 일도 이제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 오래된 숙제에 대해 유럽의 몇몇 묘지는 이미 다른 답을 찾아냈다. 잔디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세덤'이라는 식물을 심은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식물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먼저 물어볼 만한 질문이 있다. 우리는 애초에 왜 무덤에 잔디를 심기 시작했을까.
잔디는 원래 흙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잔디를 처음 무덤에 입힌 이유는 지금처럼 '보기 좋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들면 비바람에 흙이 씻겨 내려가고, 장마철에는 무너질 위험도 있다. 이때 잔디뿌리가 흙을 붙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에는 무너진 봉분에 떼를 다시 입히는 일을 '사초(莎草)'라 불렀고, 『상례편람』 등에는 이를 세 단계 의례로 규정해 놓았을 만큼 정성을 들인 작업이었다.
흥미로운 건 조선의 왕릉도 획일적으로 잔디만 고집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태조 이성계의 무덤인 건원릉은 다른 왕릉과 달리 억새로 덮여 있다. 고향 함흥을 그리워한 태조의 유언에 따라 함흥의 억새를 옮겨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인조실록』에도 이와 관련한 기록이 남아 있다. 지금도 국가유산청은 매년 한식마다 '청완예초의'라는 이름으로 이 전통을 재현한다. 상황에 맞는 식물을 골라 봉분을 지키는 감각이 이미 그때부터 있었던 셈이다.
서양의 경로는 정반대였다. 빽빽한 도심 교회 묘지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19세기 미국과 영국은 도시 외곽에 나무와 잔디를 갖춘 '정원식 묘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1831년 문을 연 미국 마운트 오번 묘지가 대표적이다. 이후 1850년대 신시내티 스프링 그로브 묘지에서 조경가 아돌프 스트라우흐가 울타리와 장식을 걷어내고 넓게 트인 잔디 경관, 이른바 '랜드스케이프 론 플랜'을 선보이면서 오늘날 익숙한 잔디 묘지의 원형이 자리 잡았다. 20세기 들어 이 방식이 더 확산된 이유는 간단했다. 넓고 평평한 잔디는 기계로 한꺼번에 관리하기 편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한국은 먼저 봉분이 있었고 그 흙을 지키려 잔디를 덧입혔다. 반대로 서양은 잔디밭이 먼저 조성되고 그 안에 무덤이 들어섰다. 출발점은 달랐지만 도착한 결과는 같았다. 지금 우리에게 잔디는 너무나 당연한 존재가 됐고, 무성하게 자라지 않으면 관리 소홀로 여겨진다. 봉분을 보호하려고 심었던 잔디가 이제는 후손이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관리 대상이 되어버린 역설이 여기서 시작된다.
유럽 묘지들이 잔디 대신 선택한 식물
이 익숙한 고민에 대해, 유럽의 묘지들은 이미 다른 답을 실험하고 있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헤르덴킹스파르크 베스트가르더 묘지에는 지난해 10월 '인스피라티펠트(Inspiratieveld)'라는 구역이 새로 문을 열었다. 잔디 대신 세덤으로 무덤을 꾸미는 여섯 가지 방식을 전시하는 시범 구역이다. 헤이그의 베스트데윈 묘지는 2005년부터 추모광장 주변을 세덤으로 덮었고, 노르웨이 롬메달렌 교회 묘지는 2013년 경사면 전체를 세덤 매트로 조성했다. 도에틴험의 한 자연장 묘지는 화장장 건물 지붕 600㎡를 세덤과 허브 혼합종으로 덮기도 했다.
유럽의 묘지 조경업체들이 밝히는 이유는 한결같다. 검은 묘석이 50도까지 달아올라도 세덤은 버틴다. 몇 주씩 방문하지 못해도 스스로 수분을 머금고 살아남는다. 촘촘한 뿌리가 빗물을 흡수해 폭우에도 흙이 쓸려나가지 않는다. 여름이면 노란 꽃을 피워 벌과 나비를 불러들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벌초할 필요가 거의 없다.
흥미로운 건 이 식물의 영문 이름 자체가 무덤에서 유래했다는 점이다. 학명 Sedum sarmentosum, 영어로는 'graveyard moss(무덤 이끼)'라 불린다. 갓 조성되어 흙이 드러난 무덤 위에 빠르게 초록빛을 덮으려고 심었던 미국의 오래된 관습에서 나온 이름이다. 그리고 이 식물의 원산지는 다름 아닌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다. 우리가 봄이면 초고추장에 무쳐 먹는 나물, 바로 돌나물이다.

▲세덤은 줄기마다 뿌리를 내리며 다닥다닥 뭉쳐 자라, 잡초가 파고들 틈을 주지 않는 촘촘한 매트를 이룬다. ⓒ Alicja / Pixabay
잔디와 세덤, 관리 부담부터 다르다
잔디는 연간 서너 차례 이상 벌초가 필요하지만, 세덤은 한 해에 한 번도 손대지 않아도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세덤은 줄기가 땅에 닿는 자리마다 뿌리를 내리며 빠르게 퍼져 촘촘한 매트를 이룬다. 이 매트가 햇빛을 가로막아 잡초 씨앗의 발아를 어렵게 만들고, 얕고 촘촘한 뿌리가 표토의 수분과 양분을 먼저 차지해 잡초가 뿌리내릴 자리를 주지 않는다. 잔디가 웃자라면 그 틈으로 잡초가 파고드는 것과 정반대로, 세덤은 스스로 잡초를 몰아내는 구조다.
가뭄에 잔디는 관수가 필요하지만, 다육질 잎에 수분을 저장하는 세덤은 물 없이도 버틴다. 폭염에 잔디는 갈변하거나 고사할 위험이 있는 반면, 세덤은 50도에 가까운 지열에서도 살아남는다는 게 유럽 업체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뿌리 구조도 세덤 쪽이 더 촘촘해 폭우에 따른 토양 유실 방지에 유리하다.
물론 세덤도 만능은 아니다. 초기 조성 비용은 잔디 씨앗보다 조금 더 든다. 다만 이후 몇 년간 들어가는 관리 비용과 노동력을 따지면, 장기적으로는 세덤 쪽이 훨씬 적게 든다는 게 유럽 사례들이 보여주는 결론이다. 색감도 다르다. 잔디는 계절 내내 비슷한 초록빛이지만, 세덤은 품종에 따라 노랑과 주황, 붉은빛까지 물든다. 여름엔 꽃이 피고 가을엔 잎끝이 붉어진다. 짧게 깎인 잔디의 삭막한 풍경 대신, 계절마다 표정을 바꾸는 무덤을 상상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유럽보다 유리한 조건, 우리에게 있다
무엇보다 한국은 이 식물을 새로 들여올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유럽보다 유리하다. 돌나물은 원래 한반도 산과 들, 바위 틈에서 흔히 자생해온 식물이다. 한방에서는 석지갑(石指甲), 수분초(垂盆草) 등으로 불리며 오래전부터 약재이자 봄나물로 쓰였다. 척박한 땅에서 스스로 번식하는 생태적 강인함은 이미 우리 산천에서 수천 년간 검증돼 온 셈이다. 외래종 도입에 따르는 생태계 우려도, 낯선 식물에 대한 거부감도 없다. 매년 여름 기록을 갱신하는 한국의 폭염을 감안하면, '기후 대응형 묘지 식물'이라는 문제의식은 유럽보다 한국에서 오히려 더 절실하게 다가올 수 있다.
이번 추석엔, 질문 하나쯤 던져봐도
물론 모든 무덤의 잔디를 당장 걷어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국립묘지나 오랜 전통을 지닌 왕릉처럼 상징성이 큰 공간은 지금 방식을 지키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매년 벌초 일정을 맞추기 힘든 개인·가족 묘지, 새로 조성되는 자연장·수목장, 돌볼 후손이 마땅치 않은 무연고 묘역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애초에 조상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잔디'라는 특정 식물이 아니라 무덤의 흙을 지키는 일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 역시 잔디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무덤을 더 지속 가능하게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올해 벌초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혹은 추석 성묘를 다녀오는 길에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하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 노동을, 계속 이렇게 짊어져야만 할까. 이름부터 무덤과 얽혀 있던 이 식물이 유럽에서는 이미 정책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식물이 공교롭게도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것이라면, 망설일 이유는 크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