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설마 이제야 아셨어요?"

후배 교사에게 느닷없는 면박을 당했다. AI가 제공하는 '신세계'를 어깨 너머로 경험한 뒤 놀라워했더니 더 놀라워하며 되돌아온 반응이었다. 그는 수업과 평가, 생활기록부 작성, 개별 상담에 이르기까지 AI에 의존하지 않는 교사는 전국에 단 한 명도 없을 거라고 확언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로 나만 몰랐던 성싶다. 그의 반문에 교무실 내 다른 동료 교사들은 내 얼굴을 보며 '대략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격지심인지는 몰라도, 정년퇴직이 머지않은 교사들은 후배들에게 얼른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처럼 느껴져 몸이 움츠러들었다.

숙제도 AI로 내고, 검사도 AI로 하는 교사들

 교사도, 학생도 AI에 모든 걸 의존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교사도, 학생도 AI에 모든 걸 의존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 Pixabay

한 동료 교사는 학교의 모든 업무를 AI로 처리한다고 했다. 교재 연구와 핵심 정리, 수업 자료 제작, 평가 문항 개발, 성적 처리, 교육과정용 시간표 구성, 가정통신문 작성 등 AI로 불가능한 영역은 없다고 강조했다. 숙제도 AI로 내고, 검사도 AI로 한다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AD
이젠 AI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게 교사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역량이 된 듯하다. 내가 일과 중 수업이 없는 시간 내내 쩔쩔매며 만들어 낸 열 몇 장짜리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그는 불과 몇 분 만에 뚝딱 해치웠다. 작업 시간뿐만 아니라 결과물의 '퀄리티'도 훨씬 높았다.

그뿐 아니다. 교육청에서 공문으로 하달된 수십 쪽 분량의 첨부 문서도 굳이 시간 내어 읽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해당 문서를 파일 형식만 변환시켜 AI에 핵심 내용을 정리해 달라고 하면 순식간에 완벽한 요약 자료가 출력됐다. 이보다 더 훌륭할 수 없다며 감탄이 나올 정도다.

대입 제도가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지 않으면 당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고, 고교학점제와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 선택제로 학사 운영이 복잡해졌지만, AI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학교에서 여는 입시 설명회는, 거칠게 말해서, AI로 시작해 AI로 끝난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이 새는 것도 모른다'고 했던가. 충격과 민망함 속에 하던 일을 멈추고 종일 AI를 가지고 놀았다. 프롬프트 창에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AI의 대답과 결과물을 받아보았다. 온갖 시답지 않은 요구에도 AI는 꼼꼼한 답변을 내놓았고,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질문을 보완해 몇 차례 이어가니, 흠잡을 곳 하나 없는 모범 답안을 보여주었다. 내 질문의 요지를 정확히 간파한 답변에 마치 AI가 내 마음속을 훤히 꿰뚫고 있는 것 같다는 두려움마저 들었다. AI의 답변에 설득되어 고개를 주억거리는 내 모습이 언뜻 가엾게 느껴지기도 했다.

AI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건, 지역 교육청에서 교사와 아이들에게 무상 제공하는 구글 기반의 AI 플랫폼 덕분이다. 이른바 '에듀 테크'의 이름으로, 수업과 평가, 학급 운영, 잡무 등에 필요한 모든 기능이 총망라되어 있다. 굳이 인터넷 포털에 들락거릴 필요가 전혀 없다.

'지금껏 난 아이들에게 뭘 가르쳤고, 아이들은 내게 뭘 배우고 있었나?'

빙산의 일각일 테지만, AI가 열어젖힌 새로운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나니 내 수업이 초라하게 여겨졌다. 두 차례나 성대 수술을 했을 만큼 수업 때마다 '몸을 갈아 넣고' 있지만, 헛심만 쓴 꼴이라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낡은 수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말 끝나기 무섭게 앱부터 켜... '골똘히 몰두하는 아이'가 사라진다

 AI에 과의존 하는 아이들. 교실에서 '골똘히 몰두하는 아이'가 사라지고 있다. AI생성 이미지
AI에 과의존 하는 아이들. 교실에서 '골똘히 몰두하는 아이'가 사라지고 있다.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얼마 뒤 수업 시작 전에 아이들 앞에서 AI를 백안시해 온 수업 방식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난데없는 사과에 아이들은 서로 쳐다보며 어리둥절해했다. 그들에게 해명하듯 AI의 '신세계'를 충격 속에 경험했던 요 며칠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AI를 수업에 적용해 보려는 취지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새삼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이미 AI는 아이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하루의 일상에서 AI가 개입되지 않는 때가 거의 없을 거라고 덧붙였다. 스마트폰 첫 화면의 첫 번째 앱이 챗지피티와 제미나이, 클로드라고 했다.

최근 일과 중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스마트 기기 사용이 법적으로 제한되기 전까지는 아이들은 등굣길에 책가방도 메고 오지 않았다. 호주머니의 스마트폰과 손에 쥔 태블릿 하나면 충분했다. 굳이 책가방이 필요하다면, 충전기와 보조 배터리를 챙겨와야 하기 때문이었다.

요즘 아이들에게 종이로 된 사전은 이미 박물관 수장고에 가야 할 물건이 됐고, 교과서나 공책도 더는 쓸모가 없다. 따라서 필기도구도 필요 없다. 그들에게 '필통'이라고 하면, 책가방 속의 작은 케이스가 아닌, 책상 위에 각종 필기도구를 꽂아놓은 원통형의 물건을 떠올린다.

이젠 태블릿과 연동된 전자펜조차도 효용을 다해가고 있는 듯하다. AI가 필기하는 수고로움마저 대신해 준다고 말했다. 교과별 핵심 내용을 공책에 필기하듯 요약해 주는 걸 넘어 AI가 교사의 수업 내용조차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거다.

교사가 공유하는 수업 자료를 내려받으면 AI가 공책 정리를 다 해준다. 수업 시간 칠판 판서 내용을 일일이 받아 적을 이유가 없다. 하긴 요즘 칠판에 판서하며 수업하는 교사도 드물다. 전자 칠판과 빔프로젝터까지 갖춘 교실에서, 언제부턴가 분필을 쥐는 게 민망한 일이 됐다.

법적으론 금지되어 있지만, 수업 시간에 스마트 기기 사용을 바라는 아이들의 요구는 한술 더 뜬다. 교사의 강의 내용을 녹음하겠다는 거다. 물론, 나쁜 의도는 아닐 거다. AI를 활용해 녹음 파일을 텍스트 파일로 변환시킨 다음, 다시 핵심 내용을 정리해 공부하겠다는 뜻이다.

학교 교육의 목적이 아이들에게 교과 지식을 전수하는 거라면, 이미 그 단계는 지나버렸다. 아이들은커녕 교사조차도 교과서와 다양한 자료를 찾아 읽어가며 수업을 준비하지 않는다. AI가 알려준 자료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수업 후 아이들은 AI가 요약해 준 자료로 복습한다.

특정 주제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쓰라는 수행평가 때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마트폰부터 켠다. AI에게 질문하려는 거다. 이내 곳곳에서 AI가 자기의 생각을 빠르고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다며 호들갑을 떠는 목소리가 들린다. 골똘히 몰두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생각할 시간 아껴서 좋다" 씁쓸한 풍경

"두껍고 어려운 책들을 읽지 않고도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서 좋아요. 더욱이 시간도 아낄 수 있으니, AI만한 학습 도구는 이 세상에 없는 것 같아요."

AI를 활용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을 말해보라고 했더니, 한 아이가 주저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시간이 빠듯한 수험생에게 특히 출제 빈도가 높은 문학 작품들을 공부하는 데 AI의 도움은 절대적이라는 거다. 그는 AI 덕분에 웬만한 서양 고전도 모두 섭렵했다고 으스댔다.

기껏 AI의 경이로움을 찬탄했더니, 되레 아이들의 입에선 "시간 내어 책을 읽어야 하는 부담이 줄었다"는 생뚱맞은 대답이 튀어나왔다. 한 아이는 "솔직히 독서는 인내력 테스트"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학교에서 독후감 과제가 사라진 것만으로도 AI의 공은 크다고 키득거렸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더 혼란스러워졌다. '만물박사'인 AI의 효용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과연 AI를 교육에 활용하는 게 맞는 건가 싶어서다.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앗아가고, 자기 생각마저 의존하도록 만든다면, AI를 아이들의 손에 장난감처럼 둬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AI#챗지피티#제미나이#클로드#광주아이온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아이들은 나의 스승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독자의견2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