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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4일 오전 10시 30분 3초,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전곡산업단지 내 아리셀 리튬전지 제조공장에서 최초 폭발이 발생했다. 단 42초 만에 작업장 내부는 짙은 연기로 가득 찼고, 23명의 노동자가 끝내 대피하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참사 직후 유가족과 대책위원회는 진정성 있는 사과,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합동분향소가 설치된 화성시청을 거점으로 국회, 경기고용노동청, 경기남부경찰청, 박순관 대표 자택, 모회사 에스코넥, 서울고용노동청, 삼성전자 본사 등을 오가며 문제 해결을 위한 선전전과 기자회견, 집회를 이어갔다.

어느덧 2년이 지났다. 책임을 물어야 할 곳은 많았으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던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를 다시 복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리셀 참사는 단순한 개별 기업의 일탈이나 우연한 화재 사고가 아니다. 한국 사회 제조업 전반에 고착한 위험물 관리의 공백, 형식적인 안전보건 체계, 그리고 이주노동자의 생명을 담보로 작동하는 왜곡된 고용구조가 결합해 폭발한 '구조적·사회적 참사'이다. 특히 수많은 중소 영세 제조업체가 밀집해 있는 화성 지역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활동가로서, 이 참사가 남긴 과제를 정리하는 일은 대단히 무겁게 다가온다.

 2026.6.24.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화재 사고 현장에서 열린 ‘아리셀 참사 2주기 현장 추모제’
2026.6.24.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화재 사고 현장에서 열린 ‘아리셀 참사 2주기 현장 추모제’ ⓒ 백승호

아리셀 참사가 드러낸 비극의 구조: 위험관리 제도의 공백과 위험의 이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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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셀 참사를 되돌아볼 때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첨단 기술의 이면에 숨겨진 제도의 커다란 공백이다. 리튬 일차전지는 현대 산업의 핵심 요소이지만 법 제도는 위험을 전혀 따라잡지 못했다. 리튬 금속은 물과 접촉 시 수소 가스를 내뿜으며 폭발하는 치명적인 물질임에도, 참사 당시 산업안전보건법 및 화학물질관리법상 유독물질이나 사고대비물질이 아닌 '일반화학물질'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 결과 아리셀은 환경부 안전진단에서 리튬이 제외된 채 9차례나 '이상 없음' 판정을 받았고, 허가량의 39.9배에 달하는 리튬을 적재하고도 감독을 피했다. 또한, 리튬 배터리는 소방법상 특수가연물에서 제외되어 있어 열폭주 연쇄 폭발을 막을 방화벽 설치나 분산 보관 같은 국제 표준 규격이 현장에 적용되지 못했다. 수만 개의 배터리가 밀집된 위험 공간이 법적으로는 아무런 규제 없이 방치된 것이다.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뒤에도 관련 법안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아리셀 참사라는 구조적 문제의 핵심에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국적과 고용 형태에 따라 차등화한 왜곡된 노동시장이 자리잡고 있다. 희생자 23명 중 18명이 이주노동자였으며, 이들 대다수는 실체가 없는 위장도급업체인 '메이셀(구 한신다이아)'을 통해 공급된 불법 파견 인력이었다.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는 파견이 전면 금지되어 있음에도, 아리셀은 국방부 군납 기일을 맞추기 위해 비숙련 이주노동자들을 대거 투입했다.

메이셀은 노동자들과 근로계약서조차 작성하지 않았고 고용보험 신고 등 기본적인 노무관리도 수행하지 않은 채, 메신저 단체 대화방으로 통근버스 위치만 알려주던 유령 인력 공급원에 불과했다. 이러한 왜곡된 구조는 필연적으로 안전관리의 치명적인 공백을 낳을 수밖에 없다. 아리셀은 메이셀에 안전교육 책임을 떠넘겼고, 메이셀이 얼굴도 모르는 노동자들에게 교육을 시행할 리 만무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이 다루는 리튬 배터리가 얼마나 위험한지, 불이 났을 때 왜 일반 분말소화기를 쓰면 안 되는지 전혀 교육받지 못했다. 심지어 화재 발생 시 대피할 수 있는 비상구가 존재했음에도, 그 문은 정직원만 통과할 수 있는 지문인식 및 ID카드 보안장치로 잠겨 있었거나 적재된 완제품 상자에 가려져 있었다. 불법 고용된 일용직 노동자들에게는 대피로 안내도, 비상 대응 훈련도 전혀 제공되지 않았다.

경찰의 수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 작업장의 CCTV 영상을 보며 '리튬전지의 위험성을 알았다면 소화기를 들고 불을 끄려 하지 않고 골든타임 내에 대피했을 텐데, 그랬다면 살아있었을 텐데'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수사 결과, 차별적인 현장 구조 때문에 도저히 살아 나올 수 없었다는 참담한 사실이 드러났다. 일할 때는 아리셀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는 노동자였지만, 위험이 닥쳤을 때 그들은 탈출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위험하고 열악한 노동이 이주노동자에게 전가되는 '위험의 이주화'가 만든 비극적 결말이다.

화성 지역의 기억과 과제

지자체 산재 사고 사망 노동자 수 1위로 자주 거론되는 화성 지역에서 아리셀 참사를 기억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 참사가 단지 한 공장의 일회성 사고가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산단의 안전관리를 사업장 자율에 맡기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효성 있는 현장 감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화재가 발생하기 전 실시하는 소방 점검, 위험성 평가, 대피 훈련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상시 확인하는 지역 단위 감시체계가 필요하다. 서류로 우수 사업장 결정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진짜 탈출할 수 있는 구조인지 확인해야 한다. 아리셀처럼 매뉴얼은 있었지만, 노동자가 그 내용을 알지 못했던 사업장은 결코 안전한 사업장이 아니다. 아리셀이 위치했던 전곡해양산업단지는 비교적 최근인 2016년에 준공되었지만, 위험물 취급과 화재·폭발 대비가 허술했다. 화성 발안산업단지는 화재예방중점관리지구로 지정되었지만, 전곡산단은 같은 수준의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못 했다. 산단이 늘어나 세수가 확충되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임을 행정당국은 명심해야 한다.

둘째, 이주민과 피해자를 위한 지원 체계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아리셀 피해 유가족과 함께한 활동가들은 참사 이후의 행정 대응이 또 다른 참사였다고 입을 모은다. 유가족의 고통을 이해하고 피해를 지원하기보다는 조속히 장례를 치르게 만드는 데 행정력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화성시청에 있던 합동분향소를 옆 건물 지하로 옮기며 참사를 조기에 은폐하려 한 시도에 맞서 유가족들은 영정을 들고 항의 행진을 벌여야 했다.

또한 희생자 중 이주노동자가 많다는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원 대상을 직계가족으로만 한정하여, 지원 확대를 요구하며 시장실 앞 농성을 진행하기도 했다. 피해 가족들은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사람들이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이 잔상으로 남아 약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버티는 가족들에게, 감독 책임을 다하지 못한 행정은 또 다른 가해자나 다름없었다. 피해자의 존엄을 지키며, 사고 이후 통역, 의료, 심리, 생계를 지원하는 방안이 단발성 임시 조치가 아닌 상시 매뉴얼로 계획되어야 한다. 공무원들의 인권 의식 제고도 시급하다.

셋째, 노동시민사회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화성시 노동안전 기억공간 조성이 필요하다. 아리셀 참사가 발생하기 2년 전, 향남제약단지 화일약품 중대재해 사망사고 이후 유가족과 대책위원회, 화성시는 추모 조형물 조성을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약속이 이행되지 않아 서명운동과 규탄 기자회견을 이어가던 중 아리셀 참사가 터지고 말았다. 추모공간 조성은 공간 마련 그 자체가 최종 목적이 아니다. 참사를 기억하는 것은 단순한 애도를 넘어,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희생되는 이가 없도록 지역사회의 규칙을 바꾸는 과정이다. 노동안전 기억공간을 만드는 일은 공동체 스스로가 진정한 사회적 연대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화성시는 예산편성부터 완공에 이르기까지 참사의 원인과 경과가 축소되거나 단순 행정 성과로 포장되지 않도록 노동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8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박유리 님은 (사)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사무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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