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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아이들의 시계는 어른들보다 늘 부지런히 돌아간다. 자고 있던 우리방으로 첫째 손주 둥둥이가 "할머니!" 하고 들어섰다. 손에는 작고 알록달록한 동화책 한 권이 쥐어져 있었다.
"할머니, 이거 읽어주세요."
아직 눈도 제대로 뜨이지 않은 피곤한 아침이었지만, 둥둥이의 반가운 목소리에 얼른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아이가 내민 책은 <어떡해요?> 그림책 시리즈 중 하나인 <샘이 날 땐 어떡해요?>였다.
대구에 다녀오는 열흘 동안 받침 있는 글자까지 다 뗐는지, 이제는 동화책을 혼자서도 척척 읽어 내려가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표지 제목은 둥둥이가 직접 읽도록 두고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표지 뒷면에는 주인공 '캐빗'을 소개하는 글이 나왔다.
성격 : 야무진 똑순이, 규칙을 잘 지키는 규칙왕
좋아하는 것 : 책 읽기, 규칙왕 배지, 베리 양 선생님
"엇, 캐빗, 둥둥이랑 똑같은데, 특히 요 책 읽기 좋아하는 것."
할머니의 말에 둥둥이도 신이 나서 싱글벙글 웃으며, 으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인다.
"그렇네 할머니, 나하고 똑같네. 근데 우리 선생님은 하00 선생님인데, 베리 양 아닌데."
"그렇구나, 둥둥이는 하00 선생님 정말 좋아하지."
이어지는 프로필에는 '싫어하는 것 : 우유'라고 적혀 있었다.
"엇, 이것은 둥둥이랑 다르네. 둥둥이는 우유 엄청 좋아하잖아, 그치?"
"응, 맞아. 나는 우유 좋아해."
대화를 나누며 본격적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질투라는 마음의 파도

▲동화책 <샘이 날 땐 어떡해요?> 표지 ⓒ 홍영미
동화 속 캐빗은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벽에 붙은 자신의 그림을 보고 친구 '바미'가 놀리자 속상해 한다. 반면 '망고'는 친구 '뽀미'의 그림을 보고 정말 잘 그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캐빗은 그런 뽀미가 부럽다. 공 차기도 못하는 캐빗과 달리 뽀미는 공도 잘 찬다.
뭐든지 잘해서 모두의 사랑을 받는 뽀미를 보며 캐빗의 마음에는 몽글몽글 샘이 난다. 뽀미가 인형 놀이를 하자고 해도 "싫어", 그네를 타자고 해도 "싫어" 하며 토라져 버린다. 갑작스러운 캐빗의 태도에 뽀미는 당황한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베리 양 선생님'이 캐빗에게 다가와 다정하게 묻는다.
"캐빗, 요즘 왜 뽀미랑 안 놀아요?"
캐빗은 참았던 마음을 털어놓는다. 친구들이 모두 뽀미만 좋아하고, 뭐든지 잘하는 뽀미가 부럽다고. 그러자 베리 양 선생님은 나보다 더 잘하는 친구가 부럽고 샘이 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마음이라며 따뜻하게 위로한다. 그리고 샘이 날 땐 어떡해야 하는지 묻는 캐빗에게 뜻밖의 처방을 내린다.
"그 친구를 칭찬해 보세요."
이 대목에서 나는 깊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환갑을 넘긴 이 할머니조차 누군가를 질투하는 마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할 때가 많은데, 동화 속 선생님은 참으로 멋진 명답을 건네고 있었다.
천진난만한 손주의 대답
좋아하는 선생님의 조언을 들은 캐빗은 뽀미가 잘할 때마다 마음을 열고 칭찬하기 시작한다.
"우와, 너 달리기 진짜 잘한다!"
"우와, 정말 그림 잘 그린다. 뽀미야, 난 네가 정말 부러워."
그러자 반전이 일어난다. 뽀미 역시 캐빗을 부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뽀미는 책도 잘 읽고 똑똑한 캐빗이 부럽지만, 자신은 아직 글자를 몰라 책을 못 읽는다고 고백한다. 결국 두 친구는 서로 잘 못하는 것을 도와주기로 약속하며 세상에서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되어간다.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장점을 칭찬하며 다가가는 단짝 형성 과정이 참으로 아름답게 그려졌다. 책을 조용히 덮으며, 둥둥이의 반응이 궁금해 물었다.
"둥둥아, 캐빗처럼 샘이 날 때 둥둥이라면 어떻게 할거야?"
어른의 지혜가 담긴 답을 기대했던 나에게 둥둥이는 망설임 없이 천진난만하게 답했다.
"난 안 놀아. 치! 하고 삐질 거야."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할머니 눈에는 동화 속 처방이 더할 나위 없는 명답으로 보였지만, 여섯 살 손주에게는 여전히 '치!하고 삐지는 것'이 가장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마음 표현이었던 셈이다. 이 동화책은 어쩌면 아이보다 어른인 할머니를 위한 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둥둥이가 자라면서 친구와의 관계에서 속상하거나 샘이 나는 순간을 다시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때 슬며시 이 베리 양 선생님의 지혜를 한 번 더 일러주리라 마음먹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