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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드 양반들 보컬이자 작가 전범선이 지난 4월 유튜브 채널 ‘MP(뮤지엄피)’에 출연해 자신의 가족사를 공개하는 모습. 왼쪽은 전씨의 외가 5대조 할아버지 이인직의 사진.
밴드 양반들 보컬이자 작가 전범선이 지난 4월 유튜브 채널 ‘MP(뮤지엄피)’에 출연해 자신의 가족사를 공개하는 모습. 왼쪽은 전씨의 외가 5대조 할아버지 이인직의 사진. ⓒ 유튜브 채널 MP(뮤지엄피)

"최초의 신소설 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엄청난 친일파였다니..."

밴드 '양반들' 보컬이자 작가 전범선씨가 자신이 친일파 후손임을 고백하며 밝힌 말이다. 최근 배우 하영의 '증조부 친일 논란'이 공론화된 것과 맞물려, 과거 전씨가 자신의 외가 5대조 할아버지가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인직'이라고 밝힌 사실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인직은 한국 최초 신소설 작가이자, 친일파 이완용의 비서 역할을 수행한 인물로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다.

전씨는 14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어느 날 어머니가 제 방에 들어오셔서 오랫동안 알려주시지 않은 비밀을 조심스레 말씀하시더라. 제 5대조 할아버지, 어머니에겐 고조할아버지가 이인직씨라는 얘길 들었다"라며 "어머니는 어디 가서 이인직 후손이라고 말도 못 하는 등 부끄러움이 크셨다더라"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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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트머스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최근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책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를 냈다. 그러면서 "굉장히 복잡한 심경과 함께, 용서는 둘째 치고 일단 (할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었다"라며 "(이인직의 친일 이력은) 제게 일종의 트라우마이기도 하다. 트라우마로 인한 분열적인 역사관 때문에 가리고 숨겨 놨던 것들을 수면 위로, 공과를 다 돌이켜보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라고 밝혔다.

광복절을 앞두고 이러한 친일 및 역사 인식 문제에 불이 붙은 건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1872~1927)를 둘러싼 친일 행적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다만 안상호는 정부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이나 친일인명사전에 현재 등재돼 있진 않다. 하영은 이번 일을 계기로 "증조부 안상호의 과거 행적을 접하며 가족의 역사를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보게 됐다"라고 사과했다.

전씨는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따지는 걸 떠나서 지금 4대·5대가 지났는데도 이렇게까지 전국민적인 화와 아픔이 느껴지는 건 아직도 우리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반민특위가 실패하고 제대로 된 보상이나 해결이 안 됐다는 아쉬움과 분노가 여기에 깔려 있지 않나 싶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역사적 인물에겐 공과가 있다. 그런데 거기에 어떤 딱지를 붙이거나, 부끄러움 때문에 덮어두고 기억을 안 한다면 그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 것 같다"라며 "일제의 참혹한 기억에 얽매여 있지 말고 우리 안의 부끄러움과 시시비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전씨와 나눈 일문일답.

"미국인 독립운동가 연구하다 알게 된 친일파 할아버지"

 밴드 ‘양반들’ 보컬이자 작가 전범선.
밴드 ‘양반들’ 보컬이자 작가 전범선. ⓒ 전범선 제공

- 할아버지가 친일파라는 가족사를 알게 된 과정은?

"다트머스대 대학생 때 역사 연구를 하다가 '호머 헐버트(1863~1949)'라는 독립운동가를 알게 됐다. 저희 대학교 선배님이고 미국인인데 조선의 독립운동을 한 분이다. '사민필지'라는 최초의 순한글 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가 시해됐을 때 고종 황제 요청으로 헐버트가 불침번을 서기도 했고, <대한제국 멸망사>라는 역사책을 고종 황제에게 바치기도 했다. 그런 개인적 인연으로 헤이그 특사 3인보다 먼저 (헤이그로) 가 있었던 게 헐버트다.

미국인인데도 우리나라의 부조리를 세계에 알리려고 노력한 헐버트의 행보에 감동받은 저는 방학 때 한국에 돌아와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에서 인턴을 시작했다. 헐버트 박사가 남긴 글을 연구했고, 청년회장으로서 홍보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제 방에 들어오셔서 오랫동안 알려주시지 않은 비밀을 조심스레 말씀하시더라. '네가 독립운동가를 알리고 역사를 공부하는 건 알겠는데 출신 성분을 알고 해라. 네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는 알고 얘기하는 게 좋겠다.' 제 현조(5대조) 할아버지, 어머니에겐 고조 할아버지가 이인직씨라는 얘길 들었다."

- 그 얘길 듣고는 어떤 감정이 들었나?

"최초의 신소설 <혈의 누>를 쓴 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엄청난 친일파였다고 해서 충격에 빠졌었다. 이완용 통역관 정도면 큰 특혜를 누렸을 텐데 말이다. 말년엔 일본 민족 종교 '천리교'에 귀의해 일본식 장례를 치르는 등 굉장한 전향이 있으셨던 분이다. 어머니는 어디 가서 이인직 후손이라고 말도 못 하는 등 부끄러움이 크셨다더라. 다만 이인직은 일본인 여성에게 새 장가를 들어서, 저희는 조선인 본처 집안이고 말하자면 버려진 집안인 거다.

제가 일반적인 친일파 후손으로서 덕을 본 건 아니겠지만, 저희 외가 쪽이 다 예술을 하고 저도 음악과 문학을 하고 있는 입장이라 피는 못 속이는 것 같다. 굉장히 복잡한 심경과 함께, 용서는 둘째치고 일단 이해하고 싶었다. 사실 5대조면 (조상이 32명이니) 32분의 1이잖느냐. 후손의 입장도 있겠지만 역사학도로서 나의 유별난 32분의 1을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헐버트를 연구했던 것처럼 이인직을 연구했다."

- 지금은 이인직을 어떤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있나?

"전형적인 개화파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많은 개화파 지식인들이 종국엔 거의 다 친일을 했다. 서재필처럼 안 하신 분들이 대단한 거다. 이인직이 개화를 원했던 건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이완용은 개화를 전혀 원치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성리학적 수구파였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매국을 했다. 이인직도 그랬겠지만 그 기저에 깔린 친일적 개화사상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저는 우리 집안이 버려졌다고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만 돌이켜 봐도 이인직이 모범적인 아버지였거나 남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분이 나라를 대하는 마음도 그러지 않았을까? 좀 더 좋아 보이는 것을 좇고 취했던 분인 것 같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인직은 제게 트라우마... 부끄러움 있는 그대로 봐야"

- 최근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 친일 논란에 대한 생각은?

"그분의 잘잘못이나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따지는 걸 떠나서 지금 4대가 지나고 저는 5대가 지났는데도 이렇게까지 전국민적인 화와 아픔이 느껴지는 건 아직도 우리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다는 것, 예를 들어 독립유공자 후손은 가난하게 살고 있고 친일파 후손은 잘 살고 있다는 것, 반민특위가 실패하고 제대로 된 보상이나 해결이 안 됐다는 아쉬움과 분노가 여기에 깔려 있지 않나 싶다."

- 광복절을 앞두고 한국 사회가 친일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인직의 친일 이력은) 제게 일종의 트라우마이기도 하다. 그 시대 조선인들이 겪었던 것도 저는 트라우마라고 본다. '그런 트라우마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테라피(치유)'라는 화두를 잡아 최근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라는 책을 냈다. 트라우마로 인한 분열적인 역사관 때문에 가리고 숨겨놨던 것들을 수면 위로, 공과를 다 돌이켜보는 마음으로 썼다.

모든 역사적 인물에겐 공과가 있다. 그런데 거기에 어떤 딱지를 붙이거나, 부끄러움 때문에 덮어두고 기억을 안 한다면 그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 것 같다. 이제 우리도 선진국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저도 (친일파 후손이란 고백을) 이렇게 우스갯소리처럼 얘기하지 않느냐(웃음). 그런 걸 같이 사회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일제의 참혹한 기억에 얽매여 있지 말고 우리 안의 부끄러움과 시시비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최선인 것 같다."

#전범선#양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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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복건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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