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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가장 좋은 피서법은 미술관에 가는 것이다. 층고가 높은 전시실 안,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 앞에 하릴없이 서 있는 것이다. 그렇게 서서 시간을 잊는 것이다. 주변의 소음이 서서히 뒤로 물러나 앉고, 눈앞 희디흰 벽 위에 걸린 고풍스러운 액자 속 그림만이 오롯이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림과 나 사이에 내려앉는 낯선 느낌을 바라보는 거다. 어쩌면 시(詩)가 찾아올지 모른다. 뜻밖에 신(神)의 손길을 느낄지도. 일상에서는 만나기 힘든, 깊은 침잠의 시간.

하지만 얼마 전 고야 전시회의 티켓을 예매했던 이유는 찾지 못하겠다. 고야는 좋아하는 화가도 아니었고, 딱히 떠오르는 그림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초상화 속 그의 모습은 재상(宰相)의 이미지랄까? 내가 상상하던, 고뇌하는 예술가의 이미지와는 멀었다.

미술관에 가는 동안 생각에 잠겼다. 프란시스코 고야. 성당 천장의 종교화, 풍속화, 로코코풍의 화려한 궁정, 귀족이나 재력가의 초상화, 전쟁, 어둠과 괴물……. 두서 없이 떠오르는 이미지는 서로 모순될 뿐 아니라, 여러 개의 이질적인 인격이 거칠게 뒤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카프리초스 제43번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 카프리초스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원래 고야는 이 판화를 표지로 삼으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불안정한 정치 상황은 그것의 위험성을 알렸기 때문에 표지는 실크 헬멧을 쓴 자화상으로 바뀌었다. 이 그림은 고야가 말년에 프랑스로 건너갔을 때 프랑스의 지식인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카프리초스 제43번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카프리초스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원래 고야는 이 판화를 표지로 삼으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불안정한 정치 상황은 그것의 위험성을 알렸기 때문에 표지는 실크 헬멧을 쓴 자화상으로 바뀌었다. 이 그림은 고야가 말년에 프랑스로 건너갔을 때 프랑스의 지식인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 위키미디어 공용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 전시회 포스터에 있는 문장이다. 그것을 직접 보여주려는 듯 전시실 내부는 어둡고 비좁았다. 그리고 사람이 많았다. 좁은 전시실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어깨는 수시로 부딪쳤고 사람들 입에서 이런저런 불만 섞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좁은 전시실에 다닥다닥 걸어 놓은 그림들은 복제화, 미디어아트, 그리고 어두운 조명 아래 몇 개의 기둥을 빽빽하게 채운 판화뿐. 원화는 한 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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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라니. 우리는 언제부터 원화를 그토록 갈구하게 된 것일까? 손바닥만한 삼중당 문고의 표지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책받침, 달력, 작은 엽서 등에 새겨진 화질이 나쁜 복제화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던 때가. 하지만 우리의 미적 욕구는 이제 그런 가짜로는 달래지지 않는가 보다. 아니, 복제가 판치는 세상이 되어 진품이 그만큼 더 소중해진 것일까?

고야 전시회에 원화가 없다는 원성이 인터넷에 자자했다. 그렇지. 이왕이면 원화를 보아야지. 붓 터치와 물감의 질감 속에 화가의 개성이 그대로 느껴지는, 프린트로 색깔이 변형되지 않는, 붕어빵처럼 똑같은 크기로 찍어낸 게 아니라 본래의 크기 그대로인 원화를.

몇 년 전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에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거기에는 고야의 그림이 그 어느 미술관보다 많다고 했다. 어디 고야뿐이랴.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라파엘로, 보스... 과연, 첫 방에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하지만 0층(우리의 지하층)과 1층, 그리고 2층의 복잡한 미로 같은 방들 사이를, 안내 지도에 적힌 방 번호와 문틀 위에 박힌 방 번호를 대조하며 걸어 다니는 사이, 그 감동은 차츰 피로감으로 바뀌고 말았다.

아니, 2층에서부터 거꾸로 내려왔었던가? 그 기억조차 불분명하다. 뭐랄까. 백여 개가 되는 전시실을 돌아다니는 동안 시각이 온통 마비된 듯했다. 하나의 인상 위에 다른 인상의 겹침이 반복, 반복된 끝에 하얗게 된 인상. 지금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잘못된 꿈을 일깨우기 위한 그림들

이번 전시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패널과 도표로 장식된 고야의 일대기 설명을 지나 <카프리초스>, 일명 변덕이라고 불리는 80점의 판화 앞에 섰다. 첫 시작은 실크 헬멧을 쓴 약간 젠체하는 듯한 고야의 <자화상>이었다. 정면의 시선이 아닌 옆으로 흘낏 보는 시선. 그 시선에 이끌린 듯 판화들 사이를, 기둥 앞에 몰려 있는 관람객들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돌아다녔다.

날카로운 선과 부드러운 그림자의 절묘한 조화. 아, 이런 게 에칭과 애쿼틴트 기법이로구나. 나쁜 성직자, 음탕한 위정자, 거짓과 모순으로 가득 찬 어리석은 귀족, 꿈을 꾸는 허영에 찬 젊은 여인, 그 허영에 사로잡힌 남자 등과 같은 당대의 현실적인 인물들이 가득한 판화들. 빗자루를 타고 날아오르는 마녀나 흉측한 외모의 악마, 당나귀, 원숭이, 부엉이 등은 독특한 상상과 풍자가 낳은 것이었다.

고야의 시선은 가차 없었다. 그 풍자는 오늘에 적용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음, 관습과 무지, 이기심이 만들어 낸 편견과 부당한 관례들. 판화 옆에 있는 깨알 같은 글씨를 읽느라 애를 먹었지만, 그 판화들이 나의 관람 목적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시간을 잊기 위한 게 아니라 시대를 기억하기 위한, 꿈속에 잠기는 게 아니라 잘못된 꿈을 일깨우기 위한 그림들이었다.

고야에 대한 진지한 관심은 전시장 밖으로 나온 뒤에 시작되었다. 거장의 세계는 큰 산맥처럼 여러 개의 봉우리를 안고 있어서일까? 도서관에서 빌려온 여러 권의 책을 읽어도 고야는 여전히 뿌연 안개 속에 있었다.

고야, <카를로스 4세의 가족> 고야가 자신을 왕실 초상화가로 임명해 준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을 초상화에 담은 그림이다. 고야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염두에 두고 이 그림을 그렸는데 훈장에서부터 의상까지 빛으로 감싸듯 표현하여 부와 권력의 화려함과 우아함을 묘사했다. 반면에 왕과 왕비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무능과 권태 등이 보인다거나 왕과 왕비 사이가 떨어져 있는 사이가 왕비의 정부 자리라는 등의 다양한 해석이 있다. 고야 또한 왕실 가족 뒤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고야, <카를로스 4세의 가족>고야가 자신을 왕실 초상화가로 임명해 준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을 초상화에 담은 그림이다. 고야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염두에 두고 이 그림을 그렸는데 훈장에서부터 의상까지 빛으로 감싸듯 표현하여 부와 권력의 화려함과 우아함을 묘사했다. 반면에 왕과 왕비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무능과 권태 등이 보인다거나 왕과 왕비 사이가 떨어져 있는 사이가 왕비의 정부 자리라는 등의 다양한 해석이 있다. 고야 또한 왕실 가족 뒤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 위키미디어 공용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두 개의 대조적인 세계 때문이었다. 시골 출신인 그가 40세에 뚫고 들어간 스페인 궁정 화가 자리. 초상화 한 점 값으로 노동자가 평생 벌어도 얻지 못할 돈을 받은 덕에 화려해진 화가의 생활. 이 세계에 속하는 그림으로는 종교재판까지 받았던 <옷을 입은 마하> <옷을 벗은 마하>도 있고, 그를 왕실 초상화가로 임명했던 <카를로스 4세의 가족>도 있고, 그와 염문설이 있던 당대 최고의 귀족 <알바 공작 부인>의 전신 초상화도 있다.

반면에 전혀 다른 세계가 있었다. 거지, 정신병자, 죄수, 불구, 사기꾼, 창녀, 게으름뱅이로 이루어진 최하층 밑바닥의 세계. 종교재판이나 전쟁 시기의 어둡고 잔혹한 진실을 섬뜩하게 보여주는 세계. <카프리초스> <전쟁의 참화> <어리석음>이라는 판화집이다. 그 세계는 1792년 여행 중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으로 인한 청력 상실 이후에 찾아왔다. 소리를 통한 세상과의 유대가 단절된 후 현실의 어두운 세계는 더욱 또렷이 보였던 것일까?

청력을 잃기 직전, 1792년 마드리드의 왕립 아카데미 연설에서 그는 "회화에는 규칙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이것은 당시 아카데미가 고수해 왔던 전통과 규칙이라는 예술적 도그마의 토대를 일시에 무너뜨리는 말이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겠다는 예술의 자유 정신을 주장하는 선언. 이것이야말로 고야의 힘이 아니었을까? 그 힘이 <옷을 벗은 마하>에서 최초로 여자의 나체화를 정면에서 바라보는 당당한 시선으로 그려냈고, 그 힘이 <카를로스 4세 가족> 초상화에서 왕실 가족의 허위와 무능과 권태 그리고 몰락 직전 쇠퇴의 기미를 은밀히 담아냈을 것이다.

성공과 불행까지 두루 겪은 화가

종교재판이 횡행하는 시대를 비판하는 판화집에 '카프리초스'라는 제목을 붙인 까닭은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종교재판을 피하기 위해서였을지 모른다. 밀로시 포르만 감독의 영화 <고야의 유령>은 상인의 딸 이네스라는 허구의 인물을 통해 당시 스페인에서 종교재판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보여준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교도로 몰아세우고 고문을 통해 기어코 거짓 자백을 받아낸 종교재판소. 없는 죄를 만들어 내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익숙하지 않은가? 종교재판 시대 성직자의 모습이나 정치권력과 결탁했던 우리 사법부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잘못된 제도의 수행자 탓에 한 선량한 인생이 철저히 파괴된다는 것도.

종교재판은 프랑스 군대의 진입과 함께 문을 닫게 되지만, 자유와 진보를 표방한 나폴레옹의 군대 또한 잔혹한 침략자일 뿐이었다. 나폴레옹의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가 왕이 되어 스페인을 다스린 5년 6개월. 그 기간에 스페인 민중의 저항은 격렬했다. 스페인 게릴라전의 전통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이 시기를 그린 두 개의 유명한 그림, <1808년 5월 2일>과 <1808년 5월 3일>은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다. 전자가 시민군의 격렬한 저항을 담아냈다면 후자가 담고 있는 것은 그 시민군에 총을 겨누는 비정한 프랑스군의 모습. 두 그림 모두 전쟁의 어두운 면을 담아냈다는 점에서는 같다. 스페인 시민군을 향한 그 총구가 한때 열렬한 환호를 받았던 계몽사상의 본거지인 프랑스 군대의 총구라는 점이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카프리초스 43번 그림을 다시 한번 보자. 잠자는 남자 뒤로 날개를 퍼덕이는 올빼미, 박쥐 등은 불길한 새들일까? 혹시 그 새들은 청력을 잃은 고야의 어두운 상상력은 아닐까? 올더스 헉슬리는 이것을 "이성의 꿈은 괴물을 낳는다"고 해석한다. 이성 또한 괴물을 낳을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떻게 해석하든 고야의 <카프리초스> 판화집은 언제든 괴물로 돌변할 수 있는 인간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고야, <자식을 잡아 먹는 사투르누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티탄 신 크로노스. 로마인들은 그를 사투르누스라고 불렀는데, 가이아의 예언에 따라 자신의 자식 중 하나가 자신을 타도할 것을 두려워하여 자식 중 하나를 먹었다고 한다. 원래 이 작품은 고야가 1820년과 1823년 사이에 자신의 집(귀머거리의 집) 벽에 직접 그린 14개의 이른바 <검은 그림> 중 하나다. 1층 입구 정면에서 왼쪽 벽에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고야가 죽은 후 이 작품은 캔버스로 옮겨져 현재는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야, <자식을 잡아 먹는 사투르누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티탄 신 크로노스. 로마인들은 그를 사투르누스라고 불렀는데, 가이아의 예언에 따라 자신의 자식 중 하나가 자신을 타도할 것을 두려워하여 자식 중 하나를 먹었다고 한다. 원래 이 작품은 고야가 1820년과 1823년 사이에 자신의 집(귀머거리의 집) 벽에 직접 그린 14개의 이른바 <검은 그림> 중 하나다. 1층 입구 정면에서 왼쪽 벽에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고야가 죽은 후 이 작품은 캔버스로 옮겨져 현재는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 위키미디어 공용

에두아르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을 들어본다. 제목만 교향곡이고 실제로는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5악장의 협주곡에 가까운 곡. 귀가 들리지 않는 고야에게 가 닿을 수는 없겠지만 그 안에 담긴 바이올린의 선율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말년에 그가 은둔했던 집 벽면에 그렸던 어두운 그림들을 보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었던 것 같다. 세속적 성공의 꼭대기와 개인적 불행, 종교재판의 위협과 전쟁 참화의 밑바닥, 그리고 왕정의 흥망성쇠를 가까이에서 두루 겪은 화가에게 중요했던 것은, 사투르누스가 벌린 입안의 어둠 속에서 찢겨나가고 있는 자식의 붉은 살점 같은 진실, 그 참혹한 진실이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페이스북에도 실립니다.


#고야의카프리초스#이성이잠들면괴물이깨어난다#고야의전쟁의참화#고야의그림세계#자식을잡아먹는사투르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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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박형숙 소설가의 촉

소설가. 창작집 3권, 엔솔로지 2권을 냈다. 여성주의 논문을 썼다. 중학교에서 국어를, 대학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쳤다. 지금은 전업 작가. 내가 생각하는 문학과 예술은? 아름다움, 새로움, 그리고 성찰. 궁극적으로는 보다 많은 이들이 향유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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