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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바라기(6월 전경) 지금은 해바라기가 다 지고 없다. 내년엔 온 밭의 가장자리에 해바라기를 심겠다는 아버지의 목표
아버지의 해바라기(6월 전경)지금은 해바라기가 다 지고 없다. 내년엔 온 밭의 가장자리에 해바라기를 심겠다는 아버지의 목표 ⓒ 김희

"요놈들 좀 봐라. 하하. 어째 여길 들어갔을꼬…."

밭일하던 어느 날, 엄마가 황급히 남편과 나를 부르셨다. 무슨 일인가 하고 가보니 참새 두 마리가 해바라기에 씌운 양파망 속에 갇혀 파닥거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유난히 해바라기를 좋아하신다. 우리 밭 둘레를 전부 해바라기를 심고 싶은데 올해는 씨가 부족해 일부만 심은 걸 두고 영 마음에 걸려하셨다. 내년에는 꼭 밭 전체를 해바라기로 가득 채워 노란 물결을 보겠다는 게 아버지의 야심 찬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선 올해 잘 핀 해바라기에서 씨를 수확해야 한다.

진작부터 아버지는 새들로부터 씨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촘촘한 초록색 양파망까지 씌워 매일매일 확인하면서 애지중지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틈새를 뚫고 들어갔는지 참새 두 놈이 결국 사고를 쳤고, 현장을 엄마가 목격한 것이었다. 양파망 속에 갇힌 두 녀석을 한참 쳐다보다 양파망을 벗겨 주니 휑하니 날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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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은인도 몰라보다니…. 다음에 오면 국물도 없어."

우리 밭 주변은 대부분이 논농사를 짓는다. 들녘 가운데 밭이 있으니 주변 새들에게 소문이 난 모양이다. 밭일하다 고개를 들면 전봇대 사이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꼭 우리가 일하는 걸 지켜보고 있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실 밭농사는 시기별로, 새들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작물이 있다.

깨단 비를 맞으면 안되니 실내에 깨단을 만들고, 선풍기로 바람을 쏘여 주고 있다.
깨단비를 맞으면 안되니 실내에 깨단을 만들고, 선풍기로 바람을 쏘여 주고 있다. ⓒ 김희

이번에 지켜야 할 작물은 '참깨'다. 팔순의 엄마가 밭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는 이제 2년째다. (관련기사: 엄마의 놀이터..."여기서 5년만 즐겁게 지내다 갈란다") 평생 살면서 내 땅에서 농사짓기를 소원하던 엄마는 농사를 지으며 하나둘씩 목표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는 농사짓는 첫해로 밭에서 나오는 수확물을 이웃과 나누는 즐거움이 전부였다면 올해는 목표가 뚜렷하다.

사실 이번 목표는 고소하기까지 하다. 바로 100% 국산 참깨로 참기름을 짜서 먹어보는 것이다.

"너희한테 가는 참기름이 그게 중국산 깨야. 이번엔 진짜 국산 참기름 먹어보자."

엄마의 진짜 속내는 자식들에게 국산 참깨로 참기름을 짜 주고 싶은 것이었다.

밭일을 나오면 엄마는 항상 참깨 심은 데를 가장 먼저 돌아보셨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 하얀 참깨꽃을 피우고 통통하게 꼬투리들이 줄기마다 꼭꼭 들이찬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전깃줄에 앉은 새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 아무리 봐도 새들의 숫자가 늘어난 것 같았다. 해바라기 망까지 들어온 요 녀석들을 대적하려면 우리도 그냥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노릇이었다.

호시탐탐 전깃줄 위에서 참깨가 익기를 기다리는 새들과 우리의 밀당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밭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아 우리는 작물을 심고 수확하기까지 과정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참깨를 새들로부터 안전하게 지켜내기 위해 수확시기 정보를 찾아본 결과 맨 아래쪽 꼬투리가 1~2개 벌어지기 시작할 때가 적기라고 했다. 윗부분이 아직 초록색으로 덮여 익지 않아 보이지만 잘린 줄기와 잎이 마르면서 윗부분 꼬투리로 영양분이 이동해 후숙이 된다고 했다. 며칠 후면 아래쪽부터 위쪽까지 차례대로 노랗게 색깔이 변하면서 입을 벌린다는 신기한 자연의 법칙을 또 하나 배운 것이다.

깨단 비를 맞으면 안되니 실내에 깨단을 널어두었다.
깨단비를 맞으면 안되니 실내에 깨단을 널어두었다. ⓒ 김희

여러 날을 참깨 아랫부분만 쳐다보던 지난 12일, 드디어 참깨를 베어 수확하기로 했다. 전깃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새들보다 우리가 한발 빨랐다. 서둘러 베고 보니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아랫부분 꼬투리들이 1~2개씩 벌어져 있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저 전깃줄 위 새들이 다 먹어 치웠을 거다. 하마터면 자식들에게 국산 참기름 맛을 보여주겠다던 팔순 엄마의 야심 찬 목표가 말뿐으로 끝날 뻔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참깨는 베고 나서 눕혀두면 안 된다고 했다. 줄기 속 영양분이 위로 올라가 윗부분 꼬투리를 마저 익혀야 하는데 눕혀두면 영양분이 위로 올라가지 못해 위 꼬투리 속 알갱이가 쭉정이가 되거나 흙바닥의 습기 때문에 썩는다고 했다. 그리고 참깨는 알갱이가 워낙 작아서 흙바닥에 그냥 두면 쏟아졌을 때 주워 담을 수 없없어서 바닥에 깨끗한 비닐이나 천막을 깔아야 한다고도 했다. 우리는 찾아본 정보대로 참깨를 베어 바닥에 천막을 깔고 작은 다발처럼 묶어 깨단을 만들어 세웠다. 새들로부터 보호한 엄마의 소중한 참깨알갱이 한 톨이라도 헛되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담아 일을 하니 고되지도 않았다.

이제 열흘 정도 후 참깨들은 저절로 입을 벌리고 깨끗이 깔아둔 천막 위로 '도도독 도도독' 소리 내며 쏟아질 것이다. 엄마는 그 소리가 마냥 즐거워 큰 함박웃음을 지을게 분명하다. 다가오는 이번 추석, 엄마는 그렇게 원하던 '100% 국산 참기름'을 외지에 있는 자식들에게 한 병씩 선물할 거다.

전깃줄 위 참새부대로부터 지켜낸 참깨, 올 추석 우리 집 주방은 그렇게 하사받은 참기름 한 병으로 그 어느 때보다 고소한 냄새가 퍼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참깨농사#국산참깨#국산참기름#엄마의목표#엄마의밭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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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 (noheene) 내방

길었던 직장생활을 끝내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글로 써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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