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에서 배달 앱으로 주문 후 소주 한 잔을 곁들여 저녁을 먹는 일은 이제 많은 이들에게 소소한 일상이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외식 문화가 집 안으로 들어왔고, 음식과 주류를 함께 주문하는 배달 서비스 역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배달 앱을 이용하며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끼게 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류를 주문하면 배달 라이더가 직접 초인종을 누르고 신분증을 확인한 뒤 서명까지 받는 과정이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나이가 지긋이 들어 보이는 이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신분증을 꺼내 보이고 서명까지 마치는 절차는 다소 번거로웠지만, 청소년 보호를 위한 당연한 법적 과정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철저했던 절차가 슬그머니 사라지기 시작했다. 주류를 주문했음에도 초인종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문 밖에서 인기척이 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보면, '문앞 배달'이 이미 끝나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에는 문 앞에 놓인 음식 사진과 함께 "배송이 완료되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문자가 도착해 있을 뿐이다.
물론 필자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경험한 몇 차례의 사례만으로 모든 배달 현장이 이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행 청소년보호법과 배달 플랫폼들의 약관상 주류 전달 시 라이더가 실물 신분증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지침은 여전히 명확하게 존재한다. 제도와 규정은 그대로인데, 정작 배달 현장에서는 성인 인증 절차가 너무나 쉽게 배제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현장 라이더들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건당 수수료로 소득이 결정되는 배달 노동자에게 대면 확인과 서명에 소요되는 몇 분은 곧바로 수익 차질로 이어진다. 게다가 법적 단속 권한이 없는 민간 라이더가 고객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가 불필요한 실랑이나 불만을 사게 되는 상황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배달앱 화면엔 분명히 적힌 "신분증 확인" 그러나 현실은 문 앞 비대면 배송이 빈번 ⓒ 최호림
사실 비대면 배달 서비스를 처음 접했을 땐 그저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이 편리함이 당연해질 무렵, 문득 과거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려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연상되며 우려가 엄습했다. 어떤 편의점은 신분증을 꼼꼼하게 확인해 청소년의 담배 구매를 철저히 차단하는 반면, 확인이 허술한 곳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담배를 구하기 쉬운 '성지'로 통한다. 신분증 확인이라는 기본 원칙의 이행 여부가 청소년에게 완전히 다른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배달 앱을 통한 주류 주문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물론 현장의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요즘처럼 살인적인 폭염 속에서 수많은 물량을 처리해야 하는 라이더가 현관 앞에서 매번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비대면 배달 서비스가 악용되어 청소년의 주류 구매로 이어진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현장 검수의 어려움을 이유로 기본 원칙이 흔들리고있다면 배달 앱 역시 청소년에게 술을 쉽게 건네는 또 하나의 '허술한 통로'가 될 수밖에 없다.
편리함 이면 뒤에 숨겨진 걱정스러움
최근 필자는 자주 이용하던 동네 대형 마트가 새단장을 하며 영업을 잠시 중단하자 배달의민족 B마트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생필품과 식자재는 물론 주류까지 주문할 수 있고, 빠르면 한 시간 안에 배송되는 편리함 때문에 어느새 이 배달 플랫폼을 이용하는 일이 많아졌다. 거기다 일반적인 소주나 맥주뿐 아니라 다양한 증류주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솔깃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바로 그 편리함 뒤에 있다. 필자가 실제로 경험한 B마트 배송에서는 '문 앞 비대면 배송'을 요청하자 주류가 다른 물품과 함께 문 앞에 그냥 놓였다. 별도의 신분증 확인은 없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필자가 거주하는 지역의 경험만으로 모든 주류 배달 현장이 이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를 그저 '어쩌다 발생하는 일'로 치부하기엔 부모의 불안이 너무나 크다.
만약 내 아이가 부모의 배달 앱 계정을 도용해 술을 시키고 '문 앞 배송'을 요청한 뒤, 배달이 완료되자마자 술을 가져가 친구들과 몰래 마신다고 생각해보라.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다면 그 어떤 부모라도 아찔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언제까지 라이더 개인 양심이나 수고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이제는 모바일 본인인증 강화와 현장 가이드라인 정비 등 제도의 실효성을 점검하고, 현장과 제도 사이의 간극을 메울 실질적인 대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맛있게 드세요" 문자와 함께 문 앞에 덩그러니... '주류'도 예외 없는 비대면 배송 ⓒ 최호림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빠르고 편리한 것'은 당연한 가치가 됐다. 주문한 음식은 기다림이 무색할 만큼 빠르게 도착하고, 생수와 같은 무거운 생필품과 기호품인 주류도 문 앞까지 배달된다. 이러한 편리함이 삶을 윤택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안전'과 '원칙'까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책임의 주체다. 고객과 최종 접점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현장의 배달기사 개인에게만 이 모든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폭염 속에서 숨 가쁘게 움직이는 라이더에게만 엄격한 확인 절차의 부담을 지우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이는 배달 플랫폼과 판매업체, 그리고 제도적 시스템이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경기도지사 시절, 배달 앱 시장의 독과점 문제에 맞서 공공배달 앱을 추진하는 등 플랫폼의 공정성과 소비자 편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 바 있다. 이제는 배달 서비스가 일상 깊숙이 자리 잡으며 생겨난 청소년 보호의 사각지대 해소와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도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
특히 국민 세금이 투입된 지자체 공공배달 앱이 선제적으로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 모바일 신분증 검증과 대면 수령 원칙을 가장 먼저 도입해 청소년 보호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공공이 세운 안전한 기준을 민간 대형 플랫폼이 따라오게 만드는 선순환 구조야말로 진정한 공공성의 발현이다.이제 일상으로 자리 잡은 배달 서비스에서 기술과 제도의 지향점은 '속도'를 넘어 '안전'으로 옮겨가야 한다. 최소한의 성인 인증에 의존하는 배달앱의 현행 주류 배달은 청소년이 술에 손댈 수 있는 가장 취약한 지점이다.
부디 어른들의 편의 때문에 아이들을 위험으로 내몰지 않아야 한다. 소비자의 편의성과 청소년 보호라는 안전성을 모두 갖춘 주류 배송 프로세스의 고도화에 조속히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