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을 해야 아프지 않다

찌는 더위는 오늘도 신이 났다. 무더위를 가득 안은 안개가 산 위부터 내려왔다. 창문을 열자 더위가 확 달아오른다. 오늘을 어떻게 버텨야 할까? 시골에 살면서도 더위에 몸을 가누기 힘든 여름이다. 얼른 일어나 잔디밭으로 나가자 아내는 벌써 풀을 뽑고 있다. 웬일이냐는 말에, 일을 해야 더위를 잊을 수 있단다. 맞다. 아내의 말이 맞다. 오래전, 일을 해야지 아프지 않다는 어머님의 말이 실감 나는 아침이다.

 무더운 여름은 인간의 삶과 함께 한다. 갖가지 곡식을 영글게 하며, 꽃을 피우고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도 한다. 여름날에 아름다운 비비추가 활짝피어 더위를 잊게한다.
무더운 여름은 인간의 삶과 함께 한다. 갖가지 곡식을 영글게 하며, 꽃을 피우고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도 한다. 여름날에 아름다운 비비추가 활짝피어 더위를 잊게한다. ⓒ 박희종

무더위 속에 하는 일 없으면 더위만 느끼게 되고, 아픈 것만 생각난다. 길지 않은 세월을 살아보니 어머님의 말씀이 맞았다. 어머님의 말씀, 병이 낫는 것은 아니지만 아픔을 잊게 된다는 것을 오랜 세월이 지나고야 알았다. 거침없이 흘러간 세월은 어느새 어머님의 세월이 되었고, 일 하면서 더위도 잊고 아픔을 잊으려 운동에 전념인 삶이 된 지 오래다.

아내와 풀을 뽑으며 생각, 어디로든 여행을 가봐야겠다. 더워도 너무 더운 이 여름 날씨를 어떻게 잊어볼까 두렵기도 해서다. 에어컨이 주는 바람과 자연이 주는 바람은 다르다. 날카로운 에어컨 바람이 싫어 가능하면 피하는 삶이다. 강제적 바람을 외면하고 자연바람을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이다. 아침을 먹고 여행길에 올랐다. 어느 곳으로 가야 할까는 시내를 벗어나기 전에 결정하면 된다.

더위를 잊으려는 여행길

AD
여행길이 결정되었다. 서해안 길을 택하기로 했다. 우선은 서해안에서 실패한 게국지 맛을 찾아보고, 간월도를 찾기로 한 것이다. 청주에서 140여 킬로를 가야 한다지만, 언제나 운전은 신나는 스포츠다. 가느라 신이 나고 오느라 고단하지만, 아직은 운전을 즐거워하는 고희의 청춘이다. 더위를 잊으려 떠나는 여행길, 왜 서해안을 생각했을까? 먹거리와 볼거리가 풍부하지만, 호젓한 간월암을 보고 싶어서다.

시골길이 아닌 고속도로를 택하기로 했다. 더위를 피해 얼른 돌아오길 바라면서 들어선 고속도로 휴게소, 여기에도 볼거리가 많아 좋다. 간단한 주전부리감도 있고, 다양한 삶이 담긴 물건들을 구경할 수 있어 좋다. 핸드폰 거치대, 칼갈이, 신발 등 보이는데, 이번엔 무슨 물건이 새로 나왔을까 늘, 궁금하다. 사지 않아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이것저것 찾아보는 재미가 고속도로에 있어서다. 순식간에 홍성을 지나 도착한 서산간척지 AB지구다.

서산간척지를 찾아가면 늘 생각하게 되는 정주영 회장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의 푸르름에 평화가 찾아왔다. 출렁이는 벼가 새들과 어울리는 풍경은 구경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하다. 마침 바닷물이 나가고 드넓은 서해안이 몸을 드러냈다. 물이 빠진 드넓은 뻘밭이 부자가 된듯하고, 바다가 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준다.

게국지의 맛은 그럴듯했다

AB지구를 지나면서의 생각은 어디에서 게국지 맛을 볼까였다. 서해안을 찾으며 만났던 게국지, 많은 실패를 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서산 재래시장에서 만났던 게국지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맛이었다. 게국지 속 묵은지가 주는 맛은 구수하면서도 맛깔스러웠다. 묵직하면서 느긋한 맛, 게와 어우러진 묵은지가 주는 맛에 깜짝 놀랐다. 서해안에 올 때마다 기다린 서산 재래시장 게국지 맛을 오늘은 실패 없는 맛을 기대하며 길을 서두른다.

서해안 밥상 서해안 여행길에 만난 게국지다. 시원함에 구수함까지 배어난 맛은 서해를 안고 오는 기분이었다. 오랫만에 만난 게국지 맛은 무더운 여름을 잊게 하는 시원함이었다.
서해안 밥상서해안 여행길에 만난 게국지다. 시원함에 구수함까지 배어난 맛은 서해를 안고 오는 기분이었다. 오랫만에 만난 게국지 맛은 무더운 여름을 잊게 하는 시원함이었다. ⓒ 박희종

게국지는 서산과 태안 지방의 향토음식이었다. 곰삭은 간장게장을 빻아 배추, 무등의 야채와 버무려 숙성시킨 것이었는데, 여기에 얼갈이배추 또는 봄동이나 늙은 호박 등을 넣어 끓여 낸 것이 오늘날의 게국지란다. AB지구를 지나 안면도를 향하는 도로, 반대방향에 위치한 게국지 맛은 달랐다. 아내가 찾아낸 게국지의 맛은 몇 번의 실패를 만회하기에 충분했다. 묵은지가 주는 구수함에 묵직한 맛은 더위를 잊고 가기에 충분했다.

서해안 나들이에서 실패했던 게국지 맛을 만회했으니 여행길이 가벼워졌다. 여행목적을 달성했으니, 간월도를 찾기로 했다. 간월도에도 더위는 가득했다. 더운 날씨 때문인지 한산했고, 언제나 붐비던 굴밥집도 썰렁하긴 마찬가지였다. 무더위는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고, 움직이기 힘들게 했나 보다. 한산한 여행길, 서해안나들이에 간월도를 지나치면 늘 서운했다. 단순함에 소박함을 안고 있는 간월암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상점들은 한산했지만, 드넓은 뻘밭에서 할머니들의 손놀림은 쉼이 없었다. 따가운 햇빛이 내리쬐는 뻘밭에서 자그마한 점들이 움직이고 있다. 할머니들이 자연 굴을 따고 있는 모습이다. 엄청난 더위를 수건 한 장으로 가리고 손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간월도의 맛깔난 어리국젖을 만들어내는 엄청난 일꾼들이 오늘도 쉼이 없는 몸놀림이다.

간월암 오르는 길 무더위 속에 찾은 간월암은 한산했다. 바닷바람만 오가는 절집은 소박했고, 물이 빠진 뻘밭엔 할머니들의 손놀림만 있다. 더위를 잊고 아픔을 이기기위해 일을 하던 오래전의 어머님이 생각나게 하는 할머니들이었다.
간월암 오르는 길무더위 속에 찾은 간월암은 한산했다. 바닷바람만 오가는 절집은 소박했고, 물이 빠진 뻘밭엔 할머니들의 손놀림만 있다. 더위를 잊고 아픔을 이기기위해 일을 하던 오래전의 어머님이 생각나게 하는 할머니들이었다. ⓒ 박희종

단순한 삶이 그리웠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간월암 주변은 무미건조했다. 절집으로 들어서는 바닷가도 물이 말랐고, 소박한 절집엔 따가운 햇살만 가득하다. 더위를 피해 온 몇 명의 여행객들도 응달에 모여있다. 마침 시원한 바닷바람이 시원한 바람으로 응답을 한다. 정말 시원했다.

몸을 식히고 부처님께 절을 하고 싶어 들어선 법당, 몇 사람의 여행객들이 보이는데 세월은 소박한 절집도 변하게 했다. 부처님 앞에 스마트 불전함이 놓여 있고, 불전함 사용법을 상세하게 붙여 놓았다. 소박한 무학대사의 간월암도 세월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부처님께 절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하다. 순간의 생각, 나는 어떤 죄를 지었을까? 얼른 머리를 털어내고 시선을 멀리 던져본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듯한 간월암, 언제나 간소하고 소박함을 보여줌에 좋아하는 절집이다. 절집이 심플하고, 차려짐이 소박해 여행길이면 찾아가는 간월암이다. 더위를 피해 찾아 나섰던 간월암은 말이 없다. 무언으로 모든 것을 알려주는 듯한 절집, 찌는 듯한 더위는 사람에게 말도 잊게 했나 보다. 말없이 오고 가는 사람들도 건조해 보였다. 시원한 바닷바람만이 간월도를 오고 간다. 간월암,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라는 명제를 보는 듯해 마음이 뜨끔하다.

바닷바람을 맞이하며 나오는 간월도, 아직도 뻘밭에서 할머니들의 손놀림은 끊임이 없다. 더위 속에 굴을 캐는 할머니들, 더위와 아픔을 잊기 위해 하는 몸놀림은 아닐까? 오래전 어머니의 말씀처럼 더위에 숨어 있으면 더위가 괴롭히고 아픔만 찾아 오리니, 맛깔난 어리굴젓을 담기 위한 분주한 몸놀림인가 보다.

더위를 잊으려 찾아갔던 서해안 나들이 길, 소박한 삶을 되뇌며 돌아오는 길은 더위를 잊기에 충분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에 게재되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브런치에도 게재될 수 있음.


#여름#여행#서해안#게국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난 늙을 줄 몰랐다

박희종 (ko4246) 내방

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