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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격차
교육격차 ⓒ 김대성(AI활용)

교육은 국가의 미래다. 너무 익숙한 말이라 우리는 때때로 그 무게를 잊는다. 국가의 경쟁력을 경제력과 국방력으로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 힘을 만들어 내는 것은 사람이다. 사회 각 분야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가, 사회적 위기 앞에서 시민들이 함께 판단하고 협력할 수 있는가. 그 출발에는 결국 교육이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논의를 단순한 '돈 나누기' 문제로 보아서는 안 된다. 교육부는 2026년 7월 21일 "구체적인 개편 내용은 결정된 바 없다"고 설명했다. 개편 논의 자체를 금기시할 필요는 없다. 재정은 국민의 세금인 만큼 효율성과 책임성을 따져야 한다. 다만 재정의 효율성을 논하기에 앞서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학생이 줄어들면 교육에 필요한 돈도 같은 비율로 줄어드는가?

현행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르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재원에는 내국세 총액의 20.79%가 포함된다. 이 법이 지방교육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도록 한 이유도 분명하다. 법의 목적 자체가 '교육의 균형 있는 발전'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줄었으니 돈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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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수 감소는 분명한 현실이다. 그러나 학생 수와 교육비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 600명인 학교가 300명이 됐다고 건물을 절반만 난방할 수는 없다. 농산어촌의 작은 학교에도 교사와 급식, 돌봄, 상담, 특수교육,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인력과 시설은 필요하다. 다시 말해 학생 수가 줄었다고 학교를 유지하는 기본비용까지 같은 비율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 학교의 역할을 생각하면 이야기는 더 복잡해진다. 지금의 학교는 과거처럼 교과 수업만 하는 곳이 아니다. 기초학력, 특수교육, 상담과 정서지원, 늘봄·돌봄, 교육복지, 다문화학생 지원까지 역할이 확대됐다. 학생 수는 줄고 있지만 학교가 책임져야 하는 교육적·사회적 기능은 오히려 커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저출생 시대의 교육재정을 단순히 학생 수의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우리는 늘 "아이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말은 예산에서도 증명돼야 한다. 아이가 줄었으니 투자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아이 수가 줄어들수록 한 명도 놓치지 않는 교육으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 저출생 시대 교육의 방향이어야 한다.

공교육이 약해지면 격차는 부모의 지갑을 따라간다

특히 내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논의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교육격차다. 교육재정의 변화는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공교육 재정이 줄어들 때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가정은 학원과 과외, 온라인 콘텐츠, 체험활동과 디지털 기기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아이에게 학교는 사실상 마지막 교육 안전망이다. 그래서 공교육의 약화는 단순히 학교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가정의 경제력에 따른 교육격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가데이터처가 2026년 3월 발표한 '2025년 초중고 사교육비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중·고교 사교육비 총액은 약 27조 5천억 원, 전체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5만 8천 원이었다. 사교육 참여학생만 놓고 보면 월평균 60만4천 원이었다.

가정 배경에 따른 학업 격차도 적지 않다. OECD 'PISA 2022'에서는 한국의 사회경제적 상위 25% 학생과 하위 25% 학생 사이에 수학 성취도에서 뚜렷한 격차가 확인됐다. 가정의 경제·사회적 여건이 교육 성취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이미 가정 배경에 따른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공교육마저 약해지면 격차는 더욱 커질 수 있다. 부모의 경제력이 만든 차이에 아이가 사는 지역과 다니는 학교의 차이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신도시의 새 학교와 오래된 원도심 학교, 대도시와 농산어촌의 작은 학교, 충분한 디지털 환경을 갖춘 학교와 그렇지 못한 학교의 차이를 시장에만 맡겨둘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교육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부모의 경제력과 거주지역이 만들어 낸 차이가 아이의 운명이 되지 않도록 완충하는 것이다.

그 역할마저 약해진다면 교육격차는 학교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교육격차가 다시 소득과 사회적 지위의 차이로 이어지고, 다음 세대에까지 반복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교육격차는 사회격차를 재생산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가장 먼저 어려워지는 아이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교육재정이 줄어들 때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학생은 누구일까? 당장 국어와 수학 수업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기초학력 지원, 상담, 특수교육 지원인력, 교육복지, 취약계층 프로그램, 체험교육, 노후시설 개선처럼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한 영역부터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가정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학생보다 학교가 한 번 더 손을 내밀어야 하는 학생에게 재정의 충격이 더 크게 전달될 수 있다. 교육재정을 교육복지와 교육기회의 문제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헌법 제31조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의무교육을 무상으로 한다고 명시한다. 교육재정은 단순한 학교 운영비가 아니라 이 권리를 현실에서 가능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물론 고등교육과 평생교육에 대한 투자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그 필요성을 이유로 초·중등교육과 재원을 놓고 경쟁시키는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 고등교육에 필요한 재원은 국가가 책임 있게 마련하고, 대학의 재정운영 투명성과 성과를 철저히 따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육의 한 영역을 살리기 위해 다른 영역의 안정적인 재원을 흔드는 방식은 교육계 내부의 불필요한 갈등만 키울 수 있다.

문제는 교부금이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다

그렇다고 현재의 지방교육재정을 무조건 그대로 두자는 뜻은 아니다. 교육재정을 지키자고 주장하려면 교육계 역시 국민 앞에 답해야 할 부분이 있다.

현금성 지원이나 선심성 사업, 보여주기식 행사, 효과가 불분명한 중복 사업이 있다면 과감히 줄여야 한다. 교육부도 2026년 7월 시·도교육청의 현금성 지원사업에 대한 관리 강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를 확보하느냐 못지않게 그 돈을 어떻게 쓰느냐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교부금의 기계적 축소가 아니라 교육재정의 신뢰를 높이는 개혁이다. 시·도교육청은 예산의 사용처와 성과를 더욱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시·도의회 역시 예산 심의와 결산을 통해 선심성·행사성 사업을 걸러내야 한다.

여기에 학부모와 시민의 참여도 중요하다. 교육재정을 교육감과 의회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주민참여예산, 학교운영위원회, 공청회 등을 통해 어떤 예산을 줄이고 어떤 예산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지 결정 과정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재정 운용의 방식 자체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학교시설 개선이나 디지털 인프라처럼 여러 해가 필요한 사업을 매년 '얼마나 집행했느냐'만으로 평가하는 방식이 과연 적절한지도 돌아봐야 한다. 사업의 성격에 따라 2년, 3년, 5년의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성과를 평가하는 방식도 검토할 만하다.
결국 핵심은 분명하다. 낭비를 줄이는 것과 교육투자를 줄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교육재정은 미래의 '종자씨'다

교육재정은 물과 같다. 중요한 것은 물의 양만이 아니라 어디에서 새고 있는지, 정말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그러나 물이 샌다고 수도관 자체를 가늘게 만드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누수를 막고 필요한 곳으로 더 정확하게 흐르게 해야 한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논쟁도 마찬가지다. 이 논쟁의 핵심은 결국 학생이 얼마나 줄었느냐에만 있지 않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느 지역에 살더라도 국가가 아이에게 어디까지 같은 출발선을 보장할 것인가의 문제다.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학교를 열었고, 가난했던 시절에도 교육을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믿었다. 교육의 효과는 오늘 투자해 내년에 곧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10년, 20년 뒤 그 사회의 인재와 시민의 수준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교육재정은 미래를 위한 종자씨다. 당장 살림이 어렵다고 종자씨까지 먹어버리면 오늘의 허기는 잠시 해결할 수 있어도 내일의 수확은 사라진다.

물론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성역이어서는 안 된다. 낭비는 줄이고, 투명성은 높이며, 성과와 책임은 더욱 엄격하게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놓쳐서는 안 될 기준이 있다. 재정개혁의 최종 기준은 재정당국의 장부가 아니라 아이들의 교육기회여야 한다.

경제 논리는 교육재정의 낭비를 바로잡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경제 논리가 아이들이 교육받을 권리의 크기까지 결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20.79%'라는 숫자 자체가 아니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 어느 지역에서 자라더라도, 학교만큼은 아이에게 다시 출발할 기회를 주겠다는 국가의 약속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별의별교육연구소)에도 실립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격차#공교육#교육재정#교육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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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성 (ewwe99) 내방

현장 중심 교육을 고민하는 초등학교 교감이자 교육 칼럼니스트. 교육청 장학사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정책과 학교 현실의 간극을 분석하며, 다양성 교육·교육활동 보호·공교육 회복을 주제로 미래교육의 방향을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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