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용로봇 실습실제61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산업용로봇 직종을 준비하는 학생과 지도교사가 실습실에서 훈련하고 있다. 수백 번의 실패를 통과한 손끝이, 이제 인천의 경기장에서 빛을 볼 차례다. ⓒ 오성훈
제61회 전국 기능 경기 대회를 앞둔 서울로봇고 '산업용로봇' 실습실. 출전을 앞둔 한 학생의 모니터 주변에는 실패한 코딩의 흔적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책상 아래에는 몇 번이고 다시 자르고 다시 물린 전선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얇은 피복을 벗기고 단자를 조이는 일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한 손에는 밴드가 여럿 감겨 있다. 보호장구를 갖춰도 남는, 배선 작업의 흔한 자국이다. 더운 여름방학 내내 실습실을 지킨 아이들의 땀방울이 기어이 메달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 치열했던 계절마저 실패라 부를 수 있는가. 우리에게는 메달이라는 단 하나의 영광 외에,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청춘들을 축복할 언어가 없단 말인가.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실습실에 남기고 가는 것은 매끈하게 완성된 작품만은 아니다. 몇 번이고 다시 쓰고, 연결하고, 분해하고, 조립했던 실패의 흔적들이 작업대 위에 켜켜이 쌓여 있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두껍게 덧바르는 '임파스토(Impasto)' 기법은 그림에 입체감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매끄러운 평면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거친 질감은 시간과 고뇌의 두께를 증명한다. 교육의 캔버스 위에서 아이들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도 성공의 매끄러움이 아니라, 수많은 실패의 두께다.
화려한 금메달 하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그 영광의 이면에 가려진 수십 번의 좌절은 우리 사회가 함께 껴안아야 할 소중한 자양분이다. 실패를 넉넉하게 품어주지 못하는 공동체는 결국 더 나은 기술도, 성숙한 사람도 길러내지 못한다.
기능 경기 대회의 메달 뒤에는 국가가 호명하지 않은 수많은 학생의 탈락이 존재한다. 구조는 냉정하고, 현실은 건조하다. 선수로 뽑힌 학생은 1년을 온전히 실습실에 바치지만, 결과는 단 한 번의 경기로 결정된다.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학교 안팎의 시선은 금세 차가워진다.
"과정보다 메달 색깔로 모든 평가가 결정되는 현실에서 결과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학생과 교사의 몫입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했어도 메달을 따지 못하면 지난 1년의 시간이 실패처럼 취급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 학교 산업용로봇 직종 지도교사의 말은 오래도록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15년여 전의 나를 떠올렸다.
밥솥과 쌀로 버틴 5년
교사 시절, 나는 '정보기술' 직종 기능반(현 전공심화동아리)을 맡았다. 당시 근무하던 학교는 입학 성적으로만 줄을 세우면 맨 뒤에 놓이던 학교였다. 주변에서는 그 아이들이 코딩을 해낼 리 없다며 비웃었다.
첫해는 저녁 먹일 예산조차 없었다. 집에서 밥솥과 쌀을 가져와 아이들 저녁을 지어 먹이며 함께 공부하고 훈련했다. 공부라는 걸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고, 코딩을 위해서도 앞으로의 삶을 위해서도 매일 영어를 함께 공부했다.
기능반 창설 2년 차가 되던 해, 아이들은 지방 기능 경기대회에 나가 이른바 상위권 특성화고들을 모두 물리쳤다. 해마다 성적이 올라 전국 기능 경기대회에서 우수상, 동메달, 은메달을 차례로 목에 걸었다.
다만 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기능반 활동에 매달리느라 다른 교우 관계를 맺을 기회를 놓친다는 것, 그리고 전국 대회에서 끝내 입상하지 못했을 때 그 학생들의 진로였다. 그래서 입상하지 못해도 취업할 수 있도록 교과 공부와 자격증 취득을 함께 챙기는 전략을 세웠다.
추석 명절에도 실습실 불을 밝히던 그 시절은 내 교직 생활 전체를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대회가 가까워질수록 힘겨웠고, 메달을 따지 못할 거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해냈다. 입상하지 못한 아이들조차 보란 듯이 좋은 기업에 취업했다.
그들과는 1년에 두세 번은 만나고 있다. 그중 한 명에게 이번 기사를 쓰며 전화를 걸었다. 전국 대회에서 끝내 입상하지 못했던 학생이지만, 지금은 반도체 검사 장비 회사에서 12년째 일하고 있다.
"기능반 활동을 통해 익힌 코딩으로 회사 일을 자동화하여 처리하고 있어요. 기능뿐만 아니라 영어 공부를 했던 것, 함께 생활하면서 배려했던 것 등이 제 사회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기능반 활동하면서 맺었던 친구와 후배들, 그리고 선생님은 제 인생의 자산입니다. 최소한 전국 대회 출전할 정도면 그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자라 생각합니다. 전국 대회 출전 선수들을 기업체에서 많이 뽑아주면 좋을 것 같아요."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시절 아이들과 교사가 유별나게 강했던 게 아니다. 문제는 정반대였다. 밥솥과 쌀을, 저녁과 주말, 명절을 한 사람이 떠안아야만 겨우 굴러가는 구조였다는 것 자체가 병증이었다.
한 사람의 헌신이 빠지면 곧바로 무너지는 시스템은 애초에 시스템이라 부를 수 없다. 그 헌신이 미담으로 소비되는 사이, 제도는 정작 마련해야 할 예산과 인력과 시간을 마련하지 않아도 됐다. 개인의 희생이 구멍을 메워주는 한, 구조는 스스로를 고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헌신은 때로 구원이 아니라 문제를 더 오래 감추는 방식이 된다.
세월이 흘렀다. 그런 방식은 이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기능반이라는 이름은 기능인재반을 거쳐 지금의 전공심화동아리로 바뀌었지만, 애초에 지속 가능한 구조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시절이었으나, 나에게 좋았다고 해서 다른 이들에게도 강요할 수는 없다. 요즘은 그렇게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려는 교사도, 그 길을 기꺼이 자청하는 학생도 찾기 어렵다. 그리고 그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문 닫는 전공심화동아리, 흔들리는 직업교육의 뿌리
그 부담은 결국 현장을 바꾸고 있다. 한때 기술 명장의 꿈을 품고 전공심화동아리 문을 두드리던 학생들은 점점 줄고 있다. 교사들에게도 기능 경기 지도는 가장 기피하는 업무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
우리 학교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내가 부임한 2024년만 해도 전국 기능 경기 대회를 준비하는 전공심화동아리는 5개 종목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2개 종목만 남았다. 그리고 이번 대회를 끝으로 그중 한 종목마저 지원 학생 부족과 지도교사 확보의 어려움으로 일반 전공동아리로 전환된다. 그 전환 문서의 결재란에 서명할 사람은 다름 아닌 나다. 3년 사이에 5개 종목이 1개 종목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지난 4월, 우리 학교에서 서울시 지방 기능 경기 대회가 열렸다. 경기장을 돌아보던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한국위원회의 한 관계자가 종목이 계속 줄어드는 사정은 잘 알고 있다면서도, 내년에도 우리 학교가 운영 중인 두 종목만은 유지해 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유지하겠다고 말하려면 지도할 교사가 있어야 하고, 지원할 학생이 있어야 하고, 그들이 여름과 주말을 내놓을 이유가 있어야 한다. 교장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교사들을 설득하고, 학교 예산을 조금 더 끌어다 쓰고, 부탁을 거듭하는 것뿐이었다. 정작 필요한 것은 지도교사 정원이었고, 훈련에 쓸 수 있는 시수였고, 해마다 끊기지 않을 예산이었다. 셋 다 학교장의 권한 밖에 있었다.
그가 돌아간 뒤 오래 생각했다. 요청은 학교로 왔는데, 그 요청을 감당할 수단은 학교에 없었다. 종목을 지켜 달라는 말은 있었지만, 무엇으로 지키라는 말은 없었다.
이 변화는 결코 우리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마이스터넷 누리집의 '전국 기능 경기 대회 연도별 종목 및 참가자 현황'을 살펴봤다. 시·도 대표 선수는 2016년 1916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로 돌아섰다. 특히 최근 몇 년은 해마다 줄고 있다. 올해 제61회 대회는 1677명이다. 10년 새 239명, 12.5%가 줄었다. 여덟 명 중 한 명이 사라진 셈이다.
서울은 얼핏 예외처럼 보인다. 2025년 41개 직종 357명에서 2026년 44개 직종 392명으로 규모가 소폭 늘었다. 그러나 애초에 전국 대회 51개 전 종목에 맞춰 서울시가 접수 공고를 낸 것은 465명이었다. 일곱 개 직종은 참가자가 모자라 끝내 열리지 못했고, 목표 인원의 84%만 채워졌다. 그리고 이 392명 가운데 전국 대회 무대에 서는 것은 43개 종목 129명, 셋 중 한 명뿐이다.
그럼에도 전공심화동아리의 감소를 보여주는 국가 차원의 공식 통계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동아리가 하나둘 사라지고, 지방 기능 경기 대회조차 참가자가 부족해 열리지 못하는 직종이 생기고 있다는 현실은 그 어떤 숫자보다 묵직한 증거다. 수십 년 동안 기술 인재를 길러온 토양이 조금씩 메말라가고 있다.
헌신이 메운 자리, 제도가 비운 자리
오는 22일, 우리 아이들은 인천에서 열리는 제61회 전국 기능 경기 대회 경기장에 선다. 누군가는 또 묻게 될 것이다.
"메달, 딸 수 있나요?"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질문보다 먼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동안 정말 수고했다."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럽다."
그러나 이 말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격려는 공짜지만, 구조를 고치는 일에는 값이 매겨지기 때문이다.
밥솥과 쌀로 버틴 그때를 나는 여전히 아름답게 기억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기억은 제도가 되지 못한다. 한 사람의 헌신이 구멍을 메우는 동안, 그 자리에 놓였어야 할 예산과 인력과 시간은 끝내 오지 않았다. 미담은 늘 사람을 칭찬하는 방식으로 구조를 면책한다.
그러니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누가 더 헌신했는가가 아니다. 왜 아직도 헌신이 필요한가이다. 아이들에게 실패를 견디라고 말하기 전에, 어른들이 견디는 것만으로 겨우 굴러가는 이 구조부터 견딜 만한 것으로 바꿔놓아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 이번 인천 대회에서 내게 다시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메달은 아직 모릅니다. 다만 이 아이들이 여기까지 온 길이, 누군가 한 사람의 헌신에 기대지 않고도 다음 학생에게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마지막 편에서는 오는 24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리는 개회식 현장을 찾아 선수와 지도교사, 그리고 처음 이 대회를 마주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