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이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부처 업무보고에서 보고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5일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며 촉발된 대입 개편 논의에는 세 개의 요구가 나란히 놓여 있다.
먼저 국교위는 수능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바꾸고, '서·논술형을 도입'하는 장기적 개편안을 제시했고 올해 공론화를 거쳐 내년 3월 방향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교육단체들이 환영의 입장을 밝히며 '성적 부풀리기'는 막아야 한다는 단서를 덧붙였다.
그런데 이 셋은 함께 성립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서·논술형 전환 논의가 번번이 좌초된 핵심 원인이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고 외면해 왔던 이야기다.
부풀리기를 막으라는 말의 뜻
점수가 위로 몰리는 것을 막겠다는 말은 지금 수준의 줄 세우기 능력을 유지하겠다는 말이다. 줄 세우기 능력이 유지되면 선발 경쟁의 강도도 그대로다. 경쟁의 강도가 그대로면 대비 수요도 그대로다.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목표는 이 문장 하나로 소멸한다. 사교육은 기본적으로 위치재 경쟁 수단이다.
지금 논의되는 것은 절대평가가 아니다. 대학 서열에 필요한 변별력은 그대로 두고 형식만 바꾸자는 것이다. 성취 수준에 도달했는지 확인하는 시험과 순위를 걸러내는 시험은 서로 다른 일을 하는데, 둘을 하나의 시험에 함께 얹어 놓고 이름만 새로 붙인 셈이다.
오해를 막기 위해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자. 절대평가로는 변별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성취기준을 높이고 문제를 어렵게 내면 절대평가에서도 점수는 벌어진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지금 수준의 변별을 유지하라는 요구가 붙는 순간, 등급을 가르는 기준선이 학생의 성취가 아니라 걸러내야 할 인원수에 맞춰 정해진다는 것이다. 무엇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가 아니라 몇 명을 떨어뜨려야 하는지가 기준을 정한다. 이미 절대평가가 도입된 영어가 보여주는 현실이다.
성취평가제가 걸어온 길이 그대로 증거다. 절대평가를 도입해 놓고 A 비율을 들여다보고 목표치를 해마다 낮췄다. 형식은 절대평가였지만 하는 일은 한 번도 상대평가를 벗어나지 않았다.
서·논술형도 마찬가지
![2027학년도 6월 모의평가 실시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열린 지난 6월 4일 서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605/IE003631494_STD.jpg)
▲2027학년도 6월 모의평가 실시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열린 지난 6월 4일 서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연합뉴스
열심히 가르치고 열심히 배웠다면 도달한 학생이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절대평가에서는 그것이 정상적인 결과다.
그런데 지금 논의는 바로 그 결과를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성적 부풀리기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높은 수준'에 도달한 학생이 많아지는 일은 성과가 아니라 실패로 분류된다.
'부풀리기' 방지 장치가 들어가는 순간, 서·논술형은 자기 강점을 잃는다. 잘 쓴 글을 알아보는 기준이 아니라 점수를 벌릴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해진다. 왜 이 학생이 저 학생보다 낮은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므로, 설명 가능한 항목들이 채점표를 채운다.
채점자마다 결과가 달라진다는 인식이 퍼지면 시험 자체가 무너지니 기준은 더 잘게 규정된다. 촘촘하게 줄을 세우라는 요구와 흔들림 없이 채점하라는 요구가 같은 방향으로 밀어붙인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험이 하는 일을 보자. 학생은 글을 쓰고, 그 글은 잘게 나뉜 기준으로 점수가 매겨지며, 그 점수는 다시 등급으로 묶여 대학 배분에 쓰인다. 형식은 바뀌었지만 시험이 맡은 일은 그대로다.
절대평가를 하되 성적은 오르지 말라는 요구가 붙는 한 절대평가는 이름만 절대평가가 되고 서·논술형은 형식만 서·논술형이 된다. 원인은 하나인데 망가지는 자리만 다르다.
모순 없는 주장은 따로 있다
그렇다면 서·논술형 도입을 주장할 방법이 없는가. 있다. 다만 다르게 말해야 한다.
지금 사회구조에서 서·논술형을 도입하면 사교육이 늘고 집안 형편에 따른 격차가 벌어진다. 첨삭은 강사 한 사람이 수백 명을 감당할 수 없는 일대일 노동이라 가격은 구조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아주 급격하게. 이것은 예상 밖의 부작용이 아니라 이 설계가 이미 예정하고 있는 대가다.
그럼에도 학생의 사고력을 제대로 재는 편익이 그 대가보다 크다고 판단한다면, 그렇다고 말하면 된다. 무엇을 더 중요하게 보았는지 밝히는 것이고, 거기에는 적어도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없다.
논쟁은 그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얻을 것은 얻되 치를 값은 치르지 않겠다는 주장, 변별은 그대로 두되 경쟁은 줄이겠다는 주장은 논쟁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반박할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국가가 답해야 할 것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8.11 ⓒ 연합뉴스
서·논술형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섯 개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훈련만으로 종합적 사고력을 기를 수 없다는 진단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성적이 위로 몰리는 것도 막고, 절대평가의 취지도 살리고, 사교육도 줄이고, 사고력도 제대로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거짓말은 그만두어야 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내줘야 한다. 그것이 이 개편의 실제 모습이다.
무엇을 먼저 둘 것인지 밝히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사고력을 제대로 재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면, 그 대신 사교육이 얼마나 늘어날 것으로 보는지, 형편에 따른 격차가 어디까지 벌어지는 것을 감수하기로 했는지, 채점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학생과 학부모가 소송으로 향할 때 그 책임은 누가 지는지를 함께 말해야 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이 길이 낫다고 설득해야 한다. 설득해서 동의를 얻으면 그때부터는 정당한 정책이다. 아무도 그 과정을 건너뛰라고 하지 않았다. 지금은 치를 값은 말하지 않고 얻을 것만 말한다. 그렇게 만든 정책은 정책이 아니라 기우제다. 비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진심이겠지만, 비를 오게 하는 방법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