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삼복더위에는 입에 붙은 밥풀도 무겁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으면 없던 심술도 생길 수 있다. 지난 8일 이른 아침, 포항시 내연산 트레킹 여행. 의성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하다.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를 정도이다. 어찌 된 일인지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 오랜 가뭄으로 비가 오길 기다려서일까. 버스 안에선 들뜬 일행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유미의 노래 '젊음의 노트'가 흐른다. 한참을 달리는가 싶더니 포항 앞바다가 보인다.
내연산 보경사에 이르자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진다. 우산을 꺼낸 사람도 있고, 오랜만에 비가 내려서 인지 그대로 걷는 사람도 있다. 산행 안내도에 따라 보경사를 거쳐 상생폭포 쪽으로 방향을 잡아 선일대로 향한다. 거리는 왕복 6km 정도, 소요 시간은 넉넉하게 3시간을 예상한 듯하다.
내연산 계곡의 풍광

▲관음폭포에서 바라본 비하대와 선일대. ⓒ 김병모
비가 조금씩 내려서일까. 더위가 가시고 산행 발걸음마저 가볍다. 보경사를 지나자 연산폭포가 KBS 1TV 대하드라마 <대왕의 꿈> 촬영지라는 푯말이 보인다. 내연산은 계곡이 깊어 12폭포가 있을 정도로 폭포수가 많다.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내연산 계곡은 조선 선비들의 시서화 소재거리가 되었다.
내연산 계곡 소나무 명상길을 지나 첫 폭포인 상생폭포에 이르자, 예상 밖의 물줄기에 놀란다. 일행들은 청춘이라도 되찾은 듯, 폭포수를 배경으로 젊음의 자세를 취한다. 다음 폭포를 기대하며 발길을 옮기자, 먼저 산행 했던 사람들이 비에 젖은 채 내려온다. 안전하게 산행 하라는 조언까지 아끼지 않는다. 내연산 계곡의 풍광에 젖어서일까. 그들의 표정이 달빛처럼 밝고 여유롭다.
일행은 보현폭포를 지나 비하대(飛下臺)와 선일대 아래로 형성된 관음폭포에 이른다. 명승 제1호로 알려진 소금강이 연상될 정도이다. 폭포 주변 경치가 빼어나 관세음보살이 금방이라도 나타나 중생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줄 것만 같다. 화가 겸재 정선이 관음폭포의 장관을 보고 지나칠 리 없다.
18세기 겸재 정선이 58세에 포항 청하 현감(1733~1734)으로 부임했다. 이듬해 가을 어느 날, 정선은 만사를 접어두고 내연산 12폭포 유람에 나선다. 사실 겸재 정선은 37세가 되던 1712년에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오는 길에 내연산 12폭포를 보았다. 내연산 계곡 경치에 젖은 화가 정선은 이미 진경산수화 화풍으로 '내연삼용추(內延三龍湫)'를 화폭에 담은 바 있다. 그 무렵 겸재 정선은 '내연삼용추' 그림 2점을 더 그린다. 참고로 첫 작품은 리움미술관, 두 번째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 나머지 한 점은 개인 소장품으로 알려진다.
흥미롭게도 겸재 정선은 연산폭포 주변 절벽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그것이 바로 '갑인추 정선(甲寅秋 鄭敾)'이다. 필자 역시 정선의 흔적을 찾아보았지만, 좀처럼 눈에 보이질 않는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서는데 어디선가 "과연 소금강 같은 절경"이란 말이 흘러나온다.
일행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린다. 바위에 낀 이끼가 빗물에 젖어 생기가 돌고, 돌 틈으로 자란 풀들도 비바람에 살랑인다. 생태계 교란 식물인 가시박과 단풍잎돼지풀을 보는 데로 제거해 달라는 표지판도 보인다. 다시 보경사에 이르자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일행을 반긴다. 솔잎들이 빗물에 젖어 새파랗다. 숲길에 서서 머뭇거린다. 신선한 공기들이 넘쳐흐른다. 막혔던 코가 뻥 뚫린 기분이다.
비에 젖은 내연산 계곡 트레킹 산행이었지만, 마음만은 가볍다. 누군가가 "오늘 같은 날은 빈대떡에 막걸리가 제격인데"라고 말을 흐린다. 말이 씨가 되었나, 점심 비빔밥에 빈대떡과 막걸리가 나온 것이 아닌가. 비 내리는 내연산 폭포를 보는 눈이 호강이고, 빗물이 흐르는 식당 창밖을 보면서 빈대떡에 생막걸리 마시는 호사를 부린다.
순간 행복이 밀려온다. 작은 행복이라도 좋다. 소소할지라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아끼지 말자. 겸재 정선이 팔도 유람하며 실경산수화를 그렸듯, 필자 역시 팔도 유람으로 작은 '행복과 힐링'을 누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