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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당미술관 1987년 서귀포에서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시립 미술관으로, 상설 전시를 통해 변시지 화가의 예술적 숨결이 배어 있는 곳이다.
기당미술관1987년 서귀포에서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시립 미술관으로, 상설 전시를 통해 변시지 화가의 예술적 숨결이 배어 있는 곳이다. ⓒ 기당미술관

이글거리는 태양이 야속하기는 제주도도 예외가 아니다. 연일 30도를 훌쩍 넘는 폭염이 이어지고, 휴대폰에는 폭염 주의 메시지가 하루도 빠짐없이 뜨고 있다. 관광객으로 만원인 바다를 찾기도 싫고 그저 대책 없이 책이나 붙잡고 씨름 중이다. 그러던 중 불쑥 눈에 띈 것이 변시지 탄생 100주년 특별기념전 소식이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전시 제목과 '황톳빛 사유, 존재의 바람'이라는 부제목이 묘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변시지(1926-2013) 화가는 제주에 정착한 이래 많이 들어본 익숙한 이름이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아서인지 한 번도 그의 작품을 마주할 기회가 없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보고 싶었던 차에 잘됐다 싶어 지난주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귀포시 기당미술관으로 향했다.

전시는 3부로 구성돼 있었다. 1부 '내 그림에는 나만 없었다'는 일본 시절과 서울 시절의 작품을 보여준다. 일본에서 상을 받은 인물화와 창덕궁 후원을 담은 <가을의 비원>을 비롯한 사실적인 풍경화들이다. 이 시기 그림은 '화면은 정교했지만, 마음은 머물지 못했고,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그 안에서 자신이 설 자리는 끝내 찾지 못했다'(변경윤 기당미술관 학예연구사)라고 요약된다.

변시지 미술의 백미는 2부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와 3부 '나는 바람으로 남을 것이다'에서 감상할 수 있다. 1부가 대상을 잘 그리려고 고뇌하던 시기의 그림이라면 제주에 내려와 시작된 2부와 3부의 작품은 변시지 특유의 '제주화' 화풍의 완성과정, 작가의 철학과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캔버스는 온통 황톳빛이다. 사람도 조랑말도 까마귀도 모두 홀로 존재한다. 존재의 근원, 고독과 그리움, 자연의 무상함에 대한 작가의 깊은 사유를 떠올리게 한다. 1982년작.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캔버스는 온통 황톳빛이다. 사람도 조랑말도 까마귀도 모두 홀로 존재한다. 존재의 근원, 고독과 그리움, 자연의 무상함에 대한 작가의 깊은 사유를 떠올리게 한다. 1982년작. ⓒ 기당미술관

60여 점의 작품이 하나하나 눈길을 끌었지만, 그중에서도 오랫동안 발길을 붙잡은 건 전시회 제목과도 똑같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두 점의 연작이었다. 캔버스는 온통 황토색이다. 땅도 바다도 하늘도 누렇다. 높이 자란 해송 아래 지팡이를 짚은 채 나무에 기댄 사내, 조랑말 한 마리, 바다 멀리 떠 있는 작은 배 한 척, 까마귀 한 마리. 소나무 두 그루를 제외하고는 모두 홀로 존재한다. 외로움이 느껴진다.

같은 제목의 또 하나의 작품 역시 황토색이 주조를 이룬다. 지팡이를 짚은 구부정한 사내가 언덕 위의 작은 초가집을 향해 느린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언덕 너머로는 커다란 바위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형상이 묘한 배경을 이룬다. 그림의 제목 <어디서 왔다가...>를 떠올리면 아마도 사람을 세상 밖으로 보낸 모태(母胎)를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뒤로 황톳빛 바다에는 멀리 작은 배가 보이고 하늘에는 한 마리 까마귀가 날고 있다.

'제주라는 풍토 안에서 인간의 고독을 그린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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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시지의 그림은 위 연작에서 본 것처럼 존재의 근원, 고독과 그리움, 자연의 무상함에 대한 작가의 깊은 사유를 떠올리게 한다. 제주도를 소재로 한 수많은 화가의 작품과는 결이 다른 묵직한 감동을 준다. 나는 어디서 왔을까, 어디로 갈까. 변시지의 철학적 고뇌를 담은 작품 앞에서 그림을 보는 관객들이 저마다 깊은 상념에 잠기는 모습이다.

그의 그림에는 아름다운 한라산도 오름도, 화려한 빛깔의 감귤도 유채꽃도 없다. 외로워 보이는 구부정한 사람과 작은 조랑말과 까마귀, 바다 멀리 보이는 작은 돛단배와 굽은 소나무, 쓰러질듯한 초가집 그리고 거센 바람 혹은 폭풍이 전부다. 거친 자연환경과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짊어진 제주인 특유의 고된 삶을 보여준다.

황토색의 땅과 바다는 선 하나로 구분된다. 이토록 단순한 색조와 소재로 관람객을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하는 게 변시지 미술의 매력이 아닐까. '제주를 그린 화가가 아니라 제주라는 풍토 안에서 인간의 고독을 그린 화가'라는 세간의 평에 공감이 간다.

<여인> 22세 때 일본 문부성이 주최한 일전(日展) 서양화 부문에 조선인 최초로 입선한 작품으로, 당시 일본 언론에 소개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1947년작.
<여인>22세 때 일본 문부성이 주최한 일전(日展) 서양화 부문에 조선인 최초로 입선한 작품으로, 당시 일본 언론에 소개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1947년작. ⓒ 기당미술관

이력을 살펴보면 그가 천재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뛰어난 화가였음을 알 수 있다. 서귀포에서 태어나 6세 때 가족과 함께 일본 오사카로 이주한 변시지는 10세 때부터 수채화를 그리다가 15세에 오사카 미술학교 서양학과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미술 수업을 받았다. 변시지는 불과 22세 때 일본 문부성이 주최한 일전(日展)에 <여인>이라는 작품으로 입선하게 된다. "조선인 최초의 일전 서양화 부문 입선"이라며 일본 언론에 그림과 함께 소개될 정도로 주목 받았다.

이어서 다음 해에는 제34회 광풍회전에서 최고상을 받아 단숨에 일본 화단의 유망작가로 떠올랐다. 24세 때는 광풍회전에 심사위원이 돼 출품작을 낸 데 이어 도쿄 긴자에서 첫 개인전을 갖기에 이른다. 재일 조선인 화가가 20대 전반에 이룬 업적이다.

변시지는 1957년 32세 때 영구 귀국한다. 고향 제주로 귀환하기 전까지 서울 성북구에 둥지를 틀고 대학에서 강의하고 그림을 그린다. 이 시기 변시지는 정밀하게 풍경을 묘사하는 사실주의 그림을 많이 남겼다. 특히 비원의 아름다운 모습 등 고궁과 후원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려 '비원파'로 불리기도 했다.

화가 변시지의 참모습은 1975년 50세 때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전임교수로 부임하고 고향 제주에 완전히 정착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일본과 서울에서의 화풍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접어든다. 제주의 풍토에 빠져들었고,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품은 정신에 이끌려 형태 너머의 정신을 추구하는 문인화의 세계로 깊이 들어갔다.

마침내 돌아온 제주에서 그의 예술은 비로소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간다. 제주의 산과 바다, 흙과 바람, 돌담과 초목이 하나의 빛깔 황토색으로 응축돼 그의 내면으로 수렴되었고, 그림으로 표출되었다.

변시지만의 조형언어로 빚어진 '제주화'

변시지가 평생 품었던 삶과 존재에 대한 물음은 황톳빛 화면 속에 스며들어 하나의 풍경이 됐다. 황톳빛 땅과 하늘 위로 까마귀가 날고, 들판에는 조랑말이 거닐고, 바람 속에 홀로 선 사람은 제주 땅의 역사와 풍토와 깊이 맞닿아 있다. 변시지만의 조형언어로 빚어진 '제주화'였다. 이 시기에 변시지는 자신의 예술적 변신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새로운 작품세계의 모색은 일종의 해탈이었다. 모든 것을 버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말년으로 갈수록 변시지의 그림은 단순해진다. 불필요한 것들이 최대한 덜어지고 본질만이 남았다. 드디어는 모든 것을 덜어내고 점 하나로 작품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김유정 미술평론가의 다음과 같은 글에서 이 무렵 변시지의 창작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는 만년에 다음과 같이 술회한 적이 있다. '그림은 마음 가는 대로 그려야 한다. 내 그림은 점점 단순해진다.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점 하나를 찍어도 기쁨을 느낀다. 하나씩 빼는 작업을 한다.'"

<점하나> 변시지 화가의 말년 작품은 불필요한 것을 최대한 덜어내고 본질만 남겨두었다. 드디어는 모든 것을 덜어내고 점 하나로 작품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2006년작.
<점하나>변시지 화가의 말년 작품은 불필요한 것을 최대한 덜어내고 본질만 남겨두었다. 드디어는 모든 것을 덜어내고 점 하나로 작품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2006년작. ⓒ 기당미술관

이번 특별전시의 마지막 코너에서 만날 수 있는 <점하나>가 극도로 단순화한 말년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2006년 작품인 <점하나>는 노란색으로 캔버스를 꽉 채우고 한쪽 구석에 점 하나를 찍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먼바다 위로 떠나가는 작은 돛단배다. 바다와 하늘을 구분하는 희미한 선도 보인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인생을 관조하는 화가의 말년 모습. 그림 작업을 통해 끊임없이 해탈의 경지를 추구한 변시지 화가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속으로 되묻지 않을까. 나는 이 작품 앞에서 문득 '무소유'를 떠올렸다. 돛단배에 의지한 채 위태로운 항해를 이어가는 인생길에 너무나 많은 무거운 짐을 싣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시장에서 발길을 오래 멈추게 한 또 하나의 작품은 변시지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1997년 작 <난무>다. 동양의 생존 현대 화가로는 최초로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10년간 전시됐다는 그 작품이다. 조그만 초가집 툇마루에 사내가 등을 구부려 고개를 숙이고 있고, 바깥에는 말 한 마리와 야트막한 돌담, 바람에 거세게 흔들리는 나무가 배경을 이룬다. 특이한 것은 휘몰아치는 바람을 타고 수십 마리의 까마귀가 초가집 위를 날고 있다.

<난무>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생존 동양인 화가로는 최초로 전시됐던 변시지 화가의 대표작. 다른 작품에서와는 달리 수십 마리의 까마귀가 초가집 위를 날고 있어 이채롭다. 1997년작.
<난무>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생존 동양인 화가로는 최초로 전시됐던 변시지 화가의 대표작. 다른 작품에서와는 달리 수십 마리의 까마귀가 초가집 위를 날고 있어 이채롭다. 1997년작. ⓒ 기당미술관

변시지 그림에는 까마귀가 자주 등장한다. 대부분의 그림에서 까마귀는 한 마리만 그려지고 있지만,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어두운 배경의 그림에서는 여러 마리가 등장하기도 한다. 왜 많고 많은 새들 가운데 사람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까마귀를 이 화가는 이토록 집착하듯이 그렸을까.

까마귀와 관련한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일본에서 다닌 초등학교 2학년 시절 변시지는 씨름 시합에 나갔다가 대퇴부에 큰 부상을 당하게 된다. 이때의 사고로 지팡이는 평생 그의 분신이 되었다.

일본의 병원에서 아들의 다리를 고치지 못하자 그의 부모는 고향으로 가서 굿을 하기로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마지막 시도였을 듯하다. 무당은 까마귀 열 마리를 제물로 준비했다. 굿이 시작되자 무당은 까마귀를 한 마리씩 잡고 다리를 찢기 시작했다. 까마귀가 속죄양인 셈이었다. 어느 순간 아파 누워 있던 어린 변시지가 굿을 그만하라고 소리쳤다. 까마귀의 희생을 계속 지켜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난무>에서 유독 까마귀가 떼를 지어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광경을 그린 것은, 어린 시절 굿을 할 때 누워서 보았을 까마귀 떼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다리가 찢겨 나가는 새끼 까마귀를 안타까워하며 상공을 선회하던 까마귀 떼가 그의 뇌리에 각인되었던 것은 아닐까. 무당을 불러 굿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의 추측일 뿐이다.

"그림을 그리다가 죽고 싶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어도> <바람> <생존A> <생존C> <제주도> 폭풍우 속의 사람과 조랑말과 까마귀 등을 통해 제주인의 고단한 삶을 웅변하고 있다. <생존C>(2005년작)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은 모두 1991년작.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어도> <바람> <생존A> <생존C> <제주도>폭풍우 속의 사람과 조랑말과 까마귀 등을 통해 제주인의 고단한 삶을 웅변하고 있다. <생존C>(2005년작)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은 모두 1991년작. ⓒ 황의봉

이번 특별전에는 그림뿐 아니라 화가를 다룬 신문 기사 등 아카이브 자료 20점도 전시하고 있고, 변시지 화가의 작품을 미디어아트로 감상할 수 있는 영상실도 운영하고 있다. 전시된 신문 기사를 보니 그가 한때 대표적 인터넷 포털사이트였던 야후의 세계 100대 미술작가 명단에 올랐다는 대목도 나온다.

변시지 화가의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도 지나치지 말고 꼭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이곳에서 특히 눈에 띈 것은 화가가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는 '세 발 의자'다. 다리가 3개뿐인 이 의자는 두 다리와 한 지팡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지팡이를 짚은 사내는 아마도 작가 자신이었을 터인데, 의자마저 세 발로 만든 그의 의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변시지 특별전은 기대 이상의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 무더운 여름날 뜻밖의 횡재를 한 듯한 전시회 감상 소감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기당미술관을 나와서 서귀포 이중섭거리 입구에 있는 북카페 사이서가로 향했다. 사이서가는 이중섭미술관과 지척이고, 이중섭이 살았던 집과는 바로 이웃해 있다. 서귀포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즐겨 찾고, 여러 문화행사가 열리며, 올레길을 걷는 육지 사람들도 들려 쉬어가는 곳이다.

사이서가 최은숙 대표를 만나 방금 기당미술관에서 변시지 특별전시회를 보고 오는 길인데, 너무도 감동적이었다며 관람을 권했더니, 자신도 어제 봤다고 한다. 전시회 감상 소감으로 이야기꽃이 활짝 피자 최 대표가 전화로 손님을 초대했다. 바로 변종필 서귀포공립미술관장으로, 사이서가 바로 아래 건물인 창작스튜디오에 그의 사무실이 있었다. 미술평론가이기도 한 변종필 관장은 서귀포시 산하 공립미술관인 이중섭미술관, 기당미술관, 소암기념관, 창작스튜디오의 운영과 관리 책임을 맡은 분이다.

변종필 관장은 변시지 화가가 한국 근현대 미술의 거장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덜 알려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홀로 독자적 세계를 구축하는 작품활동을 해왔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변시지는 삶과 존재의 근원을 향해 평생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화가였다"라면서 "그림 속 제주의 바람과 폭풍, 조랑말과 외로운 배는 단순한 풍경의 재현이 아니라, 삶의 한가운데를 홀로 통과해야 하는 인간에 대한 깊은 사유"라고 평가했다.

변 관장에 의하면 변시지 화가는 무려 수천 점에 이를 만큼 국내외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다가 죽고 싶다"라고 말한 대로 실제 작고하기 전날까지도 병실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 말이 실감이 난다.

변 관장은 추사 김정희 이후 제주도의 화가 맥락을 이어간 대표적 인물이 변시지와 4·3의 화가 강요배라고 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서귀포 하면 이중섭을 연상하기 마련이지만 변시지야말로 이중섭 못지않은 숨은 보물 같은 존재라고 덧붙였다. 마침 이중섭미술관이 신축공사 중인 만큼 서귀포에 오면 기당미술관에 와서 변시지를 만나보라고 강조했다.

변시지 탄생 100주년 특별기념전은 기당미술관에서 9월 27일까지 열린다. 이 시기에 제주도를 여행하게 된다면 꼭 한번 감상해보길 강추한다. 기당미술관의 통창을 통해 한라산의 멋진 전경을 감상하는 보너스도 누릴 수 있다. 제주도 방문 계획이 없다면 고려대 박물관에서의 서울 순회전(10월 13일~11월 28일)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귀포문화예술신문몬딱에도 실립니다.


#변시지#기당미술관#제주화#폭풍의화가#스미소니언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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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봄 제주로 이주했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 그리고 제주현대사의 아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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