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7월 15일 도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국가기초정책위원회 양원 합동회의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AFP 연합뉴스
일본에서 소비세율이 10%로 인상된 2019년, 후지모토 타츠키의 만화 <체인소맨>에서는 "소비세 100%"가 인간을 괴롭히기 위한 황당한 공약으로 등장했다.
소비세를 농담거리로 삼은 작품은 이뿐만이 아니다. <크레용 신짱>은 소비세가 5%에서 8%로 오르기 직전인 2014년 3월, 아예 '소비세가 오른다구(消費税が上がるゾ)'라는 제목의 에피소드를 방송했다. 소비세는 일본에서 복잡한 경제 용어가 아니라 만화에서도 별다른 설명 없이 농담으로 통하는 생활 속 단어다.
그리고 지난 5일,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은 식품에 적용되는 소비세를 2027년 4월부터 2년 동안 8%에서 1%로 낮추는 방침을 승인했다. 별도 급부를 통해 남은 1%도 보전한다는 계획으로, 시행될 경우 1989년 소비세 도입 이후 첫 세율 인하다.
결정 직후부터 일본에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구체적인 재원 대책이 제시되지 않았다며 이를 '미키리핫샤(見切り発車·충분한 준비 없이 일단 출발하는 것)'라고 표현했다. <요미우리신문>도 사설에서 재원 확보 문제와 2년 뒤 반발을 무릅쓰고 세율을 원상 복구할 수 있을지 등을 둘러싼 우려를 정부가 불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는 단 몇 퍼센트의 소비세가 왜 이토록 큰 정치적 이슈가 되는 것일까.
세율보다 무서운 '기억'... 일본의 소비세 트라우마
소득세는 소득이 발생해야 부담하지만, 소비세는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먹는 일상 속에서 누구나 부담한다. 그만큼 세율 변화가 생활비 문제로 직결된다. 일본도 2019년 일반 소비세율을 8%에서 10%로 올리면서 식품 등에는 8%의 경감세율을 남겼다.
그렇다고 일본의 소비세율 자체가 특별히 높은 것은 아니다. OECD의 2024년 자료에서 일본의 표준세율 10%는 회원국 평균 19.3%를 크게 밑돈다. 한국의 부가가치세율도 10%로 일본과 같고, 헝가리는 27%에 달한다.
문제는 세율보다 그동안 쌓인 기억에 있다.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이후 일본은 장기간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에 시달렸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세 인상은 가계의 지갑을 다시 닫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반복해서 불러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이다. 소비세율이 5%에서 8%로 오르기 전에는 세금이 오르기 전에 물건을 사려는 '선수요'가 나타났고, 인상 뒤에는 그 반작용으로 소비가 감소했다. 일본은행 역시 증세 전후 이러한 소비 변화를 확인했다.
이러한 경험은 소비세 인상을 단순한 증세가 아니라 내수를 위축시킬 수 있는 정치적 부담으로 만들었다.
싫어도 없앨 수 없다, 소비세의 딜레마
그렇다고 정부가 소비세를 포기하기도 어렵다. 일본은 고령화로 연금과 의료, 간병 등에 필요한 돈이 계속 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소비세를 경기 변동에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걷을 수 있는 세금으로 보고 사회보장의 주요 재원으로 활용해왔다.
민주당 정권이 공약을 뒤집으면서까지 소비세 인상을 추진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2009년 집권 당시 민주당은 임기 동안 소비세를 올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후 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비 증가와 악화된 재정을 그대로 두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노다 요시히코 내각은 결국 '사회보장과 세제의 일체개혁'을 내걸고 2012년 소비세를 단계적으로 10%까지 올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소비세 증세의 대가는 민주당에게 곧바로 돌아왔다. 증세를 둘러싼 갈등을 결정타로 민주당은 분열했고, 그해 총선에서 참패하며 3년 만에 자민당에 정권을 내줬다. 소비세를 올리지 않으면 재정과 사회보장이 문제였고, 올리면 유권자의 반발을 감당해야 했다.
결국 일본 정치가 마주한 모순은 단순하다. 유권자에게는 부담스럽고 소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고령사회를 유지하려는 정부에는 포기하기 어려운 세금이다. 소비세가 지난 40여 년 동안 '뜨거운 감자'였던 이유다.
40년 만에 방향 틀었다… 다카이치의 '감세 승부수'
올해 2월 총선에서 자유민주당의 승리를 이끈 핵심 공약은 '소비세 인하'였다. 다카이치 총리는 가계의 물가 부담을 덜기 위해 2년간 식품에 붙는 8%의 소비세를 전면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1989년 3%로 도입된 이래 5%, 8%, 10%로 인상만 거듭해 온 일본 소비세 역사상 전례 없는 시도였다.
하지만 선거 직후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다. 식품 소비세를 없애면 연간 약 5조 엔의 세수 공백이 발생한다. 막대한 사회보장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뚜렷한 재원 대책이 없자 자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일었다.
결국 다카이치 내각은 지난 5일 절충안을 승인했다. 전면 폐지 대신, 2027년 4월부터 2년간 식품 소비세를 1%로 대폭 낮추고, 남은 1%에 해당하는 금액은 별도 급부금으로 돌려주는 방식이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사상 첫 소비세율 인하가 실현된다.
지난 40년 가까이 일본 정치권의 화두는 '소비세를 어떻게 올릴 것인가'였다. 다카이치 총리는 처음으로 그 반대의 길을 열었지만, 소비세가 떠받치던 막대한 국가 재원을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과제를 떠안게 됐다.
이번 감세가 물가 부담을 낮추는 새로운 해법이 될지, 아니면 재정에 또 다른 부담을 남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일본 정치가 소비세를 둘러싼 오랜 딜레마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그 방향을 거꾸로 돌려놓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