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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만공사 통합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부산항만공사, 인천항만공사, 울산항만공사, 여수광양항만공사를 하나로 묶어 가칭 '한국항만공사'와 같은 단일 조직으로 재편하자는 구상이다.

표면상 명분은 익숙하다. 중복 기능을 줄이고, 예산과 인력을 효율화하며, 국가 항만정책을 통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얼핏 합리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항만공사 제도의 역사적 취지와 항만산업의 실제 작동방식을 놓고 보면 명백한 시대역행이다. 이 문제를 단순한 '통합 반대'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더 근본적인 쟁점은 항만공사 제도의 존재 이유 자체가 중앙집권적 통합과 충돌한다는 데 있다.

항만공사 통합은 조직개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항만공사 제도의 자기부정이며, 지역경제 결정권의 형해화이고, 중앙에 대한 지역의 경제적 종속을 더 깊게 만드는 과정이다. 항만은 지역에 남지만 항만의 미래를 결정하는 권한은 중앙으로 이전된다면, 지역은 자기 항만의 주체가 아니라 항만정책의 들러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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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만공사 제도는 애초에 중앙정부가 항만을 직접 관리하던 방식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도입되었다. 항만시설의 개발과 관리·운영을 더 전문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항만별 특성에 맞는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을 강화하자는 것이 그 취지였다. 중앙정부의 일률적 행정관리만으로는 항만별 산업구조, 물류 흐름, 선사 네트워크, 배후 단지, 지역기업 생태계, 도시계획, 노동시장 조건에 세밀하게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여러 항만공사를 하나의 중앙집권적 조직으로 묶겠다는 것은, 중앙집권적 항만 행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제도를 다시 중앙집권화하겠다는 뜻이다. 이것이야말로 항만공사 제도의 '자기부정'이다. 항만은 단순한 국가 기간시설이 아니다. 항만은 특정 지역의 산업구조, 물류망, 배후도시, 노동시장, 수출입 기업, 선사 네트워크, 해양서비스업, 제조업 기반, 에너지 체계와 긴밀하게 결합된 '장소 기반 산업'이다.

부산항은 부산이라는 도시와 분리될 수 없고, 인천항은 수도권 물류와 대중국 교역 구조와 분리될 수 없으며, 울산항은 석유화학·자동차·조선 산업과 분리될 수 없다. 여수광양항 역시 철강·석유화학·남해안 산업벨트와 분리될 수 없다. 같은 '항만'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이들 항만은 서로 다른 화물, 서로 다른 고객, 서로 다른 배후산업, 서로 다른 국제경쟁 조건 속에서 움직인다.

따라서 항만공사를 중앙집권적으로 통합하겠다는 발상은 항만을 살아 있는 지역경제의 결절점으로 보지 않고, 단순한 행정 단위나 시설관리 단위로 보는 데서 출발한다. 바로 여기에 항만공사 통합론의 첫 번째 논리적 모순이 있다.

항만 경쟁력의 핵심은 일률적 통제가 아니라 '현장 대응력'이다. 글로벌 선사의 기항 결정, 환적화물 유치, 터미널 운영 전략, 배후 단지 조성, 친환경 연료 공급망, 항만 자동화, 항만 노동의 재편, 지역 제조업과의 연계는 모두 현장에서 발생하는 정보와 관계망을 토대로 판단해야 한다. 중앙의 단일 본사에서 전국 항만을 한꺼번에 관리한다고 해서 이러한 판단이 더 정교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장의 암묵지는 희석되고, 의사결정은 느려지며, 항만별 전략은 평균화될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 모순은 '효율화'라는 명분 자체에 있다. 통합론은 조직을 줄이면 곧 효율이 생긴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항만의 효율은 본사 숫자를 줄이는 데서 자동으로 생기지 않는다. 항만의 효율은 선사와 화주의 요구에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는가, 지역 배후 산업의 변화에 얼마나 정교하게 맞추는가, 새로운 물류경로와 기술 변화에 얼마나 유연하게 투자하는가에서 나온다. 네 개 항만공사를 하나로 묶는다고 해서 부산항의 환적 경쟁력이 자동으로 강화되는 것도 아니고, 인천항의 수도권 물류 기능이 정교해지는 것도 아니며, 울산항과 여수광양항의 산업항만 기능이 고도화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단일 조직은 필연적으로 내부 조정 절차를 늘린다.

항만별 투자 결정은 전국 단위의 내부 예산 경쟁으로 들어가고, 지역 현장에서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전략적 판단은 본사 승인과 중앙 조정 절차를 거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항만별 고유한 필요는 '전국적 균형' 또는 '조직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후 순위로 밀릴 수 있다. 숫자로 보이는 행정 효율은 생길지 몰라도, 실제 항만 경쟁력의 핵심인 현장 조정능력은 약화될 수 있다. 이것은 효율화가 아니라 효율화의 외피를 쓴 중앙집권화다.

세 번째 모순은 국가 항만전략과 지역 항만전략을 대립시키는 데 있다. 통합론은 국가 차원의 항만정책을 위해 단일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가 항만전략은 지역 항만의 자율성을 약화시킬 때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계적 항만 경쟁은 점점 더 항만별 전문화와 네트워크화의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어떤 항만은 환적 허브로, 어떤 항만은 산업항으로, 어떤 항만은 수도권 물류 관문으로, 어떤 항만은 에너지·원자재 거점으로 기능한다. 국가 항만전략이 강해지려면 각 항만이 자기 기능을 더 정교하게 발전시키고, 그 차별화된 역량들이 국가 전체 물류망 안에서 조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항만공사의 통합이 아니라 항만 간 조정의 고도화다.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항만공사들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아니라, 항만별 기능 분담, 투자 원칙, 물동량 배분, 배후단지 전략, 친환경 전환, 디지털 항만 인프라, 국제노선 전략을 투명하게 조정하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조정자여야 하지, 현장 항만의 결정권을 흡수하는 단일 운영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 전략과 지역 자율성은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역 자율성이 살아 있어야 국가 전략도 현실적 힘을 갖는다.

이 문제는 결국 지역의 '경제적 자기결정권'과 직결된다. 지역의 경제적 자기결정권이란 지역이 단순히 항만시설을 보유하거나 항만 노동을 제공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지역이 자기 항만의 발전 방향, 투자 우선순위, 배후 산업과의 연계, 일자리 구조, 물류 생태계, 수익의 재투자 방향을 스스로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항만은 지역경제의 입구이자 출구다. 항만에서 만들어지는 가치, 항만을 통해 연결되는 산업, 항만 주변에 형성되는 물류·제조·서비스 생태계가 지역의 미래를 좌우한다. 그런데 그 핵심 결정권이 중앙의 단일 조직으로 흡수된다면, 지역은 항만을 갖고도 항만경제를 결정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것이 항만공사 중앙집권화의 가장 심각한 문제다.

지역에는 부두와 배후 단지와 노동과 환경 부담이 남지만, 전략과 투자와 수익 배분의 결정권은 외부화된다. 지역은 항만의 물리적 현장이지만, 항만경제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항만시설은 지역에 남아도 항만의 미래를 지역이 선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지역경제의 자기결정권이 형해화되는 것이다. 지역은 운영하지만 기획하지 못하고, 부담하지만 배분하지 못하며, 생산하지만 결정하지 못하는 공간으로 전락한다. 정치경제학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중앙에 대한 지역의 식민지화를 가속화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식민지화'란 수사적 과장이 아니다. 지역이 항만의 노동, 환경 부담, 물류 혼잡, 산업 기반을 감당하면서도 항만의 투자, 수익 배분, 배후산업 전략, 고부가가치 기능의 배치를 결정하지 못하는 구조를 뜻한다. 지역은 항만의 현장이지만 항만의 주권자가 아니다. 지역은 항만의 부담을 감당하지만 항만의 전략을 결정하지 못한다. 항만의 수익과 네트워크와 미래가 중앙의 전략 속으로 흡수될수록, 지역은 자기 경제의 주체가 아니라 중앙 정책의 집행 공간으로 낮아진다. 이것이 지역경제의 식민지적 구조다.

항만공사 통합은 이러한 구조를 더 심화시킬 위험이 크다. 지역 항만공사가 독립적 전략기관으로 기능할 때에는 적어도 지역의 항만정책을 지역 차원에서 문제제기하고 조정할 통로가 존재한다. 그러나 통합 이후 각 항만공사가 중앙 단일공사의 지역본부나 지사 수준으로 낮아진다면, 지역의 결정권은 더욱 형식화된다. 지역의 목소리는 '의견수렴'으로 축소되고, 실질적 결정은 중앙 본사의 내부 절차에서 이루어진다. 지역의 경제적 결정은 제도적으로 남아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비어 있게 된다. 이것이 '형해화'다. 이 구조는 지역불균형 발전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심화시킨다.

균형발전은 중앙이 모든 것을 균등하게 나누어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각 지역이 자기 산업의 강점과 역사적 축적을 토대로 스스로 발전전략을 세우고, 국가는 그 지역적 역량들이 상호 보완되도록 지원할 때 가능하다. 그런데 항만공사를 통합해 지역별 항만의 전략 기능을 중앙으로 끌어올린다면, 그것은 균형발전이 아니라 지역의 전략 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겉으로는 통합이고 효율화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지역의 경제적 자기결정권을 축소하는 공간적 중앙집권화다.

특히 중앙과 지역의 위계적 관계가 이미 강한 한국 사회에서 항만공사 통합은 단순한 기관 개편으로 끝나지 않는다. 중앙은 계획하고, 지역은 집행한다. 중앙은 배분하고, 지역은 경쟁한다. 중앙은 전략을 수립하고, 지역은 민원을 처리한다. 이런 구조가 반복될수록 지역은 자기 발전의 주체가 아니라 중앙정책의 수용자이자 하위 파트너가 된다. 항만공사 통합은 이 오래된 위계를 항만경제 영역에서 다시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지역은 더욱 피폐화될 수 있다. 항만공사의 전략 기능이 중앙으로 집중되면, 지역에 남는 것은 시설관리, 민원 대응, 현장 운영, 환경 부담, 노동 갈등 처리와 같은 하위 기능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항만 투자, 배후 단지 개발, 글로벌 네트워크, 수익 재투자, 고부가가치 해양서비스업 육성, 항만 데이터와 디지털 전환 전략은 중앙이 쥐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지역은 항만경제의 고부가가치 기능을 잃고, 현장 비용과 부담만 떠안게 된다. 지역에는 항만의 소음과 트럭과 환경 부담과 노동 갈등이 남지만, 항만이 만들어내는 전략적 가치와 미래 선택권은 외부로 이전된다. 이것이 지역의 피폐화다.

부산의 경우 이 문제는 더욱 절박하다. 부산은 스스로를 '해양수도'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해양수도라는 이름은 항만시설의 규모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해양수도라면 항만 전략을 기획하고, 글로벌 선사와 협상하고, 북극항로와 신항 개발, 해양금융, 수리조선, 선용품, 친환경 연료, 항만 자동화, 해양서비스업을 하나의 지역 산업전략으로 묶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부산항만공사의 독립적 결정권이 약화되고 전국 단일 조직의 지역본부 수준으로 낮아진다면, 해양수도 부산은 이름뿐인 구호가 된다. 부산항은 남지만 부산의 항만 결정권은 사라지는 것이다.

인천, 울산, 여수광양도 다르지 않다. 인천항은 수도권 물류와 대중국 교역, 공항·항만 복합물류와 결합되어 있다. 울산항은 산업항만으로서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에너지 전환과 맞물려 있다. 여수광양항은 철강, 석유화학, 남해안 산업벨트의 핵심 물류 기반이다. 이러한 항만들을 하나의 중앙조직 아래 넣어 동일한 기준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은 지역별 산업 생태계의 차이를 행정적 편의 속에 가두는 일이다. 그것은 지역별 항만의 특성화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항만의 전략적 개성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현행 항만공사 체제에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항만 간 과잉투자, 중복 개발, 물동량 확보 경쟁, 중앙정부 예산 배분의 불투명성, 배후 단지 개발의 비효율, 항만 노동과 안전 문제 등은 당연히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 해법이 곧 조직 통합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항만공사가 여럿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항만 간 조정 원칙과 투자 기준, 지역 산업전략과의 연계가 충분히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설계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해법은 중앙집권적 통합이 아니라 '분권적 조정'의 강화여야 한다.

정책적으로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첫째, 항만공사 통합 논의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통합 여부를 행정 효율의 문제로만 다루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지역 항만의 전략 기능과 지역경제의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의 문제다. 따라서 통합 논의에 앞서 각 지역 항만의 산업적 특성, 지역경제 파급효과, 고용구조, 배후산업, 항만 수익의 지역 재투자 구조, 지역사회 의사결정권에 대한 종합 평가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른바 '지역 항만 결정권 영향평가'가 필요하다.

둘째, 항만공사의 지역 대표성과 지역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 항만공사의 이사회와 주요 의사결정 구조에 지방정부, 지역 산업계, 항만 노동자, 물류업계, 대학과 연구기관, 시민사회가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중앙 본사의 일괄 통제가 아니라, 지역 항만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이 항만의 미래를 함께 결정하는 지역착근적 거버넌스다.

셋째, 항만 수익의 지역 재투자 원칙을 제도화해야 한다. 항만에서 발생한 수익은 단순히 공사의 재무성과나 국가 재정 논리로만 처리되어서는 안 된다. 항만 주변의 물류혁신, 항만 노동자의 재교육, 친환경 항만 전환, 배후도시 재생, 해양서비스업 육성, 지역 중소기업의 항만 연계 진입을 위해 일정 부분이 지역에 재투자되어야 한다. 항만은 지역의 공공적 자산이자 커먼스다. 그 수익은 지역경제의 순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쓰여야 한다.

넷째, 전국 단일 항만공사가 아니라 지역 항만공사들의 연합적 조정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공동 데이터 플랫폼, 항만 간 투자 조정위원회, 국가 물류망 전략회의, 친환경 항만 전환 공동기금, 항만별 특화전략 평가체계와 같은 방식이 더 적절하다. 이것은 중앙집권과 파편화를 모두 넘어서는 길이다. 지역 항만공사의 자율성은 보장하되, 국가 전체 항만망 차원의 조정은 강화하는 방식이다. 중앙은 흡수자가 아니라 조정자가 되어야 한다.

다섯째, 항만공사를 지역경제의 전략 조정기관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항만공사는 단순한 부두 관리기관이 아니다. 지역의 산업전환, 물류혁신, 해양금융, 친환경 에너지, 디지털 항만, 고용전환, 배후단지 발전을 연결하는 전략기관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항만공사는 지역 산업정책과 분리되어서는 안 되며, 지방정부의 산업전략,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의 기술역량, 지역 기업의 공급망, 노동자의 숙련 형성과 긴밀하게 결합해야 한다.

여섯째, 항만공사 제도 자체를 더 지역화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항만공사를 중앙으로 되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항만공사를 지역에 더 깊게 착근시키는 것이다. 항만위원회의 지역 대표성을 강화하고, 지방정부와의 공동계획 수립을 의무화하며, 항만 배후도시와 지역 산업계가 항만 투자 우선순위에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항만공사는 중앙의 지사가 아니라 지역경제의 민주적 조정기관이어야 한다.

결론은 분명하다. 항만공사 통합은 시대역행이다. 항만공사 제도는 중앙집권적 항만행정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지금의 통합론은 그 제도를 다시 중앙집권적 관리체계로 되돌리려 한다. 이는 제도적 취지에 반하고, 항만산업의 장소 기반적 성격에도 맞지 않으며, 지역균형발전의 방향과도 충돌한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항만공사를 몇 개로 줄일 것인가"가 아니다. "지역은 자기 항만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가"이다. 항만공사 통합론은 이 질문을 회피한다.

그러나 지역의 경제적 자기결정권 관점에서 보면 답은 분명하다. 항만공사는 더 중앙집권화될 것이 아니라, 더 지역화되고 더 지역착근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지역의 항만은 지역의 산업, 노동, 생활, 생태, 미래와 함께 결정되어야 한다. 그것이 항만공사 제도의 취지를 살리는 길이고, 국가 항만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며, 지역이 중앙의 하위 지부가 아니라 자기 경제의 주체로 서는 길이다.

지역 없는 항만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결정권 없는 지역은 발전할 수 없다. 항만공사 통합이 정말 국가 항만 경쟁력을 위한 것이라면, 중앙은 지역의 항만을 흡수할 것이 아니라 지역이 자기 항만을 더 잘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항만을 중앙의 지부로 만들 것인가, 지역경제의 결정기관으로 세울 것인가. 지금의 통합 논의는 바로 그 갈림길에 서 있다.

#항만공사통합#경제적자기결정권#지역경제#균형발전#중앙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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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학생들에게는 정치경제학(사회경제학)을 가르치고 있고 또 이 이론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역경제, 지역불균형발전,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 지역순환경제전국네트워크의 공동대표와 학술단체 한국지역순환경제학회의 회장을 맡으면서, 우리나라 수도권 일극 체제의 공간적 위계, 내부 식민지화를 극복하기 위해 대안으로서 지역의 '경제적 자기결정권'을 주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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