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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일어났다. 나이 탓일까, 아니면 열대야 탓일까. 침대 옆 선풍기를 돌리고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잠은 저만치 달아나 버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해돋이가 보고 싶어졌다. 앱으로 확인하니 해 뜨는 시각까지 겨우 20분 남았다. 힘들이지 않고 언제든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점, 이것이야말로 동해에 사는 진정한 자랑 아니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옷을 입고 카메라를 챙겨 나섰다.

이제 방학도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 시간을 제대로 즐겨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바다를 향해 달린다. 요즘은 자전거를 탈 때 쫄쫄이 옷을 챙겨 입는다. 안 입을 때는 몰랐는데 한번 입어보니 그 편안함을 알아버렸다. 옷 찾아 입느라 살짝 지체했더니, 하평해변 건널목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가 빼꼼 올라오고 있었다.

하평해변에 있는 철길 건널목은 야간에 폐쇄된다. 전속력으로 페달을 밟았으나 돌담마을을 돌아서 하평해변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해가 완전히 솟아오른 뒤였다. 수평선에 구름 한 점 없어서 이른바 '오메가 일출'이었는데, 그 명장면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일출을 제대로 찍겠다고 필터까지 챙겨 나왔지만, 아직 노출 맞추기가 익숙지 않다.

 하평해변 해돋이
하평해변 해돋이 ⓒ 박영호

 해돋이
해돋이 ⓒ 박영호
 화물선
화물선 ⓒ 박영호

며칠 전, 퇴직 준비 연수를 신청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명퇴를 고민할 나이가 되었나 싶어 갑자기 확 나이를 먹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문득 유튜브에서 들었던 "퇴직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친구와 취미를 만드는 일"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취미 부자이니 별걱정은 없다. 오늘만 해도 이렇게 자전거를 타며 사진을 찍고 있지 않은가.

자전거는 은퇴 후 즐기기에 참 좋은 운동이다. 달리기나 등산은 무릎에 무리가 갈 듯하고, 걷기는 아무래도 조금 지루하다. 요즘은 곳곳에 자전거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타기에도 그만이다. 빨리 가면 뭐 하겠는가. 고기 잡는 배가 만드는 풍경도 즐기고, 길가에 화사하게 핀 배롱나무꽃도 담으며 천천히 타는 것이 진정한 묘미다.

 어달해변 해돋이
어달해변 해돋이 ⓒ 박영호

 고깃배
고깃배 ⓒ 박영호

군데군데 사진을 찍어가며 헌화로를 달려 심곡항으로 접어드는데, 한 젊은 라이더가 쌩하고 앞서 나간다. 여성 라이더인데 어디까지 가는 것일까. 이 좋은 경치에 곁눈질 한번 없이 곧바로 정동진으로 향하는 가파른 고갯길로 접어든다.

 심곡항 등대
심곡항 등대 ⓒ 박영호

심곡항 방파제 끝에 있는 빨간 등대를 바라본다. 항구마다 있는 등대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하나만 있으면 대부분 빨간색이고, 둘이 서 있다면 항구 입구 기준으로 왼쪽은 빨강, 오른쪽은 흰색이다. 밤이 되면 빨간 등대는 빨간빛을, 하얀 등대는 초록빛을 낸다. 들어오는 배에 '빨간빛은 왼쪽으로, 초록빛은 오른쪽으로 항해하라'는 안전한 길 안내의 신호다. 어쩌면 우리 삶에도 저런 명확한 항로 신호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노출을 맞추지 못한 사진을 흑백으로 바꿨다
노출을 맞추지 못한 사진을 흑백으로 바꿨다 ⓒ 박영호

심곡항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금진항을 지날 때 뭍으로 올려진 거대한 어선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뭔가 색다른 느낌이라 몇 장 찍어왔는데 역광이라 마땅치 않았다. 아예 색을 빼고 흑백으로 만들었더니 오히려 느낌이 살아난다. 요즘 사진도 삶도 결국 채워 넣기보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일이 중요함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다시 어달 해변
다시 어달 해변 ⓒ 박영호
 보리가 있던 자리에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한다
보리가 있던 자리에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한다 ⓒ 박영호
 하평 해변
하평 해변 ⓒ 박영호
 묵호항 빨간 등대
묵호항 빨간 등대 ⓒ 박영호

싱그러운 초록으로 넘실대던 보리밭이 누렇게 익어 가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터에는 어느새 훌쩍 자란 코스모스가 살랑거리며 꽃을 피우고 있다. 나이 듦은 할 일을 멈추고 뭍에 오른 어선 앞에서 깊은 감상에 잠기고, 길가에 핀 배롱나무꽃과 코스모스를 천천히 살피는 여유에 있다. 타인의 속도에 휩쓸릴 필요는 없다. 남을 따라잡기 위해 가쁜 숨을 들이켜기보다, 자전거처럼 저마다 제 몸으로 낼 수 있는 담담한 속도를 즐기며 살아가면 그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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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해돋이#동해#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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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사람에겐 편안함을, 친구에게는 믿음을, 젊은이에겐 그리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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