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대왕의 왕비 소헌왕후의 명복을 발원하는 축원 원당(願堂) 사찰인 양평 용문사 지장전 뒤편 어실각지(御室閣地). 시굴 조사를 맡은 (재)불교문화유산연구소 관계자가 동쪽 담장지 서면 쪽을 가리키며 학술자문 교수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용은성
조선 왕실에서 선왕과 선왕비의 명복을 발원했던 '원당'(願堂). 조선왕조가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펼쳤다고 해도 왕실의 원당은 내세 신앙과 천도 의례, 효 사상, 기복신앙의 접점이었다. 양평 용문사는 세종의 왕비인 소헌왕후의 원당이었다.
지난 5일 대한불교조계종 용문사(주지 도일스님)에서 '양평 용문사 추정 어실각지 시굴 조사 학술자문회의'가 열렸다.
회의는 조사를 담당한 재단법인 불교문화유산연구소가 주관한 가운데 하문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와 이정미 명지대 건축학과 초빙교수가 자문을 맡아 진행했다. 용문사에서는 템플스테이 원장인 용제스님과 변남석 종무실장이 참석했다.

▲양평 용문사 어실각지 시굴 조사 완료 후 남쪽에서 바라본 전경. ⓒ 용은성

▲양평 용문사 어실각 후면 기단장석. ⓒ 용은성
어실각지로 추정되는 부지는 용문사 대웅전 우측의 지장전 뒤편 구릉지에 소나무가 우거진 곳이고, 시굴 조사 면적은 400㎡다.
이강호 불교문화유산연구소 발굴1팀장은 "지표조사 결과 장대석 기단은 높이 60㎝이고 정면과 배면, 측면에 기단을 마련했고, 건물 기둥을 받치는 초석과 적심의 크기와 위치 등을 고려하면 어실각(御室閣)의 외형은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 규모로 추정된다"며 "당시 귀한 격을 갖춘 원당으로서의 면모가 보인다"고 했다.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는 문종과 수양대군(훗날 세조)의 어머니이자 단종의 친할머니다. 소헌왕후 심씨가 1446년(세종 28년) 세상을 뜨자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 직후 간행된 최초의 한글 활자본 찬불가 '월인천강지곡'을 지어 명복을 빌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수양대군은 용문사에 보전을 짓고 불상 두 구와 보살상 여덟 구를 봉안했다. 법회에 참석한 수양대군이 기도하던 중 불사리에서 광명이 비치는 장면을 목격한 후 용문사를 원찰로 지정해 어실각을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양평 용문사 어실각지에서 출토된 기와편과 백자편, 전돌, 이형기와편. ⓒ 용은성
어실각은 1907년 정미의병 봉기 때 소실됐다가 1938년 태욱스님이 사찰을 중건하면서 복원했으나, 한국전쟁으로 불에 타 없어졌고, 현재 이처럼 터만 남았다. 용문사에는 정미의병과 한국전쟁 당시에도 무사히 살아남은 수령 1100여 년의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호)를 비롯해 관음전에 봉안된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1790호)과 '정지국사부도 및 부도비'(보물 531호) 등 소중한 문화재를 관람할 수 있다.
용문사 관계자는 "이번 시굴 조사에 이어 추후 본격적인 발굴작업을 거쳐 어실각이 복원되면 양평의 명산 명찰로서의 면모가 다시금 조명될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양평시민광장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