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늘도 스누피'는 매번 지고 걷어차이면서도 다음 날 다시 일어나는 <피너츠>의 인물들을 통해 '실패해도 괜찮은 매일'을 건네는 에세이입니다.
 수많은 애착템이 있지만 최근 나의 최애는 스누피 찻잔이다. 다양한 형태의 스누피 잔/컵이 있지만 차를 마시기에 이만한 형태가 없어서 그야말로 매일, 종일 사용하며 애지중지하고 있다.
수많은 애착템이 있지만 최근 나의 최애는 스누피 찻잔이다. 다양한 형태의 스누피 잔/컵이 있지만 차를 마시기에 이만한 형태가 없어서 그야말로 매일, 종일 사용하며 애지중지하고 있다. ⓒ 노시은

<피너츠>에서 라이너스만큼 말과 행동 사이의 간격이 큰 아이도 드물다. 성경 구절을 줄줄 외우고 철학자의 발언을 줄줄이 인용하면서도, 담요가 없으면 당장 세상이 끝날 것처럼 군다. 그 담요는 대체 언제부터 들고 다닌 걸까. 찾아보니 1954년 6월 1일이다.

담요의 역할

찰리 브라운은 담요를 꼭 붙들고 있는 라이너스를 보며 루시에게 묻는다.

AD
"라이너스는 왜 저렇게 담요를 들고 다니는 거야?"

루시는 아마 담요가 안정감을 주기 때문일 거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찰리 브라운도 담요를 집어 든다. 라이너스에게 그토록 잘 듣는 물건이라면 자신에게도 약간은 효험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잠시 뒤, 담요를 뒤집어쓴 찰리 브라운은 말한다.

"효과가 없어. 바보가 된 기분이야."

당연한 일이다. 그건 라이너스의 담요니까. 남의 담요를 뒤집어쓴다고 남의 평온까지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불안은 눈치도 없이 아무 때나 찾아오면서, 안심은 이상하리만큼 낯을 가린다.

다음 날에도 담요 이야기는 이어진다. 찰리 브라운이 담요 하나로 어떻게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자, 루시는 거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가르쳐준다. 한쪽 귀퉁이는 뺨에 대고 다른 쪽은 귀에 대야 한다고. 담요라고 무턱대고 뒤집어쓰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막 그 기술을 터득할 즈음이면 부모가 담요를 빼앗아 간다는 것.

참 <피너츠>다운 결론이다. 안심하는 데에도 저마다의 담요를 붙잡는 요령이 필요한데, 어른들은 아이가 요령을 겨우 익힐 때쯤 담요부터 치워버린다. 어른들은 아이가 담요를 놓아야 비로소 자란다고 생각하기 때문. 혼자 잠들고, 울음을 참으며, 아무것도 붙들지 않은 채 씩씩하게 걸어가는 게 옳기에 무언가 없이는 견디기 힘든 마음을 나약함이나 미성숙의 흔적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영국의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였던 도널드 위니컷(Donald W. Winnicott)은 아이가 유난히 아끼는 담요나 인형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았다. 그는 그런 물건에 '이행대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갓난아이는 처음에는 자신과 자기를 돌봐주는 사람이 하나라고 느낀다. 배가 고파 울면 먹을 것이 오고, 무서워 울면 누군가 달려와 안아준다. 하지만 자라면서 차츰 알게 된다. 아무리 불러도 곧장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순간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어줄 수는 없다는 것을. 아마 생애 최초의 막막함일 것이다.

그때 담요가 나타난다. 뺨에 닿는 감촉과 익숙한 냄새,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던 귀퉁이가 누군가의 품을 잠시 대신한다. 담요는 사람을 대신할 수 없지만, 그 사람이 없는 시간을 견디게 해준다. 아이는 담요를 붙든 채 혼자 잠드는 법을 배우고, 아무도 안아주지 않는 순간에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연습을 한다.

그러니 라이너스는 담요 때문에 독립하지 못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혼자 견디는 법을 배우는 동안 담요의 도움을 받고 있었을 뿐이다. 담요는 라이너스를 붙잡아두는 끈이 아니라,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로 건너가는 작은 다리였던 셈이다.

어른에게도 담요는 필요하다. 다만 너무 어른스러운 척하느라 담요처럼 생기지 않은 것을 고를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아침마다 마시는 차 한 잔이고, 누군가에게는 오래 써서 손에 꼭 맞는 컵이다. 잠들기 전 내일 할 일을 적어두는 사람도 있고,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도 있다.

아무 때나 전화를 걸어도 되는 사람이나 수십 번을 보아 대사까지 외워버린 드라마, 영화, 만화가 담요의 자리를 대신하기도 한다. 라이너스처럼 질질 끌고 다니지 않을 뿐, 우리도 저마다 마음 한쪽에 담요 귀퉁이 하나쯤 꼭 쥐고 산다.

나를 안심하게 하는 것

나에게 라이너스의 담요는 스누피다. 네 살 때 처음 만난 뒤로 한 번도 변심한 적이 없다. 어떤 날은 그냥 귀여운 강아지였고, 어떤 날은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친구였고, 또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을 조용히 받아주는 존재였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불안해서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일과 돈과 건강과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가 우르르 몰려와, 지금 당장 완벽한 대책을 내놓으라고 우리를 닦달한다. 그럴 때 익숙한 것을 곁에 두면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아도 숨은 쉬어진다.

이 찻잔으로 여러 번 차를 마셨다는 것. 이 길을 걷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 이 선율에 처음 사랑하게 된 순간을 떠올리고, 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힘든 날을 건넌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숨을 쉬는 것이다. 그렇다고 담요가 미래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의 나에게 조용히 알려준다. 너는 전에도 이런 밤을 지나온 적이 있다고.

 당신에게도 라이너스의 담요가 있나요?
당신에게도 라이너스의 담요가 있나요? ⓒ 노시은

물론 붙잡고 있다고 모두 좋은 담요인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 속 남의 삶을 들여다보며 부러워하는 것은 일종의 담요 빌리기다. 남의 담요를 뒤집어쓰고 바보가 된 기분이었던 찰리 브라운처럼, 남의 자랑과 행복 앞에서 우리는 괜히 작아진다. 애초에 나한테 맞지 않는 담요였을 텐데. 계획을 완벽하게 다듬느라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할 때도 있다. 담요와 족쇄는 둘 다 쉽게 놓기 어렵다는 점에서 꽤 닮았다.

구별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좋은 담요는 안심한 뒤 다시 세상으로 나가게 해준다. 울고 난 얼굴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며, 무서운 마음을 품은 채로도 현관문을 열게 한다. 반대로 나를 점점 더 좁은 곳으로 몰아넣는다면, 그것은 담요의 얼굴을 한 족쇄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붙들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을 붙든 뒤 내가 어디로 가게 되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우리는 자라면서 수많은 담요를 잃는다. 어린 시절의 물건을 잃어버리고, 익숙한 집을 떠나고, 영원히 곁에 있을 줄 알았던 사람과 헤어진다. 그 물건과 함께 견뎌온 시간, 그 장소에서만 가능했던 안심, 그 사람이 곁에 있을 때의 나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 담요를 잃고 우는 사람에게 이제 다 컸으니 그만 울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라이너스는 피너츠에서 가장 솔직한 아이인지도 모른다. 다른 아이들도 저마다 무언가에 기대어 살면서, 라이너스만큼 눈에 띄게 그걸 끌고 다니지 않을 뿐이다. 지금 당신이 쉽게 놓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신중하게 들여다보자. 그것이 당신을 잠시 안심시키고 다시 세상으로 보내준다면, 조금 더 곁에 두어도 괜찮다.

당신에게도 라이너스의 담요가 있는가? 그것이 오늘을 조금 더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게 해준다면, 조금 유치하게 생겼더라도 일단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덧붙이는 글 | 출처: 1954년 6월 1일·2일 자 《Peanuts》, Charles M. Schulz.


#스누피#피너츠#스누피덕후#스누피홀릭#노시은작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오늘도 스누피

『내 배낭 속의 영국 남자』, 『언제라도 티타임』, 『화요일의 티타임』의 저자. 세상 구경하고 차 마시며 글, 사진, 영상, 그림으로 삶을 기록합니다. 아직은 벌이가 시원찮은 유튜버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는 진심입니다. 좋은 기획과 재미있는 작업 제안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 비즈니스(출간·강의·글작업) 문의: peanutsholic@naver.com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